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영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이춘근 / 2003-03-03 / 조회: 7,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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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03
No. 05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영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이유와 국제정치의 미래


문제점의 연원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에 프랑스와 독일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유엔 안보 이사회 상임 이사국인 프랑스는 미국과 영국이 제안하는 보다 강력한 제 2 차 대 이라크 유엔 결의안 채택에 대해서 반대의 입장을 표명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미국에 대한 반대는 단순히 이라크 전쟁에 관한 제한 된 이슈를 넘는 것이지만 현재 나타나는 독일, 프랑스 반미주의의 직접 원인은 작년 11월 채택된 UN 안보리의 대 이라크 결의안 제 1441호와 이의 후속 결의안 채택 여부를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가 UN 결의안 1441호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무력에 의한 응징이 필요하며 UN 안보리가 대 이라크 무력사용을 위한 결의안을 통과 시켜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영국은 결의안 초안을 UN 안보리에 상정시켰다. 이에 반해 UN 안보리 상임 이사국인 프랑스를 비롯, 독일은 아직도 사찰과 외교적 수단을 통해 이라크를 무장해제 시킬 수 있는 방안과 시간이 있음을 강조하고 이라크와 사찰단에게 시간을 더 주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대 이라크 강경론과 전쟁 반대론


미국의 파월 국무장관은 작년 가을, 일방주의로 치닫는 부시 행정부의 다른 각료 및 부시 대통령을 설득, 결국 UN 안보이사회의 결의를 밑바탕으로 하는 대 이라크 전쟁 전략을 수립하도록 했다. 파월 장관은 UN에서의 외교력을 동원, 2002년 11월 7일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및 비상임 이사국 15개국 전부의 만장일치 지지를 받는 안보이사회 결의안 1441호를 만들어 내었다. 이 결의안은 이라크가 기왕의 유엔의 결의안들이 요구한 대량확산 무기 확산 저지에 동의하지 않았음을 비난하고 유엔은 이라크가 마지막으로 무장해제의 의무를 준수할 기회를 주며; 이를 위해 이라크는 완벽하게 검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유엔의 사찰을 수락할 것을 요구했다. 결의안 1441호는 이라크가 계속 무장해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it will face serious consequence)임을 경고했다.


그러나 이라크에 대한 유엔사찰단의 報告는 이라크가 대량파괴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찾아내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이라크가 대량파괴 무기 개발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이라크가 사찰에 적극 협조한 것도 아니라는 그야말로 흐리멍텅한 내용이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대 이라크 강경론과 대 이라크 전쟁 반대론 사이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표명되기 시작했다. 미영의 강경론은 이라크가 심각한 결과에 직면해야 할 상황이며, 후속 결의안을 통해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무장해제 조치 할 수 있는 유엔의 허락을 받으려 한다. 반면 프랑스, 독일은 이라크에 대한 사찰 시한을 더 연장하고 사찰 규모도 늘임으로서 지금 당장 전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러시아도 불-독의 입장을 지지하며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은 안보리에서 새로운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밝혔다.


이처럼 야기된 미국-영국을 한편으로, 그리고 독일-프랑스를 한편으로 하는 세력간에 긴장이 야기되고 있다. 단순한 전술, 전략적 견해 차이를 넘어 이들의 갈등은 감정적인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소위 대서양 동맹, 유럽 통합, 유엔의 장래는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비록 임시 해결되어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가 터키 방위를 위한 조치를 취하는데 합의를 이루기는 했지만 프랑스, 독일, 벨지움이 이라크와 전쟁이 발발 할 경우 당연히 나토에 의해 군사적 보호 조치가 제공되어야 할 터키에 대한 군사력 파견을 거부했던 것은 NATO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으며 앞으로 NATO의 장래에도 궁극적인 악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프랑스-독일의 미국에 대한 반발은 향후 국제체제의 진행 방향조차 바꿀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 시라크의 반미주의


시라크는 이번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 대가로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 한다. 그러나 시라크는 좌파도 아니며 평화주의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위대한 프랑스를 구현하고자 하는 드골 대통령을 숭상하는 드골주의 우파 민족주의자라고 보아야 한다. 시라크는 1981년, 1988년 프랑스 대통령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시라크는 파리 시장으로 18년간 재직한 후, 1995년 드디어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95년 6월 그가 제일 먼저 단행한 외교정책 결정 중 하나는 1995년 9월부터 1996년 5월 까지 8개월 동안 8차에 걸쳐 핵실험을 강행한다는 것이었다. 전 세계 반전주의자들의 격렬한 데모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라크 대통령은 유유히 핵실험을 모두 끝냈다. 프랑스의 독립성을 과시하는 조치였다.


시라크는 1997년 총선에서 야당인 사회당이 대거 의회에 진출함으로서 실질적인 힘을 행사하기 어려웠고, 파리 시장 재임시절까지 소급되는 부패 스캔들 때문에 몇 년 동안 고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2년 봄 그는 대통령에 재선되었고 그의 신 드골주의 정당(neo-Gaullist Party)은 상원과 하원을 장악하였다. 시라크 대통령이 무엇인가 새로운 정책을 단행 할 수 있는 정치적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는 內政을 장 피에르 라파린(Jean-Pierre Raffarin) 총리에게 맡기고 대외 정책으로 눈을 돌렸다. 아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신뢰를 받는 도미니크 드 비유펭(Dominique de Villepin)이 외무부 장관으로 기용되었고 그는 시라크 대통령에게 국제 무대에서 프랑스가 대접받을 수 있도록 하는 외교정책을 시도하라고 조언했다.


시라크의 이번 행동의 본질적 이유는 프랑스의 자존심 앙양이라는데 있다. 국민의 80 % 정도가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여론을 업고 시라크는 과감히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 정책에 저항을 한 것이다. 프랑스는 이 기회에 유럽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선진국과 후진국을 연계하는 세계의 교량 역할을 담당하고자 했다. 물론 시라크가 이 같은 반미 정책을 취한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 시라크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감이 있다. 프랑스 군수산업은 유럽에서조차 미제 무기와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있지만 이라크는 프랑스 무기를 구입해 주는 나라다. 이스라엘 공군에 의해 파괴되었던 이라크의 핵 시설도 프랑스가 제공한 것이었다고 알려졌으며, 프랑스는 이라크에 대한 석유 이권도 많다. 무엇보다도 유념해야 할 것은 프랑스 영토 내에 무려 500만명이 넘는 회교도가 거주한다는 사실이다. 프랑스는 이들이 反美를 넘어 프랑스도 포함 될 反 西歐的 태도를 취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대응


프랑스와 독일의 대 이라크 전쟁 반대는 예상치 않은 강력한 역풍을 받고있다. 2월 5일 미국의 콜린 파웰 국무장관은 이라크가 무장해제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관한 증거를 제시하는 긴 연설을 함으로서 유엔의 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미국의 와싱턴 포스트 지는 “프랑스가 무어라 말하던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그들은 미국이 하는 일에 대해 1950년대부터 반대했고 그러다 때로 슬그머니 미국에 동참하곤 했다. 이번에 그런 일이 있어도 놀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프랑스 주요 언론들도 미국 및 세계 도처에서 광범하게 벌어진 2월 15일의 반전데모 사진들을 대문짝만하게 싣고 있다. 이에 대항하여 비교적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을 삼가는 영국의 언론들조차 시라크를 벌레에 비유하고 있을 정도로 프랑스에 대한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동부유럽 국가들을 향해 “당신들은 침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렸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영국의 블레어 수상은 동유럽 국가들의 행동에 경의를 보낸다는 편지를 보냄으로서 대응했다.


미국과 영국은 프랑스-독일의 전쟁 반대론에도 불구 대 이라크 무력 제재를 촉구하는 유엔 결의안을 안보이사회에 상장 시켰다. 텍사스주 크로포드에 있는 자신의 목장에서 휴가중인 부시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에서 이라크 공격에 관한 결의안이 통과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향후 국제정치에 줄 충격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노정 되고 있는 프랑스-독일 과 미국-영국 사이의 대립은 국제정치 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몇 가지 가능성을 제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예측 가능성이 높은 것은 미국과 영국은 결국 이라크를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무장해제 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20만에 육박한 병력을 걸프지역에 파견한 미국이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철수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바로 이점에서 결의안 1441호에는 적극 동의한 프랑스가 왜 그 자연스런 귀결인 후속 결의안을 반대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진정 미국의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려면 결의안 1441호 자체가 성립 될 수 없도록 미리 조치(거부권 행사)를 취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이 전쟁을 회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사담 후세인이 권좌에서 내려오는 일이다. 바로 이점은 미국-영국의 대 이라크 전쟁의 목적이다. 전통적인 전쟁의 경우와 달리 현재 미국-영국의 전쟁 목표는 이라크라는 국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사담 후세인의 제거다.


미국과 영국이 군사작전을 개시한다면, 그리고 군사작전 개시 시점까지 프랑스가 반대한다면 그 경우 프랑스는 국제정치에서 전혀 무의미한(irrelevant) 처지로 타락하는 황당한 결과를 당하게 될 것이다. 사실 미국이 프랑스의 반대 때문에 전쟁을 주저 할 정도가 아니다. 미국의 군인들은 오히려 단독으로 전쟁하는 것이 편하다고 말할 정도다. 프랑스와 미국의 국력이 너무나 일방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이 현실이다.


프랑스는 1956년이래 미국이 발의한 어떤 유엔 결의안에 대해서도 반대한 적이 없었다. 최근 시라크는 미국과 영국의 대 이라크 전쟁에 관한 유엔 결의안에 프랑스가 반대할 것이라 언급했는데 만약 프랑스가 거부권을 행사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와 관계없이 미국과 영국 및 기타 동맹국이 전쟁을 개시한다면 이는 결국 UN조차 무력화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이미 미국은 UN안보리 그 자체의 존재가 무시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경고를 발하고 있다.


UN, 특히 UN 안보이사회가 국제정치의 모든 것을 정당화시키는 기구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이는 1945년 당시의 강대국들간의 힘의 구조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전쟁에 승리한 미국, 영국, 소련은 사실 나치스와 일본군국주의를 격파하는데 그다지 큰 은이 없었던 프랑스와 중국을 상임이사국에 포함시켜주었던 것이다. 만약 2003년 기준으로 거부권을 가진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을 다시 뽑는다면 프랑스 대신 일본, 독일, 혹은 인도가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일본이 열정적으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뉴욕타임즈의 기자 프리드만은 프랑스를 빼고 인도를 UN안보리에 가입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이 향후 국제 정치에 비칠 영향 중 하나는 유럽의 미래가 '하나의 유럽'이 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많은 국제정치 학자들이 유럽이 하나가 될 경우 이는 미국보다 더욱 강력한 세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명한 국제정치학자 찰스 쿱찬(Charles Kupchan)은 중국도 아니고, 중동과의 테러전쟁이 아니라 바로 유럽이 초강대국 미국을 궁극적으로 몰락시킬 세력이라고 논한 바 있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하나를 향해 나가는 유럽에 돌이킬 수 없는 쐐기를 박아버리는 것은 아닌가? 프랑스는 하나의 유럽(united Europe)의 맹주(盟主) 자리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스페인, 포르투갈, 이태리, 덴마크, 영국 등은 미국 편을 들고 있으며 과거 공산주의였던 동유럽 13개 국가들(이중 8국은 2004년 유럽 연합에 가입할 예정)도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독일이 이라크 전쟁 대해 미국에 반대하는 것 역시 독일의 되찾은 자존심, 혹은 슈뢰더 총리의 국내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동안 미국의 적극적 지지자인 독일의 반미주의 역시 미국으로부터 불어오는 전혀 예기치 안았던 역풍을 맞고 있다.


사실 독일의 통일에 대해 영국, 프랑스, 러시아 모두가 반대했었다. 강력한 독일의 출현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독일을 콘트롤한다는 보장아래 유럽국가들이 독일의 통일을 허락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주독 미군을 철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군이 빠져나간 독일은 프랑스의 군사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즉 독자적으로 무장하려 할 것이다. 독일의 독자적 군사력 강화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역사적 惡夢이다. 이미 주독 미군 철수를 주장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시카고 대학의 미어세이머 교수는 주독미군을 철수하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이 군비증강에 돌입할 것이고 그 경우 안정이 깨지게 될 것인데 그것이 미국에 나쁠 것(특히 경제적으로) 없다고 논한 바 있다. 주독 미군이라는 변수는 유럽 국제정치의 방향을 본질적으로 바꾸어 놓을 변수인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처럼 불리한 상황이 초래 되도록 프랑스 혹은 독일이 미국과 영국의 대 이라크 전쟁 정책에 끝까지 반대 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와 독일은 '후세인의 무장해제' 라는 미국의 전략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다만 어떻게 무장해제 할 것이냐의 전술적 측면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프랑스가 원하는 것은 프랑스가 국제체제에서 무엇인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인정받는데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자칫하면 프랑스가 국제정치에서 정말 별 볼일 없는 존재가 될지도 모를 판국이다. 미국 영국이 프랑스를 무시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전쟁 개시)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작금 야기되는 프랑스, 독일의 태도는 역시 국제체제가 변했어도 국가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궁극적인 요인은 각 국가들이 보유한 '국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李春根(政博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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