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세금 이야기]감춰진 세금 얼마나 될까…'간접세 24시'
보도일 : 2003년 08월 22일
보도처 : 동아일보, 4면
《최근 재정경제부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22.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조세부담률이란 국민이 1년간 낸 조세액을 국민총생산(GDP)으로 나눈 비율. 기업을 포함해 국민들이 벌어들인 소득 가운데 얼마가 세금으로 나가는지를 나타낸다.
조세부담률이 22.7%라는 것은 기업, 국민 등이 1000원을 벌어 이 가운데 227원을 세금으로 낸다는 얘기다. 이는 복지를 중시하는 서구 선진국보다는 낮지만 일본(2000년 17.2%)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
적지 않은 액수지만 이를 체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먹고 마시고 생활하는 데 따라 붙는 간접세가 적지 않기 때문. 주민세처럼 고지서를 발부 받아서 내는 직접세와는 달리 간접세는 물건이나 서비스가격에 처음부터 포함돼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얼마나 세금을 내고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미국 일본 등에서는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제공받을 때마다 소비세 등 간접세는 따로 매겨 징수한다. 때문에 납세자들은 세 부담을 정확히 파악하고 세율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평범한 소비 생활에 감춰져 있는 '보이지 않는 세금'은 얼마나 될까. 30대 샐러리맨이 하루 동안 부담하는 간접세를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의 도움으로 따져봤다.》
●오전7시~9시:양치질 한번에 10~20원
서울 중랑구 묵동에 사는 윤종빈씨(37·프레인 수석컨설턴트). 오전 7시 잠에서 깨어나면 세금을 내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치약 칫솔 비누에 붙는 10%의 부가가치세다. 매일 10∼20원. 부가가치세는 '생산 및 유통 과정의 각 단계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에 대하여 부과되는 조세'로 거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부과된다.
윤씨는 8시경 집에서 나와 광화문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버스와 지하철을 한 번씩 탄다.
지불하는 요금은 각 700원씩 1400원. 여기에는 부가세가 직접 붙지는 않는다. 대신 버스회사나 지하철공사측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거나 정비를 할 때 지불한 비용에 붙은 부가세를 감안할 때 요금의 7%가량은 이용자가 부담하는 부가세에 해당한다. 즉, 92원을 세금으로 내는 것.
●오전 9∼12시:1600원짜리 담배에 1069원
하루 업무를 시작하면서 매일 마시는 900원짜리 캔커피에 붙는 세금은 82원이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드는 윤씨. 하루 한 갑 정도를 피우는 그는 담배 한 갑에 얼마나 많은 세금이 붙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피우는 1600원짜리 담배에 붙는 세금(각종 부담금 포함)은 모두 6가지다. 담배소비세 510원, 교육세 255원, 폐기물부담금 4원, 국민건강증진기금 150원, 연초경작농민안정화기금 10원, 부가가치세 140원 등 모두 1069원이다. 담뱃값의 67%가 세금이다.
●낮 12시∼오후 6시:된장찌개 5000원 점심식사에 455원
12시 점심 시간. 윤씨는 회사 동료들과 5000원짜리 된장찌개로 간단하게 식사를 한다. 밥값에는 455원의 부가세가 포함돼 있다. 식사 후 커피 전문점에 들러 4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또 409원의 부가세를 낸다.
●오후 6∼9시:딱 한잔?…소주 한병 마시면 1066원
술을 좋아하는 윤씨. 퇴근 후 저녁 식사를 하면서 소주를 반주로 곁들인다. 식사 및 안주값으로 한 사람당 부담하는 비용은 1만원가량. 부가세 909원이 붙는다. 문제는 술이다. 음식점에서 마시는 술의 가격에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세금이 붙어 있다. 소주의 경우 우선 공장 출고가의 72%가 주세로 붙는다. 소주의 출고가는 제조업체마다 차이가 있으며 750원 안팎이다. 750원을 기준으로 하면 540원의 주세가 붙는 것. 주세액의 30%가 부과되는 교육세는 소주 한 병에 162원이다.
윤씨가 음식점에서 소주를 마시면서 지불하는 가격은 병당 4000원. 이 가격에도 어김없이 10%의 부가세가 포함돼 있다. 364원이다. 이렇게 따졌을 때 윤씨가 소주 한 병을 음식점에서 마시면서 낸 세금은 모두 1066원.
오늘은 입가심으로 7000원짜리 맥주 3병을 마셨다. 맥주에 붙는 주세, 교육세, 부가세 등의 세금은 병당 1936원이므로 모두 5808원이다.
●오후 9시∼자정:택시비 1만원에 909원
일하느라 지치고 술 기운까지 더해져 윤씨는 버스 대신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버스, 지하철과 달리 택시비에는 10%의 부가세가 붙는다. 광화문에서 묵동 집까지 택시비는 1만원가량. 909원의 세금을 내는 것.
두 딸에게 주려고 집앞 빵가게에서 1만5000원짜리 케이크를 사면서 '케이크 값이 왜 이렇게 비쌀까'하고 불만인 윤씨. 케이크 값에 1364원의 부가세가 붙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合 11,728원
윤씨가 오늘 하루 낸 세금은 모두 1만1728원. 그러나 이 금액이 전부가 아니다. 근로소득세, 재산세, 주민세 등 직접세를 하루치로 계산을 해서 포함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자동차 냉장고 가구 등 값비싼 물건을 구입할 때 낸 세금도 사용 기간을 감안해 하루치로 환산해서 더해야 한다. 모든 세금을 포함했을 때 윤씨가 매일 내는 세금은 대략 3만원 안팎인 것으로 추산된다.
●자가운전자의 경우
물론 간접세는 사람마다 씀씀이에 따라 차이가 있다. 윤씨의 동료 이지선씨(29)의 경우를 보자. 자가운전자인 그가 일상 생활에서 내는 세금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자동차 관련 세금이다.
구로구 개봉동에서 매일 차를 몰고 출퇴근하는 이씨는 휘발유를 매주 4만원어치 쓴다. 휘발유 가격을 L당 1300원이라고 하면 매주 30L가량을 쓰는 셈. 휘발유 1L에는 교통세 630원에다 교통세의 15%인 교육세, 교통세의 11.5%인 주행세, 부가가치세가 붙는다. 휘발유값의 68%가 세금. 이씨가 내는 휘발유 관련 세금은 1주일에 2만7182원, 하루에 약 3900원꼴.
●늦어지는 '세금 해방일'
'세금 해방일'이라는 말이 있다. 그 해에 내야 할 각종 세금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하는 기간을 연초부터 계산한 것.
예를 들어 월급 300만원을 받는 샐러리맨이 1년간 부담해야 할 총 세액이 900만원이라면 처음 석 달은 세금을 내기 위해 일하는 것이고 나머지 9달의 월급이 '세금으로부터 해방된' 진짜 소득이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이 점점 높아지면서 '세금 해방일'도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자유기업원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세금 해방일'은 4월 1일. 전 국민이 3월 말까지 일해 번 소득은 모두 정부 세금으로 들어간다는 얘기다.
자유기업원이 조사를 시작한 71년에는 세금해방일이 2월 27일이었다. 이후 81년 3월 12일→91년 3월 14일→99년 3월 24일 등으로 늦어져 세금을 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기간이 점점 늘어났다.
'세금 해방' 시점을 연간 단위가 아닌, 하루 단위로 따져보자.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할 경우 매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2시간 동안은 세금을 내기 위해 일하고 그 후 일하는 것만이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셈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김선택 납세자연맹 회장은 “일반인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간접세에 대해선 평소 얼마나 부담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 한다”면서 “부당하게 더 내는 세금은 없는지, 생활에서 세금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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