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일부터 4세대 실손보험 시대가 열린다. 비싼 치료를 많이 받을 경우 보험료가 크게 올라지만, 보험금 청구를 자주 안하면 보험료가 줄어든다.
이같이 새 실손보험이 나오지만 보험업계는 조용한 분위기다. 보험사들은 실손보험 장사를 해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여론과 금융당국의 눈치 때문에 실손보험 장사를 접기 어려운 입장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미래에 보험업이 헬스케어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 상당수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사업을 한동안 이어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ABL생명은 4세대 실손보험 출시를 하지 않고 동양생명은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보험업계에선 실손보험 손실 때문에 동양생명이 실손보험 판매를 접기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ABL생명 관계자는 "기존 실손보험의 적은 판매물량과 높은 손해율 등을 고려해 4세대 실손보험 출시를 하지 않기로 했다"며 "단, 기존 실손보험 가입 고객을 위한 전환용 4세대 실손보험은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동양생명 관계자는 "실손보험 손해율이 높고 계약 보유량도 16만건으로 많지 않아서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며 "적자가 심하다보니 유지비용이 과도하다는 판단에 따라 중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생명보험협회(생보협회)와 손해보험협회(손보협회)는 29일 4세대 실손보험 시장공급 위축 우려와 관련해 입장을 내놓았다.
현재 실손보험을 판매하고 있는 17개 보험사 가운데 15개 보험사가 4세대 실손보험을 올해 7월에 내놓는다. 손보사는 본래 실손보험을 판매하고 있었던 10개 회사가 출시한다. 생보사는 동양생명과 ABL생명 외 나머지 생보사들이 판매한다.
생보협회와 손보협회는 이번에 출시되는 4세대 실손의료보험의 경우 보장체계를 합리적 개편해 향후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고객 중심 경영 차원에서 4세대 실손보험을 출시하고 판매를 이어간다"고 말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당국 취지대로 소비자의 선택권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밝혔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실손보험 손해율을 관리할 수 있어서 4세대 실손보험 출시 검토를 하고 있다"며 "손해율 자체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선 앞으로 실손보험 사업을 중단하는 보험사들이 더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손보험 사업으로 좋은 수익을 얻기 어렵고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보험사들은 한동안 실손보험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좋은 평판을 유지해야 하므로 실손보험 판매 중단을 선택하기 어렵다. 그리고 앞으로 의료기관이 실손보험 청구 과정에서 보험사에 데이터를 보내면 보험사가 의료데이터를 쓸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실손보험 간소화 청구 법안이 발의돼 있다. 이들 법안의 핵심은 의료기관이 환자 진료내역 등의 데이터를 보험사로 보내도록 하는 것이다.
실손보험 문제에 대해 경제계‧업계 인사들은 여러 주장을 내놓고 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은 "보험도 상품이라 시장의 원리가 작동해야 보험자와 피보험자 모두 더 나은 혜택을 얻을 수 있다"며 "정부가 통제력을 강화할수록 보험사 뿐만 아니라 소비자 또한 피해가 커진다"고 말했다.
더불어 "실손보험이 지속가능하려면 보험사가 자율성을 갖고 상품 구성을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일방적인 손실만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반면 김미숙 보험이용자협회 대표는 "4세대 실손보험은 영업보험료를 부담만 할 때는 보험이용자에게는 이익이 되겠지만, 보험금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됐을 때는 보험수익자에게 불이익이 되는 조건"이라며 "보험금 덜 받는 조건을 영업보험료 내려준다며 4세대 실손보험으로 바꿔 준다는 보험회사나 보험설계사를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금융위원회는 보험금 지급 범위를 축소하기보다 보험회사가 주장하는 손해율이 나빠서 영업보험료를 인상하고, 보험금 지급을 축소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인지 '실손의료보험 영업손익 분석'을 전면 검토해 검증‧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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