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베 정권의 출범과 한반도 정책 전망

배정호 / 2006-09-28 / 조회: 6,604
I. 아베 정권의 등장


2006년에 접어들면서 고이즈미 총리의 후임에 대해 일본 국내외의 관심은 높아지기 시작했다. 2001년 4월 '일본 개혁, 자민당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당내 권력기반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선거 돌풍을 일으키며 등장하였던 고이즈미 총리가 2006년 9월이면 물러나기 때문이다.


즉, 자민당 총재 경선이 5년만에 치러지게 되었으므로, 일본 국민들의 높은 관심이 모아졌다. 게다가, 일본사회의 1억 중산층 사회에서 격차사회로의 변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 의한 한국·중국 등과의 갈등과 동아시아 외교의 부재 등이 주요 쟁점사항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9·20 자민당 총재선거와 향후 일본의 정치’에 대한 야당, 언론, 미국, 동아시아 국가들의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가짜 '송금메일’ 사건으로 대국민 신뢰성을 상실하고 야당으로서의 기능이 마비되었던 제1 야당 민주당이 거물 보수정치인 오자와 이치로를 대표로 맞이하면서 새롭게 활력을 되찾게 되자, 일본 정계는 '자민당 대 민주당의 대결구도’ 아래 다소 긴장감이 조성되었으며, 따라서 포스트 고이즈미를 향한 권력게임에도 한층 뜨거운 관심이 집중되었다.


띠라서, 포스트 고이즈미를 향한 권력게임은 '자민당 대 야당’을 큰 틀로 하면서 자민당내의 정치적 이해 관계속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면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다시 말해, 일단, 포스트 고이즈미를 향한 권력게임은 자민당내의 권력게임으로 전개될 것이지만, 연립내각의 파트너인 공명당, 민주당 등 야당, 언론 등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환경 속에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9·20 자민당 총재 경선을 향한 권력게임은 주요 변수인 오자와 이치로의 부상과 정국의 질적 변화, 고이즈미 총리에 의해 국회에 진출한 소위 고이즈미 칠드런(children)의 영향력, 자민당내의 이해관계와 모리 파벌의 영향력, 동아시아 외교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의 영향을 받으며 전개되었다. 2006년 4·5월에 들어와서는 아베 신죠 관방장관의 대망론이 다소 하강 곡선을 그리는 가운데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이 급부상하였고, 아소 다로오 외무장관, 다니가키 사다카즈 재무장관 등이 참가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즉, '아베 신죠 대 후쿠다 야스오’의 경쟁으로 압축되는 가운데 전개되었다.


그러나, 2006년 7월 5일의 북한 미사일 발사 사건으로 일본 국민들의 안보 불안이 고조되고, 따라서 아베 신죠의 지지율은 30%대에서 재차 40%중반대로 급상승하기 시작하였다. 즉, 9·20 자민당 총재 경선은 아베 대망론으로 재차 귀결되는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이와 반대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국내외 비판이 비등하고 국제문제로 비화되어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지지율이 급부상하였던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은 7·5 북한 미사일 발사 사건에 직면하면서 한계를 나타내었고, 마침내 7월 21일 9·20 총재선거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따라서, '아베 대 후쿠다’의 대결구도 속에서 야스쿠니 참배 논쟁이 최대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은 사라졌고, 아베 신죠 관방장관이 차기 총재·총리로서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확실시되었다.


예상대로 아베 신죠는 2006년의 9·20 총재 경선에서 전체 703표 가운데 464표(66%)를 얻어 제21대 자민당 총재(임기 3년)로 선출되었다. 아베 신죠는 총재 당선 인사를 통해 “첫 전후 세대 총재로서 理想의 불꽃, 개혁의 햇불을 이어 받아 일본을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아베 신죠는 26일 중의원과 참의원 본회에서 실시된 총리 지명선거에서 총 475표(각각 339표, 136표)를 획득하여 251표를 얻은 제1야당 오자와 이치로 대표를 누르고 제90대 총리로 선출되었다.


요컨대, 정치 명문가의 출신으로 1993년 첫 중의원에 당선된 5선의 아베 신죠(52세)는 2006년 9월에 첫 전후세대의 총재·총리이자 전후 최연소 총재·총리로 등장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즉시 친정체제의 구축을 지향하는 내각을 발족하였는데, 각 파벌에 각료직을 적절히 안배하되 자신의 총재 행보에 반대하였던 파벌에 대해서는 내각 구성에서 배제하였다. 즉, 아베총리는 논공행상에 따른 인선을 하면서 노·장·청의 조화를 꾀하는 한편, 총재 경선과정에서 충성심을 보였던 측근 인사들을 각료로 기용하여 친정체제의 구축을 도모하였다.


아베 내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내각 2인자인 관방장관 겸 납치문제 담당 장관에 최측근으로서 도쿄대학과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출신의 정책통인 시오자키 외무성 부장관, 방위청 장관에 자민당 총무회장과 방위청 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중진 '방위족’인 규마 후미오, 문부과학장관에 8선으로 이부키·고가파의 파벌회장인 이부키 분메이, 후생노동장관에 야나기사와 하쿠오 총재선거대책본부장 등이 기용된 것이 주목된다. 외무장관에는 총재경선에서 2등을 하였던 아소 다로가 유임되었고, 연립여당인 공명당에서는 후유시바 데쓰조 전 간사장이 국토교통장관으로 입각하였다.

나아가, 아베 총리는 총리의 권한 강화를 위하여 총리 관저의 조직 개편과 더불어 정책보좌관제를 질적·양적으로 강화하고, 측근 소장 인물들을 총리 관저에 집중·배치하였다.



II. 아베 정권의 한반도 정책 전망


고이즈미 정권의 대외정책은 세계속의 미일동맹의 강화와 더불어 미국 중시의 대미 편중정책을 전개한 반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영유권 문제·역사 교과서 왜곡문제 등으로 한국, 중국과는 적지 않은 갈등을 빚었다. 예컨대, 최근 한·일, 중·일 간에는 정상회담조차 개최되지 못했다.


따라서, 동아시아 외교의 회복은 고이즈미 정권을 계승한 아베 정권에게 대외정책의 최우선 과제이며, 아울러, 정치적 경륜의 취약한 것으로 평가되는 아베 총리에게 고이즈미 총리와의 차별성을 가지는 보수 정치인으로서 부각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의 과제’이다.


'강한 일본’을 주창하는 아베 총리가 어떻게 동아시아 외교를 전개해 나갈지 한국, 중국 등 역내 국가는 물론 미국도 동아시아 전략 차원에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미국 중시의 대외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미일동맹의 강화 된 틀을 기반으로 한국, 중국 등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동아시아 정책을을 추진할 것이다. 아울러 그와 같은 동아시아 외교의 틀 내에서 대한반도 정책도 추진할 것이다.


1. 아베 정권의 대한정책


아베 총리는 역사 인식에 있어 애매 모호함으로 일관해 오고 있고, 따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있어서도 전략성 모호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학 교수는 이와 같은 아베 총리의 애매모호함이 지속되는 한, 한일관계가 극적으로 회복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한일관계의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면서도, 지지기반인 보수 진영을 의식하여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한 양국 관계 개선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베 총리는 고이즈미 전 총리와는 달리, 독단·독선적이지 않고, 유연성을 지니고 있으며, 총리로서 주변 측근들과 협의아래 행동을 취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즉, 동아시아 외교의 변화 가능성과 함께 한일관계도 개선의 기회를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베 총리는 총재 경선 과정에서 역사인식 문제를 둘러싼 다니가키 사다카즈 후보와의 논쟁에서 주변국에 대한 침략을 반성한 1995년 사회당 출신 무라야마 총리 담화의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명백히 하였다. 그리고, 9월 22일의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의하면, 자민당과 공명당이 아베 정권의 출범을 앞두고 한국 및 중국과 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한 합의문을 연립정권 차원에서 마련하였다고 한다. 이는 한국·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여 관계 개선을 주장해 온 공명당의 입장을 배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울러, 아베 총리도 개인적으로는 친한파 정치인이었던 부친 아베 신타로 전 외무장관의 영향, 한국과의 인맥 등으로 한국에 우호적 정서를 갖고 있고, 아울러 퍼스트레이디 아베 아키에 부인도 한국에 매우 우호적 정서를 지닌 열렬한 '한류 팬’이다. 일반적 일본 여성과는 달리, 개성이 강하고 담대한 아베 아키에 부인의 정치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임을 감안해 볼 때, 이는 한·일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보수성향의 정치인으로서 헌법개정과 교육기본법 개정에 최역점을 두고 있고, 따라서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과거사와 맞물린 '일본 대 한국·중국’간의 갈등이 증폭될 개연성은 배제할 수 없다. 즉, 한·일관계의 개선을 낙관적으로만 전망·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동아시아외교 차원에서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한 노력을 전개하겠지만, '강한 일본’을 위한 헌법개정과 교육기본법의 개정은 한·일관계보다 우선순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일관계가 아베 총리의 등장과 함께 관계 개선을 위한 기회를 맞은 것은 사실이다. 한·일 양국의 전략적이고 지혜로운 노력의 여부에 따라, 한·일관계는 관계개선을 향해 미래지향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2.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


아베 총리는 일본인 납치문제의 정치화와 더불어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수정치인으로서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급성장하였다. 또, 자민당 총재 경선 과정에서는 동아시아 외교문제 등으로 후쿠다 야스히로 전 관방장관의 추격을 받는 중, 2006년 7·5 북한 미사일 발사 사건으로 일본 국민들의 안보 불안이 고조되면서 차기 총재·총리로서 등장할 가능성이 거의 확실시되었다. 이처럼, 아베 총리는 일본판 강한 북풍을 타고 정치지도자로 등장하였다.


따라서, 아베 총리는 납치문제의 해결을 중시하고, 대북정책에 상당한 비중을 두는 듯한 조처를 인사를 통하여 나타내었다. 즉, (1) 최측근으로 내각의 제2인자인 시오자키 야스히사 관방장관으로 하여금 납치담당 특명장관을 겸직하도록 하였고, (2) 재무성 출신의 나카야마 교오꼬 내각참여를 납치담당보좌관으로 임명하였다. 이는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이 시오자키 야스히사 관반장관 겸 납치담당 특명장관의 지휘아래 나카야마 교오꼬 납치담당 총리보좌관, 내각부의 납치문제 담당 종합팀 등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임을 시사한다.


한일 양국의 언론에서는 이와 같은 대북 정책 그룹의 등장에 대해 대북 강경론자의 전면 배치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실제로, 이들은 아베 총리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납치문제에 매우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은 미국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과의 공조체제를 중심으로 경제재제 등 압박에 비중을 둔 '대화와 압박’전략을 전략적으로 구사할 것이고, 압박의 강도는 미국의 대북 제재의 강도에 응해서 취해질 것이다.


그러나,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은 '채찍’만을 휘두르지 않을 것이다. 상황의 전개에 따라서는 적절히 '사탕’도 내놓을 것이다.


III. 한국의 전략적 고려 사항


고이즈미 정권이 막을 내리고, 아베 정권의 등장은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한·일 양국의 전략적 노력이 부단하게 전개되어야 하고, 한국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전략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한국은 가능한 한 자극적인 감성적 대일 접근은 자제하고, 일본 국민들의 정서에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언어로 이성적이고도 전략적인 대일 접근을 하여야 할 것이다. 아베 정권의 향방은 2007년 7월의 참의원 선거 승리 여부에 달려있다. 즉, 일본 국민들의 정서에 설득력 있게 접근할 수 있는 전략의 개발은 매우 중요하다.


둘째, 한국은 '강한 일본’의 슬로건 아래 전개되는 안보정책·대북정책이 새로운 차원에서 강화된 미일동맹을 기반으로 미국과의 전략적 공조아래 전개되는 부분을 내포하고 있음을 주의하여야 한다. 즉,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미동맹의 강화가 매우 중요한 시기에 있는 만큼, 일본의 대외·안보전략에 관해 상황에 따라서 한일 양자간 차원 이상인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셋째, 중국과 달리, 한국은 아베 총리의 한국에 대한 우호적 정서, 열렬한 한류 팬 퍼스트 레이디의 존재 등 중요한 전략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 즉, 한국은 이를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해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노력을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도 대일 설득력 있는 정서적 접근이 필요하며, 한류를 유용하게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지혜도 개발·발휘하여야 할 것이다.


넷째, 아베 정권의 대북정책이 경제재제 등 압박에 비중을 둔 '대화와 압박’전략을 전략적으로 구사하는 강경정책이라고 해도 '채찍’만을 휘두르지 않을 것이다. 상황의 전개에 따라서는 적절히 '사탕’도 내놓을 것이다. 한국은 이점에 유의하여 대북 한일공조의 틀을 창출해 내는 전략적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배정호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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