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여정부 주택정책 개관
참여정부 주택정책의 기조를 가장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은 2003년 10월의 10.29대책이다. 그 후에도 몇 가지 추가 조치들이 있기는 했지만, 10.29 대책의 큰 틀 속에 있다.
주택 정책은 크게 공급확대책과 수요억제책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신도시 개발이나 토지규제 완화 같은 것들이 공급확대책이고, 보유세 중과세나 부동산거래 허가제 등 투기억제책은 수요억제책에 속한다. 10.29 대책으로 대표되는 참여정부의 주택정책은 수요억제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투기지역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비율 인하, 투기지역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 분양가 과다 책정자 등에 대한 세무조사, 부동산에 대한 각종 세금 강화, 토지거래 허가구역 등이 모두 부동산에 대한 수요를 줄이겠다는 현 정부의 의지를 담고 있다. 반면 주택의 공급을 늘리기 위한 정책으로는 판교신도시 개발, 강북 뉴타운 지정, 몇 군데의 역세권 개발 정도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주택정책은 전반적으로 투기억제정책 위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이는 역대 정권에서의 주택정책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노태우 정권은 공급확대와 수요 억제 양쪽 모두에서 강력한 정책을 폈다.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을 통해서 그전까지 연평균 20-30만호 정도 공급되던 주택을 50만호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동시에 토지초과이득세 등 토지공개념 제도들을 통해서 수요 억제도 병행했다. 김영삼 정권 때도 정책 기조는 비슷했다. 준농림지 규제완화라는 떠들썩한 조치를 취했지만 큰 실효성은 없었다. 김대중 정권은 외환위기로 인해 주택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었기 때문에 별다른 주택정책을 펼 이유가 없었다. 눈에 띠는 정책은 분양가 규제 폐지, 그린벨트 완화 등의 자유화 조치였다. 이렇게 보았을 때, 참여정부는 역대의 정부 중에서 투기억제에는 열심이면서 주택공급의 확대에는 가장 관심이 적은 정권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역대 정권의 주택 정책 기조>
정권 | 주요 정책 기조 |
노태우정권 | 공급확대 기조 확립(200만호 계획). 토지공개념 도입. |
김영삼정권 | 준농림지 완화 등 규제완화 노력. 그러나 큰 성과 없음. |
김대중정권 | 자유화(분양가 규제 폐지, 그린벨트 완화) |
노무현정권 | 규제(투기억제) 강화. 임대주택 강조 |
공급은 오히려 줄일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예를들어 주택종합계획에 의하면 2008년부터는 연간 주택공급 규모가 52만호 이상에서 48만호로 줄게 되어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택지공급인데, 주택종합계획에 의하면 2003~2012년의 10년 동안 전국의 택지공급량은 1억3천만 평으로 잡혀 있다. 한해 평균 1,300만평이다. 매년 전국에서 분당 신도시 2개 정도의 택지를 공급하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아마도 주택보급률이 100%를 훨씬 넘어서게 된다는 예상 때문에 그런 축소지향의 계획을 잡았을 것 같다. 그러나 전 국민이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동차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주택보급율이 100%가 된다고 해서 주택공급량을 줄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재건축 요건을 강화한 것도 주택공급을 줄이려는 정책이다. 이처럼 참여정부의 주택정책은 투기억제에 대한 강조와 주택공급확대에 대한 저조한 관심으로 특징 지워 질 수 있을 것이다.
2. 투기억제는 임시변통에 불과하다.
투기억제책들은 실수요와 가수요를 구분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서있다. 그러나 둘 간의 경계는 매우 애매하다. 아니 애매하다기 보다는 가수요는 미래의 실수요나 임대수요를 반영한다. 예를들어 ‘실수요자’들도 대부분 미래에 주택 값이 오를지 내릴지를 염두에 두고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 그리고 미래의 주택가격은 미래의 실수요에 바탕을 둔다. 또 가수요의 대표격으로 여겨지는 1가구 다주택 수요도 그렇다. 1가구다주택자가 소유한 대부분의 주택은 자가 거주용 1채를 제외하면 모두 임대용이다. 그리고 임차인이라는 실수요자는 임대인이라는 가수요자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실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가수요로 보이는 현상은 대부분 실수요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수요를 억제하면 미래를 위한 주택공급과 민간 임대주택의 공급이 억제된다. 투기억제책이 등장하면 늘 분양율이 저조해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투기억제책과 공급확대는 항상 충돌한다. 공급확대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투기억제는 포기해야 한다.
한편 ‘투기지역’에 대한 세무조사는 시장을 마비시키려는 목적 이외에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탈세자를 색출하기 위해 세무조사가 필요하긴 하지만, 투기지역에 대해서 특별히 세무조사를 강화해야 할 이유가 없다. 특정 지역에서의 부동산 거래에 대해서 세무조사를 강화하면 당장은 시장이 죽어서 가격의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겠지만, 시장이 다시 정상화되면 가격은 다시 본래의 가치를 찾아갈 것이다.
물론 투기억제책들은 당장의 주택가격을 낮춰준다. 그러나 투기수요 또는 가수요는 미래의 실수요 또는 임대수요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투기억제책들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실수요자들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투기억제책은 임시변통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대정권들이 모두 투기억제책을 써 왔지만, 늘 투기는 다시 살아나곤 했다.
3. 보유과세 문제는 지방에 맡겨야 한다.
참여정부는 투기억제책 중에서도 보유세 강화를 특히 중시한다. 그 중심에 과표현실화 및 지방세의 국세화가 있다. 누진과세도 중요한 축이지만, 기존의 종합토지세와 재산세에도 있어 왔던 부분이라 이 정부의 특징이라고 볼 수는 없다.
참여정부가 보유세 강화에 집착하는 것은 집값을 낮추기 위함이다. 실제로 보유과세의 강화는 당장 집 값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집값이 낮아진다고 해서 국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3억원짜리 집에 매년 150만원씩의 보유세를 새로 부과한다고 해보자. 연간 이자율을 5%라고 한다면 보유세의 현재가치(capitalized value)는 3천만원이 될 것이고, 집값은 2억 7천만원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집을 사서 들어가는 사람의 주거비 부담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매매가격으로 2억7천만원을 지불하지만, 정부에 매년 150만원을 내야하고, 그것의 가치는 3천만원이기 때문이다. 둘을 합치면 다시 원래의 3억원이 된다. 이처럼 보유세로 주거비 부담을 낮출 수 없다. 국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는, 결국 공급을 확대하는 것 이외의 다른 대안이 없다.
보다 더 근본적인 쟁점은 보유과세의 본질에 관한 인식이다. 현 정부는 보유과세를 부동산보유자에 대한 벌금쯤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주택을 보유하는 행위는 폭력이나 도둑질, 환경오염처럼 사회에 해로운 행위가 아니다. 따라서 보유세는 벌금이 아니라 정부(그 중에서도 특히 지방정부)의 재정을 조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금을 거둘 때 징세주체는 납세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 납세자에게 세금의 대가로 무엇을 돌려줄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공평성을 이유로 중앙정부가 서울 강남지역의 보유세 부담을 올리려는 시도는 옳지 못하다. 보유과세는 지방정부의 재정 수요에 따라서 거두면 된다. 과표도 그런 관점에서 조정해야 한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많은 재정지출을 원한다면 보유과세 부담은 높아져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높일 이유가 없다.
또 기초자치단체의 세원인 종토세와 재산세를 국세로 가져가서도 안된다. 전체 세수 중에서 기초자치단체의 비중은 5%에 불과하다. 그것마저 국세로 거두어간다면 재정자립을 이룩한 몇 안 되는 자치단체마저 중앙정부의 통제 하에 두겠다는 의도라고 비난을 받더라도 변명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낙후된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면 80%의 세수를 거두고 있는 중앙정부의 세원에서 지출할 일이다. 부동산 보유세는 기초자치단체의 온전한 세원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4. 공급확대로 전환해야 한다.
이제 웬만한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각 방을 줄 수 있게 되었다. 그 정도로나마 주거 형편이 좋아진 것은 새집들이 많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투기억제를 했더라도 집이 지어지지 않았다면 예전보다 넓게 사는 일은 불가능하다. 투기억제책으로부터는 한 평의 땅도, 한 채의 주택도 생겨나지 않는다. 투기억제는 오히려 새로운 집이 지어지는 것을 막을 뿐이다. 투기억제책은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새로운 주택이 지어질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을 돌려야 한다. 지금대로 간다면 주택의 공급이 축소되어 미래의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다음 정권에 큰 짐을 지우게 될 것이다.
김정호(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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