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한에 대해 원하는 것, 북한이 미국에게 원하는 것

이춘근 / 2007-03-30 / 조회: 20,121
필자는 지난번 국제이슈 해설에서 미국 및 부시의 대북전략은 급격히 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과 전략에서 변한 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본 국제이슈 해설은 그 이후 변한 상황을 추가적으로 나온 자료들을 통해 분석하며, 독자들이 제기한 의문과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I. 급변하는 상황을 초래한 계기(immediate cause)의 추적


부시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입장은 북한의 인권 문제를 강조하고, 독재자 김정일을 질타하며, 북한의 핵은 완벽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게 해체 되어야 한다는 소위 “강경 정책”을 견지하던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유화적”으로 바뀐 것으로 이해되어지고 있다. 이 같은 부시의 변화에 대해 앞뒤 없이 '부시가 돌변했다’느니 '미국의 외교가 늘 그렇게 싱거운 것’ 이라는 등의 조롱조 비난으로부터 부시가 북한 주민을 배반했다는 노골적인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난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미국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포기하고, 북한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도 포기 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비난과 한탄이 대한민국의 안보를 걱정하고 우려하는 보수적인 지식인들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것도 최근의 특이한 일이다.


인간 및 사회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항상 자료 부족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특히 국제정치학자들이 완벽한 자료(data)를 가지고 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경우란 거의 없다. 그래서 어떤 국제정치적 사건을 분석하는 경우라도 학자들은 상상력과 추리력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상상과 추리는 국제정치학의 이론과 실제를 깊이 공부한 결과로부터 도출되는 올바르고 타당한 것(educated guess) 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필자는 그래서 부시가 변했다며 놀라고, 탄식하고, 비판하기 보다는 부시로 하여금 그토록 변하게 한 계기(missing link)가 무엇인지를 추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의 급격한 국제정세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Missing Link의 존재가 있으리라는 생각의 근거는 1월 20일경 베를린에서 북한 측과 회동한 후 한국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의 언급과 그 이후 그의 행동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2월 초순 서울을 방문, '북한이 무엇인가 절박한 상황에 처한 것 같다. 이번 회담에서는 결과가 있을 것이다’고 말한 바 있었고, 5차 6자회담 기간 중에는 무엇인가 좀 더 얻어내려는 북한 측을 향해 “오늘이 회담의 마지막 날 이 될 것” 이라는 투로 상당히 도도하게 행동했다. 급한 것은 미국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6자회담 이후 2.13합의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자신의 전직 상관 본 볼턴의 비난을 듣고 힐 대사는 “그는 현직에 있지 않다”고 대꾸함으로서 현직에 있는 자신은 볼턴이 모르는 그 무슨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고위 공직자답지 않게 반응 했다.

3월 23일자 ABC-TV 와의 대담에서 미국 부통령 체니도 '볼턴의 비판은 가치가 있지만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체니는 스스로 ’그렇다면 김정일이 약속을 다 이행 한다고 기대할수 있을까? 라고 자문(自問)한 후 “물론 그렇지 않을 것” 이라고 자답(自答)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같은 방법은 한번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말 했다. 체니의 언급 역시 이번 국제정치 사건에 최고위급의 결정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존재를 의심 할 근거가 된다.


국제정치란 문자 그대로 두 나라 이상의 관계를 말하며 한편만의 일방적 시도로 급격한 변화가 초래될 수 없는 영역이다. 국제 정치의 진정한 변화는 당사자 양측이 모두 변화를 시도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한쪽만이 격렬하게 변화를 추구하는 경우가 바로 전쟁이 발발하는 시점이다. 국제정치에서의 급격한 변화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그것은 항상 양측이 동시적으로 반응 할 때 가능한 것이며 현재 미국과 북한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형편없는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기독교적이라는 의미에서 부시를 신념의 인간 (Man of Faith)라고 보는 저자도 있었다. 필경 부시를 변하게 한 것은 언론에 공개적으로 보도 되지 않은, 혹은 보도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닐까?


II. 미국의 대 북한 정책의 심층적 요인(underlying cause)


미국의 세계 전략과 북한


미국의 대북정책이 급변했다고 말하지만 미국의 대북 정책의 전략적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의 세계 전략은 두 가지 차원에서 전개 되었다. 그 두 가지는 물론 상호 독립적으로 추구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세계 전략 목표 중 첫 번째는 테러리즘의 근절이며 두 번째는 미국패권의 지속적 유지다. 두 가지 사이에 정책의 우선순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 가지는 따로 진행 되는 것 같으면서도 밀접하게 연계 되어 있다.


미국은 9.11 직후 중동의 테러리스트들의 근거지와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국가들을 전략적 표적으로 선정했다. 미국의 중동을 향한 반테러 전쟁 전략은 중앙아시아의 주요 거점지역을 확보하는 것으로 시작 되었다. 미국은 중앙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에 기지를 개설 했는데 이들 지역은 중동의 테러 근거지를 공격하는 거점인 동시에 중국,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요충이기도 하다.


북한은 미국의 세계전략 두 가지 측면 모두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북한은 미국의 반테러 전쟁의 표적인 동시에 중국을 견제하기위한 미국 패권 정책의 전략거점이기도 하다.북한은 중국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지역으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에서 지구 어느 지역보다 전략적으로 더욱 중요한 지역이 되는 곳이다.


미국은 우선 북한을 악의 축 3개국 중 하나로 설정함으로서 반테러 전쟁 전략의 주요 표적으로 설정했다. 2002년 이래 지금까지 미국의 대 북한 전략은 반테러 전쟁의 입장에서 주로 관찰 되었지만(북 핵 제거) 미국이 그동안 준비한 것은 북한을 미국편인 국가로 만드는 작업(regime change, 즉 북한 민주화) 이기도 하였다. 후자가 달성되면, 즉 북한이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으로 바뀌게 되면 전자(북한 핵의 위험)는 자동으로 해소되는 것이다.


미국에게 있어서 북한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한다 함은 북한이 더 이상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지원국이 아니게 하는데 있다. 북한이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지원국이 아니게 하는 것 중에서 하책(下策)은 바로 북한의 핵을 제거하는 것이고 상책(上策)은 북한을 미국편으로 만드는 일이다. 미국의 대북한 정책 중 상책이 바로 Regime Change 인 것이다. Regime Change에는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는 것, 김정일 정권이 미국에게 더 이상 적대적이 아닌 정권으로 변하는 것(리비아식) 등 최소한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논리적으로 볼 때 테러리스트와 가장 근접한 핵무기는 회교 국가들(이란, 이라크, 파키스탄 등) 이 보유한 무기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 편이 된 파키스탄의 핵무기를 미국은 눈감아 주고 있는 상황을 우리는 보고 있다. 전쟁은 무기 때문에 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싸우려는 생각을 가진 인간들의 적대감 때문에 발발하는 것이다. 미국은 아마도 김정일 정권이 반미를 포기하면, 그리고 미국의 이익에 봉사한다면, 그 수준에서 기왕의 문제를 종결 시킬 수 있을 것이다. 3월 중순 미국을 방문한 김계관은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전략적 관심을 자기고 있는지”를 물었다. 이는 바로 미국의 대 전략에 북한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북한 측의 놀라운 이야기였다. 필자는 이미 북한 핵문제는 '미국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날 끝나는 것’ 이라고 주장한 바 있었다.


미국의 대 북한 전략의 변화에 관한 논란


그동안 미국의 대북한 정책을 강경 정책이라고 말하고, 2월 13일 합의를 위요(圍繞)한 미국의 대북정책을 유화 정책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설명은 올바른 것은 아니다. 2월 13일 이후에도 미국은 북한에 대해 과거와 별로 다르지 않은 수준의 군사적 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3월 25일부터 예정된 전시 증원 훈련(RSOI)은 과거보다도 오히려 더 큰 규모로 예정대로 진행 중이며 미국의 핵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호를 위시한 막강한 군사력이 한반도 부근에 전개 되어 있다.


미국은 정밀 폭격을 통해 영변의 핵시설을 파괴 할 수 있을 것이며 북한 정권에게 치명상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이 대북 강경정책의 진수 일 것이다. 미국은 이 같은 정책을 옵션으로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행에 옮긴 적은 없다. 미국이 전략적인 나라라면 그 같은 하책(下策)을 쓸 가능성도 거의 없다. 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은 강격정책을 쓴 일이 없고, 강경정책으로는 북한의 핵은 물론 북한 주민의 인권, 북한의 독재정치 등을 전혀 해결할 방법도 없는 것이다. 미국이 소리만 크게 지르고 북한에 대해 무섭게 보인다고 북한 인권이 개선되거나 독재 정치가 완화 되지는 않으며 핵문제도 해결 될 수 없다.


강경 정책을 하책으로 보는 이유는 그 정책은 미국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으로부터 기습 폭격을 당한 북한이 미국을 향해 전쟁을 확대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별로 없지만, 미국의 폭격을 당한 북한은 궁극적으로 중국에 더욱 의존하는 정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라크 식으로 전면전쟁을 벌여 미국 육군이 북한을 점령하지 않는 한 미국은 원하는 바를 얻기 힘든 상황 이었던 것이다. 특히 한국 정부가 전혀 동맹국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은 홀로 북한을 공격하거나 점령하는 전략을 고려할 수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미국이 수립한 대북 정책 목표의 현실적인 진행은 그 방법이 폭력적인 것이던 평화적인 것이던 미국이 북한에 실질적으로 개입(engage) 함으로서 비로소 시작 될 수 있는 것이다. 2월 13일 6자 회담 이후 미국은 북한에 개입 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 한 것으로 보인다. 2.13 이후 미국은 우선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한에 대한 개입을 시작했지만 폭력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준비(예를 들어서 북한 핵시설 폭격 등) 에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준비 태세는 지난 수년간 유지하고 있었으며,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유지할 것이다.


III. 북한이 미국에게 원하는 것


작금의 변화는 북한이 일단 대단한 정책 선회를 한 결과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이 작전상의 변화인지 불가항력에 의한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한다. 아무튼 북한의 최근 언급 과 행동은 대단한 정책 선회가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를 통해 친구 관계를 맺고 싶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고 싶다” 고 말 할 정도였다. (3월 16일 북한의 정태양 미국 국 부국장의 언급) 북한 스스로 자신들은 아직까지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북한은 중국에 대한 서운함을 말하고 중국은 그동안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못살게 했던 세력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현재 북한이 원하는 것은 국가로서의 북한이 잘 먹고 잘사는 길을 추구하기 보다는 “정권”으로서의 북한이 연명을 추구하는 것이다. 김정일 정권이 미국과 놀라운 접근을 하고 있는 것은 김정일 정권의 연명을 궁극적으로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나라도 역시 미국뿐이라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적 사고에서 연원하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중국에 무엇인가를 기대했던 북한은 더 이상 중국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었던 3월 초 김정일은 북한의 고관들을 대동하고 평양의 중국 대사관을 방문했다. 정상적인 국제 관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은 중국이 북한의 동맹국이기 보다 종주국처럼 행동 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동맹국이 적국이 되고 적국이 다시 동맹국이 되는 것은 현실적 국제관계에서는 늘 있는 일이다. 중국과 소련이 내심 갈등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포착한 미국은 대만을 버리고 중국을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으로 끌어들인 후, 중국을 전략적 동맹국으로 대접함으로서, 중국을 대 소련 투쟁 전선의 선봉으로 삼았고 결국 소련을 붕괴시키는데 성공했다. 중국 역시 미국을 이용, 경제발전을 도모하면서 중국의 진짜 적국 소련을 붕괴 시키는데 일조했다. 1970년 대 이후의 일이다.


최근 일어나는 변화를 1970년대 강대국 국제 질서의 요동과 비교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북한과 미국 사이의 변화 역시 북한과 미국이 전략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당시 미국 중국 수교의 충격은 일본에서는 닉슨 쇼크라고 알려졌으며 한반도에서는 북한 사회주의의 강화, 남한 유신정권의 강화로 귀결 되었다.


미국과 수교하는 것이 북한 정권 그 자체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북한 정권이 언제까지 이처럼 위험한 전략 게임을 계속 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마 5월 정도가 되면 보다 권위 있는 분석을 위한 확실한 자료들이 나오게 될 것이고 현재 진행되는 국제정치의 진행 방향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인 변화에 너무 이리저리 휩쓸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상황을 관찰하며 우리 대한민국은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안보 이익을 확보 할 수 있을지 그 방안을 곰곰이 생각하며 변화에 대처하면 될 것이다.


이춘근 / 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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