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경제철학 아카데미' 개설
국내 대표적 자유주의 경제학자
스미스·하이에크 등 강단 '소환'
“수년 전부터 양극화와 빈곤, 실업이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인식이 확산됐습니다. 그런데 자유주의를 금기어처럼 여기는 현 정부 들어 오히려 양극화와 고용 부진이 심화됐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13일 서울 여의도 동화빌딩의 한 강의실에 노교수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국내 대표적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사진)다. 2016년 은퇴한 뒤 토론, 집필 활동 등에 주력해온 민 교수는 이날 대학생 등 청년층을 대상으로 오랜 만에 강단에 섰다. ‘민경국 자유주의 경제철학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강의 프로그램을 개설해 첫 강의를 한 것이다.
그는 10차례의 강의를 통해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흄, 이마누엘 칸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 18세기 이후 자유주의의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 자유주의 경제철학자들을 강단으로 소환할 예정이다. 카를 마르크스, 장 자크 루소 등 사회주의, 계몽주의 철학자들과의 가상 논쟁도 벌인다. 첫날 강의는 영국 정치철학자인 이사야 벌린과 프랑스 정치사상가 뱅자맹 콩스탕의 사상을 바탕으로 자유의 개념과 허용 범위 등을 놓고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민 교수가 다시 이 주제를 꺼내든 이유는 어느샌가 한국에서 ‘자유’ ‘시장’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단지 보수의 이념적 성향을 상징하는 단어로 굳어지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자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정부가 역사 교과서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했고, 헌법에서도 이 단어를 빼는 내용의 개헌을 시도한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민 교수는 “이 같은 정부 인식을 뒷받침하듯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이 점점 커지면서 규제가 강화되고 저성장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유주의를 모든 경제위기의 원인처럼 인식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든가, 신자유주의로 인해 실업과 빈곤문제,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식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간이 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는 미국 정부가 저신용·저소득층의 주택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저금리 정책을 펼친 데 따른 것이고, 최근 한국의 양극화나 고용 부진 역시 정부가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인다며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고 고용시장을 경직화한 데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자유시장경제의 순기능을 무시하고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해서 생긴 역효과라는 얘기다.
민 교수는 “국가의 시장 개입 확대는 필연적으로 포퓰리즘으로 이어지고 결국엔 베네수엘라와 같은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며 “자유시장경제의 근본 가치와 역할에 대해 다시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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