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개혁: 노사정위원회 폐지로부터

남성일 / 2002-10-13 / 조회: 5,630
No.035

1. 문제의 제기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강도높은 구조개혁이 필요하였으며 정부는 이를 기업, 금융, 공공, 노사부문의 4대 개혁으로 추진하여 왔다. 부실기업 정리, 공기업 민영화 등 사업조정과 함께 인력을 감축하고 실업자가 발생하는 사회적 고통이 수반되었다. 현 정부는 이같은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는 당초 기대한 효과와는 달리 노동시장을 더 경직적으로 만들고, 구조조정을 방해하며, 노사관계를 정치적 집단주의로 변질시켜 시장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한 노사관계의 성격과 문제점을 규명하고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2. 문제의 해부: 노사정위원회

가. 노사정위원회의 성격

현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 및 사회적 합의 추구를 노동정책의 골간으로 내세웠다. 이 중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DJ정부의 본래적 입장을 반영한다고 보기 어려운 반면 사회적 합의는 정부 노동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합의는 노'사'정 및 공익이 참여하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경제'사회적 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나가고자 하는 장치이다.
그간의 노사정위원회의 활동으로 보건대 노사정위원회는 이른바 사회적 합의주의, 즉 조합주의(corporatism)의 실현기구라 할 수 있다. Corporatism의 특징은 이익단체들의 독점화 및 위계화되어 있다는 것이며 이익단체들의 정책과정에의 참여는 단순한 정보교환으로부터 실질적인 정책합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현 정부가 당초 구상한 사회적 합의의 형태는 국가가 주도하여 노사의 동의(consensus)를 구하는 협의체 성격이었으나 노조의 치밀한 전략 및 정부의 책임회피적 태도로 인하여 실질적인 합의체로 성격이 바뀌었다. 의제 또한 정책의 방향과 원칙 설정에 머무르지 않고 특정법안의 구체적 조항, 특정기업의 노사문제 등으로 확대되었다.

나. 사회적 합의주의의 갈등구조

첫째, 사회적 합의는 노동시장 유연성과 본질적으로 배치할 가능성이 높다. 조합주의의 본질은 집단주의이며 정치적 의사결정이다. 조합주의는 제 이익집단간의 타협을 통하여 시장에 필연적으로 개입하나 반면에 노동시장 유연성이 추구하는 것은 개별주의이며 자유로운 선택의 경제적 의사결정이다. 따라서 노동시장 유연성은 시장에 대한 법적, 사회적 규제완화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조합주의는 형태여하에 따라 법보다 더 강력한 사회적 규제가 될 수 있다.(예, 98년 현대자동차 사태에의 개입)
둘째, 조합주의가 내세우는 의사결정체계가 기존의 체계와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많다. 현재 법 제도와 정책의 입안 및 시행기구로서 국회와 노동부가 있고 또한 노동위원회가 판정기관으로 있으므로 이 가운데서 노사정위원회가 어떤 위상을 가지고 어떤 기능을 하느냐에 따라 기존의 기구들과 충돌할 소지가 많다.
셋째, 각 이익집단의 참여에 의한 정책결정이 공익대신 특정집단의 특별이익에 봉사할 수가 있으며 그 비용은 국민다수의 부담으로 전가될 소지가 많다. 노사정 유착은 금융권이나 공공부문에 대한 특혜, 이 부문 퇴직자들에 대한 특별배려 등으로 나타나며 그 부담은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 노사정위원회 활동의 전개과정

당초 정부는 정책형성과정에서 정부가 주도권을 쥐면서 노사가 협의하여 협력을 구하는 협의체를 구상하였다. 98년 1월15일 노사정위원회가 발족하여 1월20일「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간의 공정한 고통분담에 관한 노사정 공동 선언문」을 채택하고 뒤이어 2월6일 10대 의제 90개 항목에 대한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짧은 기간에 중요한 과제를 완수하고 활동을 마무리지은 것이 예이다.
그러나 노조의 목표는 정부와 대등한 입장에서 주요사안을 결정하는 사회적 합의체를 실현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투쟁과 협상이라는 양날의 칼을 사용하였다. 예컨대 98년 6월 및 7월 노사정위원회의 실질적 사회협약기구화, 노사정위원회법 추진 등 노정합의를 얻은 이후 노동계가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결정함으로써 제2기 위원회가 출범한다. 그러나 6개월 활동 후 민노총 탈퇴, 99년 4월 한노총 또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탈퇴, 곧이어 경영계도 노정합의를 이유로 탈퇴함으로써 1년이 채 못되어 좌초한다. 2기 위원회는 노정합의, 탈퇴 등을 통해 정치적 노사관계로 바뀌는 계기가 되며 합의사항들도 집단주의를 강화하는 것들이다.
이후 99년 5월 노사정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및 6월 노조전임자문제, 근로시간 단축 등에 관한 전향적 합의를 내용으로 하는 노정합의가 있은 후 제3기 위원회가 출범한다. 그러나 99년 11월 노총은 활동을 중단하며 2000년 3월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지만 2000년 11월에 다시 활동을 중단 --> 12월 복귀 결정 등의 과정을 반복한다. 그리고 활동 중단, 복귀 등이 반복되면서 중요한 합의는 대부분 위원회 밖에서 노정간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결국 구조조정 등에 대해서는 탈퇴, 활동중단 등 투쟁전략을 구사하여 철저히 거부하고 노사정위원회의 볍제화, 산별 교섭체제구축, 법정근로시간 단축 등 집단주의를 강화하는데 대해서는 협상전략을 구사함으로써 노사정위원회를 실질적인 합의기구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3. 노사정위원회가 미친 영향

첫째, 노사관계의 성격이 정치적 노사관계 및 노정관계로 변질되었다. 구체적으로 노사정위원회는 노조의 정치적 조합주의를 위한 전략 구사의 대상으로 이용되었다. 노동조합은 전술한 바와 같이 그동안 노사정위원회 법제화 또는 주5일제 근무 등을 요구하는 공세적 활동을 펴면서 활동 중단과 복귀를 반복해왔다. 그리고 투쟁과 협상전략을 병행 사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넓혔다. (제2기 탈퇴이후 노사정위원회법 제정, 제3기 활동 중단 이후 근로시간단축 특별위원회 설립 및 철도구조조정 합의도출 등) 그리하여 정부의 정책방향 중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해서는 투쟁으로 대응, ‘사회적합의 추구’에 대해서는 협상과 투쟁을 병행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노사정위원회를 협의기구 아닌 정치적 의사결정기구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경영자를 제치고 노사관계의 실질적 당사자, 노동조합의 대응파트너 역할을 맡음으로써 노사관계가 노정관계로 변질되는데 일조하였다.

둘째, 법과 원칙이 무력화되었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원칙이나 법과 관계없이 이슈에 대해 노사정의 논의를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합법적이며 시급한 구조조정이라도 노동조합이 이의를 제기하면 노동조합과 협상해야하는 현실이 되었다. (예, 금융 구조조정) 그리고 갈등의 조정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라는 명목아래 기존의 법과 질서는 무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갈등의 내용이나 정당성은 관계없이 갈등 그 자체만 일단 최대한 키워 놓으면 무언가 얻어진다는 의식이 만연하게 되었다. (불법파업이라도 일단 선언하면 조정하는 과정에서 선물이 있음. 예; 전력산업 민영화)

셋째,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오히려 심해졌다. 근로기준법 상의 까다로운 정리해고 절차 등 법적 규제에 더하여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규제의 어려움으로 구조조정에 꼭 필요한 정리해고를 못하고 이에 따라 필요한 인원충원도 못하는 등 경직성이 심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OECD의 1999년 및 2001년 보고서는 정규직의 고용조정 탄력성에 대하여 조사대상 26개국 중 한국을 25위로 최하위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간 노사정 합의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 1기를 제외하고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지향하는 합의는 한 개도 없으며 오히려 기왕의 유연화 정책을 뒤집으려 한다. 근로자 파견법의 폐지 주장, 법정근로시간 단축(주5일 근무제) 도입 합의, 노사합의에 의한 구조조정 등이 그 예이다.

넷째, 구조조정이 지연되거나 전망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조합의 반발이 있을 경우 규모를 축소함으로써 구조조정 효과를 상실하고 다시 부실에 빠져 재구조조정이 필요한 경우도 나타났으며 (H은행 등의 2차 구조조정, 철도 및 체신 인력감축계획의 재조정) 혹은 구조조정 적기를 놓침으로써 부실이 심화되기도 하였다. (자동차 산업) 또한 노사정위원회에서의 합의 도출이라는 명목하에 구조조정이 지연 되거나 전망이 불투명하게 되었다. (공기업 민영화 및 합병, 금융산업 구조조정, 철도산업 민영화 등)

4, 노사개혁의 방향 및 대안

노사정위원회를 매개로 한 현재의 사회적 합의주의는 정부의 당초 의도와는 달리 사회민주 조합주의(Societal Corporatism)로 이행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사회민주조합주의는 노사정 당사자가 대등한 위치에서 수평적 으로 정책결합 및 의사결정을 하는 기구이다. 반면에 당초 정부가 지향한 국가조합주의(State Corporatism)은 정책형성에서 정부가 주도권을 갖되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관련집단의 협력을 얻고자하는 기구이다. 사회민주조합주의로의 이행을 목표로 노동계 일부는 기업단위에서는 경영참가법 제정에 의한 경영참가, 산업별로는 노동조합의 산별체제 전환, 국가단위에서는 노조의 정치세력화 등 각 단위에서 의사결정권 획득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권리신장부문으로 교원 및 공무원 노조의 결성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중간단계로서 노조는 이미 노사정위원회의 법제화를 통한 위상강화를 마쳤고 실업자의 초기업단위 노조가입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경영참가법 제정 등을 노사정위원회 과제로 확정하여 놓고 있다. 이러한 방향으로의 사회적 합의주의 강화는 집단간 정치적 타협에 의한 의사결정으로 노동시장에서 시장기능을 파괴할 것이며 당연히 경제 전체의 생산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이제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21세기는 지식경제의 시대이다. 지식경제는 집단적 평등보다는 개인의 창의력이 집단을 이끄는 환경이므로 노사관계도 개별주의로 이전해야 할 것이다. 즉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집단주의에 근거한 사회적 합의시스템으로부터 개별기업 및 근로자의 자율을 중시하는 시장시스템으로 방향을 전환해야한다. 노사관계의 문제해결은 시장경제원리와 법치주의의 두 가지 원칙아래 당사자 자율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록 경제적 유인체계를 이용하는 시장시스템은 최선은 아닐지라도 상대적으로 부작용이 적은 장점이 있다. 이같은 방향아래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첫째, 노사정위원회는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주의 실험은 사회적 갈등의 해소라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경제력을 약화시켜 실업 증가로 이어지므로 사회적 갈등을 오히려 증대시킨다. 또한 노사관계 성격 왜곡, 정치적 노조주의 등 부작용만 낳은 것으로 판단된다. 노사정위원회의 폐지는 개별 노사관계 당사자의 자율성을 회복시켜 금융, 공공부문 등에서 구조조정이 시장원칙에 맞도록 신속하게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경제체질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골치아픈 사안들을 노사정위원회에 던져놓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부 및 관련당사자들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막음으로써 중요한 정책들이 책임있게 추진되는 효과도 거둘 것이다.
둘째, 갈등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협의체가 필요하다면 비상설기구인 느슨한 형태의 협의체가 바람직하다. 즉 필요할 때 소집되어 노사정 및 공익간의 논의를 통해 경제'사회적 현안에 대하여 협의하고 그 결과를 정부 및 국회에 건의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이 협의체에서는 어떤 사안에 대한 기본 원칙과 방향에 대해서만 논의할 뿐, 구체적인 법문안 등에 대한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합의를 전제로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노사단체가 각각 자기 그룹의 일부밖에 대표하지 못한다는 대표성의 문제를 극복하고, 소수집단이 날카롭게 대립함으로써 생산적 협의가 어렵다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참여범위를 중소기업, 자영업, 소비자 등으로 개방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경제원리에 맞는 노동관계법 개정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유니온 샾(union shop) 규정을 삭제하여 단결할 권리와 함께 단결하지 않을 자유도 보장해야 할 것이다. 또한 복수노조를 인정할 경우 경영자에게도 교섭대상의 선택권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요구하는 행위는 부당노동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리고 파업 중 대체근로를 허용함으로써 제3자에게 피해를 주지않는 파업권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끝)

남성일(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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