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간 독도영유권분쟁의 “퍼즐(puzzle)"?

배진수 / 2004-02-04 / 조회: 5,998

일본이 독도영유권 억지 주장을 할 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그 속내와 저의를 충분히 짐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현상이 도대체 언제까지 반복될 것이며 어디까지 갈 것인지 심히 의아스러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독도영유권분쟁과 관련된 몇 개의 “퍼즐(puzzle)"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첫째, 과연 한'일간 독도영유권분쟁이 일본의 전략대로 국제분쟁화 되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현 국제법상 분쟁 당사국의 일국이 끝까지 반대할 경우에는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자체가 불가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반대하는 현 상황에서 독도문제가 일본의 의도대로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되는 것 자체가 현실로 가능한가의 문제이다.


둘째, 만약 독도 영유권분쟁이 실제로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되는 것이 가능해 진다면 ICJ 판결을 통해 독도 영유권문제는 한'일간에 완전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독도문제가 국제분쟁화 되어 국제사법재판소에까지 회부되어 판결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다음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셋째, 과연 일본은 한국이 먼저 무력행사를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국제여론을 무시하면서 까지 독도를 무력으로 탈취하려 할 것인가? 미국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이하에서는 세계의 도서분쟁 사례들을 통해 이상 몇 가지 “독도 퍼즐”들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 보기로 한다.



1. ICJ 회부 불가능시 유엔총회 상정 사례


만약 일본이 독도문제의 본격적 국제분쟁화 시도단계에 접어들면, 최우선적으로 국제여론을 감안 한국에게 ICJ 합의제소를 공식적으로 다시 제의하게 되나 한국이 이를 당연히 거부할 것이다. 이에 대응해 일본은 그 다음 수순으로 유엔 총회에 이 문제를 안건으로 상정하여 독도문제를 국제분쟁화시켜 ICJ 합의제소 내지 양국간 합의를 유도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와 유사한 세계 도서분쟁 선례로서 프랑스-마다가스카르의 모잠비크 해협 도서분쟁과 영국-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도서분쟁 등이 있다.


① 모잠비크 해협의 4개 소도서분쟁 (프랑스-마다가스카르)


프랑스와 남아프리카 도서국인 마다가스카르 사이에는 1970년대 이래로 모잠비크해협상의 4개 소도서(Glorioso, Juan de Nova, Bassas da India, Europa)를 둘러싼 영유권분쟁이 있다. 당시 점유국이었던 프랑스로서는 양 당사국간 협의 및 ICJ 제소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현 점유국인 관계로 줄곧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자세로 일관해 왔고, 결국 현 점유국인 프랑스의 이러한 소극적 자세에 대해 마다가스카르는 대안으로 이 문제를 유엔총회에 상정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으며, 1979년 마침내 유엔총회는 이를 안건으로 받아들여 검토하기 시작했다. 1979년 12월 12일 채택된 유엔총회 결의에서 유엔은, 프랑스의 마다가스카르 영토주권 침해를 지적하는 한편 양국간 4개 도서영유권에 관한 조속한 협의를 촉구하였다. 이어 그 다음해인 1980년 11월 25일에는 유엔총회의 특별정치위원회(Special Political Committed of the UN General Assembly) 결의에서 상기 4개도서의 영유권은 마다가스카르에게 있음을 분명히 밝히기도 하였을 뿐 아니라, 동년 12월 11일 채택된 유엔총회 결의를 통해 프랑스의 조속한 협의이행을 거듭 촉구하였던 적이 있다.


② 포클랜드분쟁 (영국-아르헨티나)


1982년 영국-아르헨티나 양국간 포클랜드 무력충돌이 발생하기 훨씬 이전인 1947년에 영국은 포클랜드 및 부속도서 영유권문제를 ICJ에 제소할 것을 아르헨티나에 제의하였으나 아르헨티나가 거부하자, 1955년에 영국은 단독으로 이 문제를 ICJ에 제소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단독제소에 대해 1956년 ICJ가 내린 결론은 관련당사국인 아르헨티나의 동의가 없는 제소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ICJ에서의 해결이 불가능해진 포클랜드 문제는 결국 10년 뒤인 1965년에 유엔총회에서 다루어지게 되었으나, “양국간 협의에 의한 평화적 해결모색 촉구”라는 원론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수준에 그침으로써 1982년의 무력충돌 가능성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2. 군사위기 야기후 유엔 안보리 개입 유도 사례


비록 독도문제가 일본의 의도대로 유엔총회의 안건으로 채택되어 한국에 외교적 압박을 가할지라도 한국은 이에 대해 단호히 거부하게 될 것이며, 이에 일본은 군사적 위기를 야기한 후 이 문제에 유엔안보리를 개입시켜 한국에게 보다 강압적인 외교적 압력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유사한 세계 도서분쟁 선례로 그리이스-터키간 에게해 도서분쟁 사례를 들 수 있다.


에게해 도서영유권분쟁 (그리이스-터어키)


1975년 1월 27일에 그리이스는 에게해 도서분쟁건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것을 터어키에게 정식으로 제의한 바 있다. 당시에는 이러한 그리이스의 제의에 대해 터어키는 즉각 수락하였었다. 그러나, 국내의 반대여론에 직면하자 터어키는 곧 이를 철회하고 대신 당사자간의 문제임을 강조하여 국제사법재판소의 관할권을 거부하게 되었다. 결국, ICJ 제소 미합의로 말미암아 미해결상태로 남은 에게해지역은 1년여 뒤 마침내 양국간 군사적 위기상태를 맞게 되는데, 1976년 7월 중순경 터어키 조사탐사선의 그리이스 관할해역 침범으로 인해 그리이스의 군사적 대응태세와 이에 맞선 터어키의 무력사용 위협 등 위기가 고조되자, 그리이스는 1년전 무산되었던 ICJ 제소방안에 대한 대안으로 이번에는 UN 안전보장이사회를 긴급소집하는 방안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8월 12일에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리게 되었으며, 마침내 8월 25일 안전보장이사회는 양국에게 이 문제를 ICJ에 제소할 것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만다. 그러나 터어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권고안에도 불구하고 ICJ 제소 거부를 계속 고수함에 따라 그리이스는, 1977년 7월 18일에 단독으로 ICJ에 청원서(a memorial)를 제출하는 방법도 시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1997년 말에 ICJ가 이 문제를 검토한 후 내린 결론은, “이 문제가 양국간 국내적 관할사항이므로 ICJ에게는 강제관할권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ICJ에 제소하려던 그리이스의 시도는 당사국 쌍방의 합의에 의한 제소없이는 불가능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셈이었다. 다시말해 독도문제의 경우도 한국이 동의하지 않는 한 일본의 제소의지만으로는 ICJ 제소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독도문제와 관련하여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에게해 도서분쟁 터어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ICJ 제소 권고안”까지 완강히 거부할 정도로 국제여론을 무시할 수 있었던 데에는 미국의 묵시적인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그 근거로는 당시 에게해 도서분쟁시 미국은 터어키측 주장에 따라 ICJ 제소방안보다는 양 당사국간 합의중재에 더 적극적이었을 뿐 아니라, 1976년 양국간 군사적위기 해결후 미국과 터어키는 전투기를 포함한 무기구매 협정을 체결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만약 독도문제가 군사적위기로 비화되어 이 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되었을 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독도문제의 ICJ제소 권고안을 채택하고 미국 등 주변국들이 이를 적극 지지할 경우를 상정해 보자. 과연 이 경우에도 한국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여론을 무시하면서까지 ICJ제소 거부를 계속 고수할 명분과 국력이 있을 것인가? 이 점에 대해 현재로선 그리 낙관적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독도문제는 한국이 원하든 원치 않든 국제적 여론에 이끌려 마침내 ICJ에 합의제소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설사 한국이 ICJ 합의제소에 끝내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훗날 국제사법재판소 또는 1996년 10월 1일부터 가동된 국제해양법재판소의 강제관할권이 한층 강화되어 한국의 합의여부에 상관없이 국제재판소에 제소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3. ICJ판결 또는 유엔결정에 대한 불복사례


도서분쟁 지역이 분쟁 당사국의 전략적 가치 및 국가이익에 첨예하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 실제로는 당사국들이 유엔결정이나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에도 불복하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이러한 사례들로서 프랑스-마다가스카르간 모잠비크해협 도서분쟁과 칠레-아르헨티나간 Beagle해협 도서분쟁 사례 등이 있다.


① 모잠비크해협 4개 도서분쟁 (프랑스-마다가스카르)


프랑스와 마다가스카르간 4개 소도서(Glorioso, Juan de Nova, Bassas da India, Europa) 영유권분쟁에 관해 유엔총회는 1979년과 1980년 두차례에 걸쳐 상기 분쟁 도서지역이 마다가스카르의 주권임을 결의한 바 있는데, 이러한 유엔총회의 결의안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이를 거부한 적이 있다.

② Beagle Channel 도서분쟁 (칠레-아르헨티나)


19세기 이래로 아르헨티나와 칠레간에는 남미대륙의 최남단 접점부분인 Beagle 해협상의 세 도서(Picton, Lennox, Nueva)를 둘러싼 영유권분쟁이 있었는데, 1970년대 들어 양국간에 이 문제를 ICJ에 제소한다는 데 합의를 봄으로써 영유권문제 해결의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따라서 ICJ는 양국으로부터 제출된 28권 분량의 입증자료와 400여건의 지도들을 검토함과 동시에 분쟁 도서지역들도 방문한 결과 1977년 2월 마침내 판결에 도달하였다. ICJ 판결결과 이 도서지역은 당시 점유국인 칠레령인 것으로 확정되었으나 아르헨티나는 이에 승복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가 ICJ의 판결에 승복 못하는 근거로 든 것은 (1) 이 문제가 ICJ 관할 밖의 사항이며, (2) ICJ가 법적, 지리적, 역사적 해석을 잘 못 하였을 뿐 아니라, (3) 양국이 제출한 입증자료들을 공정하게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양측의 합의제소로 인한 ICJ 판결에도 불구하고 패소한 아르헨티나가 그 판결에 승복하지 않음으로써 1978년 이 지역에는 양국간 무력충돌의 군사적 위기까지 초래되고 말았다.



4. 일본의 무력사용 가능성과 미국의 반응


과연 일본은 한국이 먼저 무력행사를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국제여론을 무시하면서 까지 독도를 무력으로 탈취하려 할 것인가? 국제법상으로 개별국가의 무력행사가 인정되는 경우는 국제연합 헌장 제51조에 정한 “무력침공(armed attack)에 대한 자위권(self-defense)”의 경우 뿐이다. 그러나 이 자위권의 인정조항은 시간적 한계(time limit)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논란이 있기는 하나 영토분쟁시 수 백년 전에 무력으로 탈취당한 옛 영토의 회복시에도 자위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지난 1950년대 초 조직된 한국의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경비를 하면서 일본이 설치한 “일본령” 표지판을 철거하고 이에 항의하는 일본의 순시함 등을 총포전으로 격퇴시킨 사실에 대해 만약 일본이 이를 한국의 무력침공(armed attack)으로 간주하여 4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에 대한 자위권 행사로 독도에 대해 무력행사를 감행한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도 이 때쯤이면 일본은 이미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 지위에 있게 될런지도 모르는데, 해석하기에 따라서 이렇게도 가능하고 저렇게도 가능한 이 “자위권”조항의 위법성을 주장하기에 우리의 국력은 아직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 다음, 한국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논쟁이 지금까지의 수준보다 훨씬 더 뜨거워진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미국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먼저 한일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독도 포함 여부” 해석에 대해 강화조약 초안 작성자인 미국은 줄곧 침묵이다. 일본의 영토로부터 포기되는 영토에 독도가 포함되는지 포함되지 않는지는 실제 그 조문을 작성한 국가가 가장 정확히 알고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조약 초안작성 당시 한국의 문구 수정요구를 거절하면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밝힌 것을 제외하고는 그 이후 구체적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한국 및 일본 양국과의 미묘한 관계로 인해 앞으로도 미국은 이에 대한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독도문제에 있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데, 미국의 주변국 도서영유권 분쟁사례를 보면 이를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우선, 일본이 한국의 국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일방적으로 편입조치(도근현고시 제40호)한 것과 같은 전철을 미국도 밟은 사례가 있는데, 첫 번째 사례는 1967년 영국으로부터 아프리카 남동해의 Diego Garcia섬(도서국인 모리티우스 인근에 위치)을 이양 받아 1980년 1월 4일 이 섬에 일방적으로 해군 기지 건설방침을 선포함으로써 모리티우스 국가로부터 영유권 분쟁이 제기되고 있으며, 두 번째 사례는 자마이카 해협에 위치한 Navassa섬을 19세기에 일방 점유하여 제2차대전 중 이 섬에 등대를 설치하는 등 자국의 관할하에 둠으로써 아이티(Haiti) 국가로부터 영유권 분쟁이 제기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독도에 대한 한국의 현 실효적 점유(등대 설치 및 경비대 주둔 등)에 대해서도 쉽사리 인정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는데, 바로 캐나다와의 Machias Seal 도서를 둘러싼 영유권분쟁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섬은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지대 해안에 위치하고 있어 양국이 모두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도서인데, 캐나다가 이 도서에 1832년이래 등대를 설치하고 경찰 경비대가 보호순찰 활동을 하며 실효적 점유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를 인정치 않으며 1984년부터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영유권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관련하여 또 하나 복잡한 문제로 현재 미국이 한국의 동맹국이기도 하지만 일본의 동맹국이기도 한 사실을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직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은 국제연합군사령관에게 귀속되어 있으며 실질적으로는 미군사령관에게 남아 있는 실정이다. 만에 하나 한일간에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한국의 군사작전은 미군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게 되며 미국은 일본과의 안보조약 관계로 인해 상당히 복잡한 양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하여 미-일안보조약의 적용범위에 관한 일본측의 입장과 조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996년 초 배타적 경제수역 선포문제로 일-중간에 영유권분쟁이 재연된 바 있는 센카쿠제도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센카쿠제도가 미일안보조약에 따라 미-일 공동방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반해, 독도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줄곧 독도가 일본 고유영토이나 사실상 현재 일본의 관할권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므로 미일안보조약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일본이 독도문제에 있어 미국과의 복잡미묘한 관계를 의식하여 가급적 미국의 개입여지를 남겨두지 않으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냉엄한 현실 국제질서에서는 우리의 바램과 의도와는 상관없이 진행되는 일이 허다하다. 따라서 “무엇이 바람직한가?”의 명제보다 "어떻게 될 것인가?”의 명제가 어쩌면 한반도 운명의 사활에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한일간 독도 영유권분쟁도 이런 범주에 속한 것은 아닐까.


배진수 / 국제정치학 박사, 군사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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