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문제에 대한 정책 제안

정규섭 / 2002-10-22 / 조회: 7,673
No.037

Ⅰ. 머리말

탈북자의 발생과 그로부터 야기되는 제반 문제가 갑자기 떠오른 쟁점은 아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탈북자들의 중국 주재 외국공관 진입과 같은 ‘기획탈북’을 통해 탈북자 문제는 인권문제와 결부되어 국제사회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10만명에서 3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되는 해외체류 탈북자를 제외한 국내입국 추세만을 살펴보더라도 탈북자 문제에 대한 효율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함을 알 수 있다. 탈북자의 국내입국은 1989년 이전 총607명에서 1990~1993년간 24명에 불과하였으나, 김일성 사후 1994년 52명, 1996년 56명 등 50명을 넘는 수준으로 증가하다, 1990년대 말에는 100명을 넘고, 2000년 312명, 2001년 583명, 2002년 9월 12일 현재 771명 등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국내입국 탈북자 정착 문제에 관해서는 1997년 7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1999년 개정) 등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시설내 보호'지원 등을 전개하고 있다. 1999년 7월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를 개소하고, 2003년 완공 예정으로 증축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설을 준비중에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해외체류 탈북자 문제와 관련하여 체류국과의 외교협상을 통해 이들의 보호'지원 문제 해결을 노력하고 있고, 유엔고등판무관실(UNHCR)과도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의 손상을 우려하여 탈북자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을 자극하면 안된다는 햇볕정책에의 맹종에 따라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가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문제’로 취급되는 마당에 탈북자 문제는 뒷전에 밀릴 수 밖에 없었다.

살기 위해 ‘지상낙원’을 목숨을 걸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동족들이 또 다른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현실에서 탈북자 문제를 방관하는 것은 민족사에 오점을 남기는 것이다. 나아가 인권문제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 증대 현상은 물론 민족통합이라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볼 때 탈북자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은 당연히 수립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Ⅱ. 탈북 원인 및 탈북자 실태

북한 당국의 지속적인 통제에도 불구하고 탈북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의 발생원인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장기화된 경제난'식량난과 사회일탈현상의 확산, 외부정보 유입 증가 등에 기인한 것이다.

북한의 장기화된 경제난'식량난과 배급체계의 붕괴는 탈북자 발생의 근본 원인이다. 1990년부터 1999년까지 계속된 북한의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1995~1997년 수해와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은 탈북자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앙배급체계가 기능을 상실하면서 개인의 능력에 따라 식량과 생필품을 조달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결국 수백만의 아사자와 탈북 사태가 초래하였다.
장기화된 경제난'식량난에 따라 북한 내부 상황은 ‘인간성 붕괴, 사회붕괴, 자연붕괴’라는 현상을 야기하고, 이러한 사회기강 해이 및 사회일탈현상의 증가는 탈북 사태발생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이와 함께 다양한 통로를 통한 외부정보의 유입'확산은 탈북을 촉진하는 주요 동인이 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는 탈북하였다가 다시 입북한 사람들에 의한 외부정보 유입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확산을 야기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탈북 동기 및 계층도 점차 변화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주로 중'러 접경지역 주민들의 경제난'식량난에 따른 생존 추구가 탈북의 주류를 이루었으나, 1990년대 후반에 들면서 평양 주민들까지 탈북 행렬에 들고 있고, 동기 역시 생존 보다는 북한 체제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전되고 있다. 과거의 탈북이 절대적인 생존조건의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면, 점차 체제비판의식에 따른 미래 삶의 보장을 위한 것으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체제유지의 근간이 되는 계층까지도 탈북을 감행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며, 가족 단위 및 기획탈북 등 조직적인 탈북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면 탈북 이후의 상황은 어떠한가? 물론 우여곡절 끝에 한국 땅을 밟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복 받은 소수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대다수의 탈북자들은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체포와 강제송환의 두려움 속에서 중국 땅을 떠돌고 있으며, 러시아 및 몽골, 나아가 동남아지역까지도 흘러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탈북자의 대부분은 중국에 체류하고 있으며, 이들의 규모와 관련하여 UNHCR 공식 통계는 2000년 8월 기준으로 10만명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탈북자 지원 민간단체들은 10만~30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월경, 장기체류, 은신'유랑생활 등의 양태를 보이면서 합법적 거주를 위해 호구(공민증) 및 체류증을 확보하고자 노력하며, 이 과정에서 인신매매 및 강제노역 등 인간 이하의 상황에 처한 유형도 있다. 인신매매를 당한 탈북자의 상황에 대해 “소와 말 등 가축과 같다”는 표현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중국 공안에게 신고를 위협으로 일시키고 먹여 주기만 하는 것이 강제노역이다.

탈북자의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국인 중국은 주로 동북3성에 체류하는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월경한 경제유민으로 취급하고, 북한과의 협정에 의해 탈북자 본인의 의사에 반해 북한으로 강제 송환하고 있으며, 기획탈북의 경우 제3국 추방 입장에 있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탈북자의 강제송환이 금지되어 있고, 러시아는 1993.2 ‘난민협약’에 가입하였지만, 지방당국은 사안에 따라 북한과 공조, 탈북자들을 송환하고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의 경우 탈북 주민들을 정치사상범으로 간주하여 정치범수용소에 보내는 등 엄중하게 다루었으나, 탈북자의 수가 급증하면서 탈북 이후 체류기간 및 동기에 따라 처벌 강도를 달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은 탈북자 문제를 인권차원에서 접근하고 있고, 유럽연합(EU)은 1998년부터 북한과의 정치대화를 통해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한편, 2001년 6월 브뤼셀에서 인권대화를 개최한 바 있듯이 탈북자 문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탈북자 문제에 대한 주요 행위자의 역할은 30여개에 달하는 국내외 민간단체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과 함께 문제는 탈북자 추세가 과연 감소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탈북 문제는 북한 체제 내부 상황의 개선 여부에 의해 직접적으로 연계될 것이다. 북한은 2000년에 들어 경제회생의 자신감을 표명하고, 2002년에 들어서는 ‘7.1 경제관리 개선,’ ‘신의주 특구 지정’ 등을 통한 새로운 자구노력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경제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경제난 해소는 단시일내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되므로 탈북의 근본 동인은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할 것이다.

Ⅲ. 정책 제안

탈북자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탈북자에 대한 기본 인식의 전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탈북자는 우리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며 국제법상 보호가 필요한 난민이라고 간주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면한 과제는 국외에 체류하고 있는 탈북자의 신분과 지위를 합법적으로 안정화시키기 위한 대책이며, 이는 탈북자들이 국제법상 난민지위를 확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국제법상 난민자격의 판정은 기본적으로 각 국가의 주권에 속하는 사안으로 난민이 소재하는 현지국에 의한 방법과 현지국의 요청 및 협조하에 UNHCR이 개입하여 난민자격을 인정·부여하는 방법이 있다. 우선적으로 정부는 탈북자들이 국제적 보호의 대상이 되는 UNHCR이 인정하는 위임난민(mandate refugee)의 지위를 얻도록 외교노력을 강화해야할 것이다.

둘째, 정부는 탈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과 러시아 등 관련국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현지국이 탈북자의 자유의사를 확인하여 제3국에 정착하기 전까지 ‘잠정비호’(temporary asylum)를 부여할 국제법상 의무가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강제송환을 억제하고 최소한의 보호가 이루어질도록 하여야할 것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현지국이 탈북자들에게 영주권 또는 공민권을 발급해 주도록 협조를 요청하거나, 한국의 여권 또는 여행증명서를 발급함으로써 탈북자들이 현지에서 사실상 장기체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또한 중'러가 난민협약 및 난민의정서의 이행·실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한국은 이 국가들이 동 협약 및 의정서를 준수하여 탈북자들에게 정착의 기회를 허용하도록 설득·요구해야 할 것이다.

셋째, 정부는 현지국의 입장을 감안, UNHCR 및 국제인권기구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다국적협의체 구성 등을 통하여 탈북자를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여야할 것이다. 한 예로 한국 정부는 UNHCR의 탈북자 시설 운영 등 UNHCR에 탈북자 보호사업을 지정하여 기부금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탈북자가 중국과 러시아 등 현지에 정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하여야 한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현지국과의 협조하에 탈북자 수용·보호시설, 이른 바 ‘난민촌’을 현지 또는 제3국에 설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호시설의 설치·운영은 현지국과 남북한간의 관계를 고려하여 UNHCR이 현지국 또는 제3국의 협조를 얻어 보호시설 설치·운영을 주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와 함께 탈북자 정착지원 차원에서 현지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이나 한·중 또는 한·러 합작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편 국내 입국 탈북자 대책과 관련하여 탈북자의 수가 급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의 탈북자 확대와 여성의 증가, 그리고 취학아동의 증가 등 국내입국 탈북자의 성격 변화에 적합한 정착제도를 새롭게 만들어야할 것이다. 현재 탈북자문제는 ‘북한이탈주민 대책협의회’에서 협의·결정하도록 되어 있으나, 이 기구는 아직 구체적인 조직체계를 갖추지 못한 실정이므로 이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 하나원을 중심으로 한 정착지원시설을 보완'확대하는 동시에 사회정착 지원을 위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수립과 운영이 필요하다. 정부는 시민단체와의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탈북자 지원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동시에 ‘북한이탈주민후원회’의 기능에 대한 보완대책을 시급히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당면한 대책 수립과 함께 탈북자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열쇠는 탈북의 동인이 소멸되어 더 이상의 탈북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데 있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 자체의 인권상황이 개선되도록 유도할 수 있는 대북정책을 적극 강구'추진해야할 것이다.

Ⅳ. 맺음말

김대중 정부는 그간 햇볕정책에 집착한 나머지 국가의 정체성마저 손상될 우려가 있는 대북정책을 추진하였다. 정부가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공동체의 일원인 탈북자 문제는 거의 방치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히려 국내외 민간단체와 유럽연합'미국 등 제3자가 더 관심을 갖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관련국가들과의 현실적인 여러 정치'외교적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제부터라도 탈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조용한 해법’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만 한다. 적어도 북한 당국과 관련국, 국제인권기구 등에 탈북자 문제와 같은 인권 현안의 해결을 촉구해야할 것이다.

한편 김정일 정권은 외형적으로는 강성대국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선군정치를 통해 매우 견고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내부의 경제'사회상황은 비정상적인 양태를 나타내고 있다. 북한 체제는 현재 내부적으로는 극심한 경제난의 경험과 지속, 외부 정보 유입 증가, 사상통제의 효율성 저하, 세대구성의 변화 등 제반 현상이 맞물리면서 과거 어느 시점 보다 취약한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중적 구조하에서 북한 내부에서 급격한 정치적 폭발현상이 야기될 수도 있으며, 이는 한반도의 운명을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대규모 탈북 사태의 발생도 초래될 것이다. 중국'일본 등 주변국들은 오래전부터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의 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규섭 (관동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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