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상징이자 건국 이래 최대의 외교행사라는 ‘아펙’을 무사히 치러냈지만, 국회 앞은 여전히 농민들의 함성과 비정규직의 목소리로 시끄럽다. 삼성은 세계적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으나 ‘차떼기’와 ‘변칙증여’라는 오명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IMF에서 졸업한지 8년이 지났다. 그동안 ‘경제 강국’을 내건 채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경제는 과연 제대로 된 길을 걸어왔을까?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시장을 유연하게 만들 것이라 믿고 있지만 이대로 가다간 20년 후, 한국은 중국의 산업 변방국이자 미국의 금융 변방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12일 오후 2시 이상경 열린우리당 의원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IMF 8년, 시장개혁의 방향을 진단한다’ 토론회에 발제를 맡은 정승일 국민대 교수는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정 교수는 “8년 동안 우리가 추구한 경제 방식은 미국식 모델이다. 이제 우리는 유럽 강소국의 경험을 본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1997년 IMF 외환금융위기 이후 박정희식 경제 모델을 해체하고 글로벌 스탠다드를 중시하는 영미 모델을 확립하는 것에 중점을 둔 결과, 거대 외국 금융자본이 자본시장을 잠식했으며 이로 인해 극심한 투자의 양극화가 발생했다는 것이 정 교수의 분석이다.
이와 함께 분배구조 역시 악화되어 단기 수익성 현금을 우선시하는 주주 자본주의가 등장하고, 이로 인해 대량해고와 비정규직 문제가 발생했다.
아울러 WTO와 FTA 체결로 농업은 쓰러지기 직전이며, 중국의 급부상으로 기업들은 해외로 이전하고 있으며,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정 교수는 “이렇게 가다간 중국과 미국이라는 벽에 부딪힐 것”이라며 미국식 경제 모델이 아닌, 유럽 강소국 경제 모델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작은 국가들은 원칙적으로 해외 수출시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개방을 내세워야 하지만, 대내적으로는 조절기제를 강력하게 시행하자는 것이 바로 유럽 강소국 모델이다.
정 교수는 이를 위해 사회복지 지출을 확대하고, 노동자들의 비임금소득을 대폭 확대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고, 공공부문을 활용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 교수는 삼성 에버랜드 등에서 불거졌던 기업의 소유권이전 등을 강력히 규제하고, 차등주식제를 도입하는 방법 등을 활용하고, 은행 역시 산업정책과 지역개발정책의 창구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국가의 영향력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최소한의 구빈정책 펼치고 더욱 더 개방해야”
토론자로 참석한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은 정 교수의 주장에 반론을 펼쳤다.
김 원장은 “기업이 돈이 없어 투자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해봤자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에 투자를 안하는 것이다”며 한국 노조들의 ‘전투적’ 행태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김 원장은 “기업들은 노동이 없어도 운영이 될 수 있게, 파업해도 돌아가는 라인을 만들기 위해 투자를 하고 있다”며 중국과 비교해 경쟁력을 높이려면 시장을 좀 더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인도의 자동차 사업을 예로 들어 “외국자본이 유입하지 않으면 인도의 자동차 산업이 발전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중국 역시 자본이 투입되어 발전했다”며 금융의 자율화가 큰 문제될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사회복지 정책보다는 최소한도의 구빈정책 등으로 낙오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한편, 좀 더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방해야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토론에 이어 19일에는 ‘한국사회의 통합, 이렇게 해야 한다’를 주제로 세계 각국의 사회협약 사례와 한국의 노사정협의회를 통한 한국사회의 통합에 대한 토론회가 열리고, 23일에는 ‘소강강중국론’을 주제로 우리의 경제발전 모델과 중국과의 관계를 모색하는 토론회가 잇달아 열릴 예정이다.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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