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 주목한 불평등 연구서
불평등 해소는 우리 시대의 과제다. 그런데 불평등이 좋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가 나타났으니, 그 사람이 바로 <좋은 불평등>(메디치미디어 펴냄)의 저자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이다. 이 책은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짧은 독후감을 SNS에 올릴 정도로 화제가 된 책이다. 불평등의 원인과 관련해서 25년 동안 진보 담론 시장에서 주름잡고 있었던 관점, 즉 불평등의 원인이 비정규직 문제, 신자유주의 문제, 재벌 문제에서 기인했다는 '국내적' 시각이 잘못된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렇기에 정책 처방도 틀렸다고 저자는 호기롭게 주장한다.
저자가 지적하듯 지금까지 한국 불평등에 관한 연구와 분석은 국내적 시각, 일국적 시각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에 반해서 이 책은 한국경제 불평등의 전모를 세계 경제, 특히 중국경제의 변화와 연결해서 다루고 있다. 일국적 틀에서 설명하던 불평등 현상을 세계 경제의 구조적 변동과 연결해서 다룬 것이다. 이런 까닭에 부제가 '글로벌 자본주의 변동으로 보는 한국 불평등 30년'이다. 세계 자본주의 구조적 변동에 한국경제가 능동적으로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산업과 고용의 구조, 그리고 불평등의 내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자세하고 흥미진진하게 추적한다.
이런 까닭에 필자는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의 변화,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일어난 베를린 장벽과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로 숨 가쁘게 전개된 세계 자본주의 구조의 변동, 그리고 거기에 적응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했던 대기업의 놀라운 적응력과 국내 산업구조의 변화와 노동시장 변화를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꼽는다. 이런 면에서 "한번 읽으면 한국경제 불평등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불평등과 한국경제 전반에 대해 균형 감각을 갖출 수 있는 쓰고"(13쪽) 싶어 했던 저술 목표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읽어보면 자본주의 세계 질서의 변천사와 여기에 맞물려서 한국경제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가 한눈에 들어오니 말이다.
물론 저자가 이 책을 쓴 진짜 목적은 "기존의 잘못된 통념 뒤집기"(13쪽)다. 1997년 외환위기가 불평등의 시작이 아니라 1995년이 불평등의 시작이라는 점,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해서 불평등이 심해진 것이 아니라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한국경제의 중국 수출이 대박 난 것이 원인이라는 점,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불평등이 줄어들었던 이유는 강력한 소득재분배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경제의 상황 변화로 인한 대기업의 수출 둔화가 원인이라는 점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면서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다. 이를 통해 그는 진보 진영의 정책 기조를 억강부약(抑强扶弱)을 부강부약(富强扶弱)으로 바꿀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진단이 잘못되었으니 처방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연구의 문제점을 발견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전방위적 독서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사고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더구나 그 문제의식을 확인하고 그걸 정리하는 과정은 더 힘들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질문을 던지면서 가설을 세우고 수많은 책과 보고서를 탐독하면서 근거 논리를 구축하고 그것을 입증하는 데이터를 만들고 찾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이런 과정을 생각하면 이 책은 정말 역작이라고 평가할만하다.
논쟁적인 대목
서평을 준비하면서 이 책에 대한 기존 평가를 찾아보았다. 크게 3가지 정도의 쟁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하나는 2018년 문재인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을 둘러싼 평가다. 저자는 소득주도성장론에 입각한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16.4%)이 임금 불평등을 떨어뜨렸으나 하층 일자리가 사라지는 부작용이 발생해 전체 가구소득의 불평등은 오히려 나빠졌고 부수적으로 고용 참사도 발생했다고 비판하나, 실제로 비판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반박의 핵심은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해주는 데이터를 가져다 썼다는 것이다. 저자가 가져다 쓴 통계자료가 '가계동향조사'인데 이것보다 3배나 넘는 가구의 표본을 갖고 있고 국세청과 금융위 등의 행정자료로 보완해서 만든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18년 가계의 소득 불평등은 오히려 개선되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2018년 '고용 참사'라고 부르는 것도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데이터도 제시한다.1)
두 번째로 저자는 진보 진영 전체가 1997년 외환위기가 불평등의 시작이 아니라 1994년이 불평등의 시작이라는 점, 비판자는 이것도 지나친 주장으로 평가한다. 진보 진영 내에서도 불평등은 외환위기 이전인 80년대 말 노동자 대투쟁으로 영향으로 1990년대 초중반부터 전개되었다고 주장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변수를 통해서 불평등을 설명하려고 하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과거에는 중국 수출이 증가하면 지니계수가 비슷하게 증가했지만 2013~2015년에는 중국 수출이 줄었는데 지니계수가 상승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저자의 주장에는 다른 요인들을 엄밀하게 통제하는 실증분석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2)
저자가 기존의 관점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새로운 관점을 던졌으니 논쟁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필자가 위와 같은 논쟁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그럴 정도로 이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이보다 훨씬 큰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좋을 수가 있다니
다른 것은 몰라도 필자에겐 노무현 정부 때의 불평등 심화와 이명박 정부 때의 불평등 완화의 원인 규명은 상당한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한국 대기업의 중국에 대한 수출 대박으로 노무현 정부 내내 나라 경제가 놀랍게 성장했는데, 희한하게도 같은 기간 동안 불평등은 심해졌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수출 대박이 상층 10% 노동자들의 임금 대박으로 이어졌고 상층 노동자의 임금소득이 어느 정도 낙수 효과를 일으키기는 했지만, 수출 대박 성과의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2008년 이후 이명박 정부 때 불평등이 줄어들었는데, 이것 역시 선진국발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수출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다시 말해서 임금 대박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불평등 심화 혹은 완화가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썼기 때문에, 아니면 반대로 이명박 정부가 복지정책을 강화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정책과 무관하게 중국과 선진국과의 교역 변화로 불평등이 커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노무현 정부 때 발생한 불평등이 '좋은' 불평등이라는 데까지 나아간다. 전술했다시피 이 책에서 놀라운 점은 불평등이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불평등 자체가 좋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불평등을 의미하는 '격차'는 어쩔 수 없는데, 경제가 성장하면서 격차가 커지는 것은 좋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수출 대박의 성과를 상층 노동자가 거의 독차지했지만 그것이 여러 단계를 거쳐 아래까지 흘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경제가 성장하면서 불평등이 증가하는 것은 '좋은' 불평등이고, 경제가 후퇴해서 불평등이 줄어드는 것은 '나쁜' 평등이라는 것이다.
진보의 정책 때문에 저임금 노동자가 많은 것이라고?
이렇듯 저자는 중국과의 교역 관계를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 상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수출 대기업의 성과를 대기업과 대기업 노동자가 독차지하고 하층(중소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은 여러 단계를 통해서 흘러내리는 효과에만 만족해야 하냐는 것이다. 대기업이 수출하는 상품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을 대기업이 자체 생산해서 조달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듯이 대기업 수출품의 생산은 국내의 수많은 중소기업이 만든 부품 조달이 있어야 가능하다. 물론 부품을 국내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대기업에 부품을 조달하는 중견기업, 중기업, 소기업과 함께 성과를 함께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글로벌 수출 대기업의 '고군분투'를 강조한다. 대기업이 이룬 성과가 하청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탈취해서 거둔 성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보는 상층의 성공 원인을 "'약탈'의 결과로, 부자 및 부유층은 약탈자로 간주"(287쪽)하지만 "한국 대기업이 글로벌 대기업이 된 것은 정경유착 때문이거나 자영업자를 약탈해서가 아니다. 치열하게 전개되는 국제적 환경 변화를 주목하여 재적응에 성공했기 때문"(290쪽)이라며 대기업을 한껏 추어올리는 데에만 집중한다.
더 나아가서 저자는 '약탈', '약탈자' 시각의 기초가 된 진보의 경제학을 '적폐의 경제학'이라고 명명하면서 오히려 진보가 중시하는 중소기업 중시 경제 구조 때문에 불평등의 원인이 되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줄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진보정당, 진보언론, 진보적 시민사회, 진보적 노동단체, 진보성향 정치인 중에는 대기업의 존재 그 자체를 적폐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이 강"한데, 이런 "대기업을 적폐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은 결과적으로 '질 좋은 일자리 만들기'"(230쪽)에 방해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저자는 한국 불평등의 저수지인 저임금 노동자가 다른 나라보다 많은 이유가 '신자유주의적 정책' 때문이 아니라 "한국 정치권이 1987년 민주화 이후, 소상공인 보호의 미명 아래 '규모의 비경제'를 장려했던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215쪽). 실로 놀랍고 황당한 주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경유착과 정권의 특혜, 협력업체에 대한 불공정 거래만으로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대기업들이 '글로벌 차원'에서 성공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289쪽)는 저자의 주장은 맞다. 진보 쪽의 누구도 이렇게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대기업들이 하청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 아닌가? 이것도 다른 나라보다 많은 저임금 노동자의 중요한 원인이 아닌가? 물론 저자도 한국 대기업들의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탈취, 불공정하도급 관계, 단가 후려치기, 전속계약 강요 등의 불공정 거래 관행 역시 존재한다"(290쪽)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다. 정리하면 현재 대기업의 성공이 오로지 중소기업을 착취한 결과가 아니라는 주장은 맞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화된 대기업의 착취가 중소기업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것, 그래서 저임금 일자리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 즉 기업 간의 불평등과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커지고 나아가서 산업생태계가 병드는 것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소기업은 중기업이 될 수 있도록, 중기업은 대기업이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237쪽)고 말하지만, 이러한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착취 관계를 근절하지 않고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재벌 관련 연구소들과 동일한 저자의 주장
사실 위와 같은 저자의 주장은 재벌과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연구소들과 자칭 보수 언론들이 오래전부터 해오던 주장이다. 물론 이들의 주장과 저자의 주장이 전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주주 자본주의라는 일반적 범주에서도 크게 벗어난 재벌의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기업지배구조와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착취를 은폐해왔던 기득권의 주장과 저자의 논리 구조가 상당 부분 겹친다는 것이다.
필자가 알기론 진보개혁 진영 주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착취 관계에 주목한다. 대기업을 적으로 규정하는 진보가 얼마나 될까? 작은 지분으로 수많은 기업을 쥐락펴락하고 온갖 편법을 일삼는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혁하자는 것이지,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대기업은 존중한다. 해외에서 대기업이 잘 나가야 한국경제가 지속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나온 것이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을 맡았던 이정우 교수와 이명박 정부의 총리를 했던 정운찬 교수의 '동반성장론'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착취 구조를 타파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성장의 과실을 공유하며 소기업이 대기업으로까지 발전하는 동태적 발전 현상을 복원하자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대기업이 수출 '초대박'을 치면 그와 연관된 중소기업은 적어도 대박 정도는 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도 성장할 뿐만 아니라 임금 지불 능력이 향상되어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과, 취약해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결 경쟁력도 올라간다. 즉, 저임금 노동자의 수가 줄어든다. 저자가 바라는 대기업 업체 수도 증가할 뿐만 아니라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격차도 줄어든다. 요컨대 이를 통해 산업생태계를 건강하게 구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지금까지 진보가 대기업을 적폐라고 규정해왔고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해왔다고 비판한다.
한편 저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임금 격차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비정규직이 양산된 원인에 관해서는 서술하고 있지만 해법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진보 쪽에서는 비정규직을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진보개혁 그룹은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이 생각하는 대안의 방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격차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일을 하면 '최소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자신의 주장과 논증의 명료함과 설득력 담보를 위해 진보 진영 주류가 취하고 있는 주요한 의제들을 의도적으로 호도하거나 침소봉대한다는 의심이 강하게 들게 된다. 진보 진영의 주류가 대기업을 적으로 상정한다는 주장에서, 비정규직을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진보 정부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보호 정책 때문에 저임금 노동자가 줄지 않는다는 주장을 보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지대, 즉 '불로소득'에 대한 몰이해
저자는 앞서 언급했듯이 진보의 정책 기조인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다는 뜻의 '억강부약(抑强扶弱)'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강자가 성공한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고군분투한 것의 결과인데 이걸 누르면 오히려 부작용만 심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든 것이 고액 연봉을 제한하는 '최고임금법'이다. 이것은 전형적으로 부자의 것을 빼앗아 서민에게 나눠주는 로빈후드적 세계관과 '자본가와 기업가는 나쁜 사람들'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계급 사관이 담겨있다는 것이다(309쪽). 그 대신 그는 강자는 더 잘 되게 하고 약자가 도약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부강부약(富强扶弱)'을 제안한다.
현재 상층을 건드리지 말고 하층의 상태가 개선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어떤가. 당연히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인 강자를 긴장시키지 않는,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고개를 빳빳이 들 수 있게 하는 주장 아닌가. 물론 필자는 이 방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자가 국민 일반이 주문하는 것과 반대의 정책 방향을 제시한 이유는 뭘까?
필자는 그것을 '지대'의 몰이해에서 찾는다. 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이 비정규직의 배나 되는 것,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쥐어짜는 것,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서 강자인 부동산 과다보유자들이 떼돈을 번 것이 '지대'인데, 아쉽게도 저자에게는 이런 인식이 보이지 않는다. 상층부가 누리는 이 지대를 환수 혹은 차단하자는 것이 억강부약의 중요한 내용이다. 이것은 단순히 강자의 것을 빼앗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다. 부당한 원인에 의한 불평등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한편 지대는 불로소득이다. 불로소득은 생산에 대한 기여의 대가가 아니라 특권이 만들어 낸 이익이다. 그러므로 지대는 누군가의 소득이 이전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대를 차단 및 환수하는 정책을 통해 1차 분배를 정상화하고 2차 분배구조를 두텁게 만들면 저자가 말하는 '좋은' 평등도 얼마든지 가능하다.3)
저자가 지대에 대한 인식이 희미하다는 것은 박원순 시장의 정책 보좌관 시절에 서울 "4대문 내 용적률 1,000%를 통한 파격적인 부동산 공급 정책 등을 추진"(8쪽) 했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2020년 당시 주택가격의 급등은 공급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저자는 주택가격 급등은 공급 부족 때문이니까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류 언론과 부동산 과다보유자들의 시각으로 당시 시장을 파악한 듯하다. 저자가 책에서 표현하듯이 원인에 원인을 파고 들어가면 부동산 과다보유자들이 누리는 엄청난 지대, 즉 불로소득과 만나는 데도 말이다. 요컨대 필자는 저자의 지대 개념 몰이해가, 국민 일반이 분노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입체적으로, 이론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근인(根因)이라고 본다.
한편 지대 및 불로소득의 관점을 장착하면 자산, 특히 부동산으로 인한 불평등을 다루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물론 저자는 자산 불평등에 관해선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의 주택담보대출 급증과 상층 노동자 10%에 해당하는 공기업과 대기업 노동자와 임원들의 부동산 투기가 하나가 되면서 불평등은 더욱 심화 되었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는 불평등은 자산 불평등과 소득 불평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사실 둘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에 있다. 소득 불평등은 저축 여력의 차이를 만들고 저축 여력의 차이는 자산 불평등으로 이어지며, 자산에서도 소득이 발생하므로 자산 불평등은 다시 소득 불평등을 낳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산을 모두 소득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불평등 심화'를 '소득 불평등 심화'로 불러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산이 낳는 소득 불평등은 다시 저축 여력의 차이를 가져와 자산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그런데 지금은 자산 불평등이 극심하고 2020년 현재 피케티 지수가 11이 넘는다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4) 불평등의 주범은 자산 불평등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지대나 불로소득의 관점에서 보면 소득(임금) 불평등과 기업 불평등뿐만 아니라 자산 불평등을 이해하고 해법도 찾을 수 있는 지평이 열린다. 저자가 강조하는 세계화 변수를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말이다.
결국 분배 정의론의 부재가 원인
불평등의 핵심 원인을 세계화에서 찾게 되면 결국 경쟁력 강화와 교육에 대한 강조, 약자에 대한 적극적 지원에서 대안을 찾게 되는데, 저자도 역시 같았다. 저자는 이것을 부강부약(富强扶弱)의 방으로 제시했다. 일리 있는 것도 있지만, 필자에겐 너무나 허망하게 들린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아무리 경쟁력을 강화하고 교육을 받아도 지금의 부당한 원인에 의한 기업 불평등과 임금 불평등을 그냥 두면 불평등은 해소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층의 상태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가 불평등에서 세계화의 영향을 강조한 것은 참신하다. 배울 것도 많다. 무엇보다 설명이 명쾌하고 쉽다. 세계화에 제대로 적응하기 위한 정부와 기업 간의 긴밀한 협력이 왜 필요한지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국내의 제도적 변수, 즉 진보가 제시한 개혁방안은 여전히 중요하다. 제도개혁을 통해 시장에서 착취가 일어나지 않도록, 즉 사전적으로 시장에서 1차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를 통해 부당한 임금 불평등과 기업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후적으로 소득세 등을 강화해서 저자가 말하는 노인 등의 복지 등을 강화해야 한다.
국민 일반이 고쳐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은 부당한 원인에 의한 불평등이고, 부당한 원인에 의한 소득이 지대, 즉 불로소득이다. 저자는 부당한 원인의 대명사인 지대에 대한 이해가 부재한 까닭에 대기업 수출의 성과를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도 함께 누리지 못한 구조를 정조준하거나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불합리한 임금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부당한 원인에 의한 불평등을 고치려는 정책조차 잘못된 세계관에 근거한 것이라고 꾸짖는다.
최종적으로 말해서 분배 정의론의 부재가 <좋은 불평등>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불평등을 제대로 검토하려면 발생한 소득이 '특권'에 의한 것인지, 개인의 순수한 노력과 타고난 재능이 결합한 '능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상속과 증여처럼 운(luck)에 의한 것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분배 정의론을 정리하면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특권,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의 특권, 학벌이 누리는 특권,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얻는 불로소득, 즉 지대가 눈에 들어오게 되고 저자가 말하는 '좋은' 불평등을 '좋은' 평등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각주
1) 박영삼 전문위원(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의 페이스북 글(2022년 11월 3일) 참고함.
2) 두 번째와 세 번째 쟁점은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포럼 토론문 "'한국경제 불평등의 작동구조'에 관한 토론"(2022. 11. 2) 참고함.
3) 지대의 개념에 관해서, 그리고 지대 추구가 불평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는 지에 관해서는 <불평등의 대가>(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참조.
4) <파이낸셜뉴스> 8월 5일 자 '코로나 원년에도 피케티 지수 '역사적' 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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