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제4차 북핵 6자회담에서 공동발표문이 나온 이후 이를 분석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다양하게 분출되고 있다.
핵 전문가인 김태우 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은 22일 저녁 자유기업원에서 주최하는 ´열린사회 아카데미´의 강연에서 이번 6자회담 공동발표문에 대해 "비록 핵 해결은 아니더라도 핵 해결을 향한 징검다리로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 실장은 먼저,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된 조항에서 현실적인 절충이 이루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북한은 ´한반도 비핵지대화(NWFZ)´를 주장했는데, 이는 남한 내에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 미국 등 제3국이 핵무기를 탑재한 함정이나 잠수함 등을 ´출입´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보았다. 즉, 북한이 원했던 것은 미국 핵우산의 완전한 제거였다는 것이다. 이번 공동발표문은 북한의 이러한 시도가 관철되지 않은 것으로서, 지난 1991년 미국 전술 핵은 철수되었으나 미국의 핵 출입은 일본에서와 같이 그 여지가 열려있는 것이어서 핵우산 효력을 가진다는 것.
미국과의 안보동맹이 여전히 필요한 시점에서 이는 현실적인 절충이라고 김 실장은 지적했다.
김 실장은 "북한이 한반도에 비핵화를 하자는 것은 언뜻 보기엔 과거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르는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이 말하는 비핵지대화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이 말하는 비핵화에는 상당히 다른 뜻이 숨어있다. 북한 김정일이 매번 ´한반도 비핵지대는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런 뜻"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한다"라는 부분에 대해서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번 공동발표문의 정신이 현실화되어 핵문제가 풀리고 북한이 모든 악의적 의도를 버리고 평화체제 논의에 나서는 경우, 이는 한반도의 장래를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만약 북한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맺은 후엔 한미동맹 불필요성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을 개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실 주한미군이라는 것도 정녕 필요성이 없어진다면 우리가 나가도록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북한이 군사적 태세를 늦추지 않고 나쁜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라면 위험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
그는 이어 "이 경우, 북-미 평화체제 성립은 이 땅의 불순한 친북세력이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대상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 즉, 평화헌법, 통일헌법, 낮은 단계 연방제, 주한미군 철수 등을 추진하는 빌미가 될 것이라는 것. 이런 논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불순´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도, "순수한 사람과 불순한 사람을 구분하기 힘든 것이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어서 김 박사는 말벌과 거미의 대결을 예로 들었다. 둘을 놓고 보면 덩치가 큰 거미가 이길 것 같지만, 말벌은 거미에 독침을 놔 마비를 시킨 뒤 거미의 몸 속에 알을 낳고 그 속에서 깨어난 유충은 거미의 양분을 빨아먹으며 기생하다 서서히 거미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 김 박사는 "이처럼 남과 북은 1대1로 비교하면 남한이 훨씬 경제적.군사적 측면에서 강해 보이지만, 남한이 내부적으로 단결되어 있지 않고 불순한 사람들이 마구 설치는 사회가 된다면 거미의 운명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평화적 핵 이용권´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적 핵 이용권´을 허용하는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번 공동발표문의 내용은 대체로 무난하다. 북한이 모든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경수로만을 공급받는다면 이는 좁은 의미의 평화적 핵이용권으로서 농축이나 재처리가 배제되는 것이므로 군사적 잠재력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럼에도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 공급을 논의한다"라는 표현에서 ´적절한 시기´라는 것이 애매하므로 앞으로 이행협정 협상과정에서 명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외에도 김 박사는 "이번 공동선언은 법적구속력을 가진 문서가 아니라 앞으로 핵문제 해결에 대한 방향과 원칙을 정한 정치적 구속력을 가진 것뿐이다. 때문에 이를 두고 핵 해결이 된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으며, ´핵포기(abandon)´란 표현을 두고도 미국과 북한이 다툴 수 있음을 우려했다. 미국은 애초부터 모든 핵시설을 해체(dismantle)하기를 원했다는 것.
김 박사는 공동발표문이 핵해결로 이끌어지기를 기대하면서도 ´최악의 경우´에 대한 경계도 잊지 않았다. 만약 북한의 ´시간 벌기 작전´으로 끝난다면, 예를 들어 몇 년씩을 끌면서 협상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경우, 시간만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그 기간동안 북한이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고 더 많은 플루토늄을 생산한다면 이는 결국 북한의 대외 억제력이 커지는 것을 말하며, 핵무기가 많아지면 미국도 국제사회도 북한을 건드리지 못하게 되는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건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이것이 우리가 우려할 수 있는 하나의 딜레마이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점을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날 강연회는 북핵 문제와 6자회담이라는 큰 현안의 주제를 다룬 만큼 학생들의 질문이 연이어 쏟아졌다. 북한정권의 붕괴가 가져올 시나리오에 대한 질문을 받은 김 실장은 "북한이 붕괴하면 중국 군대가 북한을 접수하려 할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통일의 꿈을 꾸다가 또 다시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르며 통곡을 해야할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우리는 이런 가능성을 반드시 염두해야 한다. 이걸 막아줄 세력은 미국밖에 없다. 우리는 이런 대목에서 한미 동맹을 생각해야 한다"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이 ´북핵의 인질´이라는 일각의 시각에 대해서도 경계를 주문했다. 김 실장은 "일본이 갖고 있는 핵 능력을 봤을 때 건드려주기만 하면 핵 강대국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한 줌도 안 되는 북한이 일본을 때리는 것은 개구리가 사자를 건드리는 꼴과 같다. 실제로 못 건드린다"면서 "그러나 일본은 오히려 ´북핵 인질´이라는 표현을 즐기고 있다. 일본의 보수주의자들은 ´보통국가론´을 주장하며 군사력을 키우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이런 일본에 핵 위협을 가하는 것은 간지러운 곳을 자꾸 건드리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며 "한국과 일본이 같은 인질이라는 말은 틀린 얘기"라고 설명했다.
윤경원(코나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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