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선 왜 그렇게 매일같이 시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조우한 한 북한 인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저 우리처럼 ‘민중’이 원하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이 말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가 들었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우리의 활동들을 하나의 계획에 따라 지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모든 인간이 가진 서로 다른 가치들에 정당한 자리가 할당되는 완전무결한 윤리규범(ethical code)이 존재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문명의 성장은 개인들의 행동이 고정된 규칙들에 의해 제약받던 영역들이 줄어들면서 이뤄져 왔단 말입니다.”
이 책(원제 ‘The Road to Serfdom’)은 제2차 세계대전이 채 끝나지 않은 1944년에 나왔다. 당시 영국에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시(戰時)와 같은 계획경제 체제를 유지하면 더 큰 평등, 직업과 소득의 보장 같은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노벨경제학상(1974년)을 받은 20세기 대표적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인 하이에크는 이런 생각에 대해 “한마디로 큰일 날 소리”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스탈린주의와 나치즘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사상이다. 그 뿌리란 경제 전체를 하나로 조직화하려는 바로 그 생각이다. 그 길, 즉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자유의 길’이 아니라 ‘독재의 길’이자 ‘노예(또는 농노)의 길’일 뿐이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의 행위가 서로 자연스럽게 조정될 수 있는 ‘경쟁’이란 방법을 배제한 사회주의는 사회의 모든 자원을 조직화하는 반면 개인들의 목적이 최고로 존중되는 독립적 영역은 인정하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강제력을 지닌 사회주의 하의 법은 자의적이 되기 쉬우며, 경제 시스템의 통제는 소비의 통제는 물론 직업선택과 삶 자체의 통제로 이어진다. ‘선택의 자유’가 있던 자리를 반드시 복종해야 하는 명령과 금지, 그리고 ‘강자(强者)의 선처’가 대신 차지한다.
하이에크는 또한 경쟁의 원칙을 저버린 사회안전망 구축이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직업과 소득을 보장하려는 정책을 시행할수록 조정 기능은 마비돼 고용과 생산이 급변하고, 경제는 더욱 불안정해진다는 것이다.
구 공산권에서도 비밀리에 읽혔다는 이 책은 이후 세계적으로 사상의 물줄기를 돌려세우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특정 집단에 대해 보장하는 것은 다른 집단을 배제하는 것” “이상주의자들이 희망을 거는 ‘계획’이란 사회에 대한 포괄적 견해가 아니라 특정 목적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과장한 결과”라는 등 곱씹어 볼만한 대목이 무척 많다.
유석재 기자 karm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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