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세계화 시대의 민족주의

자유기업원 / 2005-11-28 / 조회: 8,517       코나스넷. @

노무현 정부 들어 많은 국민들 사이에 민족주의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 60년 가까이 우리의 우방이었던 미국에 대한 반미의 목소리가 높고 50년 넘게 적대 관계를 유지했던 북한은 같은 핏줄이라서 그간의 잘못이 용서된다. 반미 자주화, 탈미 연북, 남북 연합의 주장이 낯설지 않다.

어떤 체제라도 좋으니 민족이 통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반면 민족보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우선이며 자유 민주 체제를 포기한 통일은 의미가 없다고 반발하는 국민들도 많다. 반미 친북의 감정을 집권 세력이 조장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정부의 이념에 불신의 눈길을 보낸다. 이념의 차이로 민족 내부의 갈등이 심하다. 민족주의 감정이 민족을 통합하기보다는 오히려 민족을 분열시키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의 이익보다 자민족의 이익을 앞세우는 사상이다. 이러한 민족주의가 외세 혹은 왕조로부터의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는 데나 개인의 권리를 확보하고 정부 독재를 견제하는 데 사용될 때는 순기능을 발휘한다. 이때는 민족주의는 자유 헌법 체제를 수립하는 데 기여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나라를 잃은 민족이 주권을 회복하는 데 민족주의는 강력한 정신적 무기가 되었다. 19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여러 국가들로 분열되어 있는 민족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는 데 마치니의 민족주의 운동은 국민들에게 뜨거운 감동이었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자유주의에 기초하지 않을 때는 외국과 외국인에 대한 배타주의로 흐를 소지가 많다. 민족주의는 본래적으로 자민족의 이익을 위해 외국인을 차별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국민(민족)을 자국민(민족)과 차별하고 해외 생산자와 국내 생산자 사이에 차별한다. 차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타국민(민족)과 해외 생산자를 배척하고, 심지어 다른 국가(민족)를 정복하려 든다. 이러한 공격적 민족주의의 예는 민족주의와 국가 사회주의가 결합되어 자국민들과 이웃 국가들에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힌 독일의 나치즘이나 이탈리아의 파시즘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에서 극명한 예를 볼 수 있다. 민족주의는 민족 우월주의나 인종 차별주의로 발전하여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민족주의는 국내에서의 국가 개입주의가 해외에서 드러내는 모습으로, 주로 보호주의 형태를 띤다. 국내에서 국가 개입주의가 특정 집단을 보호하고 다른 집단을 차별하듯이 민족주의란 자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들을 차별한다. 따라서 국가 개입주의와 민족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국내에서 자유주의 정책이 사용될 때는 국제적 갈등은 생기지 않지만,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과 사회주의는 국가 간에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을 야기한다. 무역의 자유와 이민의 자유가 존재하면 어느 개인도 자기 나라의 영토의 크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보호 무역과 폐쇄 체제 하에서는 거의 모든 국민이 이런 영토적인 문제에 실제적인 이해관계를 가진다. 자유주의 하에서는 복수의 주권 국가들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정부의 경제 통제 하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19세기 자유주의가 만개할 때는 민족 간의 갈등도 적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각국이 보호주의로 돌아서면서부터 국제적 갈등이 야기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양차 대전의 재앙을 겪게 되었다. 대전 후 세계는 보호주의의 문제점을 깨닫고 자유주의의 대외적 표현인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권 국가들은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채택함으로써 자유 무역주의를 포기했고, 자본주의 국가들 역시 갖가지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침으로써 대외 거래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는 우를 범하였다. 제3세계 국가에서는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수입 대체 산업화의 교리를 따라, 저가의 외국 제품을 수입하지 않고 국내에서 생산하려고 산업을 경쟁에서 보호하였다. 라틴 아메리카의 종속 이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 무역으로부터의 완전한 절연만이 가난한 국가들을 발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보호주의는 부의 감소로 귀결된다.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쳐서 경쟁으로부터 보호받는 산업은 생산성이나 질을 개선할 유인이 없다. 소비자들은 해외 생산자로부터 값이 싸고 질이 좋은 제품을 사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질이 떨어지고 값이 비싸도 국산품을 사지 않을 수 없다. 갖가지 관세 및 비관세 장벽 아래서는 인적, 물적 자원이 자유로이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 모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국가들 간에 경쟁적으로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치는 것은 망치로, 다른 나라 사람의 머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머리를 치는 것과 같다. 세계의 많은 인구들이 이와 같은 보호주의 하에서 살아 왔지만, 그 사이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심지어 중공과 서구 공산 국가들도 폐쇄 경제 체제를 버리고 세계화 대열에 합류하였다.

오늘날은 세계화의 시대이다. 세계화란 시장 확대와 통합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된 것으로, 다른 말로 하면 자본주의의 전(全 )지구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화는 이미 19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는데, 1차 대전 이전에 벌써 무역 및 해외 투자가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었고, 국제적 이민에 대한 정치적 장애도 낮아 노동 시장은 심지어 20세기 초가 20세기 말보다 더 세계화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차 대전과 대전 사이의 대공황은 세계 시장 통합을 반세기 가량 지연시켰다. 다행히 그 후 특히 운송 및 통신비를 줄이는 것과 같은 다양한 기술 변화에 의해서, 그리고 사람과 재화 및 정보의 이동을 가로막는 장벽을 낮추어야 한다는 자유주의 사상과 정치적 결정 및 정책에 의해서, 세계화는 다시 속도가 붙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상품 및 서비스의 무역과 해외 직접 투자가 급격히 증대하고 여러 종류의 장벽과 국경이 계속 줄어드는 더욱 연결된 세계에 살고 있다. 지금은 미국에서 전화로 신용 카드 분실 신고를 할 때 인도의 어느 도시에서 직원이 접수를 받는 그런 시대이다.

세계화 시대에서의 민족주의는 자유주의에 기초한 민족주의여야 한다. 자유 무역은 국민들이나 민족들 사이를, 그리고 국내 생산자와 해외 생산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소비자는 국산품 애용을 강요당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질이 좋고 값싼 제품을 생산하는 사람으로부터 상품을 산다. 자유 무역과 경제 개방이 이루어지면 여러 가지 바람직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빈국에서의 수출 주도와 부국에서의 공개 시장은, 즉 부국과 빈국 사이의 무역은, 빈국의 성장과 부국의 번영을 촉진할 수 있는데, 시장의 크기가 커지면 노동의 분업이 확대되고 노동의 분업이 확대될수록 혁신과 생산성이 증대되고 그 결과 국부가 증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비교 우위를 발견하여 이용하려고 애를 쓰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 구매자와 판매자를 찾음으로써 규모의 경제와 거래로부터의 이득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로 모든 국가, 민족의 부가 증대한다. 국가가 번영해지면 독재 체제도 민주주의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들끼리는 좀체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경험적 현상이 존재한다. 물론 민주주의와 독재 체제 사이의 전쟁 위험은 아주 높지만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들끼리는 좀체 전쟁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자유 무역은 번영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평화도 보장한다. 자유 무역은 이렇게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민주주의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평화에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도 평화에 이바지한다. 양 국가 사이의 무역의 증대는 양 국가 사이의 전쟁의 위험을 감소시키는데, 두 국가 사이의 무역의 양이 큰 경우 전쟁이 일어나면 그만큼 무역 중단으로 말미암은 희생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업은 도덕적 자본의 확립과 유지에 기여하여 시민들과 정치가들을 예의 바르고 관용심이 있게 만든다. 이러한 것들은 직접적으로 분쟁 및 전쟁의 위험을 감소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재언하면 우리는 세계화로 안전 보장의 편익을 누릴 수 있다.

국가가 부유하고 강력하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민족주의자일 것이다. 그러나 부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방법론에서는 민족주의자와 자유주의자는 다르다. 자유주의자의 입장에서는 세계화하고 개방하고 자유화하는 것이 부강한 국가를 만드는 길이다. 민족주의는 보호적, 공격적, 파괴적이어서는 안 되고 생산적이라야 한다. 다른 민족과 국가를 총칼로 쳐들어갈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가지고 그 나라를 방문해야 한다.

한류 열풍에서 보듯, 우리의 상품, 문화를 외국인이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 더 이상 민족의 장벽을 칠 것이 아니라 인적, 물적 자원이 국가와 민족을 넘어 자유로이 흐르게 해야 한다. 국산품 애용 운동과 외국 상품 불매 운동을 벌이는 것이 진정 우리 민족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 민족주의는 보호주의, 폐쇄주의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는데, 세계화 시대에 이런 민족주의로 고립되어 있으면 세계화의 이득을 얻지 못한다. 세계화 시대의 민족주의는 자유주의에 기초한 민족주의여야 한다. (출처:자유기업원)

황수연 (경성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shwang@star.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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