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조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그만큼 노조의 혁신도 절실해지고 있다.
한국 노조에 대한 전면적인 쇄신이 요구되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최근 잇따라 터진 노조간부들의 비리에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노동조합의 민주화를 제1요건으로 꼽고 있다. 노조가 권력화하면서 내부적인 민주화를 외면, 정상적인 활동에서 벗어난 ‘일탈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선한승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사용자를 상대로 노동조건 개선투쟁을 할 때 노조를 지탱해주는 힘의 원천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도덕성”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비리를 저지른다면 경영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반을 상실, 노조가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비리가 노출될 경우 특정 노조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노조로 비판의 화살이 날아드는 만큼 그 부정적인 폐해는 간단치 않다. 실제 최근 드러난 각종 비리로 한국 노동운동 전체를 흔들리고 있는 것이 좋은 증거다. 그만큼 노조의 도덕성이 갖는 중요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같은 노조의 도덕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노조 내부의 민주화가 정착되지 못한 데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박사는 “한국 노조의 도덕성 결핍은 일차적으로 노조 내부의 소수가 권력을 독점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노조의 민주화는 노조의 대표를 뽑거나 파업과 같은 특별한 사안에만 국한돼 왔다. 이번 비리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회계를 비롯, 민주적 의사결정과 같은 다양한 감시기능은 외면돼 왔다. 이정식 건교부 정책보좌관은 “상급단체의 지도부는 선거로 선출돼 민주성을 담보한 측면이 있지만 조직운영상의 견제와 균형은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 노조의 민주화 위기는 또 다른 원인도 있다. 대표성의 문제다. 각종 통계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작년 말 현재 임금근로자는 1462만명으로 이 가운데 155만명이 노조원이다. 노조가입률이 11%에 불과한 셈이다. 더욱이 지난해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 수는 전체의 1.2%에 지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500만 노동자’의 구호는 대표성에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한국 노조가 사실상 임금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낳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적인 예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계의 태도다. 사실 비정규직이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 이들의 이해관계는 그동안 노동운동 내부에서 크게 드러나지 못했다.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은 불과 2~3년전의 일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노조 내부의 민주화와 함께 ‘한국 노동운동의 총노선’에 대한 변화도 요구하고 있다. 80년대 후반 비약적인 발전을 해온 한국 노동운동은 대단히 비타협적인 투쟁노선으로 일관해 온 것이 사실이다. 상생의 문화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투쟁노선의 배경에는 자본과 노동의 대립이라는 이분법적인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까지 70, 80년대의 ‘억압적인 권력과 자본의 결탁’이라는 상황인식이 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조직적인 발전에도 불구, ‘그들만의’ 노동운동으로 협소화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유연구원 권혁철 박사는 “이제 한국 노동운동은 노사대립이라는 단선적인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무조건적인 임금인상보다 생산성 제고나 혁신활동 같은 경영활동에 참여하는 방식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협약 틀 속에서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노동운동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동안 노사정위가 운영되면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 자체가 국민적 지원과 사회적 합의라는 큰 틀에서 진행되는 만큼 포기할 수 없는 제도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상급조직 차원에서 협약이나 제도개선에 나설 경우 문제해결이 빨라질 수 있고, 새로운 노사관계의 돌파구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교만·권은중기자 (baikal2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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