재개발 갈등과 정부 역할

김정호 / 2002-11-22 / 조회: 6,247
No.040

1. 문제의 소재

재개발이란 주로 달동네로 불리는 불량 주택지를 헐어내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사업을 말한다. 다른 방식의 주택건축사업, 특히 공영개발 사업에 비해 재개발 사업은 폭력 사태 등 극심한 갈등의 진원지가 되어 온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로 인해 사업 자체가 지연되어 관련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어 왔다. 심지어는 시작한지 20년이 다 되도록 지분정리가 끝나지 않는 경우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해 왔기 때문이다. 정부의 가장 큰 역할은 재산권을 획정하고 보호하는 일이다. 문제가 생기는 부분은 후자이다. 재개발 과정에서는 재산권의 변환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 과정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관련 당사자들은 전략적 행동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 했고, 그 결과 수많은 갈등들이 발생해 왔다.

2. 갈등의 여러 가지 양상

재개발 과정에서의 갈등은 여러 가지 양상을 띈다. 첫째는 조합원과 조합원간의 갈등이다. 조합원간의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주로 대다수의 조합원이 사업의 진행에 찬성하는 데에 반해 일부의 조합원이 사업의 진행, 특히 철거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조합원의 일부가 이주 및 철거에 반대하는 표면상 이유는 종전 토지 및 건축물 평가액에 대한 불만 그리고 이주비에 대한 불만이다.

둘째는 재개발조합과 세입자 간의 갈등이다. 가장 대표적인 갈등으로서 종종 폭력적 양상을 띠어 왔다. 철거를 강행하려는 조합측과 그것을 저지해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세입자간에 투쟁이다.

셋째는 조합원과 집행부간의 갈등으로 조합집행부의 비리와 불투명한 일 처리에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 집행부의 비리란 시공업체로부터 돈을 받거나 조합비 횡령, 이권의 부당한 배분 같은 행위 등을 말한다. 그러나 정당한 일처리를 함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에게 일일이 알리지 못하거나 또는 알릴만한 사정이 되지 못해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넷째는 조합원과 건설사간의 갈등이다. 여러 가지의 사유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또는 추가비용이 들어갈 경우 이에 대해서 시공사가 조합원들에게 추가비용의 정산을 위한 청산금을 요구하게 되는 데, 조합원들이 이것을 부당하다고 거부해서 주로 생긴다. 예를 들어 당초 계획에 없었던 가수용 시설의 설치 비용, 사업의 지연에 따른 이주비 연체이자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재개발조합과 지방정부간의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용적률 및 공공시설의 기부채납을 둘러싼 갈등이 주종이다. 재개발조합은 공원이나 도로 같은 공공시설을 무료로 지방정부에 기부 채납해야 하는데 이것을 둘러싸고 조합과 지방정부가 갈등을 빚는 경우가 자주 있다.

3. 원인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새로운 재산권이 물리적 투쟁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에 대한 대책만 보더라도 1974년 이후 여러 번의 변화를 겪었고, 그 배경에는 세입들의 저항(종종 폭력적인 저항)이 있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조합과 조합원들간에도 저항하고 버티면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기대가 늘 형성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철거가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철거의 잔인성은 철거의 대상이 정당한 법집행에 대해 어느 정도나 저항하는가에 상당히 의존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더불어 1987년 UN의 자매기관인 HIC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강제철거를 자행하는 나라’로 선정된 배경에는 철거에 대한 저항을 통해서 얻을 것이 많았다는 사실이 상당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Hobbes의 말을 빌리자면 정부 또는 국가가 해야 할 가장 기초적인 일은 각자에게 속하는 것을 분명히 해줌으로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방지해주는 일이다. 그러나 재개발과 관련해서 우리나라의 정부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또 가장 기초적인 과제를 기피해온 것이다.

정책 판단의 중요한 기준은 누구도 원칙적으로 손해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재개발은 완전히 새로운 재산권을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의 재산권에 연연할 수는 없다. 종전의 재산권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재산권의 본질을 해칠 수 있다. 세입자 문제는 대표적이다. 기존의 시가지를 전제로 할 경우 가옥주가 집주인을 내보내는 것에 대해 추가적인 보상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당초의 계약대로 보증금만 내준다면 얼마든지 대체되는 집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개발 과정에서 그렇지 않다. 많은 주택들이 없어지기 때문에 재개발은 그들에게 손해를 안겨준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리는 것은 가옥주들이기 때문에 결정의 주체인 가옥주들이 세입자들에게 보증금 이외의 추가적 보상을 해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일단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졌다면 엄격히 법을 집행해야 한다. 명도집행 결정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집행을 해 주지 않아 조합측이 철거용역회사를 동원해야 하는 사태를 놓고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재산권을 구획하고 지켜주는 일이다. 이 일을 게을리한다면 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재개발사업은 그런 길을 걸어왔다.

4. 정책 제안

필자가 제안하는 새로운 방식은 재개발의 과정을 몇 개의 과정으로 분할한 후 각 세부과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주체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현재는 사업추진 여부에 대한 결정에서부터 마지막 단계의 이익 및 비용의 분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조합 및 조합원들에게 맡겨져 있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내린 결정들이 쉽게 번복되고, 불신과 갈등이 쌓이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새로운 방식의 골격은 다음과 같다. 재개발을 크게 (1) 사업 추진 여부의 결정, (2) 철거-부지정리-매각, (3) 신축-분양의 3개의 과정으로 분할한다. 사업추진여부의 결정은 부지 내 토지에 대한 권리를 가진 조합원들의 몫으로 한다. 조합원의 의결권은 모든 조합원이 같은 것으로 할 것이 아니라 종전토지 및 건물 평가액에 비례해서 부여해야 한다.

일단 사업의 추진이 결정되면, 도시재개발법에 의해 강제철거권이 발생하는 것으로 하며, 그 권리의 행사는 지방자치단체가 맡는다. 즉 2단계인 철거 및 부지정리는 택지개발 시 토지공사와 맡았던 역할처럼 자치단체의 몫으로 하는 것이다. 철거와 부지정리를 끝내면 그 부지를 민간건설업체에 매각한다. 이때 매각의 방식은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최고가를 제시하는 업체로 선정함으로서 개발이익을 사기업이 차지하지 못하도록 한다. 자치단체는 이렇게 얻어진 매각 대금 중에서 철거와 부지정리에 들어간 비용을 제하고 남은 금액을 지분율에 따라 조합원들에게 분배한다. 한편 입찰을 받은 건설업체는 법규에 따라 주택을 신축하고 일반분양한다. 정치적 설득력을 위해 필요하다면 조합원들에게 우선분양권을 줄 수도 있을 것이나 매각대금이 조합원들에게 분배되는 한 굳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 원한다면 분배받은 수익금으로 당해 부지 내의 아파트를 사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부분은 종전 건물의 평가이다. 평가액에 따라 자신의 지분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모든 이해당사자가 평가액에 대해 첨예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불행히도 부동산시장과 같이 거래의 빈도가 낮은 시장에서 모든 이해당사자가 동의할 수 있는 평가액을 도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강압은 불가피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조합은 지자체에게 평가를 의뢰하고 그 결과에 대해 조합원의 찬반을 묻는 방식으로 사업추진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정족수를 얼마로 하는 것이 합리적일지를 알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만장일치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평가액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할 길은 열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사업 자체의 진행이 방해받지 않도록 이의제기와 무관하게 사업은 진행하되 평가액이 달라질 경우 사후에 이익 분배분을 조정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또 전략적인 이의 제기 행위를 막기 위해 재평가의 결과가 본래 평가액보다 낮거나 또는 근소한 차이에 불과할 경우 재평가로 인해 타 조합원들이 입게된 피해를 배상하게 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한편 강제력의 행사에 있어서 사람들은 민간보다는 정부의 행동에 더 수긍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강제의 성격을 갖게 될 철거를 정부가 맡는 것은 합리적 분업이다. 사업추진여부의 결정과 철거의 추진 주체를 분리시키는 것은 또 다른 바람직한 효과를 갖는다. 추진 여부의 결정을 위해서는 종전 토지 건물의 평가를 통해 각자의 이윤 분배비율을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전략적 행동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현재처럼 조합이 철거까지 맡을 경우 이미 철거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반대자와의 협상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에 반대자의 전략적 행동은 더욱 극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지분정리가 완전히 일어난 상태에서 다음 과정을 지자체에 넘기도록 함으로서 반대자의 전략적 행동의 여지를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주택의 신축과 분양을 민간업체에 넘기는 것은 그 업무에 있어 그들이 가장 효율적인 주체이기 때문이다.

재개발 이익의 분배 과정은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재개발 조합을 주식회사 제도에서처럼 지분율 개념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즉 종전 토지 및 건물에 대한 평가를 마친 후 평가액에 기초해서 지분율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전체의 평가액이 500억원이라면 평가액이 5000만원인 사람의 지분율은 1/1000이 된다. 이윤의 배분이 지분율에 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의결권도 지분율에 비례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분율이 클수록 더 책임있는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일정 자격을 갖는 사람에게 1채씩의 주택분양권을 주는 방식은 더 좋은 위치의 주택을 받기 위한 투쟁을 부추키며 또 공평하지도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렇게 할 경우 세입자들의 몫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문제로 남는다. 재개발과정에서 저소득층용 주택의 재고가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라면 재개발은 분명 저소득층에게 불이익을 가져다 준다. 따라서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이 지급되지 않는 한 재개발은 비효율적 토지이용의 변환을 가져올 수 있을 뿐 아니라, 또 정의의 관념에 비추어 보더라도 부당하다. 가옥 단위로 이익을 분배한 후 한 가옥에 소속된 사람들끼리 알아서 나누게 하든가 아니면 정부가 세입자의 몫을 정해야 한다. 필자는 가옥 하나의 평가액에 대해 지분율을 준 후 거기에서 전세보증금(월세의 경우 보증금 상당액)만큼을 세입자의 몫으로 하고 나머지를 가옥주의 몫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세입자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이해당사자의 숫자는 많아지고 그 결과 사업추진은 어려워진다. 그런데 세입자를 들이는 개별가옥주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전체 조합원이 입게될 피해를 고려해야 할 이유가 없다. 특히 지금처럼 세입자에 대한 대책이 그 세입자를 들인 개별 가옥주에게는 아주 미미한 손해만을 가져다 주게 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세입자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득이 작아지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한편 공공시설에 대해서는 새로 지어질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이 주로 사용하게 될 시설일 경우 비록 법적인 분류로는 공공시설이라 할지라도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사유재산으로 하는 것이 재개발 추진주체와 지방정부간의 갈등을 막는 길이기도 하고 또 효율성의 원리에도 부합한다.

필자가 제안하는 대안은 지자체가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철거라고 하는 골치아픈 일을 자신들이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산권을 획정하는 활동에 있어 정부는 민간보다 더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공기업인 대한주택공사가 추진한 재개발의 경우 유사한 지역에서 이루어진 민간기업의 사업에 비해 더 신속한 공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집단민원이 있다고 해서 본연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렵다고 현 제도의 골격을 그대로 끌고 간다면 갈등으로 인한 참여자들의 고통과 사회적 낭비는 계속될 것이다.

김정호(자유기업원 부원장, kch@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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