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경영] ESG 대세라는데…‘홀로’ 뛰는 기업들

자유기업원 / 2020-12-24 / 조회: 10,892       스페셜경제

기후위기·코로나19로 친환경 압박 높아져

탄소국경세·2050 탄소중립 등 관련 규제 강화

‘소비 주축’ 밀레니얼 세대, 착한 기업 지지

정책 대안 부재…“불균형 발전 가속화” 우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달 경남 울산에 위치한 롯데정밀화학 생산현장을 찾았다. 일본에서 귀국한 뒤 첫 대외행보였다. 신 회장이 롯데정밀화학의 생산현장을 찾은 것은 2016년 인수 이후 처음이기도 했다. 이날 신 회장은 “코로나19와 기후변화 등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ESG 경쟁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지난 18일 상하이포럼. 이날 한국고등교육재단과 최종현학술원의 이사장 자격으로 참여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여지없이 ESG를 강조했다. 그는 “기업들이 친환경 사업, 사회적 가치, 신뢰받는 지배구조 등을 추구하는 ESG 경영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 나가야한다”면서 “앞으로는 ESG 가치가 시장에 의해 책정되고 투자자들 사이에서 거래되는 ESG 메커니즘이 생겨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주요 그룹의 회장님들이 ESG에 빠졌다. 너나없이 대내외 메시지를 통해 ESG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기업의 홍보자료에서도 ‘OOO, ESG 평가서 O등급 획득’ ‘탄소발자국 획득으로 ESG 경영 가속화’ 등 ESG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기업 입장에서 화제성이 충분한 요소라는 의미다.


‘어떻게 벌 것인가’에 대한 고민


사실 ESG 개념의 역사는 짧지 않다. 2000년 영국을 시작으로 스웨덴, 독일, 벨기에 등이 ESG 정보공시 의무제를 차례로 도입하면서 개념이 정립됐고, 2006년 UN책임투자원칙(PRI)에 반영되면서 점차 확산됐다. 도입된 지 15~20년가량 됐음에도 아직까진 ESG는 비 대중적인 개념이다. 전 산업군에 적용되기에는 한계가 있던 탓이다.


ESG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지표다. 매출액, 영업이익처럼 재무적 지표 외에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와 같은 비재무적 지표를 감안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다만, 단기적으로 이익 감소와 같은 부정 상황을 감수하면서 일관성있게 추진해야 하는 만큼, 제반 여건이 필요했다. 기업이 선진 경영 체계로 기반을 다자고,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의 동참을 이끌 정부의 정책·제도도 뒷받침돼야 가능했다. 더불어 어디까지가 기업의 ‘책임’인지에 대한 논의와 공감대도 무르익어야 하고, ESG 동참을 유도할 측정체계도 필요하다.


물론, ESG 관련 지수나 평가는 다양하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기구인 UN SDGs(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 협회가 내놓는 세계 ESG 평가지수 ‘SDGBI(UN지속가능개발목표경영지수)’나 국제 친환경 기준 GRP(Guidelines for Reducing Plastic Waste·기후변화 대응과 플라스틱 저감 지침) 인증을 비롯해 유엔의 MDGs(Millennium Development Goals·밀레니엄 개발 목표),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다우존스 인덱스와 스위스 지속가능경영 평가 기관 샘(SAM)의 DJSI(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 세계 최대 주가지수 산출기관인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의 ESG 평가가 대표적이다.


ESG 핵심도 결국은 돈


국내외에서 구체적이고 단일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ESG는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경영 전략으로도 비춰진다. 이윤 증대를 통해 구성원과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기술과 일자리, 세수 등을 통해 사회·국가에 역할해왔던 전통적인 기업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지, 투명한 의사결정의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를 따져보자는 것일 뿐, 결국 ESG도 핵심은 ‘돈’이다.


특히 ESG 가운데 ‘친환경’이 부각되는 것도 자본의 흐름과 직결되어서다. 올해 초 국제결제은행(BIS)은 ‘기후변화 시대의 중앙은행과 금융안정’ 보고서를 통해 “자연재해로 인해 농산물과 에너지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단기간 식료품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있다. 또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홍수, 폭염 등의 자연재해로 각국 금융기관·기업·가정 등의 경제적 비용과 재정적 손실이 증가할 것”이라며 기후위기가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그린 스완’의 가능성을 경고했다.


2015년 대규모 테러 직후 열린 파리기후변화협약에 138개 당사국 정상 전원이 참석할 만큼, 전 세계는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상당하다. 이에 따라 관련 규제도 점차 강화되는 추세다. 내년부터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제한하고, 국가별로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량을 제시하되 5년마다 상향된 목표를 제출하는 등 세계가 함께 환경보전에 나선다.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0으로 하는 탄소중립도 실현한다. 이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탄소 배출량 제로를 공언했고,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한국도 탄소중립을 잇따라 선언했다.


더군다나 전 세계를 휩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는 기후위기를 시각적으로 상기시킨 계기가 됐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사람 간 접촉을 꺼리면서 일회용품 사용이 증가했다. 국경 봉쇄를 단행한 지역에서는 자원 낭비를 절감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ESG는 중요한 투자 기준이 됐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은 모든 투자과정에서 ESG를 고려하는 한편, 전체 수익 중 석탄 관련 비중이 25%를 차지하는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실제 올해 글로벌 ESG 채권 발행 규모는 4841억달러(약 529조1213억원)로 전년 대비 63% 증가했다.


가치에 눈 돌린 소비자 공략 나선 기업들


ESG는 소비에 있어서도 선택 기준이 되고 있다. 1981년부터 1996년까지 태어난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는 전 세계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며 소비의 중심이 됐다. 이들은 세계 금융 위기, 미세먼지와 온난화 등 기후 변화를 겪으면서 공동체의 이익과 사회적 가치 실현에 눈 뜨게 됐다. 성별·나이·지역 등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동등하게 교육받았고, 인권과 환경,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도 민감하다. 이로 인해 기업의 이름보다 방향성을 더 중시한다. 일례로 폐플라스틱으로 고래인형을 등을 만드는 사회적기업 ‘우시산’은 입소문을 타고 갤러리카페와 공방, 체험교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안착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가심비(심리적 만족을 중시하는 소비)를 추구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의사소통에 능한 이들은 건강한 기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이들의 ‘홍보맨’을 자청하기도 한다. 파타고니아는 리사이클 원단과 공정 무역 봉제로 옷을 만드는 가심비 기업이다. 의류브랜드이면서 ‘더 적은 소비를 통해 지구를 살리자’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면서 미국 아웃도어 2위로 성장했다. 에버레인은 아예 투명성을 내걸었다. 원료와 운송비같은 단가는 물론, 제조과정까지 공개했다. 윤리적 공정과 합리적 가격으로 급성장한 에버레인의 기업가치는 3000억원 이상이다.


반대로 환경이나 윤리문제가 불거진 기업은 낙인찍는다. 밀어내기 등 갑질 논란이 불거졌던 남양유업은 대대적인 불매운동으로 그해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기업들은 친환경 대세를 따르면서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ESG를 강화하고 있다. 세계적 기업들은 벌써 ESG를 사업모델에 접목시킨 상태다. 스타벅스는 커피 원두 생산 과정에서 벌어지는 아동 착취 등을 막기 위해 생산·유통 이력을 조회하는 빈투컵(Bean to Cup)을 실시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100% 친환경 에너지로 가동되는 해저 데이터센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빨라진 ESG 전환 속도


국내기업들도 ESG 전환의 속도를 올리고 있다. SK그룹은 전사적으로 ESG를 그룹 전반에 수혈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SK텔레콤와 SK하이닉스, 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에 ESG 전담 조직을 꾸렸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SK㈜와 SK텔레콤, SK하이닉스, SKC, SK실트론, SK머티리얼즈, SK브로드밴드, SK아이이티테크놀로지 8개사는 한국 RE100위원회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했다.


삼성물산과 삼성 5개 금융 관계사는 석탄 관련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룹의 주축인 삼성전자는 영국 친환경 인증기관 카본트러스트로부터 세계 반도체 업계 최초로 물발자국 인증은 받은 데에서 나아가 ESG 투자를 공언했다.


현대차는 지난 9월에는 UNDP(유엔개발계획)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솔루션 창출과 현실화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고, 포 투모로우(for Tomorrow)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LG그룹은 구광모 회장이 지난 8월 SDGs 협회의 ‘2020 글로벌 지속가능리더 100’에 선정된 데 이어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100대 세계 지속가능경영 기업’ 6위에 올랐다.


㈜한화는 과감히 사업 매각까지 했다. 분산탄이 국제사회에서 비인도적 무기로 분류되자,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기존 분산탄사업 담담 임직원이 만든 법인에 매각하기로 했다.


“ESG, 또 다른 무역장벽 될 수도” 우려도


ESG에 대한 압박은 거세질 전망이라, 기업들의 전환 속도를 빨라진 것으로 관측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탄소 중립’을 선언한 데 이어 정부는 내년부터 탄소 저감 관련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준다. 자본시장의 최대 주주로 떠오른 국민연금은 AIGCC(Asia Investor Group on Climate Change·기후변화 관련 아시아 투자자 그룹) 회원기관으로 가입해 ESG 투자를 강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세계적으로도 ESG 인증이 강화되는데, SDGs 협회는 전 세계 ESG 인증 네트워크를 구성 중이다.


하지만 현재의 ESG 전환 속도와 방향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EU는 내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고, 미국도 조만간 관련 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측된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에서 수입되는 물품에 부과하는 무역 관세를 매길 경우, 석탄발전 의존도가 40% 이상인 국내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과 MS, 애플 등은 RE100에 가입을 마쳤다. 또다른 무역장벽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ESG 조사결과를 보면 올해 A등급 이상의 우수 기업은 108곳으로, 지난해(58곳)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B등급(보통) 이하인 기업이 전체의 68%에 달해 상당수 기업들은 여전히 ESG 수준이 취약했다. 기업의 ESG 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정부의 교육과 정책이 받쳐줘야 하지만, 정부는 구체적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탄소집약도를 해결하고, 자본력이 부족한 중견 이하 제조기업에 대한 친환경 투자 지원책 등이 나오지 않고서는 도리어 대기업 집중도가 높아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곽은경 자유기업원 기업문화실장은 “기업들이 ‘친환경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손들었더니 정부가 ‘가르쳐봐라’고 하는 상황이 됐다. 모든 기업이 대기업처럼 매출 감소를 버틸 여력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ESG를 적용하는 게 맞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자는 게 ESG인데 ‘정의로운 기업활동’이라는 명분만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 ESG 지수를 국내 상황과 산업적 특성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환경단체 활동가는 “(ESG) 지표가 너무 포괄적이라 뜬구름 잡는 소리가 많다. 소비자들 입장에서야 평가 결과가 좋으면 ‘착한 기업’으로 비춰지겠지만, 사실은 조금 다를 수도 있다”며 “정부가 ESG를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비전을 제시하려는지가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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