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억제는 사람의 본성 거슬러
청와대 참모 집 팔아도 효과 없어
시간 걸려도 양질의 주택이 해법
요즘 두세 명만 모이면 부동산 얘기다. 그중 한 모임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에피소드다. 때는 올해 2월, 서울에서 고소득 전문직으로 일하는 30대 아들이 70대 아버지에게 집을 사야 하는지 물었다. 사실상 집을 사겠다고 마음먹고 부모에게 조언을 여쭈었던 자리였다.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한바탕 부부싸움이 일어났다. 아버지의 주장은 이랬다. “지금 정부가 보유세와 거래세를 동시에 올리고 대출 규제도 강화하고 있다. 대통령도 집값을 원상 복구시키겠다고 했다. 곧 집값이 내린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어머니는 바로 반박했다. “당신, 집값 내리는 거 봤어!” 결국 이 30대 아들은 단호하게 집값이 내린다고 목소리를 높인 아버지의 말을 거스르지 못했다. 그 아버지는 지금 집에서 전 가족의 눈치를 보면서 살고 있다. 아들로부터는 “몇억이 뛰어서 집 사는 건 틀렸다”는 원망을 듣는다.
선량한 국민이 이런 낭패를 보는 동안 부동산을 잡겠다는 권력자들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특징은 매우 일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 전 대변인 김의겸은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대변하던 와중에 일으킨 대출로 서울 흑석동 재개발 딱지를 사들여 거액의 차익을 벌어들였다. 열린민주당 국회의원 김홍걸은 금수저 위에 통수저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줬다. 강남·서초·마포에 보유한 3채는 신고액만 76억원이 넘는다. 같은 당 이개호는 배우자 명의로 5채를 보유했고, 임종성은 4채 보유자에 이름을 올렸다.
청와대 참모들에게 다주택을 처분하라고 했던 2주택자 노영민 비서실장은 당초 청주 집만 팔려고 하다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결국 서울 반포 아파트도 팔기로 했지만 이미 말 따로 행동 따로의 속마음을 들킨 뒤였다. 주중대사로 가 있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모두 다 강남 살 필요 없다”고 국민의 염장을 질렀다. 역대급 내로남불이자 궤변이 아닐 수 없다.
민심이 들끓자 정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급기야 민주당은 의원 전원에게 부동산 전세·매매 계약서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이달 내에 한 채를 빼고 모두 팔아치우라는 극약처방이라도 할 듯한 기세다. 청와대 참모와 장·차관은 물론 고위 관료에게도 비슷한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모두 다주택을 처분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시장이 안정된다고 믿는 국민이 있을까. 이들이 내놓는 주택이 1000채라 쳐도 한강에 빗방울 하나 떨어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시장의 힘을 거슬러 “가격을 원상 복구하겠다”는 선언이 현실적이라고 믿는 건가.
현실을 직시하길 바란다. 정부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규제를 가할 수 있지만 수요·공급이라는 시장의 근본 흐름까지 바꿀 수는 없다. 더구나 주거 여건이 좋은 곳에 양질의 주택을 소유하려는 건 사람의 본성이다. 소유라는 게 무엇인가.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자 리처드 파이프스는 『소유와 자유』에서 소유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동물도 영역을 표시하며 다니고, 사람도 어린아이부터 소유의 의미를 체감한다. 소유하기에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집은 자유를 누리는 안식처라는 점에서 소유욕이 더 강하게 마련이다. 중산층도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두세 채씩 가진 권력자들이 내 집 마련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 근본적 해결책은 양질의 주택 공급이다. 강남은 자투리라도 유휴부지를 택지로 개발하고 재건축은 용적률을 높여라. 더욱 시급한 일은 비강남권의 교통·교육 인프라 확충이다. 길을 넓히고 역세권을 광역화하며 도서관을 비롯한 사회적 인프라를 늘려라.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이 방법밖에 없다. 이 근본적 해결책을 놔두고 최대의 주택 공급 통로인 거래마저 막으니 집값이 뛸 수밖에 없다. 또 땜질에 불과할 23번째 대책은 부디 멈추길 바란다. 내 집 마련 꿈을 접게 해서야 되겠는가.
김동호 논설위원
이 글은 2020년 7월 15일자 중앙일보 A30면 1단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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