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인 및 향후 전망

이춘근 / 2002-10-21 / 조회: 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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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10.21
No. 02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인 및 향후 전망


1.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인


10월 17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음을 시인했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미국 역시 10월 16일(미국 동부 시간) 저녁 국무부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인했다는 사실을 공표 하였다. 이후 한국은 물론 세계가 북한의 핵개발 사실 시인에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이고 대책 마련에 분주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계속 했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도 새로운 일도 아니다. 이미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 개발을 계속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심증적으로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의 성격,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국제정치 상황 등을 고려 할 때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 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은 핵 개발을 하지 않을 것임을 누누이 강조했고 최근(9월) 고이즈미 일본 수상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2003년 이후에도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고 핵무기 개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사찰도 허용할 것이라 말한 바 있었다. 북한은 더 나아가 국가로서는 차마 말하기 힘든 일본인 납치 사건을 고백하고 사과함으로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국 대통령의 외교안보수석과 일부 評者들은 북한이 핵 개발을 시인한 것을 일본인 납치를 시인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인식, 북한이 대화를 통한 해결 의지를 비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 개발 시인은 일본수상에게 일본인 납치를 시인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핵 개발 시인 과정이 특이하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따르면 10월 3일 평양을 방문한 켈리 미 국무성 아태 지역 담당 차관보는 북한에 대해 '지난 수 년 전부터 핵 개발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강력히 제기했다. 북한은 우선 이에 대해 화를 내며 부인했다. 그러자 켈리 차관보는 미국이 획득한 북한의 핵 개발에 관한 부인하기 곤란한 정보자료를 제시했다. 다음날인 10월 4일 강석주 북한 외교부 부상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우리는 “더 강력한 것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북한이 핵 개발을 시인한 것을 미국이 제시한 새로운 정보 자료 때문(confronted by new American intelligence...) 이라 표현하고 있다. 강석주 북한 외교부상은 북한이 핵 개발을 시인한 것이 '미안한 마음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북한의 핵 개발 시인은 그 진정한 동기는 알기 어려우나 미국이 제시한 정보 자료를 부인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 보아야 옳을 것이다. 북한은 미국은 한반도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는 사실 등을 이야기하며 북한의 입장을 강변했다는 점, 이미 1994년의 합의는 무효라고 북한이 먼저 말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북한의 언론이 켈리 특사 방문 직후미국이 오만 방자한 태도를 보였다고 비난한 점 등은 북한의 핵 개발 시인이 예상치 않은 가운데, 미국의 정보에 굴복하여 이루어 진 것임을 말 해 준다.
미국은 각종 정보를 통해 1994년 10월 21일의 제네바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고 있다고 믿었고 최근 이를 확신 할 수 있을 정도의 물증을 확보했을 것이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북한은 이미 두발 정도의 원폭을 보유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근거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인이 한미 양국에서 공식 발표된 17일 이후 북한의 핵 개발에 관해 한국 정부도 이미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들어 나고 있다. 또한 한국 측과 미국의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데 대한 묘한 견해차이도 들어 나고 있다.

2. 북한의 핵 개발 시인이 초래할 국제환경 변화


북한이 핵 개발을 시인했기 때문에 한반도에 새로운 긴장이 야기 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정보 자료를 이미 북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정보 자료를 확보한 상황에서 북한이 이를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북한이 인정하지 않아도 긴장상태는 다가오게 되어 있었다. 1994년 이전 북한은 '핵을 개발할 능력도 의사도 없음'을 계속 강조했고 영변의 핵 시설은 발전을 위한 시설이지 무기를 만들 시설이 아니라고 주장했었다. 그래서 1994년의 협정은 북한이 영변의 핵 시설 가동을 중지하는 대가로 경수로 발전소(전기)를 지어 주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북한은 그 후 영변의 원자로를 재 가동 할 필요가 없는 새로운 방식의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이번에 시인한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무기 제조 노력이었던 것이다. 94년 이전 북한이 추구한 핵무기는 원자로 가동 후 나오는 폐연료를 재처리해서 얻어지는 풀루토늄을 사용하는 핵무기 였다. 인류 역사상 실제 사용된 단 두발 핵폭탄중 히로시마에 투하된 것이 우라늄 농축을 통해 만든 것이며 나가사키에 투하된 것이 풀루토늄으로 만든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 계획을 인정하며 남한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언급했지만 북한 핵 개발 시인은 1994년의 국제협약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북한 스스로 인정했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즉 핵폭탄을 만드느냐 아니냐 그 사실 못지 않게,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북한의 경우 핵 개발을 중지하겠다)는 약속을 위반했다는 문제라는 말이다. 결국 북한의 핵 개발은 북한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를 다시 노정 시키게 되었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대북 정책이 조화롭지 못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양국의 북한 정권에 대한 신뢰도 문제였는데 결국 미국이 생각하던 ‘북한은 못 믿을 상대’라는 사실이 확인된 상황이 되어버렸다. 북한을 '악의 축'이라는 비 외교적인 투박한 언어로 비난했고 그래서 오히려 미국이 비난받는 상황이었지만 미국은 이미 북한의 핵 및 대량 파괴 무기 개발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었기에 그런 언급을 했던 것이며, 결국 이를 확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북한이 최근 시도하는 과감한 개혁정책은 사실 외국의 돈을 빌려와야 가능한 것이다. 외국의 돈을 빌리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북한의 신뢰성이다. 이제 북한은 그 신뢰성을 잃게 된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인이 의미하는 두 번째 의미는 그동안 한국, 일본이 전개해 오던 대북 정책의 방향을 총체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 정부가 북한에 지원한 현금이 북한의 군사력에 투입될 상황을 우려 해 왔다. 미국은 더 이상 북한에 대해 경제 지원조치를 진행 할 수 없다고 말하며 94년 협정에 의해 매년 50만 톤 씩 북한에 제공하던 중유의 공급조차 중단할 예정이다. 한국 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10월 20일자 뉴욕타임스는 미국 고위층이 1994년의 핵 협정을 파기 할 것임을 결정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일본 역시 북한의 핵무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수교 교섭 회담도 지연되어야 하리라는 견해가 비등하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 시인의 또 다른 의미는 과연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로서 기능을 하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을 일으키는 징표같아 보인다는 점이다. 즉 북한이 과연 戰略的으로 행동하고 있느냐에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고이즈미 일본 수상에게 납치 사건을 인정했다는 사실, 미국에게 핵무기 개발을 시인했다는 사실은 북한이 통이 큰 나라라고 해석하기에는 북한이 입을 손해가 너무나 많을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핵 개발의 경우 개발 그 자체보다도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이 될 것이다. 특히 미국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군사문제는 물론이거니와 현재 북한이 추구하는 개혁, 개방의 문제도 궁극적으로 북한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결정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지원하지 않는 한 북한의 경제개혁 실험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 국제사회의 자금이 유입되지 않는 한 북한의 개혁 개방이 성공할 가능성은 별로 없는데 국제 금융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이라는 사실을 부인 할 도리는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개발 시인이 의미하는 보다 시급하고 궁극적인 사실은 한반도의 안보 문제다. 한국 정부는 북한 핵무기를 허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10월 20일 평양에서 개최된 장관급 회담에서도 이를 완곡한 언어로 표시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의 입장은 대단히 강경하다. 특히 미국의 입장은 1994년의 상황과는 그 본질이 다르다. 일부 언론은 미국의 태도를 미국의 ‘강경파’ 때문인 듯 말하고 있지만 미국이 강경한 태도는 강경파 때문이 아니라 9.11 이후 급격히 변한 미국의 국제 상황 인식 때문이다. 미국은 테러 전쟁을 진행하는 중이며 현재 제 2단계, 즉 테러지원국가를 상대로 하는 전쟁을 준비중에 있다. 2002년 북한의 핵 개발 문제는 바로 미국의 대 테러 전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바로 이점에서 2002년과 1994년의 핵문제의 본질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3. 북한 핵 개발의 원인


북한이 이처럼 북한에 危害가 되는 핵무기를 개발하는데는 필경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국제정치학적 분석을 제시해 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북한은 북한의 체제 안보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물론 핵무기는 강력한 군사무기로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다른 나라의 군사 공격을 능히 억지 할 수 있다.

둘째; 북한은 그동안 남한에 비해 우위에 있던 재래식 군사력이 점차 황폐화하는 문제점에 봉착하고 있었다. 특히 경제파탄은 값비싼 현대식 군사력을 보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도록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다 값싼 대안이 핵무기 개발이다. 핵무기는 파괴력에 비례하여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무기인 것이다.

셋째; 북한의 정책 지향이 핵 개발을 포기할 수 없게 했다고 보인다. 1994년 이후 북한의 전략 목표는 '강성대국'이고 이를 실행하는 정책 대안이 先軍政治였다. 강성대국, 선군 정치의 구호는 핵 개발을 정당화시키고 필요하게 만드는 이념적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경제 발전보다 군사력 강화를 더 우위에 놓은 정책을 시행해 오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이유와 목표들은 결국 북한을 더욱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은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고립화를 더욱 재촉하게 될 것이며 북한의 경제 발전을 불능 상황으로 빠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의 경제 개발은 북한 정권의 안정성을 위협할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정권은 개혁개방에 적극적일 수도 없었다.

더구나 북한이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개발하는 대량파괴 무기는 9.11이후 급격히 변질된 국제사회에서 오히려 거세 되어야 할 ‘악’으로 지목되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2002년의 국제상황은 1990년대 초반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임을 빨리 인식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10월 20일 평양에서 열린 장관급 회담에서 한국 측 대표인 정세현 장관이 북한측 대표 김영성이 말한 ‘바깥은 어떻게 변하더라도 민족 내부가 단합해서 대처하자’ 는 말에 대한 응답으로 언급한 ‘바깥 온도와 내부온도가 너무 차이가 나면 감기가 걸릴 수 있다’는 의미를 북한측이 정확히 인식해야 만 이번 사태가 불행으로 치 닫음을 막을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전략을 북한측에 정확히 전해야 할 것이라는 한 유명한 정치학자의 苦言의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고 대처해야 한다.



4. 상황 전개와 한국의 대응


북한이 핵 개발을 시인한 이후 한국 측에서 나온 언급들은 전략적이기보다는 도덕적이다. 평화롭게 해결되어야 한다는 말은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상식이다. 이제까지 한국 정부는 북한의 대량 파괴 무기 문제를 직접 부닥쳐서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문제를 피해 나가려 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는 미국이 북한의 대량 파괴무기를 거론 할 때 이를 오히려 미국과 북한 사이의 문제라며 남의 일처럼 대하는 입장조차 존재했다.

북한의 핵문제를 ‘평화’ 롭게 해결한다는 것은 결국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을 말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이해 당사국인 한국-일본-미국의 완벽한 외교 공조를 전제로 하지 않는 한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 북한은 이 문제를 북한과 미국의 문제라고 강변했다. 지금 우리가 이 문제를 미국과 북한 사이의 문제라 방치하면 그것은 정말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결과를 초래 할 수 도 있다. 미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북한의 핵을 제거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처했기 때문이다. 2001년의 9.11 테러는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직접적인 관계로 변하게 되는 국제체제를 창출한 것이다. 즉 북한이 미국의 주적(主敵)이 되어버린 형국인 것이다.


북한은 한국을 인질로 삼지 않은 채 미국과 핵 문제를 가지고 대결할 수 없을 것이며,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개의하지 않는다면 북한문제는 이라크 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이라크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한국이 당면할 안보 위협 때문인 것이다.

북한이 1994년처럼 한반도를 다시 벼랑끝으로 몰고 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인다고 조심스런 낙관론을 제시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벼랑끝 외교가 통하는 국제정치 상황이 아니라는 점과 북한이 1994년보다 취약해 졌다는 사실이 그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위기가 다가 올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고 두둔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국가들이 남아있는 한, 북한은 이 문제를 가능한 한 지연, 확대하는 전술을 쓰게 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 핵에 대해 보다 분명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경우라야 북한 핵의 문제가 ‘평화롭게’ 해결 될 수 있게 된 것이 현재의 국제정치 상황인 것이다.


이춘근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장, lck@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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