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행동보다 경영 성과에 손 들어주고
본사 이전 복수혈전 지지한 소액주주들
RSU 욕먹을까 쉬쉬···韓 기업과 대조적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테슬라 주주총회에서 일론 머스크에게 66조원 규모의 스톡옵션을 지급하는 보상안이 통과하면서 기업가의 공로를 우선하는 기업 풍토가 눈길을 끈다.
17일 뉴욕증권거래소 등에 따르면 테슬라 주주들은 지난주 열린 주주총회에서 약 72%의 찬성표를 보내며 머스크를 위한 450억 달러 규모 주식 보상안을 재승인했다. 차등의결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머스크가 회사의 지분 절반을 차지하는 소액주주들의 압도적(90%) 지지를 얻은 것이다.
델라웨어주 법원은 앞서 테슬라 주식 9주를 보유한 리처드 토네타가 제기한 소송에서 머스크에 대한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지급을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의결한 것을 취소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지난 2018년 테슬라 이사회 측이 주식 보상안의 내용을 주주들에게 충분히 공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었다.
미국 내에서도 기업 천국으로 통하는 델라웨어주 법원에서 나온 주주 친화적 판결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테슬라 다수의 주주는 머스크의 경영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판을 뒤집었다.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린 이번 주주총회에선 테슬라의 법인 소재지를 델라웨어에서 텍사스로 이전하는 안건도 통과됐다. 자신을 포함해 다수 주주의 지지를 얻은 머스크는 "절대 델라웨어에 회사를 두지 마라"며 본사를 텍사스로 옮기는 복수 혈전을 단행했다.
테슬라는 주주총회가 끝나자마자 보도자료를 내고 델라웨어주 법인을 텍사스로 이전 등록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서류를 텍사스주 총무장관실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머스크의 친동생 킴벌과 미디어 거물 루퍼트 머독의 아들 제임스 머독을 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도 통과시켜 제왕적 지배체제를 공고히 했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테슬라의 최대 주주인 기관투자자 뱅가드가 찬성표를 던져 재승인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반면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글래스루이스와 ISS는 반대투표를 권고하는 바람에 체면을 구겼다.
곽은경 자유기업원 사무총장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다수의 주주들이 머스크가 기업의 가치에 미친 영향을 높게 산 것으로 판단된다"며 "단 9주를 소유한 주주 1인이 기업 전체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다수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 주주총회였다"고 평가했다.
델라웨어주 법원 판결은 주식 보상 결정 과정에서 이사회의 거수기 역할 문제를 지적한 것이어서 이를 "미국 법원도 대주주에 주식 보상은 안 된다"고 판결을 내린 것으로 해석하는 주주행동주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현지에서도 텍사스로 이전을 결정한 한 주주들의 투표는 델라웨어의 주주 보호가 너무 지나치다는 문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란 반응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기업의 약 3분의 2에 달하는 회사의 본사가 위치한 델라웨어주의 가장 큰 장점은 회사법과 관련한 거의 모든 판례를 가지고 있어 법적 분쟁 시 예측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머스크는 다양한 세금 혜택이 쏟아지는 텍사스를 선택했다.
텍사스 주정부는 낮은 세금을 약속하며 자동차 및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이 결과 삼성전자도 최근 텍사스주 투자를 기존의 두 배 이상인 440억 달러로 확대할 계획이다. 머스크는 지난 2021년 11월 스톡옵션 행사 당시에도 주소지를 캘리포니아에서 주 정부 차원의 개인소득세가 없는 텍사스로 옮겨 24억 달러 규모의 절세 효과를 봤다.
테슬라의 사례는 한화그룹 등 일부를 제외하곤 재벌 기업이 대주주 주식 보상에 쉬쉬하며 몸을 사리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올해 초 ㈜LS 이사회는 임직원에 자사 주식을 교부하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보상 제도 폐지안을 의결했고 다수의 기업 오너들이 주식보상을 둘러싼 여론의 비판을 의식해 몸을 사리는 실정이다.
반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와 전년 대비 약 1.4배 증가한 11만9746주 상당의 RSU 부여 계약을 지난 4월 체결했다. 김 회장의 삼남 김동선 부사장도 1만9738주의 RSU를 계약했다. 김 부회장은 부여일로부터 10년 뒤에, 김 부사장은 7년 뒤 특별한 과실이 없으면 해당 RSU를 주식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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