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7%라는 고성장을 공약한 이 당선자와 물가를 책임지고 있는 한은이 어떠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당선자가 부동산 관련 세제개편을 천명한 만큼, 부동산 가격 상승시 한은의 대응도 관심사항이다.
이 당선자와 한은의 시각이 가장 크게 어긋나는 부분은 금산분리. 이 당선자는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한 반면 한은은 은행에 대한 산업자본 참여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시장 원리대로 해결해야"= 자유기업원이 지난 13일 '2007년 대통령후보 공약평가' 보고서에서 대통령 후보 가운데 이 당선자가 가장 자유시장원리에 가장 부합한 선거공약을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이 당선자는 정치와 경제, 금융, 부동산, 교육 등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시장원리'를 언급했고, 어떠한 문제점에 대한 해답도 시장 원리에서 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 당선자는 후보시절 환율에 대해 "시장 수급상황에 따라 결정돼야 하고 정부는 시장이 왜곡될 경우 적절히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스무딩 오퍼레이션'을 주장하는 한은과 다르지 않다. 한은은 최근 달러화와 원화의 부족 현상에도 '모럴 헤저드'를 우려하며 개입을 최소화한 바 있다. 향후 한은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금융규제 완화와 동북아 금융중심을 중요한 경제정책으로 삼은 이 당선자가 국내 최대 리서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한은의 의견을 더욱 중요하게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7% 성장과 중기물가목표, 조화 이룰까= 이 당선자는 규제완화와 시장원리 적용, 일자리 창출, 개방 등을 통해 7%라는 경제성장률을 제시했다. 이는 올해 성장률이 4.8%(한은 추정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강한 성장 드라이브가 있어야 가능하다. 더구나 한은은 정치적 변수를 배제하고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4.7%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미 소비자물가지수가 한은의 중기물가목표 상단인 3.5%에 이르고, 인플레이션 선행지표인 원재료.중간재 물가지수도 고유가를 반영해 급등했다. 한은은 내년 소비자물가지수의 연평균 상승률을 중기물가목표 상단보다 다소 낮은 3.3%로 제시했으나, 이는 내년 하반기 유가 반락을 염두에 둔 불확실한 예상치이다.
강한 성장은 물가에 상승압력으로 작용한다. 이 당선자가 물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은의 물가안정정책과 대립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이 당선자가 수요통제보다 공급정책, 시장 개방을 강조한 만큼 경제전반의 고비용 요소를 혁신할 수도 있다.
신정부가 굳이 금리 인상이나 유동성 억제와 같은 방법을 쓰지 않고도 성장과 물가통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경우 한은의 부담도 그만큼 덜 수 있을 전망이다.
▲부동산.증시 움직임 주시..유동성 관리 어떻게= 이 당선자는 내년 주가가 3,000선, 임기 내 5,000선을 달성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부동산시장에 대해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시장 상황을 지켜본 후 고치겠다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여타 부동산 관련 세제에 대해서는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해왔다.
이 당선자는 "조세정책은 헌법이 아니기 때문에 경기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주가나 주택가격이 이 당선자의 공약을 빌미로 다시 위쪽으로 크게 움직인다면 자금 쏠림에 의한 한은의 통화.유동성 관리도 어려워질 수 있다.
한은은 지난해에는 부동산, 올해는 주식시장에 대해 과열을 우려했고 급기야 사상 처음으로 두 달 연속 콜금리 인상이라는 카드를 빼들기도 했다. 그러나 통화.유동성 증가율은 작년 동기대비 두자릿수를 넘는 과잉 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따라서 파티의 흥을 깨야하는 'party-pooper' 한은이 성장 중심의 신정부와 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 특히 현 한은 지도부는 그 어느 때보다 매파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최근 시중금리의 급등 때문에 한은이 추가로 강한 긴축책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미 대출금리가 크게 오르고 있고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은행권이 대출을 자제하고 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지난 12월 금통위 후 간담회에서 채권시장 안정을 언급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금리상승을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는 최근 시중금리 상승 효과를 기대하는 한은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분석이 많다.
따라서 당분간 신정부의 노골적인 금리 인하 요구만 아니라면 대립각을 세우지 않을 수도 있다.
▲금산분리 입장차..키는 이 당선자에= 이 당선자는 후보시절 "국내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진출 허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누차 언급한 바 있다. 금산분리 원칙이 외국계 펀드.자본과 국내 기관투자자들 간의 역차별을 초래한다는 문제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한은은 이에 대해 보수적 입장이다. 이 총재는 지난 10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은행부문에 산업자본이 참여하는 것은 상당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외국의 경우 법률로 산업자본의 은행 참여를 제한한 국가도 있고 법률로 제한하지 않는 국가도 있지만 법률로 규정해놓지 않은 국가에서도 산업자본이 은행업에 참여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당선자가 점진적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한 만큼, 당장 전면적인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가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 제도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한은의 입장은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다. 결국 금산분리에 대한 키는 이 당선자가 쥐고 있는 셈이다.
▲공공부문 개혁, 한은에도 파장 미칠까= 이 당선자는 방만한 공공부문을 과감한 민영화 추진과 시장 경쟁원리 도입을 통해 개혁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중앙은행이 민영화 대상은 아니지만 공공부문 개혁의 바람에서 안심할 수는 없다. 한은은 지난 국감에서도 방만한 경영에 대해 호된 질책을 받은 바 있다. 국회의원들은 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데 임금인상과 일부 복지확대를 지적했고, 한은은 적자가 중앙은행으로서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수.복지제도를 적자 요인으로 연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공공부문 개혁이 본격화되면 한은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한은은 지난달부터 임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아 이달 초 총 31명을 퇴직처리했다. 또 한은 경영진은 직급별 호봉상한제 방침을 밝혔고, 한은 노조는 이에 반발해 농성을 하고 있다. 따라서 한은 경영진이 신정부 출범에 앞서 미리 개혁의 몸짓을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scoop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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