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로부터 북한으로 초점이 이동하고 있는 미국의 반 테러전쟁

이춘근 / 2006-01-05 / 조회: 4,981

1. 5년째로 접어드는 미국의 반 테러전쟁


소위 테러전쟁의 시대가 시작 된지도 5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으로 시작된 국제정치 질서의 변혁이 강도 높게 진행 중에 있으며 국제정치가 안정을 찾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난망(難望)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러전쟁의 진행 과정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사건이 마무리 중에 있다. 본질상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쟁이기는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주로 중동 특히 이라크에 집중 되었던 미국의 반테러 전쟁이 한고비를 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사태의 진전은 2006년 국제적 긴장의 초점이 이라크로부터 북한으로 이전될 가능성을 대단히 높게 한다.


애초 '후세인 축출’ 이 진정한 목표였지만 대중을 설득하고 전쟁에 대한 지지 획득을 위해 미국은 이라크의 핵무기 및 대량파괴 무기 개발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공격했다. 핵무기 등 대량살상 무기는 발견 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이라크 전쟁의 목적인 후세인 축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후세인 축출 이후, 3년이 가까워 오는 2006년 새해초반, 미국의 이라크 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노력과 과정들이 거의 마무리 되 가고 있는 중이다. 2005년 이라크에서는 세 차례의 국민투표가 있었다. 1월에는 임시 국회의원이 선출 되었고, 이들이 만든 헌법은 10월 이라크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통과 되었다. 새로운 헌법에 의해 지난 12월 이라크 국회의원 275명이 선출 되었다. 이라크 의회는 곧 대통령을 선출하고 이라크 정부를 구성 할 것이다. 비록 소수파로 전락한 후세인 추종자들의 폭력이 지속 될 것이지만 이제 이라크는 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구성된 새로운 정부를 가지게 된 것이다.


반 테러전쟁이란 시작도 끝도 없는 전쟁이며 그 범위가 전 지구에 이르는 전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라크 상황의 반전은 또 다른 전선의 전개 가능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이라크 문제가 안정화의 방향으로 진행됨과 동시에 이란에 대한 핵시설 폭격론, 북한에 대한 인권 및 위조지폐 문제 제기 등 최근 이란과 북한 이슈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빈번하게 국제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한반도는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언제라도 낙관적으로 안보상황을 예측하기는 곤란한 지역이다. 냉전 시대에도 그러했고, 냉전이 끝난 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9.11 이후 한반도의 안보 문제는 과거 어느 때 보다 더욱 불안정한 상황이 되었다. 북한이 미국의 반테러 전쟁의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2006년은 북한이 미국의 반테러 전쟁 표적이라는 사실이 더욱 현실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해 이다. 그 동안 미국은 이라크에 신경을 집중 할 수밖에 없었고. 북한은 어느 정도, 시간 벌기 작전을 구사할 수 있었다.


2006년의 한반도는 북한을 향한 미국의 압박의 수위가 상당히 올라가는 해가 될 것이다. 이미 미국은 북한 문제를 핵문제에만 한정 시키지 않고 있다. 인권 문제와 북한이 만드는 달러화 위조지폐 문제를 동시에 거론하며 압박을 가할 태세다. 북한의 노동신문은 1월 3일자에서 “미국의 '제재를 받으면서’까지 6자 회담장에 나가 우리에 대한 고립 압살을 추구하는 상대와 마주앉아 '제도수호’를 위해 만든 핵 억제력 포기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의 표현은 미국이 이미 상당 수준의 대북 제재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동시에 노동신문은 북한의 핵폭탄이 북한의 '제도를 수호하기 위한 것’ 임을 말함으로서 북한 핵개발의 의미가 단순한 국가 안보 문제를 초월하는 것임을 함축하고 있다.


2. 이라크 사태의 진전


2003년 3월 20일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3주일 만에 후세인 정권을 붕괴 시켰고, 전쟁 개시 42일 째인 2003년 5월 1일 미국은 주요전투작전(Major Combat Operation)이 종결 되었다고 발표 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작전은 이라크에 새 정부를 건설하기 위한 '정치 작전’ 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이라크 인구의 20%에도 미달했지만 후세인이 속한 아랍계 수니파 는 이라크 전체를 30년 가까이 철권통치 하고 있었다. 후세인이 축출된 이후 이라크 인구의 약 60% 에 해당하는 아랍계 시아파, 이라크 전체 인구의 약 20% 정도로서 종파는 후세인과 같은 수니파였지만 종족이 달랐기 때문에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가장 혹독한 폭정에 시달렸던 쿠르드족 등 전체 인구의 약 80%에 이르는 이라크 국민들은 후세인의 축출에 환호 했다.


2003년 5월 1일 이라크에 대한 '정치작전’을 개시한 미국은 아랍계 시아파와 쿠르드족의 수니파 이라크 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후세인을 추종하던 아랍계 수니파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들의 집권을 막기 위해 노력 했다. 후세인을 추종하던 수니파는 이라크에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 하는 이웃 국가들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지원도 받았다. 약 2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후세인 추종 세력과 중동 지역의 다른 나라에서 유입된 테러리스트들은 이라크의 정치 과정을 방해하기 위해 온갖 폭력 공격을 자행 했고 그것이 2003년 5월 이후 지금까지 이라크의 정국을 폭력으로 얼룩지게한 원인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정치 과정은 그다지 늦지 않은 속도로 진전 되고 있다. (미군을 해방군이라고 여긴 한국에서도 미국이 지지하는 정부가 수립되는데 3년이 걸렸다)


미국은 아직 엉성하기는 하지만 약 20만에 이르는 이라크의 경찰과 군을 새로이 양성하였고, 작년 12월 15일 총선거를 통해 선발된 275명의 이라크 국회의원들은 대통령, 총리 등 행정부 관리들을 선출하고 행정부를 곧 구성할 계획이다. 수니파를 소외 시키지 않기 위한 조치도 취하고 있으며 금년 4월정도 까지 새로운 정부가 수립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이라크 사상 최초의 민주주의적 선거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투표하기 위해 손가락에 찍었던 보라색 잉크를 며칠씩이나 지우지 않고 감격해 하던 이라크 인들의 정치 과정은 미국과 유럽에서는 Purple Revolution(보라색 혁명) 이라고도 부른다.


이라크에 정부가 들어서고 이라크 정부군이 치안 유지에 더 큰 몫을 담당하게 되자 미국은 병력 철수 문제를 공식적으로 논하기 시작했다. 상황 전개에 따라 달라질 것이지만 세계적 차원의 테러전쟁 중 이라크 전선은 점차 안정 상태를 향해 나가고 있다.


3. 북한을 향한 미국의 압박 전략


미국은 테러전쟁의 표적국가들을 애초에는 “악의 축” 이라고 명명 했다가 부시 행정부 2기가 시작된 2005년 이후부터는 “폭정의 전초 기지” 라고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미국이 행하는 반 테러전쟁의 표적이 국가가 아니라 “정권” 이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한 것이다. 이미 클린턴 대통령 당시부터 미국 외교 정책의 기본이 된 국제정치학 이론 “민주적 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은 9.11 이후 부시 행정부에서는 신조(信條)처럼 되었다. 민주주의 국가들 끼리는 결코 전쟁을 하지 않았다는 놀라운 역사적 경험에서 도출 된 이 이론은 이 세상 모든 나라들을 민주화 시키겠다는 미국 외교 정책의 목표가 되었다.


세계를 민주화 시키겠다는 목표는 클린턴이나 부시나 마찬가지다. 다만 방법이 다를 뿐이다. 클린턴은 대상이 어느 나라인지 알 수 없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개입과 확장” (Engagement and Enlargement) 정책을 채택했던 것이고 부시는 몇몇 나라들을 거명한 후 이들의 정권을 민주 정권으로 바꾸겠다고 보다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한 것일 뿐이다. 부시 행정부의 구체성은 사실은 9.11 이 가져다 준 특수한 국제정치 상황 속에서 가능했던 일이다. 북한 정권은 바로 미국이 신조로 삼고 있는 '민주주의=평화’ 라는 외교정책의 구체적인 대상이 된 것이다.


미국은 그 동안 여러 식자들에 의해 무 전략의 (전략이 없는) 혹은 비 전략적 국가라고 비판당해 왔지만,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장기적이고 논리적인 전략으로 외교 정책을 추구하는 나라다. 건국 후 200년도 되기 전에 이미 세계 최강의 국가로 성정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국의 대전략은 성공적인 것 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서서히 그러나 대단히 전략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 핵에 초점을 맞춘 미국은 북한의 위협이 실증적인 것임을 미국 국민에게는 물론 세계 방방곡곡에 알렸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 핵문제는 일단 동북아시아 관련국을 중심으로, 지역적인 차원의 노력으로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동북아시아 관련 4대 강국과 남북한이 포함 된 북한 핵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이 그것이다.


미국은 2005년 이후 핵문제와 더불어 북한의 인권 문제를 더욱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고, 2006년 초반 미국은 핵문제 보다는 오히려 인권 문제로써 북한 정권을 압박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인권 문제를 제기함으로서 미국은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완전히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인권 문제는 핵문제 보다 더 큰 전 세계적인(global)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문제다. 미국은 특히 유럽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어, 북한 인권 문제를 앞으로도 더욱 강력하게 제기할 것이다. 이처럼 북한 인권 문제가 세계에 알려짐으로서 앞으로 미국이 북한에 대해 취할 수 도 있는 여러 가지 강압조치들은 이라크의 경우와는 달리 세계 여론의 지지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핵문제, 인권 문제와 더불어 최근 보다 심각하게 거론되기 시작한 문제가 위조지폐의 문제다. 물론 북한이 달러화 위조지폐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알려졌던 일이다. 북한이 만드는 달러화 위조지폐는 아주 정교해서 식별이 곤란 하다고 소문났으며 그래서 북한이 만든 위조지폐를 '슈퍼 케이’ (Super K) 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은 증거를 확보했을 것이며 반 테러전쟁이라는 맥락 아래 북한이 만들고 있는 위조 달러 문제를 제기했다. 달러화 위조지폐는 미국의 국내법을 위반한 범죄 행위며, 그 결과 미국이 단독으로 처리해도 될 문제다. 미국은 북한의 달러화 위조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북한과 1:1로 대결해도 되는 장(場)을 연 것이다. 인권문제나 핵문제만 가지고 다른 나라를 범죄 국가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러나 위조지폐를 만든 북한을 미국은 대놓고 범죄정권(crime regime)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4. 2006년의 한반도


북한문제로 지난 수년 동안 한반도는 편안 한 날이 없었다. 그러나 2006년의 한반도는 지난 몇 년 보다 훨씬 긴장이 높아질 것이다. 6자 회담을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 가능성도 별로 없다. 북한 정권은 핵을 '제도수호’ 즉 정권 유지의 기본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장 해 줄 수 있는 대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대해 소홀했다. 오히려 북한 정권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아 보였다. 북한의 위조지폐에 대해서도 북한 측을 두둔하는 것 같은 언급을 하기도 했다. (위조지폐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정부 관리의 언급이 있었다)


평화는 진정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평화에 “정의”라는 요소가 없다면 그것은 나중에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히틀러에게 꿇음으로서 잠시 동안의 평화를 확보한 챔벌레인 당시 영국 수상은 “이것이 이시대의 평화올시다” 라며 영국 국민에게 자신의 업적을 과시했다. 챔벌레인이 히틀러로 부터 얻어내었던 '정의가 결여된 평화’ 는 히틀러로 하여금 세계 최악의 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헛된 용기를 주고 말았다. 우리나라 국민들과 정부 지도자들이 다가올 어려움에 슬기롭게 대처 할 수 있기를 앙망(仰望)한다.


이춘근 / 政博, 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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