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달러화의 금태환 금지 조치 이후 늘 반복되는 이야기이지만 특히 요즘 미국의 경제패권에 금이 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논의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논의의 초점은 크게 세 가지 변수에 맞춰져 있다. 유로화의 성공적 운용, 높아지는 중국 위완화의 위상, 그리고 막강한 공급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산유국들의 독자적인 행보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이들 세 변수를 조합하면 더욱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나온다. 우선 산유국들이 수출대금을 유로화나 위완화로 결제하면 달러화의 위상 저하는 피할 수 없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미국의 채권을 엄청나게 보유하고 있는 중국과 산유국들이 이를 대량 처분하는 경우 미국경제에는 엄청난 타격이 가해질 것이고 그 결과 달러화의 위상 저하는 불가피하다는 시나리오도 그려진다. 나아가 중국의 야심작인 중화경제권, 즉 좁게는 홍콩, 마카오 그리고 대만, 넓게는 화교들이 막강한 경제력을 행사하고 있는 동남아시아를 포괄하는 광대한 지역에서 중국 위완화의 지위가 급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지역의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절대적이라는 사실에 기초, 향후 무역 결제를 위완화로 하는 경우 위완화는 사실상 지역 공용통화가 될 것임으로 달러화의 위상 하락은 피할 수 없다는 시나리오이다. 겉으로는 상당히 정교해 보이는 이러한 논리는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만약이라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만약이라는 가정이 현실적으로 타당한가를 짚어 보면 주장의 진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국제통화 지배력, 나아가 경제패권의 기본 구도를 살펴보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해 본다. 그래야 상기 변수들의 체제적 적실성을 우선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 경제패권 성립의 배경
미국의 경제패권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형성되었다. 당시 최대 승전국 미국의 총생산은 세계 전체의 절반을 상회했다. 세계경제의 패자가 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왜 급작스레 경제패권을 미국이 차지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미국은 이미 20세기 초엽 세계 최강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다. 정확히는 1890년에 벌써 그들의 총생산이 세계의 35%를 점하면서 기존의 패권국이던 영국의 그것을 앞서기 시작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영국의 쇠퇴가 가시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1900년에는 미국의 경제력이 영국의 그것에 1.7배에 달했고, 10년 후인 1910년에는 무려 3배를 웃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국제정치경제의 패자가 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당시 국제관계의 안정축인 세계 세력균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자 마지못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이 고작이었다. 전쟁의 최대 승전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제창한 국제연맹을 거부함으로써 미국은 패자(覇者)가 될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당시 영국의 쇠퇴와 더불어 유럽 열강들이 비슷비슷한 국력으로 경쟁을 하다 보니 특히 국제경제질서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국제정치상 힘의 공백(power vacuum) 현상과 그에 따른 혼란이 국제경제 분야에서도 분명히 존재했던 셈이다. 따라서 미국의 본격적인 개입은 힘의 공백상태가 자신들의 이해와 반한다는 판단을 공개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분단과 전쟁 그리고 베트남에서의 오랜 진창 싸움도 결국은 힘의 공백을 누가 메우느냐의 경쟁이었다.
국제정치경제상 힘의 공백을 메우겠다고 결심한 이상 미국이 패권을 확실히 확보하려고 노력한 점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군사적으로는 공산주의를 봉쇄하고, 경제적으로는 국제경제관계를 그들의 이해에 맞게 전면 재조정하여 자본주의 진영의 결속의 다지는 것이 패권의 요체였다. 그러므로 전후 미국의 국제경제패권은 당시 정치 및 경제적 상황의 부산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패권이 과거 영국의 그것과는 성립 배경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제패권은 상당 부분 시장원리에 기초하여 형성되었다. 전성시절인 1830년 영국의 총생산은 세계의 47%였다. 1860년 60%까지 상승하며 절정에 이른 후 1890년에는 점유율이 32%로 하락하며 미국에게 추월당했던 것이다. 50% 내외의 점유율은 영국이 사실상 세계경제를 석권했음을 의미한다. 당시 영국은 금본위제와 자유무역을 실행하였음으로 당연히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하게 되었고, 따라서 시장원리에 기초해서도 세계금융의 패자가 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결국 국제자금 거래는 런던 금융시장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돈이 필요한 사람이나 국가가 런던을 통하지 않고는 자신의 자금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에 반해 미국의 경제패권은 사실상 힘의 역학구도에 기초하여 형성되었다. 우선 국제무역체제의 성립 시 목격된 바 있는 미국의 일방적인 권력행사를 보면 그림이 더욱 선명해진다. 戰前 국제무역상의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WTO보다 훨씬 강력한 권한을 지닌 국제무역기구(International Trade Organization)가 1944년 하바나 헌장에 기초하여 설립된 바 있으나 미국 의회가 비준을 거부함으로써 이 야심찬 조직은 사장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 의회의 외교적 메시지는 기왕 경제적 패자로 미국이 등장하려면 확실히 패권을 확보할 것이지 왜 쓸데없이 강력한 국제기구를 만들어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가였다.
국제기구의 또 다른 축인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설립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목격된다. 영국은 IMF가 국제통화의 발권력을 보유해야한다고 역설한 반면 미국은 자신만이 이를 가져야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어느 국가도 미국의 적수는 아니었음으로 국제통화의 발권력을 미국이 독점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단지 기축통화의 안정을 위해 달러화의 발행을 금 보유와 연계시킨 것이 제약의 전부였다. 금 1 온스 당 35 달러로 가치를 고정시킨 이른바 금환본위제도가 채택되었던 것이다. 상기의 두 가지 예를 통해 미국의 막강한 영향력이 가감 없이 행사되며 전후 국제경제질서가 어느 정도는 강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바로 그 점이 과거 영국의 패권과 다르다는 사실 또한 감지된다. 이는 역으로 현 국제경제체제가 가시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영향력이 동원되어야 함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3. 경제패권의 기본 구도
전후 국제경제질서는 한번 크게 요동친 적이 있다. 미국이 금을 보유하지 않은 채 달러화를 남발하다가 결국 다른 국가들의 항의가 있자 1971년 8월 일방적으로 달러화의 금태환을 정지시켜 버린 것이다. 그것은 금과 등가의 가치를 지닌 기존의 달러화가 단순 지폐(paper money)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35년이 흐른 현재까지 미국의 통화패권에 금이 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신기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전후 미국 대외정책의 근간은 일단 공산주의 봉쇄였다. 따라서 우선 가장 부유한 지역인 서유럽과 일본이 공산주의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경제적으로 미국은 두 가지의 상이한 정책을 통해 목표를 실현한다. 서유럽의 부흥을 위해서는 자금을 직접 투입하는 마샬플랜이라는 대규모 원조를 단행한다. 서유럽은 다른 지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았고 또한 기술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을 견지하고 있었음으로 국내경제의 활성화만으로도 재건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우선 기술 수준에서 일본은 서유럽에 미치지 못했고 또한 일본경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상당히 의존되어 있었다. 즉 방대한 수출시장이 없이는 일본의 부흥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경우 쌍무적인 안보조약을 통해 공산 중국과 소련에 대한 안전을 보장해줌과 동시에 방대한 미국시장을 일본의 수출 증진을 위해 개방시켰다. 그 유명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이 실행되었던 것이다. 바로 이 파고를 두 번째로 잘 이용한 국가가 한국과 대만이었고 세 번째로 잘 이용해 경제 기적을 창출하고 있는 국가가 중국인 것이다.
이 상이한 두 정책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금의 역순환 메커니즘을 의미했다. 즉 마셜플랜을 통해 서유럽 경제가 부흥하면 일차적으로 미국의 대유럽 수출이 증대되어 미국이 투여한 자금이 회수 될 것이고, 역으로 일본의 경우는 대미 수출증대로 미국의 자본이 일본으로 유출될 것임으로 전체적으로는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서유럽이 급속히 힘을 회복하고 대신 미국이 월남전에 장기적으로 묶이며 힘이 빠지게 되자 미국은 일본은 물론 서유럽에 대해서도 무역적자를 기록하게 되었고, 이를 메우기 위한 달러화의 남발에 대해 유럽이 항의하자 달러화의 금태환 금지 조치를 전격 단행했던 것이다.
미국 달러화의 위상추락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버틸 수 있었던 묘수가 바로 여기에 숨겨져 있는데, 일본의 대규모 무역흑자로 축적된 자본이 미국으로 역수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일본은 강압에 의해 그렇게 했을까? 물론 미국이 최대의 동맹국이라는 사실이 전혀 영향을 안 미쳤다고는 말 할 수 없으나 경제적으로도 일본은 대안이 없었다. 그 많은 돈을 어디에 투자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자본시장은 가장 안전했으며 또한 투자에 대한 이익을 보장했고 나아가 현금화가 가능한 좋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다. 바로 이 순환 메커니즘을 그대로 추종했던 국가가 한국과 대만이었고 지금 현재는 중국이 그것을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미국이 대규모의 재정 및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은 이미 오래전에 구축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 현 국제통화질서가 유지되는 데는 다른 중요한 요인이 있다. 앞서의 언급을 통해 일단 암시된 바 있지만 미국만이 거대한 사금융시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선 눈에 띤다. 미국 재무성이 발행한 채권은 무기명으로 24시간 내내 거래되며 그 규모는 하루에 무려 약 600-700억 달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다른 국가에는 없는 대단히 유동적인 2차 금융시장(highly liquid secondary financial market)이 미국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곧 미국 이외의 경제 강대국들로 돈을 가져가고 싶어도 그럴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통화의 기본 속성도 패권의 지속성을 잘 설명해준다. 통화는 기본적으로 인간 믿음의 산물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믿음 현상과 비슷하게 달러화를 신뢰한다는 믿음체계가 일단 성립된 후 시간이 흐르면 인간의 심리구조는 기존의 것을 쉽게 바꿀 수 없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설사 미국 통화와 대등한 조건을 가진 강력한 또 다른 통화가 등장한다 하여도 새로운 통화에 대한 신뢰가 구축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다양한 테스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이는 역으로 미국의 능력이 정말로 엉망이 되었을 때나 기존의 믿음체계가 바뀔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개관적인 조건을 보면 유로화가 달러화에 대해 별로 밀릴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달러화와 대등한 위상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유로화가 적어도 이 두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결국 이미 구축된 질서가 지니고 있는 관성의 법칙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대단히 강력함을 알 수 있다. 나아가 현재 미국의 경제력을 능가하는 단일 국가 또한 존재하지도 않는다.
4. 패권 불안정 가설의 검증
이상의 논의를 기반으로 처음 거론했던 가설들을 다시 살펴보면 그림이 더욱 선명해 질 것이다. 우선 석유 수출대금을 달러화에서 유로화로 대치시키는 경우를 상정해 보면, 석유수출 국가들은 취득한 유로화를 두 가지 형태로 소비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물품을 수입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데, 유럽에서만 물건을 구매하는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겠으나 일본, 한국, 대만 혹은 중국으로부터 수입을 하는 경우 이 국가들이 과연 수출 대금으로 유로화를 받을까? 그렇다고 하여도 새로이 취득한 유로화는 적어도 미국과의 거래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반면 달러화는 세계 모든 지역에서 통용됨으로 산유국들이 한국 등 상기의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유로화 결제를 요구하는 경우 그들은 유로화를 달러로 다시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을 프리미엄으로 요구할 것이다. 누가 그런 헛돈을 쓰며 또한 불편을 감수하겠는가.
두 번째로 산유국들은 남은 유로화를 해외에 투자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임으로 싫든 좋은 그 돈은 유럽으로 갈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유럽중앙은행은 미국의 재무부 채권과 같은 신용 있는 채권을 엄청나게 발행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할까? 또한 쏟아져 들어오는 그 많은 유로화를 유럽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결국 유럽은 미국과 같이 대규모 무역적자를 감수하기 전에는 밀려오는 돈을 쓸 용처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유럽은 이미 그러한 패권 조건을 포기한 지 오래다. 그것이 가능했다면 왜 진작 그렇게 안했겠는가. 대규모의 무역적자를 감수하며 유럽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구체적으로 서유럽 경제의 중심축인 독일은 2005년 약 9,800억 달러의 수출을 기록한 세계 최대의 수출 국가이다. 나아가 미국 및 일본과는 비교도 안 되게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이다(2005년, 미국: 18%, 일본: 22%, 독일: 61%). 결국 대규모의 무역흑자(2005년, 약 2,000억 달러)를 즐기며 그것을 먹고 살아온 나라인데, 갑자기 엄청난 적자를 감수하며 세계패권을 추구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다음으로 위완화의 급부상과 중화경제권에 기초한 아시아 통화의 탄생 가능성을 살펴보자. 우선 중화경제권을 하나로 묶어 생각할 수 있을까? 1980년 홍콩의 사회학자인 황즈렌(潢枝蓮)이 중화경제공동체(The Chinese Economic Area)가 1980년대 후반에 출연할 것이라고 예측한 데서 이 용어가 유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용어는 중국의 자작극인 셈이다. 사반세기가 지난 현재 중화경제권이 과연 출연했는가? 홍콩과 마카오는 이미 중국의 영토가 되었음으로 그렇다고 치고, 과연 대만이 중화경제권에 속하는 국가일까? 흥미롭게도 중국과 대만 간의 경제 밀착 정도는 한중 및 중일 관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더욱이 대만은 독립을 하겠다고 아우성이고, 안보를 위해 미국 및 일본과 밀착하고 있다. 그런 대만을 중화경제권 국가로 간주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이다.
화교들의 막강한 경제력 그리고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의 FTA 추진에 기초하여 동남아시아를 범중화경제권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는 한국 및 일본과도 FTA를 추진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과 아세안 간의 경제 밀착도는, 그 정도가 다소 떨어질지는 모르나, 한국-아세안 및 일본-아세안의 관계에서도 비슷하게 목격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동남아시아의 어떤 국가도 과거 제국주의 중국의 영향력을 반기지 않으며 만약 중국이 그렇게 행동하는 경우 저항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중국의 남하에 대한 중요한 버팀목으로 간주되는 베트남의 행보를 보면 그것은 더욱 뚜렷해진다.
1995년 베트남은 아세안 회원국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중국과 베트남 간에 발생했던 남지나해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에 대해 아세안의 외교적 입장이 한번 정리된 적이 있다. 1995년 4월 아세안이 베트남의 편을 들며 중국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1997년 3월 발생한 중국과 베트남 간의 대륙붕 탐사 충돌에서도 아세안은 베트남의 입장을 두둔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베트남이 미국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사실인데, 대륙붕 충돌을 계기로 베트남은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타진했고, 곧 이어 프르어(Joseph Prueher) 미태평양함대 사령관이 베트남을 방문한 바 있다. 그 후 클린턴 대통령의 방문이 이어졌고, 최근에는 베트남 수상도 미국을 답방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아세안의 밀착 정도를 비록 경제에 한정한다 하여도 그토록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아세안이 위완화를 지역통화로 인정한다고 가정하여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아세안의 총생산은 한국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인데 그들이 중국통화를 수용한다고 그 파급효과가 과연 클까? 1990년대 일본이 주도한 동아시아통화기금(Asian Monetary Fund)의 설립에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이 동참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미국이 급제동을 건 바 있다. 즉 한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지역통화의 탄생은 달러 패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는 역으로 한국과 일본이 배제된 동아시아 통화의 탄생에는 미국이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실제로도 미국이 그런 상황을 우려한 적은 현재까지 없었다. 구체적으로 아세안 국가들이 위완화만으로 국제경제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을까? 그들의 경제관계는 한국, 일본, 미국 그리고 유럽과도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따라서 아세안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위완화는 오직 중국과의 교역에서만 유용하다. 비슷한 현상은 과거 마르크화와 엔화의 경우에서도 발견된다. 특히 마르크화의 경우 중부유럽 지역통화로서의 역할을 이미 훌륭하게 수행한 바 있다. 그렇다고 달러패권이 침해된 적이 있었는가.
상기의 논의를 통해 달러패권 쇠퇴의 가설을 설득력 있게 옹호하는 현실적인 증거는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사고의 방향을 180도 돌리면 우려할 사항은 오히려 엉뚱한 데서 발견된다.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은 결국 미국이 개방된 국내시장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한 유효하다. 그렇다면 미국이 반대로 나가면 어떻게 될까? 흥미롭게도 미국 경제패권의 쇠퇴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가설은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올려놓으면서 정반대의 가설을 제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정말 그렇게 되면 수출에 경제의 명운을 걸고 있는 특히 중국 혹은 한국과 같은 나라의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피할 길이 없다. 미국의 대외무역 의존도는 약 18%로 OECD 국가 중 최저이다. 내수 중심으로 오래 동안 성장한 국가이므로 당연할 수밖에 없다. 즉 무역 없이도 먹고사는 데 큰 문제가 없는 나라인 셈이다. 물론 석유와 같은 전략물자는 예외이지만.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단지 가설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데에 있다. 개발도상 국가들의 수출주도형 정책을 가능하게 했던 미국의 방대한 무역적자정책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 더욱 자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달러화도 폭락하겠지만, 그 일차적인 타격이 바로 중국경제로 향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거대한 중국의 퍼붓기식 수출이 과거 50년간 유효했던 수출주도형 정책을 사실상 무효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런 논리에 기초하여 레스터 더로우(Lester Thurow)는 그의 최근 저서에서 “미래의 성공을 꿈꾸는 국가라면 (기존의 수출주도형 정책 대신) 경제성장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구상해야만 한다”고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결국 향후 새로운 경제발전전략을 고민해야만 할 당사자는 오히려 한국과 중국인 셈이다.
김기수 / 정치학박사,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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