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문화 권력 시계추도 ‘좌→우’ 대이동 예고

자유기업원 / 2007-12-21 / 조회: 5,128       중앙일보, 27면

“코드에서 실용,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편파 논란’ 방송계 변화 폭 클 수도
2005년 출범 예술위 수술대 오를 듯

 

10년 만에 권력의 큰 축이 좌에서 우로 이동했다. 사회 전반의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문화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노무현 정부 5년 내내 ‘코드 인사’ ‘문화 권력’ 논란이 시끄러웠던 게 문화판이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무게중심이 우파쪽으로 기울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문화계 인사들은 코드에서 탈피한 실용주의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코드 인사’ 논란 계속됐던 노무현 정부=노무현 대통령의 이념적 동지였던 영화감독 이창동씨가 문화관광부 장관에 취임한 것이 코드 논란의 신호탄이었다. 이 장관은 기자실을 없애는 ‘노무현 언론정책’의 선봉에 서면서 ‘코드’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정부부처 중 핫이슈가 상대적으로 적어 기자들이 찾는 빈도가 가장 낮은 문화부에서 “기자 취재로 인한 피해가 크다”며 언론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방송 쪽에선 KBS 사장 임명을 둘러싼 갈등이 컸다. 노 대통령의 언론특보였던 서동구씨가 사장에 임명됐으나, 대통령이 인사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취임 8일만에 물러났다. 그 뒤를 이은 정연주 현 사장도 대표적인 코드 인사로 꼽힌다. 한겨레신문 출신의 정사장은 KBS가 이념 편향된 프로그램을 양산한다는 ‘공정성 논란’의 핵심 인물이었다. MBC쪽에선 언론노조위원장을 지낸 최문순씨가 2005년 2월 사장이 되면서 코드 논란에 가세했다.

문화예술계도 시끄러웠다. 국립현대미술관장·한국영상자료원장·국립극장장·국립국악원장 등 기관의 대표를 뽑을 때마다 잡음이 일었다. 가장 최근엔 올 9월 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2기 위원장이 된 김정헌씨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꼽히는 그가 임용 심사에서 2등을 했으나 위원장직으로 발탁되자 각계의 비난이 쏟아졌다.

자유기업원은 지난 7월 낸 보고서에서 “노무현 정부에 공을 세운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인사들이 문화예술기관을 점령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를 쓴 장미진 성균관대 예술학부 초빙교수는 “지난 세월 뭘 했던 인물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문화계 실권을 잡았고, 이들에게 기금지원이 집중됐다”고 지적했다.

◆거대한 문화권력 이동 오나=어떤 형식으로든 ‘문화 권력’의 재편이 일어날 거라는 예상이 많다. 그 첫 단추는 이창동 전 장관처럼 문화부장관 인선이 될 전망이다. 유인촌 전 서울문화재단 대표(탤런트)와 국회의원 박찬숙·정병국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의외의 인물이 발탁될 가능성도 있다.

문학계의 경우 벌써부터 권력 이동이 감지된다. 이들은 이미 전초전을 치렀다. 한국문인협회는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정치 지향적인 일부 세력이 ‘코드’에 맞지 않는다 하여 그간 협회를 ‘보수’란 이름으로 매도하고 폄하했다”는 성명서도 발표했다. 반면 진보쪽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의 상임 고문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정동영·문국현 후보의 단일화를 추진했다.

방송계 역시 큰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대선 과정에서 ‘편파 방송’ 논란이 컸던 만큼 어떤 형식으로든 수술이 불가피하다. 최문순 MBC 사장의 경우 내년 2월 임기가 끝나며, 정연주 KBS 사장은 2009년 11월까지 임기가 남아 있다. 그러나 KBS 사장이 정권과 명운을 같이 했던 전례에 비출 때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

문화예술계 전반에도 변화가 예상되지만 범위를 놓고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오상길 ‘예술과 시민 사회’ 대표는 “노무현 정부는 지방 곳곳까지 코드 인사를 해 인위적으로 문화권력을 재편했다”며 “이들의 임기가 남은 상태에서 강제로 자리를 뺏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코드·아마추어 탈피를”=현 정부에서 문화계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2005년 예술위 출범이었다. 문화 예술 지원을 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돌린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몇몇 위원들이 특정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코드 집행’을 한다는 구설과, 행정 경험이 전무한 예술가들이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문화예술계에선 이런 경험에 비춰 ‘아마추어리즘에서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코드에서 실용으로’ 문화 정책을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 예술위 사무처장이었던 연출가 심재찬(54)씨는 “장르별로 한 명씩 기계적으로 위원을 선발하는 현 예술위 구조에서 벗어나 행정·경영·법률 등 다방면에 능력 있는 전문가들을 중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문화재단 안호상 대표는 “지금껏 문화행정은 지나치게 예술가라는 공급자 위주의 정책을 펴왔다. ‘시장 논리’에 맞게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지원제도로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립대 서우석 교수도 “좌·우라는 이념적 틀보단 현장 경험과 실무 능력을 검증받은 실용적 인물들이 주요 예술행정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 예술계 스스로의 변화도 느껴진다. 진보적 문인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지난 8일 한국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꿨다. ‘민족문학’이란 명칭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판단도 있었지만, 민주화 운동 경험이 없는 젊은 작가들에게 ‘민족문학’이란 구호는 어렵고 낯설었다는 내부 지적도 한 몫 했다.

이상복·최민우·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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