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 이유와 그 귀결점

자유기업원 / 2006-10-04 / 조회: 6,347       서평문화, 가을호 119~123면

저자 하이에크는 20세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1899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칼 멩거로부터 비롯되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전통 하에서 교육받았지만 1931년 약관 32세의 나이에 최초의 외국인 교수로 영국의 런던 경제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에 초빙된 이래 주로 영미권에서 활동하였다. 런던 경제대학의 교수 시절인 1920, 30년대에 그는 경기변동이론 분야에서 케인즈의 ‘유일한 라이벌’이었으며 “1920년대의 주요한 경제위기를 미리 예견할 수 있었던 소수의 경제학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1929년 대공황을 예견하고 경고했던” 공로로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1920, 30년대에 경기변동이론 분야에서 하이에크가 이룬 업적은 나중에 루카스에 큰 영향을 미쳐 그가 새고전파 경제학을 확립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또한 30년대 중반부터 디킨슨, 랑게 등 신고전파 시장사회주의자들과 사회주의 계산논쟁을 벌였다. 이 논쟁과정에서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거쳐 세워진 사회주의체제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후 소련 및 동구의 사회주의체제가 스스로 붕괴됨으로써 그의 예언은 실현되었으며 그가 옳았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30년대에 그가 참여했던 이 두 논쟁, 곧 케인즈 그룹과의 경기변동이론 논쟁과 신고전파 시장사회주의자들과의 사회주의계산 논쟁 모두에서 패한 것으로 평가되면서 그가 노벨상을 수상했던 70년대까지 약 40년간 경제학계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1940년대부터는 이론경제학 분야를 떠나 새로운 연구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해 경제학방법론, 사상사, 법학, 정치학, 심리학, 정치철학과 사회철학, 윤리학 등의 분야로 진출하게 되었는데, 「노예의 길」에서 어은 성공은 그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노예의 길」은 1944년 영국에서 처음 출판되었으며, 그해 9월 미국 시카고 대학출판부에 의해 미국에서도 출판되었는데, 그가 이 책을 통해 유명하게 된 것은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가 1945년 4월에 이 책의 축약본을 발간하여 미국에서 60만 명 이상의 독자들에게 읽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영국에서는 앞으로 올 평화의 시기에도 민주의회의 승인을 받은 중앙집권적 경제계획을 통해 경제 전체를 전시와 같이 ‘하나의 공장’처럼 조직함으로써 ‘더 큰 평등’, ‘직업과 소득의 보장’과 같은 사회주의의 이상을 민주주의와 함께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상당히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이에크는 이처럼 경제 전체를 조직화하려는 사상적 흐름이 궁극적으로는 독일에서 나치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소련에서는 레인주의와 스탈린주의에 도달하도록 하였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당시 영국의 학계 및 정치권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이러한 사상적 흐름의 위험성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였다.

사회주의에 대한 하이에크의 비판의 특징은 그 초점이 사회주의의 숭고한 이상이나 목표 그 자체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이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제시한 프로그램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의 프로그램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의 사회경제적 제도들, 특히 시장, 화폐, 가격기구가 갖는 역할에 대한 이해가 전혀 결여되어 있는 가운데 나온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사람들이 생산 활동이나 소비활동 등의 경제행위를 할 때,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유한한 자원이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걱정하면서 이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각자는 다만 주어진 시장가격 하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경제적 선택행위를 하는 가운데 물건을 사고팔며 또 생산하고 소비할 뿐이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도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의 유한한 자원배분의 문제를 걱정하거나 떠맡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화폐, 가격기구라는 사회경제적 제도들에 의해 그 누구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의 자원배분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사회주의체제 하에서는 모든 생산수단들이 집단 또는 국가에 속함으로써 이 생산수단을 사용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 역시 집단 또는 국가일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볼 때, 집단이나 국가는 이러한 권한을 일정한 기구, 곧 사회주의 중앙계획기구(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기구를 구성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에 위임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이 기구가 사회주의 사회의 모든 생산 활동을 총괄적으로 지시, 감독하는 역할을 떠맡게 될 수밖에 없다. 생산수단의 집단적 소유의 원리는 이와 같이 사회주의체제 하에서의 모든 생산 및 자원배분 문제를 중앙계획기구에 의한 사회주의적 계획화라는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그러나 한 사회에 있어서의 경제생활은 수백, 수천만의 가계들과 기업들간의 관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이건 사회주의 사회이건간에 그 사회 내에서 각각 나름대로의 동기에 따라 행동하는 서로 다른 수많은 경제행위자들의 경제활동들을 모두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경제행위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특수한 조건들을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특히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이 조건들이 사회주의 중앙기구가 사회주의 경제에서의 모든 경제적 행위들을-중앙집권적 계획화를 통해서-통제하고 지휘할 수 있기 위해서 그 토대로 삼아야 하는 자료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사회적 경제적 제도들이 자발적으로 수행해오던 기능들을 “임의적인”결정(곧 중앙집권적 계획화)으로 대체하려고 했던 사회주의자들의 프로그램은 현실적으로 작동할 수 없는 시스템일 수밖에 없으며,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와 같은 수준의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회는 빈곤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하이에크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또 하나의 사실은 이러한 중앙집권적 계획화가 독재와 전제주의로 귀결되며, 따라서 사회주의로의 길은 ‘자유의 길’이 아닌 ‘노예의 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중앙집권적 계획은 경제문제가 개인 대신 공동체에 의해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서로 다른 필요들의 상대적 중요성을 결정하는 사람 또한 공동체-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회주의 중앙계획기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필요들의 상대적 중요성은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주의 계획 당국의 중앙집권적 계획은 필연적으로 강제력을 행사함으로써 추진될 수밖에 없으며, 독재는 강제력을 행사하고 이상을 집행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독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970년대 리영희 선생의 「8억인과의 대화」등 사회주의체제에 관한 책들을 읽고 토론하며 대학시절을 보낸 세대였던 평자가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을 처음 읽었던 것은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던 1990년대 초였다. 이 책을 비롯한 하이에크의 저서들을 읽으면서 평자가 무엇보다도 놀란 것은 하이에크의 뛰어난 지적 능력과 분석력이었다. 동시에 사회주의체제가 갖는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그의 비판적 분석들이 좀 더 일찍이 한국에 소개되어 널리 읽혔다면 분단과 좌우익투쟁으로 얼룩졌던 우리의 현대사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며 안타까워했던 기억도 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사회주의라는 약 100년에 걸친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왜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사회주의체제가 스스로 붕괴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그리고 오늘날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본질을 깊이 이해함에 있어서도 이 책만큼 도움을 주는 책이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앞 세대가 어떤 오류를 범했는지를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이 알아야 동일한 오류를 범하지 않을테니까.

하나로텔레콤 GR실장이상헌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프랑스 파리 10대학 경제학박사
역서: 「국민경제학의 기본원리」(공역, 자유기업원 출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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