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정치를 표방하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작년 2.10일 핵보유 선언, 금년 7.5일 단·중·장거리 미사일 무더기 발사, 10.3일 핵실험계획 발표, 10.9일 핵실험 강행 등으로 이어진 핵·미사일 도발행위를 통해 그간 북한을 그렇게도 감싸고 대변하고 도와준 남쪽으로부터의 '햇볕’과 '포용’을 철저하게 묵살했다. 또 1992년 2월 남북 간에 합의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후 북한의 핵개발 방지와 한반도 평화 증진을 위해 한국정부와 미국등 국제사회가 지금까지 기울여 온 다각적인 노력이 얼마나 사막의 신기루와 같은 허상(虛像)을 좇아왔는지도 여지없이 드러냈다.
지금 대한민국은 반세기 전 6.25전쟁 이래 가장 위험한 안보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북한의 핵무장이 현실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현실은 아직도 북한 핵무장의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북한의 핵실험 직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약 69%가 '제재’ 보다는 '대화’를 통한 사태해결을 원했다고 한다. 이는 국민 상당수가 북한 핵무장의 위험성과 그 파급영향에 대해 별로 민감하지 않다는 의미다. 북한 핵실험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대북제재에 찬성하는 대다수 일본인과는 매우 대조적인 현상이다.
II. 무엇이 문제인가?
1. 안보의식 위기
지금 문제되는 것은 일반 국민의 안보의식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 최고위 정책결정자들의 안보관과 대북관이 더 문제라 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사태와 관련하여서도 대통령, 총리를 비롯한 정부·여당 핵심 인사들의 左편향적 안보관과 북한 '감싸기’와 '퍼주기’ 식의 대북정책이 대내적으로는 정치·사회적 불안감의 증폭요인이 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국제적으로 따돌림 받기 알맞을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 후 6일 만인 10.15일 만장일치로 가결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결의 1718호과 관련하여서도 정부당국자들은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제공되는 '자금이나 금융자산’은 핵·미사일 개발에 직접 쓰인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들 사업을 계속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궤변이다. 문제의 본질은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사용할 수도 있는 자금과 금융자산의 확보수단이나 확보경로를 차단하자는 것이지, 확보한 자금을 어떤 용도로 쓰느냐는 것을 규명하자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盧정권의 입장은 결국 입으로는 “북핵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행동으로는 북핵을 방조하는 행태라 할 수 있다. 앞으로 국제사회는 이런 위선적 행위를 계속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 같다.
2. 한미동맹 위기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9.14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 단독행사 문제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즉, 한미연합사(CFC)의 해체에 합의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10.20일 워싱턴에서 있은 제38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양국 국방장관은 2009년 10월 15일에서 2012년 3월 15일 사이 상호 합의하는 시점에서 CFC를 해체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노대통령이 취임이후부터 집요하게 요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한편, 미국도 1990년대부터 국방태세 변환의 일환으로 한반도 안보상황 평가에 따라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 이양한다는 방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두르는 입장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보다 미국이 더 서둘러 CFC를 해체하려는 모습니다. CFC 해체는 바로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전투작전사령부의 해제를 의미한다. 이는 북한정권이 지난 반세기 동안 끈질기게 노력하고도 이루지 못한 과업이다. 노정권은 이를 단 3년 만에 해치운 결과가 됐다.
한미연합사령부는 대북 전쟁억제의 중추기반이고, 또 세계 최강의 군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연합군사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군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국가전략 및 군사전략적 자산이기도 하다. 盧정권은 이런 국가전략적 자산을 '자주국방’과 '군사주권’을 명분으로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3. 군사위기
한반도는 이제 '핵무기지대’(nuclear weapons zone)로 변질된 것으로 봐야 한다. 가장 우려되던 위기상황이 현실화되어 버린 것이다. 핵무장한 북한의 대남군사위협 상황에서 한국은 이제 독자적으로는 대북억제태세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우리도 북한처럼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하지 않는 한, 앞으로 미국에게는 자주, 군사주권 등 그간 내세워 온 주장들을 모두 거둬들이고 핵우산의 확고한 보장과 한국방위공약 준수를 간청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됐다. 이것이 싫으면 베이징으로 달려가서 북한의 대남 핵 공갈·협박을 막아달라고 애걸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탐탁하지 않으면 평양에다 대고 뭐든지 달라는 대로 다 줄 테니 남북평화선언 이든, 남북연합 이든 남북연방이든 어떤 형태로든 평화체제를 구축하자고 매달리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북한의 핵무장은 어떤 수단으로든 막아야 한다. 제재든, 대화든, 강압수단이든 가릴 처지가 아니다. 또 자주외교니, 자주국방이니, 균형자 역할이니, 균형외교니 배부른 소리 할 입장도 아니다. 특히 “북한 핵은 통일되면 다 우리 것”이라거나 “북핵문제는 민족공조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등의 헛소리는 더더욱 안 된다. 북한 핵무기는 노동당 규약에 '최종목표’로 명시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건설”을 위한 무장력의 핵심 요소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III.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시급한 문제는 최근 점점 가열되는 조짐을 보이는 한·미 간의 안보 불협화음을 가급적 빨리 해소하는 것이다. 이것이 새 외교안보팀의 최우선 당면과제라 할 수 있다. 특히 지난 10.20(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있은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 합의내용과 관련하여 양측 사이에 견해차이가 불거진 이후 한미 국방당국 간의 불협화음은 계속 표출되고 있다. 이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동맹국으로서 상호 존중과 신뢰의 상실에서 오는 결과가 아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금년 SCM의 가장 중요한 현안이었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시기와 핵우산 보장과 관련한 '확장된 억제’ 개념에 대해서 한미 양측은 서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상태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한·미 국방당국은 서로 더 깊은 불신의 늪으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1. 전작권 전환 문제는 상호신뢰와 협조정신의 문제다.
이번 SCM에서 2009년과 2012년 사이 어는 시점에서 전작권을 전환하기로 합의했지만, 앞으로 그 시기 결정을 위한 협상과정에서 한미 국방당국 간에는 심한 마찰과 갈등이 예상된다. 특히 10. 30일 버웰 벨 한미연합사령관이 이번 SCM 협의내용과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내년 상반기까지는 전작권 전환시기가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한반도 안보상황 보다는 전작권 이양을 우선시 하는 입장으로서 우리 국방당국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상치된다.
문제는 물론 안보상황과 무관하게 전작권의 조기전환을 먼저 요구한 한국 측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도 일방적으로 밀어 붙일 일이 아니다. 결국 전작권의 전환시기 결정은 동맹국으로서의 상호 신뢰와 협조정신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미 국방당국은 전작권의 조기전환을 주장한 한국 측의 자충수(自充手)를 역이용하여 전환시기를 앞당기려고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한국 측도 전환시기 보다는 전환여건에 대해 보다 솔직하게 미 국방당국과 대화해야 한다. 특히 동맹 유지 및 공조를 위해 한국이 감당해야 할 몫은 한국이 감당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2. '확장된 억제’ 를 확대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미국 측이 한국이 요구하는 핵우산 보장문제와 관련하여 SCM 공동성명에 처음 포함시킨 '확장된 억제’ (extended deterrence) 개념은 과거 냉전시대의 개념과는 다르다. 무조건 일방적으로 확대 해석할 것이 아니라 이 개념에 함축되어 있는 미국 측의 의도를 읽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냉전시대의 '확장된 억제’는 소련 핵위협을 대상으로 대륙간탄도탄(ICBM), 잠수함탑재유도탄(SLBM) 및 전력폭격기로 구성되는 핵공격력 위주의 삼원체제(triad)였다. 그러나 부시정부의 2002년 '핵태세보고서’(NPR)는 과거 핵공격 위주의 삼원체제에다 '방어적 체계’ 및 유사시 대비하기 위한 '기반시설’ 확보를 추가한 '새로운 삼원체제’ 개념을 확립했다. 테러, 핵확산 등 새로운 냉전 종식 이후 국제안보환경에 적용하기 위한 개념인 것이다.
금년 SCM공동성명에 포함된 '확장된 억제’ 개념은 이 '새 삼원체제’에 입각한 억제개념으로 봐야 한다. 이 개념은 핵공격력 보다는 '재랙식 공격력’과 '비핵 방어체계’에 비중을 두는 개념이다. 국방당국은 이런 측면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일본이나 한국에게 '미사일 방어체계(MD)에 적극 참여를 권유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국방당국은 이번 SCM 공동성명에 '확장된 억제’ 개념의 명기를 일방적으로 확대해석하면서 좋아만 할 것이 아니라, 대북억제를 위한 패트리오트 체계 도입 등 '방어적 체계’ 확보는 우리 몫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3. 한국은 동맹국으로서의 자기 몫을 해야 한다.
만일 한국이 동맹 파트너로서 자기 몫을 다하지 못하거나 기피한다면, 유사시 핵우산이나 군사지원도 그 만큼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오늘의 미국은 과거의 미국이 아니다. 방위비 분담, 평택 미군기지 이전. 상호운용성, 주한미군 훈련장 등 모문 분야에서 이제부터는 과거와는 다른 한미협상관계가 예상된다.
즉, 과거에는 미국이 전부 부담하던 것을 앞으로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부담하든가 양국이 공동으로 부담하는 관계가 될 것이다. 그 만큼 한국 측의 국방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당국자들은 이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고 협력을 구해야 할 것이다. 결국 전작권 전환, 핵우산 보장, 유사시 미국지원 등은 모두 동맹국으로서의 상호 존중과 신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협조정신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21세기는 테러, 핵확산 등 초국가 위협 또는 비대칭 위협이라는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안보의 세계화’, '군사협력의 세계화’ 시대다. 이런 새로운 시대에 살면서 자주, 군사주권 등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한미연합사’ 해체, '핵우산보장’ 삭제 요구 등으로 국가안보기반을 흔드는 것이야 말로 수구 좌파적 행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빨리 벗어나는 것만이 오늘의 시대적 선택일 것이다. 그 선택의 우선순위는 당연히 한미동맹관계의 회복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한미 국방당국 간의 신뢰회복이 관건이다.
박용옥 / 한림국제대학원대 부총장, 전 국방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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