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반기업, 반시장, 좌편향" 비판은 타당한가?

자유기업원 / 2006-11-15 / 조회: 6,722       프레시안, @

중고등학교 경제교과서와 경제교육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삼 년 전부터 주로 재계와 보수진영에서 "경제교과서가 기업과 시장주의에 반대하는 정서를 부추긴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내세운 데 이어 김진표 전 교육부 장관이 이에 화답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시작된 논란이다.

논란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재계와 보수진영에서 중등학교 경제교과서의 내용을 기업과 시장에 친화적인 내용으로 바꾸기 위한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재정경제부를 비롯한 정부기관들이 거들고 나서는 움직임이 압도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9월 말 '청소년 학교경제교육,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연 데 이어 전경련도 오는 12월 초 비슷한 제목의 세미나를 열기로 하는 등 그 움직임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런 재계와 보수진영의 움직임에 대해 그동안 세미나 등을 통해 그 내용상의 문제점과 이데올로기적 의도를 지적해 온 한국사회경제학회 소속의 진보성향 경제학자들이 다시 한 번 역비판을 가하는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 왔다. 이를 6회에 걸쳐 나눠 소개한다. <편집자>

중고등학교 경제교과서에 대한 우파의 공세가 거세다. 일부 주류 경제학자들과 상공회의소, 전경련 등이 현행 중고등학교 경제교과서가 반시장, 좌편향으로 왜곡돼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교육부까지 가세해 경제교과서를 수정하라는 재계의 요구를 광범하게 수용하고 있다.

현행 경제교과서가 반시장적 편향을 갖는다는 우파들의 이런 주장은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일까? 우리의 자녀들이 배우는 경제교과서의 내용은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돼 있는 것일까?

본격화되는 우파의 경제교과서 공격

경제교과서에 대한 우파의 공격은 1997년부터 자유기업원에서 시작한 데 이어 2003년부터 본격화됐다.

이와 관련해 대한상공회의소는 '우리나라 반기업 정서의 현황과 과제'(2003년 8월)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반기업 정서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경련은 현행 중고등학교 경제교과서가 기업의 책임과 윤리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민간 영역에 속하는 기업과 기업가를 공적인 존재인 것처럼 부각시키고, 정부의 역할을 미화하거나 과대평가하고, 반기업·반시장 정서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결국 전경련은 2006년 3월에 중학교 경제과목 참고교재인 <즐겁게 배우는 체험경제>을 독자적으로 펴냈다.

이에 앞서 2005년부터는 뉴 라이트의 경제교과서 공격이 개시됐다. 2005년 4월 29일 '중고등학교 경제 관련 교과서,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열린 교과서포럼 제2차 심포지엄'에서 중앙대 김승욱 교수(경제학)와 서울대 이영훈 교수(경제학)는 현행 교과서가 이념적으로 편향돼 있고 청소년들에게 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해 반기업, 반시장 정서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행사를 주최한 '교과서포럼'은 2006년 1월에 <경제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책을 펴냈다.

또한 2005년 10월에는 재정경제부, 한국은행, 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5개 기관이 공동으로 초중고 경제 관련 교과서 114종을 학계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446곳이 내용상 수정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고 재정경제부가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자 교육부는 그 중 362곳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교육부는 2006년 2월에 초중등 경제교과서 개선작업을 전경련과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내용의 '경제교육 내실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전경련과 체결하기도 했다. 이는 기업 측의 이익을 대변하는 압력단체가 초중등 교과서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어서 주목된다.

보수언론들도 경제교과서 공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동아일보, 한국일보 등은 올해 봄 프랑스에서 최초고용계약제(CPE)가 학생들의 격렬한 반대시위로 무산된 것을 경제교과서 탓으로 돌렸다. 프랑스의 학생들이 교과서를 통해 기업의 경영진과 근로자는 서로 싸우는 관계이고 정부의 역할은 기업 통제와 노동자 보호라고 배우고 있으니, 해고를 쉽게 하는 최초고용계약제 도입에 대해 그들이 '극렬시위'로 맞선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프랑스의 사례를 보면, 한국의 반시장적 경제교육도 문제라고 한다.

중고등학교 경제교과서는 그동안 시장편향성을 줄곧 유지해 왔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파가 "경제교과서가 반시장적으로 좌편향돼 있다"고 강변하고 나선 이유는 뭘까?

우선 7차 교육과정이 "기존의 경제교과서는 이론 중심의 교재여서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생활사례에 의한 설명 방식을 도입하면서 주류 경제학의 시장주의 이론과 상치되는 현실 시장경제의 모순을 언급하게 된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소련과 동유럽 블록이 붕괴하고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의 효과가 약화되자 그 대체물로 경제교과서의 시장 이데올로기 강화를 요구하게 됐다는 점이다.

과연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이 없었던가?

우파는 그동안의 고도 경제성장이 중소기업과 노동자, 농민의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이영훈 교수는 노동자가 생산에 기여한 만큼 착실하게 임금이 올랐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계열관계는 1980년대 이후 높은 수준의 협력관계로 발전했고, 한국 농업은 그동안 지나친 보호를 받았고, 미곡수매 제도 덕분에 농산물 가격도 공업제품 가격에 비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됐다고 주장한다(이영훈, '중고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에 그려진 한국경제의 모습', <경제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 2006). 과연 사실이 그런가?

이영훈 교수는 임금이 생산성 향상에 부응하는 정도로 상승하더라도 생계비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제조업의 월평균 임금은 실태생계비의 49.7%(1965년)에서 77.3%(1975년)로 개선됐지만, 같은 기간에 노동자의 생계비 모두를 충당할 수는 없었다.

1978년에는 우리나라의 전체 노동자 가운데 근로소득세 인적공제 최저선인 월 5만 원 미만의 임금만 받는 비과세 인원이 전체 노동자의 76.7%를 차지했고, 월 10만 원 미만의 저임금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88.6%를 차지했다. 저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노동자 가정은 여러 명이 불완전 취업을 해서 생계비를 확보해야 했다. 도시로 몰려든 농촌인구 중 다수는 판자집과 닭장집에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해야만 했다.

농민의 경우를 보면, 1960년부터 1992년까지 정부의 쌀 수매가 인상률이 한계생산비는 물론이고 일반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칠 때가 많았다. 농가 구입가격 지수를 감안한 수매가 인상률이 마이너스인 해가 15번이나 되었다. 낮은 농산물 가격으로 인한 도농 간 격차가 심화돼 1960년부터 1975년까지 약 680만 명의 농촌인구가 도시로 밀려들었다. 농촌 과잉인구의 도시 유입이 저임금의 바탕이 됐던 것이다.

현행 경제교과서는 반시장적인가

우파는 중고등학교 경제교과서가 반시장적이라고 주장한다. 우파 이론가들은 빈부격차나 투기와 같은 문제는 자원의 희소성 문제로 발생하는 것으로 시장경제뿐만 아니라 어떤 체제에도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고등학교 경제교과서는 이런 것들을 시장경제의 폐해로 서술해 반자본주의 및 반시장 정서를 조장하고 정부의 역할을 미화하거나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실례로는 "시장경제 체제가 자원의 효율적인 이용에서 계획경제 체제보다 낫다고 해서 그것이 완벽한 체제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지나친 이기주의로 인해 구성원 간의 갈등이 자주 발생할 뿐만 아니라 (…)"(오영수 외, <고등학교 경제>, 33쪽)와 같은 서술을 든다.

그러나 '시장실패'는 경제학에서 핵심적인 개념이다. 시장이 자유롭게 기능하는데도 효율적이지 못한 자원배분 상태가 초래되는 경우를 가리켜 시장실패(market failure)라고 한다. 시장실패가 발생하는 이유는 기업의 직접비용으로 계산되지 않는 환경오염 등 외부효과가 존재하고, 독점의 시장 지배력이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저해하는 데 있다. 또 시장체제에서는 적자생존의 원칙이 작동되기 때문에 분배의 불평등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우파는 시장근본주의에 빠져, 정부의 활동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오히려 체제수호의 전술

우파는 경제교과서가 반기업적이라고 비난한다. 경제 교과서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부당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의 이윤 극대화가 동시에 사회적 공공이익의 극대화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다. (…) 자발적인 봉사와 이윤의 사회환원을 통해 국가 인류사회 발전에 이바지한다."(조도근 외, <고등학교 생활경제>, 184~186쪽)와 같은 서술을 문제 삼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대부분의 경제교과서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정의, 기업윤리를 중시하여 기업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기업의 본질은 이윤추구인데 경제교과서는 기업의 사회적 공헌을 중요한 것인 듯 다루는 사례가 많고, 이렇게 배운 청소년들은 이윤추구에 주력한 대기업이나 사회공헌 활동을 소홀히 한 기업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반시장적, 반기업적이기는커녕 탁월하게 친시장적, 친기업적인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1990년대 신자유주의 시장근본주의가 득세하면서 세계적 규모에서 양극화,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1999년 시애틀 시위를 시작으로 반자본주의 반세계화 운동이 전세계적인 규모로 확산되자, 지배계급이 체제수호 차원에서 구사하고 있는 전술전환일 따름이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운영하는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빌 게이츠, 자기 재산의 85%인 300억 달러를 이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한 유명한 증권투자자이자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인 워런 버핏 등 대기업 오너들의 자선사업이라든지 '사회적 투자', '환경펀드' 등 사회적 조건을 고려한 기업경영과 투자 등이 그러한 예다. 최근에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들이 '지속가능보고서'나 '사회책임(SR, Social Responsibility) 지수'와 같은 개념을 발전시키는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화 작업까지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삼성, 현대차, LG, SK 등 대기업들이 별도의 전담조직까지 두고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1994년에 사회봉사 조직인 '삼성사회봉사단'을 창단한 삼성은 현재 전국 105개 지역에 지역사회 봉사활동의 창구 역할을 하는 자원봉사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사회복지, 문예진흥, 지역사회 지원, 교육학술, 환경안전 등 9개 영역별로 사회봉사를 위한 위원회를 구성해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LG그룹은 임직원이 내는 기부금액만큼 회사에서도 후원금을 내는 '매칭 그랜트' 제도를 통해 사회공헌 기금을 조성하고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참여형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개방으로 인해 위기에 빠진 농업과 농촌을 살리기 위한 대안의 운동으로 '1사1촌 운동'이 기업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캠페인들도 자본의 운동에 의해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를 저지하지는 못한다. 이런 캠페인들은 시장경제의 모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막기 위한 생색내기에 불과한 것이다.

우파가 지적하는 반기업 정서란 실은 정경유착, 과다차입과 과잉투자에 의한 기업 부실화, 외환위기 촉발에 기여한 대기업들의 방만한 경영, 재벌 총수들이 보여준 온갖 부정적 행태 등에서 비롯된 자업자득의 측면이 강하다. 국민들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에 대해, 대기업 오너보다는 대기업 자체에 대해 우호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장상환 정성진/경상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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