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출신 인사들의 정부 기구 진출 현황을 분석해 ‘참여연대 보고서’를 펴낸 연세대 사회학과 유석춘 교수. 4일 오후 연세대 위당관 연구실에서 만난 유 교수는 “지금 정부를 움직이는 것은 사실상 참여연대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분석 대상이 된 참여연대 임원 417명 가운데 정부 기관이나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에 진출한 사람은 1994년 창립 이래 12년간 150명이며 이들은 313개의 자리를 맡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권별로는 김대중 정부(113개, 36.1%)와 노무현 정부(158개, 50.5%)에 집중돼 있었다.
―이 정부 들어 참여연대의 정부 기구 진출이 급격히 늘었다.
“코드가 맞으니까 그런 것이다. 과거사법 국가보안법 언론법 사학법 등 노무현 정부의 핵심적 정책은 대부분 참여연대 인사들이 문제 제기한 것들이다. 이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정부가 이들을 각종 위원회에 위원으로 불러들여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시민단체가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수 있나.
“문제는 참여연대 인사들이 정부 곳곳에 지나치게 많이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다양한 시민단체가 존재하는데 유독 참여연대의 공직 진출이 많은 것이 문제다. 과거사 청산, 국방, 외교, 환경, 방송 등 참여연대가 참여하지 않는 분야가 없다.”
―정부 부처가 아닌 위원회를 ‘공직’으로 볼 수 있느냐는 반론도 있다.
“정부는 정부 조직을 두 바퀴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청와대와 코드가 맞는 위원회를 많이 만들어 의사 결정을 한 뒤 정부 조직은 이를 집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실정(失政)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위원회를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민사회의 정권 참여를 정부와 시민사회 간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거버넌스의 실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시민단체는 정당이 아니다. 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하고 권력을 추구한다. 시민단체는 정치권력을 지향해서는 안 된다. 시민단체는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정부의 의사결정이 시민단체의 조직적 목소리에 너무 휘둘려서는 안 된다.”
유 교수는 참여연대 임원 중 특정 고교와 대학 출신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을 삼성과 비교했다.
―삼성과 비교한 이유가 있는가.
“그것 때문에 삼성의 사주를 받았다는 소리도 들었다. 나는 자유기업원의 연구 용역을 받아 지난해 말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자유기업원은 13권의 시민단체 시리즈를 펴냈고 이번 연구도 그 작업 중 하나다. 삼성과 참여연대를 비교한 이유는 참여연대가 삼성 비판에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삼성의 폐쇄적 연고주의를 비판해 왔지만 참여연대도 똑같이 학연 등의 연고에 매여 있었다.”
유 교수는 보고서에서 “심지어 시민단체의 자원 동원 과정도 연고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며 “연고라는 메커니즘은 삼성과 참여연대가 짧은 기간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이라고 평가했다.
―연고주의도 장단점이 있다는 얘기인가.
“연고주의는 한국 경제와 민주화를 이끌어 왔던 시스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공을 이뤄 왔던 방법이 앞으로도 성공을 가져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서구식 기준이나 흑백논리로 재단하지 말고 깊게 고민해 보자는 것이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유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참여연대를 끌어가는 핵심 인사들은 참여연대가 권력에 너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도 위기의식을 못 느끼고 내부적인 평가 작업을 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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