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오너 손발 묶는 상법개정안 발의…엄중한 국민심판 외엔 견제장치 전무
더불어민주당(민주당)과 법무부가 최근 내놓은 상법개정안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개정안은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게 골자다. 이를 두고 재계 안팎에선 대주주 의결권 제한에만 무게를 둔 나머지 뒤따를 부작용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주주의 권한이 약화될 경우 외국계 투기자본 난립과 기업의 의사결정력 악화 등 기업의 경쟁력 저하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기업 경영과 직결된 핵심 법안인 상법개정에 기업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은 점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미·중 무역갈등 재점화 등 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이 확대된 상황에서 기업의 권한을 축소시키며 신속한 의사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결국엔 국민피해로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럼에도 기업을 견제하고 대주주의 입지를 줄이는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여론의 중론이다. 민주당이 국회 300석 중 177석을 차지하고 있어 ‘기업 옥죄기’ 법안 통과를 막을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론 안팎에선 민주당이 지금과 같은 행보를 되풀이할 경우 국내 기업들은 부정적 상황과 마주할 수밖에 없고 종국엔 국민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결국 국민들의 엄중한 심판이 뒤따를 것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코스피 3000시대 만든다더니…선진국도 꺼리는 악법 만들어 기업 숨통 조이는 슈퍼여당
지난 18일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다중대표소송 도입 △집중투표제 전면도입 △이사해임요건 마련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감사위원 분리선임 △전자투표제 도입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박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가 나서 경제활성화 법안을 통과시키고 그 힘으로 코스피 3000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해당 법안을 ‘코스피 3000법’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였다. 이어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지배구조개선의 투명성이 확보되고 내부 동력이 확보돼 질적으로 한 단계 점핑 업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며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이제 실천으로 보여줄 때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이 발표한 상법개정안은 앞서 법무부가 입법을 예고한 내용보다 한층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달 초 법무부가 발표한 상법개정안엔 집중투표제 전면도입 등의 내용은 없었다. 집중투표제란 주주총회(주총)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선임될 이사 수만큼 주주에게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선임되는 이사가 3명이라면 한 주를 가진 주주가 3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방식에 비해 소액주주들이 지지하는 이사가 선임될 가능성이 높아져 소액주주의 권리를 늘리는 동시에 대주주 견제수단으로 꼽힌다. 다만 외국 투기자본 등으로부터 국내 기업이 공격받거나 경영권을 침해받을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과거 ‘엘리엇 사태’ 보다 더욱 심각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과거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들에 총 7조원의 배당금과 자신들이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 등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이유로 집중투표제 도입을 요구했다. 당시 엘리엇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집중투표제가 도입됐다면 엘리엣이 현대차그룹으로부터 막대한 배당금만 챙긴 뒤 지분을 매각하고 철수해도 막을 도리가 없게 된다. 선진국 대부분은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법무부가 개정안에 집중투표제를 제외한 것도 같은 이유다.
박 의원이 내놓은 개정안에는 자회사 이사가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에 모(母)회사 주주가 자(子)회사 이사를 상대로 대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도 들어가 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모회사 주식 1% 이상(상장사 0.01%)을 확보한 주주는 과실을 범한 자회사 이사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일감 몰아주기’ 등 대주주의 그릇된 행위를 방지한다는 취지지만 무분별한 소송으로 기업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특정 기업의 주식을 낮은 가격에 매입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하며 리스크를 키우는 행태가 나올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외국계 자본이 다중대표소송제를 이용해 소송을 남발하며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할 가능성도 나온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선진국 대부분이 채택하지 않고 있다.
이 밖에 감사위원 분리 선임 제도가 도입될 경우 감사위원 1명 이상은 대주주 측이 제안한 이사 외에 따로 뽑게 된다. 마찬가지로 대주주의 입김을 약화시키는 게 목적이다. 또 법무부가 내놓은 상법개정안을 살펴보면 ‘3%룰’ 강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기업에서 감사를 선임할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합친 지분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것이다.
3%룰이 강화될 경우 대주주의 의결권은 크게 줄어들지만 여러 주주들이 연합할 경우 제한 없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올해 초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에 나선 ‘3자 연합’과 같은 주주연합이 감사위원 선임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특정 집단이 추천하는 감사위원이 선임될 경우 기업 내부정보가 외부에 유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핵심 정보가 경쟁사, 혹은 해외 등으로 향한다면 국내 기업, 나아가 국가 경제의 경쟁력을 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동시에 대주주가 3%까지의 지분만 행사할 수 있어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아예 감사선임을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대주주의 영향력 축소에만 초점을 맞춘 법안이 지닌 맹점은 이 외에도 많다.
기업경영 송두리째 뒤흔든 반기업 법안 봇물에 ‘코리아 엑소더스’ 가능성 솔솔
재계는 민주당과 법무부가 내놓은 개정안에 다소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코로나 사태 등으로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에서 기업 경영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법안을 내놓으며 “코스피 3000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개정안 발의에 앞서 재계와의 논의가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아쉬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한 고위임원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기업의 경영활동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고 경영권이 침해받을 수 있는 부작용까지 존재한다”며 “개정안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기업, 최소한 경제 전문가들의 목소리라도 경청하고 반영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현실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기업 핵심임원도 “코로나 사태 등으로 경제상황이 워낙 나빠 기업은 겨우 위기만 버티고 있는 수준인데 부담을 키우는 법안만 내놓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며 “경제상황이 좋을 때도 아니고 대주주 권한과 관련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것도 아닌데 굳이 지금 개정안을 발표한 게 아쉽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상법 개정에 우려 섞인 견해를 내비치며 정치적 접근으로 기업 관련 법안을 개정하는 행태가 반복될 경우 자본이 외면하는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상법 개정안 자체도 소액주주 권리 향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진단함과 동시에 대주주 및 기업의 선택권만 줄이는 결과를 낳아 종국엔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장은 “기업경영과 관련된 핵심적이고 중심적인 법이 상법이다”며 “이를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반기업적인 흐름으로 바꿀 경우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왜곡되고 종국엔 기업의 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 경쟁력 악화는 국가경제와 민생경제에 부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법무부의 판단이 다소 아쉽고 (기업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법안 발의를) 어느 정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집권세력 등은 최고경영자 혹은 오너들이 지나친 경영권을 행사한다고 믿는 것 같다”며 “다른 나라들은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보호를 위한 다양한 수단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우리나라는 재벌기업 총수들이 황제경영을 한다는 편견을 갖고 대주주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글로벌스탠다드와 자꾸 멀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제도를 도입한다곤 하지만 안정적 경영권을 위해 대주주를 보호하는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며 “양쪽 모두 균등하게 권리를 보호해줄 필요가 있는데 한쪽에 치우친 제도 도입은 기업 경영권을 흔드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 정부·여당은 소액주주를 보호한다며 사외이사 제도 강화 등에 나서곤 있지만 이러한 법안들이 형식적인 것들이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며 “형식적인 제도라는 건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인데 효과가 떨어지는 법안 도입으로 기업의 선택권만 줄이는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자본 유입과 투자 유치와 거리가 멀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제환경이 글로벌화 되면서 안정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가 거듭 경영권 제한에만 힘쓰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며 “여당이 국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기업 규제 관련 법안을 견제할 세력이 없다 보니 종국엔 기업들이 하나 둘 한국을 떠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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