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분양시장부터 숨통 터 줘야

자유기업원 / 2005-01-27 / 조회: 10,154       중앙일보, 3면


내수 경기가 여전히 침체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주가가 오르고 신용카드 매출이 늘었다지만 아직은 냉골이 녹을 듯 말듯 하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내수의 바로미터인 부동산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건설 경기를 살리겠다며 대규모 건설투자계획을 계속 내놓고 있다. 그러나 파급효과가 가장 큰 주택건설경기를 살리는 데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전문가들은 주택시장을 살리지 않은 채 경기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거래에 대한 규제를 푸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편집자]

'입주 때까지 2500만원의 웃돈이 붙지 않으면 차액을 물어주겠다'.

건설업체 풍림산업은 경기도 고양동에서 분양한 956가구 가운데 774가구(81%)가 미분양되자 지난해 11월부터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석달이 지난 지금까지 370여 가구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파트 분양을 위해 벽걸이TV, 외제승용차, 다이아몬드, 해외여행 등 각종 경품을 내거는 건설업체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미분양아파트는 계속 쌓여 전국적으로 7만 가구에 육박한다(본지 1월 26일자 1면). 불확실한 시장전망 앞에서 부동산 투자자뿐 아니라 실수요자들도 움츠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이 이처럼 얼어붙으면서 올해 첫 서울 동시분양이 무산됐다. 1999년 이후 6년 만의 일이다.

◆ 정부의 부동산경기 대책은=정부는 집값은 잡되 건설경기는 살리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취지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건설경기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임대주택 등 새로운 주택 수요를 이끌어내고, 판교, 파주, 아산 등 신도시 개발사업을 조기 착공하겠다는 내용이다. 기업도시, 혁신도시 개발계획도 발표했다. 또 재정지출을 상반기로 앞당기고, 하반기엔 민간자본이 참여하는 종합투자계획도 세워 놓았다. 대규모 건설투자가 필요한 사업들이다. 이를 통해 건설업체에 일감을 많이 만들어줘 건설경기를 살려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집값을 잡겠다는 방침은 확고하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 노 대통령은 "강남불패에 관한 한 대통령도 불패다. 투기는 반드시 잡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가구 3주택 양도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도입,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 실거래가 신고 의무화 등 부동산 규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가라앉은 주택경기는 정부의 건설경기 대책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집값을 잡기 위해 대폭 올린 거래세 탓에 주택 거래가 끊겨버렸기 때문이다.

◆ 부동산 대책 효과 있을까=주택경기를 살리지 않는 상태에서 사회기반시설 등에 대한 투자를 늘려봐야 건설경기를 살리기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전체 건설투자에서 주택건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수준에 머물지만, 주택건설이 상가, 도로 등 다른 건설투자를 이끄는 중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종합투자계획이나 기업도시 건설 등은 올 하반기 이후에나 건설경기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도시.기업도시 등의 본격적인 공사 역시 내년 이후에 시작될 수 있다.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대책은 장기적인 건설경기 부양 효과를 낼 수 있을 뿐, 얼어붙은 부동산시장을 당장 녹이는 효과를 내긴 힘들다는 얘기다.

임대주택 활성화대책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체들은 "수익성이 없다"며 임대주택 사업을 외면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시흥 능곡지구에 45평형 중형 임대주택 용지 1만1200평이 나왔지만 신청하는 건설업체가 없어 일반분양 아파트 용지로 재공급됐다.

◆ 부동산 거래의 숨통을 터줘야=전문가들은 변죽만 울리지 말고 과감히 분양시장부터 숨통을 터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학권 세중코리아 대표이사는 "주택 수요자나 공급자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며 "재건축시장을 제외한 시장에서는 투기가 재연되기 어렵기 때문에 분양권 전매 제한이나 담보대출비율 축소 조치를 일부 완화해 투자심리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투기 목적의 주택 보유를 억제하기 위한 종합부동산세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만큼 거래 자체에 대한 직접 규제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은 "당장 주택거래신고지역.주택투기지역 등 비정상적인 규제만 풀어도 얼어 붙은 주택거래를 살리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거래가 살아나야 주택건설투자도 회복된다"고 지적했다.

백성준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집을 두 가구 이상 갖고 있는 사람을 모두 투기꾼으로 모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1가구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규제를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귀식 기자 ksl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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