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6자회담 종결과 북한 문제: 실상과 전망

홍관희 / 2004-06-28 / 조회: 4,942

1. 들어가는 글


베이징에서 개최된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한 3차 6자회담(6월 23일~26일)이 '의장성명’을 내놓으며 종결되었다. 이번 3차 6자회담에서는 북한이 핵보유 가능성을 내외에 시사하며 여유있는 태도를 보인데 반해,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원칙에 유연성을 보이며, 새로운 '포괄적’ 협상안을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2004년 2월의 2차회담 무렵 이래 북한은 “자위권 차원”과 “평화적 이용”을 구실로 핵개발을 정당화하고 “핵 억제력 강화”를 부르짖으며, CVID에 대한 거부의사를 명백히 하는 등 강경자세를 지속해 오고 있다. 이번 3차회담에서는 CVID 거부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핵실험 가능성을 내비치며, 그 반응을 한·미·일 등으로부터 떠 보려는 고도의 외교적 수사(修辭)를 펴기도 했다. 한편 북핵 관련 자료들은 북한이 지속적으로 고농축우라늄(HEU) 핵프로그램을 진척시켜왔으며, 이제 거의 핵보유 단계에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과의 협조가 북한 핵프로그램 진전에 큰 기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미국 부시행정부는 이라크전쟁이 혼미를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완강한 태도로 북핵문제가 가시적인 진전 없이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로 굳어지는 상황에서, 안팎으로부터의 비판에 직면해 온 터였다. 민주당의 대선후보는 6자회담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고, 부시행정부가 폐기했던 '미·북 양자구도’에 의한 핵협상 추진을 다시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미국 조야(朝野)에서는 이라크 보다 북한이 선결과제였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이번 3차회담에서 “폐기를 전제로 한 북핵동결 수용”과 “단계적 대북지원” 용의를 표명한 것은 일견 미국의 양보로 볼 수 있겠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일단 북한을 마지막 협상 구도로 유인하려는 최대한의 노력을 전개하되, 이것이 결렬될 경우, 북한의 핵보유 의지를 다시 한번 세계에 폭로시키고 명분을 축적하여, 어떤 결정적 행동을 준비하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우리정부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적 해결”이라는 정책목표를 가지고 6자회담에 임해 왔으나, 북한의 집요한 핵보유 의지와 미국의 단호한 북핵 불용(不容) 원칙 사이에서 그 입지(立地)가 매우 좁고 안정되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남북 화해·협력”이라는 부담을 안고, 북핵문제의 본질적 해결보다는 단지 문제의 확대를 피하려는 미봉책과 단순히 미·북간 '중재’ 역할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지금은 북한 핵프로그램의 실상을 파악하고, 한국안보에 미치는 북핵의 위협과 영향 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므로 북한 핵보유를 방기하는 태도를 결코 취해서는 안된다. 북한 핵무장이 한국의 국가안보에 심대한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한·미 공조하에 확고하게 대처하지 않는 한, 북핵문제는 어떠한 진전도 이룩할 수 없음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이 글은 북한핵문제 6자회담 제3차회담을 결산하고, 향후 해결 전망과 그 대응방안을 모색하려 시도하였다.


2. 3차 6자회담에서 나타난 북한핵문제의 주요 잇슈


(1) 동결과 보상
북한은 6자회담이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던 2003년 후반, 동결과 보상을 요구하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동결과 보상’안()의 내용은 미국의 CVID를 거부하는 대신, 폐기를 전제로 핵개발을 동결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며, 그 대가로 보상과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북핵 원칙인 폐기 지원방침과 근본적으로 어긋나는 것으로, 폐기 아닌 동결을, 그리고 동결과 보상의 동시실천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정부 역시 이 안을 중재하고 지지하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러나 이번 3차회담에서 미국은 '폐기를 전제로 하는 동결’을 수용하되, 확고한 검증과 사찰 조건을 부가시킴으로써, 북한안과의 갭을 보완하여, 새 협상안을 제시하였다. 또한 동결 대상에 고농축우라늄 (HEU)핵프로그램이 포함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였다. 물론 북한은 HEU핵프로그램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따라서 이를 동결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이 문제는 3차회담 이후에도 미결된 채 남아있다.


미국이 CVID의 원칙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회담에서 CVID를 전제로 하는, 곧 검증을 수반하는 북한핵의 동결을 수용한 점이 주목된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 변화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는 가운데, 이를 저지할 마땅한 방안이 도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취한 마지막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여겨진다. 곧 미국은 “악행에 대하여 타협도 보상도 않는다”는 대의명분에의 일정부분 훼손을 감수하고, 한국 등이 그동안 지지해 온 '동결-보상’안에 일단 힘을 실어 협상을 시도하되, '검증’이라는 명백한 조건을 부여함으로써, 북한의 교묘한 위장 또는 위약(違約)전술을 저지하고자 한 것이다. 아울러, 북한이 이를 수용치 않을 경우, 명분과 여론의 지지를 획득하여, 보다 과감한 행동을 결행하기 위한 선택의 여지를 남기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이번 3차 6자회담에서의 '동결-보상’에 대한 합의는 원칙적인 공감대 형성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곧 '북한핵 폐기’와 그 첫 단계로서 '동결 및 검증’이라는 원칙에 공감하나, 구체적으로 문제해결 차원의 동결 범위와 검증 방법 등에 관해서는 넘어야 할 많은 장애가 남아있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은 '동결 대상에 북한의 모든 핵시설과 프로그램이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2002년 12월 핵동결 해제 선언 이후의 핵활동만 동결 대상’으로 하고, '그 이전의 이른바 과거 핵의혹에 대해선 이미 국제적 검증이 끝났다’고 반박함으로써, HEU핵프로그램을 사찰 대상에서 제외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검증 방법에 대해서도 미국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가입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포괄적 사찰을 선호하나, 북한은 NPT 복귀 대신 미국 중심의 별도 핵사찰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의 한반도 문제 일괄타결을 주장해 온 종래의 북한 의도와 일치한다.


(2) 미국의 새로운 '포괄적’ 제안
미국이 새롭게 내놓은 협상안은 시차(時差)별, 단계별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므로 종래 북한이 주장해 온 '동시행동-일괄타결’안과는 차이가 있다. 다만, '준비단계’에서 북한이 핵포기를 선언하고 핵프로그램을 중지하면, 검증·사찰 이전이라도 미국 이외 협상참가국의 대북 중유제공 용의를 밝힌 것이 종래 미국의 입장과 구별되는 점이다. 바로 이 '준비단계’ 까지는 북한이 미국의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있으며, 여기에 북핵 협상의 실마리가 잠재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중요한 것은 다음 단계인 '문제해결’ 단계에서, 북한이 모든 핵의 폐기를 실천하고 국제기구 및 정보기관에 의한 검증·사찰을 과연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북한이 이를 이행할 경우, 미국은 불가침의사 전달 및 다자차원의 안전보장, 대북 에너지 지원,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및 경제제재 해제 협의 시작을 약속하고 있다. 이어 마지막 '포괄적 해결 단계’에서는 미국과의 수교 협상이 시작되도록 되어있다.


이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간 셈이다. '준비단계’는 3개월로 한정되어 있다. 문제는 과연 북한이 단순한 핵포기 선언조치를 넘어서서, HEU핵프로그램을 포함하는 모든 핵의 폐기를 실천하고, 그에 대한 검증·사찰을 수용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이는 물론 3개월간의 '준비단계’ 이후의 일이다.


(3) 북한의 주장과 반응
북한은 현재 핵무기 보유를 거의 완료한 단계에서, 이를 외교적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승인받는 작업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핵실험 가능성을 언급, 미국의 반응을 예의주시하면서, 동시에 한·미·일 등에 그 충격을 줄이려는 외교적 수사를 펼치고 있다. 예컨대, 회담과정에서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金桂冠)이 “북한에는 핵무기를 만들려고 핵실험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부서가 따로 있다. 그들을 설득할 명분과 논리가 필요하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는 바, AP통신은 이를 “북한의 핵실험 위협”으로 즉각 보도하였고, 이는 잠시나마 한국을 비롯한 관련국을 놀라게 했다. 이후, 한국 등의 관계자는 AP통신의 보도와 관련, “핵실험 관련 언급은 있었으나, 핵 동결 대 상응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일 뿐, 위협성은 아니었다”면서, 발언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발언은 북한 핵개발의 의도와 현 개발실태에 관한 중요한 시사를 주는 것으로, 좀 더 깊은 분석과 고찰을 요한다. 우선, 의 발언은 한마디로 사실상의 핵실험 예고이자 위협이며, 한·미 등으로부터 그 반응을 떠보기 위한 고도의 외교적 수사이다. 현재 북한내부에 의미있는 세력다툼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북한 내에서 김정일은 사실상 전권을 장악하고, 북한 사회를 그의 뜻대로 통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상의 언급은 “내부 상황”을 구실로 북한의 핵실험 의지를 내비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회담과정의 미·북 양자협의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더 이상 만들지 않고 수출하지 않으며 실험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도 북한이 핵보유를 전제로 발언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미국의 새 협상안인 '포괄적 제안’에 대해 북한은 놀라움과 '예상 외’라는 반응을 보였는 바, 향후 내부 검토를 거쳐 어떠한 대응책을 취할지 주목된다.

3. 향후 전망


미국이 제시한 새로운 단계별 협상안 곧 '포괄적인’ 해결방안은 북핵 저지를 위해 고심해 온 미국으로서, 일단 북한을 협상구도로 유인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자, 북한이 소극적이거나 거부태도를 보일 경우, 6자회담 구도 대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명분 축적용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북한의 핵보유 의지가 예상보다 훨씬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협상을 통해 북핵문제가 쉽게 해결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북한의 핵개발 의지는 생존전략과 대남전략이 결합되어 추진되는 것으로, 현 상황에서 북한의 국가목표와 결부되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미대선이 가까워 옴에 따라, 북한은 그 결과를 보고 행동을 선택하려는 강한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편, 미국의 이번 제안은, 북한이 거부자세로 나올 경우,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정책대안 역시 매우 제한되게 될 것임을 암시해주고 있다. 물론 북한이 새 협상안을 받아들이면 폐기시설의 대상과 검증방안 등 구체적인 협의가 시작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최근 유연(柔然)의 를 더해가고 있는 북한은 '준비단계’를 수용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면서 시간벌기를 기도하는 한편, 미대선 결과를 주시하고, 한반도 주변정세 변화를 고려하면서, 결국 핵보유를 관철시키려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이 경우, 미국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선택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 6자회담 틀을 유지하되, 사실상 미·북 직접대화로의 이행; 둘째, UN 안전보장이사회에의 회부; 셋째,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강화로 대북제재 및 봉쇄; 넷째, 군사적 방안 선택; 다섯째, 북한 핵보유의 암묵적 승인과 그 대처방안 모색 등이 그것이다. 부시행정부는 미·북 양자회담을 거부하여 왔으나, 최근 양자회담을 활용하려는 태도가 나타나고 있어, 직접회담의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UN 안보리 회부 방안은 대북제재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전면적인 군사행동 역시 한반도의 대재앙을 고려할 때, 선택의 여지는 매우 적은 편이다.


결국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추진하는 한편, 현재 실현단계에 있는 PSI를 강화하여 북한을 압박하면서, 핵포기를 유도하려 할 전망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떠한 압박과 제재수단도 북한의 강한 핵보유 의지를 꺾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미국은 어느 시점에서 최종적으로 무력에 의해 해결하려 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핵보유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처방안을 강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4. 대응책과 결론


이번 3차 6자회담은 미국이 과감한 새 '포괄적 협상안’을 제시한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 핵폐기가 이뤄져야 하고, 그 첫 단계로서 검증을 동반한 핵동결이 있어야 한다’는 원칙적인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하고 폐막되었다. 2차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3차회담에서도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의장성명’으로 종결되었다. 단지 차기회담 곧 4차회담을 9월에 개최키로 합의하였을 뿐이다. '의장성명’이란 참가국들의 협의 내용을 수렴한 선언적인 문건에 불과하여 구속력을 갖지 못하므로, 사실상 이번 회담이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 상황은 북한의 핵보유가 거의 기정사실화되는 가운데, 북한이 이에 대한 국제적 승인을 받고자 노력하는 단계로 파악된다. 국내외 분석가들도 이러한 새로운 사태발전을 놀라움과 함께 받아들이면서, 북한 핵보유 이후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분위기이다. 국내에서도 북핵이 국가안보와 국민경제에 미치는 위협과 영향, 그리고 그 대처방안에 대한 논의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도움 없이 북한핵에 대처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 상황과 함께 북핵문제는 한국에게 안보상의 엄청난 압력과 부담을 지워주고 있다. 그만큼 북한핵은 한국의 안보에 있어 치명적인 도전이자 위협이다. 북한 핵보유와 미군감축을 새로운 변화요인으로 하는 국가안보전략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그러므로 어떻게든지 북한의 핵보유를 먼저 저지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지금까지 '평화적인 해결’ 원칙만을 고수(固守)함으로써, 한·미간의 입장차이를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북한의 위약(違約)과 위장전술을 유발하여 사실상 핵개발을 허용해왔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는 보다 단호하고 과감한 각오와 전략이 필요하다. 평화에만 집착하여, 도전에 대한 응전을 두려워한 나머지, 결국 평화를 잃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된다. 북핵저지를 위한 전방위 외교·안보 노력을 경주할 때, 안보와 평화를 함께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홍관희 / 통일연구원 평화안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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