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세계속의 한국 GQ를 말한다] 릴레이 인터뷰

자유기업원 / 2007-08-16 / 조회: 5,615       서울경제, A6면
송병락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자유기업원 이사장
"한국적 강점 융합해야 글로벌 스탠더드"

“전략적 사고 없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종하다가는 오히려 ‘덫’에 걸려들 수 있습니다. 모방을 뛰어넘어 한국의 강점을 융합한 새로운 모델을 창출해야 합니다.”
송병락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겸 자유기업원 이사장에게 글로벌 스탠더드는 ‘창조정신’을 강조하는 새로운 표현의 출현이다. 송 교수는 세계인의 휴대폰으로 부상한 삼성전자의 ‘애니콜’과 최근 몇 년 사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국내 조선 3사를 거론하며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창조적 전략 발굴에 성공한 기업과 문화가 그 자체로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따라서 창조정신을 실행할 수 있는 ‘창조적 계층(creative class)’의 육성이 세계화의 흐름에 필연적으로 수반돼야 하며, 특히 창조적 계층의 핵심축인 ‘싱크탱크’의 육성이 민간과 공공 부문 모두에서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송 명예교수는 “미국은 국민 개개인의 차원으로 국가 비전이 설정돼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국가 비전에는 늘 국민이 빠져 있다”며 차기 정부가 국민이 중심이 된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해 세계화의 강력한 추진력을 얻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참여정부하에서 포퓰리즘적인 정책이 난무한다는 주장이 있다.

▦ 올바른 비전이 제시되면 장기적으로 문제를 고쳐나갈 수 있는데 너무 급하게 고치다 보니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지도자 육성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 지도층 가운데 정말 유능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영국은 세계적 명문 고교인 이튼스쿨을 통해 고귀한 정신을 배양하고 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의 아들도 죽을 각오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나. 어느 개인이 잘못됐다기보다 리더십의 품질ㆍ성향ㆍ방향이 떨어진다고 할까. 이런 게 다 비전과 관계가 있다. 참여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의 품격을 고상하고 고귀하게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식인의 역할이 부족했다는 지적으로 들리는데.

▦ 피터 드러커는 스승을 모시고 살아가라고 말한다. 스승의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싱크탱크다. 미국은 브루킹스연구소ㆍ헤리티지재단ㆍ카토연구소 등 세계적인 연구소들이 많다. 이곳의 주목적은 미국의 국익보호다. 국익이란 곧 미국 기업 이익의 보호다. 이른바 포천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리스트에 들어가는 미국 대기업을 위한 연구소다. 반면 우리는 연구소 평준화 과정에서 대표적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역량마저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졌다. 대기업도 삼성경제연구소가 그나마 민간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정도다. 다른 기업들은 연구원 수를 크게 줄였다. 싱크탱크가 사라졌다는 건 정말 큰일이다. 국가 운영은 물론 일하는 사람들은 뭐든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싱크탱크가 바로 이를 위한 창조적 계층에 해당한다.

애니콜·조선 3사등 창조전략 발굴 성공사례
창조적 계층 핵심축 '싱크탱크' 육성도 시급
국가비전 정권마다 바뀌면 지속성 추구 힘들어
국민중심 비전 마련 세계화 추진력 이어가야

-사회 갈등양상을 보면 논쟁은 없고 이념과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성향이 팽배해 있다.

▦ 중요한 건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 얘기를 너무 많이 하고 과장하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스위스의 경우 보수ㆍ진보 논쟁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스위스는 살길이 글로벌 경쟁력이라고 판단해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나 최근에는 IMD보다 더 유명한 세계경제포럼(WEF)도 만들었다. 스위스는 경제가 돈이고 돈관리를 하는 건 은행이라고 맥을 바로 짚었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금산분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틀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쟁으로 가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고 기업을 어떻게 제일 크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참여정부가 동북아 금융허브, 국가 균형발전 등 여러 어젠다를 내세웠지만 뚜렷한 국가 비전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 같다.

▦ 참여정부가 낙후된 지역을 위한 지방균형정책을 펴는 것은 분명 일리가 있지만 너무 많이 나간 것 같다. 오히려 수도권 규제를 확 풀어 글로벌 경쟁을 시켜야 한다. 국내에서만 잘 나누어 쓰면 된다는 식은 안 통한다. 서울과 제주도를 똑같이 잘살게 할 수는 없다. 다만 룩셈부르크 같은 제주도를 만들 수는 있다.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해 이들이 스스로 외국을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 동북아 금융허브도 돌이켜보면 늘 아시아 중심이라는 국가 차원의 비전밖에 없다. 민간연구소마저 국가 비전을 정하라고 하면 동아시아 중심국가만 얘기한다.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 가운데 이런 얘기를 하는 곳이 있나. 이들은 오히려 ‘영세중립국’이라며 낮은 자세를 취한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산업화 시대에는 계층을 고소득-저소득층으로 구분하고 저소득층에게 떡을 얼마나 더 주느냐가 문제였지만 지금은 ‘창조적 계층’을 얼마나 빨리 개발하느냐가 중요하다. 과거처럼 하다가는 망할 수 있다. 글로벌 경쟁을 따라가야 하고 이겨야 하는 만큼 창조적 계층을 만들고 세계화에 맞는 계층간 분배를 해야 한다.

-차기 정부의 국가 비전이나 어젠다는 무엇이 돼야 하는가.

▦ 국가 비전의 첫째는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고결한 가치관이다. 이와 같은 비전을 한두 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추구해나가야 한다. 이 점에서 세계 제일의 국가 비전을 가진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국민 차원의 고귀한 목표와 국가의 비전이 딱 맞아 떨어지는 국가 비전이 지난 1776년 독립선언서에서 정해졌다. 바로 생명ㆍ자유ㆍ행복이다. 우리와 달리 미국은 국민 개개인의 차원으로 비전이 설정됐다는 큰 강점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약소국일수록 국민은 없고 국가에 대한 비전만 있다. 우리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국가 비전도 수시로 바뀐다. 핀란드ㆍ싱가포르에도 모두 국가 비전이 있다. 덧붙이자면 미국은 덕(德)이라는 것도 있다. 기독교 십일조 등으로 약자를 배려한다. 반대로 우리는 학교발전기금도 모으기 어려운 상황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가 한국 경제의 이념적 잣대가 돼왔다.

▦ 전략적 사고 없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닮다가 국내 30대 기업들이 현재 16대 기업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점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는 대단한 함정을 가지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과 도요타를 비교해보자. 미국 모델을 상징하는 GM은 부품의 50%를 자체 생산한다. 부품회사들이 언제 부도를 맞을지, 노조 파업으로 언제 생산이 중단될지 몰라 이렇게 자체 비율을 높인 것이다. 하지만 도요타는 20%에 불과하다. 자회사인 부품회사가 가족 혹은 생산공장처럼 행동한다. 유럽 제일의 경제대국인 독일은 경영자가 회사 운영 전반에 대해 노조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처럼 미국 회사는 경제적 조직, 일본 회사는 인간적 조직, 독일 회사는 사회적 조직으로 그 자체로는 부족한 조직이다. 그렇다면 미ㆍ일ㆍ독 모델 중 어느 것을 모방해야 할까. 이 중 어느 하나를 모방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게 드러커의 지적이다. 이들의 강점과 한국의 강점을 융합해 새로운 기업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한국식 패러다임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있다. 과연 한국적 가치는 무엇인가.

▦ 퓨전, 융통성, 창의성,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ㆍ위험감수), 리질리언스(resilienceㆍ복원력) 등 다섯 가지다. 우리는 동서양 퓨전의 역량이 강하다. 기본적으로 유교에 불교ㆍ기독교 문명이 절묘하게 혼합됐다. 현재 전세계 170개국에 선교사가 진출해 있다. 미국에 이서 세계 두번째 수준이다. 끝까지 가보자는 리스크 테이킹이 엄청나다. 리질리언스는 고무공을 땅에 튕길 때 다시 올라오는 것으로 우리는 어떤 역경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혹자는 우리나라는 모든 걸 ‘폭발’로 설명해야 한다고 한다. 경제성장, 민주화 등 모든 부문에서 마치 폭발처럼 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 냉정하게 평가해서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겠나.

▦ 세계은행은 2001년부터 우리를 선진국으로 분류했는데 세계은행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725달러이고 우리는 1만5,000달러다. 여기에 세계 3대 조선회사가 있고 세계 6대 자동차 메이커 중 현대차가 있다. 배ㆍ비행기ㆍ자동차를 모두 만들고 소니를 앞선 삼성이 있다. 또 올림픽 역사 이래 가장 성공적인 올림픽을 개최했고 현대중공업의 이지스함이 일본보다 성능이 더 좋은데 우리나라가 어떻게 후진국일 수 있는가. 다만 워낙 급속히 성장하다 보니 선진ㆍ중진ㆍ후진국의 요인이 뒤섞여 있는 선진국일 뿐이다. 우즈베키스탄 주재 한 한국 외교관은 이런 말을 했다. 그곳 젊은이들의 꿈은 대우자동차를 타고 삼성 애니콜로 전화하며 LG나 삼성 TV로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내재된 후진적 요인 중 가장 개선해야 할 부분은.

▦ 가장 먼저 자유시장경제가 안착되고 그 다음으로 정치안정, 인적자본 축적이 이뤄져야 한다. 3대 기초여건이다. 여기에 3대 외부적 요인으로 세계화ㆍ기술 및 기타 우발적 요인에 대한 대처능력을 갖춰야 한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기업ㆍ산업ㆍ지역 수준으로 다른 기업ㆍ산업 및 지역을 끌어올려야 한다.

-해외 교포 등 인재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도 시급한데.

▦ 이들을 연결하려면 세계적인 무역망이 있어야 한다. 해외에 나가 보면 상당한 부를 축적한 이들이 많다. 이들은 오랫동안 외국에서만 살아 한국 경제와 기업을 잘 모른다. 미국은 코카콜라, 중앙정보국(CIA), KFC 등이 모두 경제 정보망이다. 중국은 자장면집이 전세계에 깔려 있다. 반면 우리는 종합상사의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삼성ㆍLGㆍSK 정도만 남아 있다. 무척 아쉬운 대목이다.

-인적자본 고도화나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 확실히 얘기할 수 있는 건 종합연구대학의 육성이다. 가르치고 연구하고 행정하는 모든 것들을 독창적으로 해야 한다. 사회 전분야에서 1등을 기르는 종합연구대학을 만들면 우리는 세계 1등이 될 수 있다. 우리도 태릉선수촌 같은 대학 3개를 만들어 전세계 전문가를 불러들이고 교육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일본을 보라. 버블경제 이후 기업은 세계 1류가 됐지만 아직 대학은 그렇게 돼 있지 못하다. 세계적 기업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재육성이 안 된다는 말이다.

◇ 약력

▦경북 영주(1939년) ▦서울대 경제학과 ▦아메리카은행 근무(196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우교수(1979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정책실장(1980년) ▦국제연합ㆍ아시아개발은행ㆍ세계은행 고문(1985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1980~2004년) ▦하버드대 초빙교수(1991년) ▦서울대 부총장(2000년) ▦서울대 명예교수(2004년) ▦자유기업원 이사장(2006년~현재)

대담=최형욱 경제부 차장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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