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정부는 규제 혁파… 재계는 신규 투자… 빅딜 필요

자유기업원 / 2008-01-03 / 조회: 5,053       세계일보, 5면
경제 살리기는 이명박정부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연말 대기업 총수를 만나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friendly·친기업적인) 정부’를 선언한 것도 경제를 살리는 동력이 기업에 있음을 웅변해 준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의 출발은 기업가정신을 살리는 데 있다고 입을 모은다.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으로 불리는 기업가정신의 회복이 저성장 구조 속에 심화되는 사회적 양극화와 일자리 부족, 투자 부진 등 ‘한국병(病)’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정부 출범에 맞춰 정부는 기업가정신을 살리는 규제 혁파를, 기업은 신규 투자를 모색하는 ‘빅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예종석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기업가정신은 경제 활성화의 바로미터이며 사회 발전의 엔진”이라며 “우리 경제가 소득 2만달러를 넘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비상하려면 기업가정신의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기업가정신 지표’에 따르면 기업가정신은 1977년 72.3%로 최고점을 기록한 이후 2003년 7.1%로 급락했다. 2000년대 들어와서 1970년대의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기업가정신 지수’도 2005년 4.5에 그쳐 지수 작성을 시작한 1980년 이후 최고치인 1999년의 41.9에 비해 추락 폭이 크다.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정부는 자국산업 보호 정책을 더 이상 쓸 수 없고, 기업은 글로벌 경쟁에 내몰리면서 기업가정신이 급속도로 위축된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정보기술(IT) 부문이 미래 성장산업으로 부상,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면서 반짝 벤처 열풍이 휩쓸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거품이 빠졌다. “앞으로 10년간 뭘 먹고 살 것이냐”는 정부, 기업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규제 풀고=이 당선인이 내건 ‘신발전전략’의 밑그림은 규제 혁파로 시작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규제는 기업의 비용 증가와 창의력 훼손의 핵심 요인”(소한섭 중소기업중앙회 정책팀장)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신성장 동력으로 서비스업에 주목했다. 세계화 시대에 부가가치 창출이 큰 분야다. 서비스업 진입 규제의 장벽을 낮추자는 얘기다. 임경묵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과 비교해 금융 등 서비스업 진입 장벽이 높고 규제가 많아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며 “‘공익’이라는 이름 아래 묶어 놓은 서비스업 관련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기획실장은 “대기업의 노하우와 자본력이 투입되지 않으면 서비스업에서의 압축 성장, 글로벌 경쟁력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해 교육기업, 의료기업도 나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출자총액제한제와 수도권 규제, 금융·산업자본 분리 등이 대표적 완화 대상으로 꼽힌다. 이 당선인이 대선 공약에서 기업 관련 규제 완화를 약속했지만, 국회에서 입법 절차를 밟아야 하는 만큼 새 정부의 추진 의지가 관건이다. 집권 초 실질적인 제도 개혁을 추진, 시장에 새 정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메시지’를 보내지 못한다면 기업들이 움직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자본이 들어오면서 경영권 보호 문제도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키는 한 요인이다. “경영권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방어조치로 보수적 경영은 당연하고 투자에 나설 경영인도 없을 것”(황인학 전경련 경제본부장)이라는 지적이다. 최재황 경영인총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정부가 주당 의결권을 높이거나 국민연금 같은 공적기금을 투자해 우호 주주로서 버팀목이 되는 등 경영권을 방어하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영권 보호 정책과 기업의 투자를 상호 약속하는 ‘빅딜론’도 제기된다. 경영권 보장 장치를 정부·기업이 합의해 ‘한국형 성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는 주문이다.

◆기업은 신생지 찾아야=대한상공회의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매출액 1000대 기업의 사내유보율(자본금 대비 잉여금)은 2006년 616%를 기록했다. 상장 제조업체의 현금보유액도 1990년 5조원에서 2006년 말 50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기업의 보수경영 추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철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구조 개혁을 어느 정도 끝내놓고도 투자가 부진한 건 마땅한 비즈니스 기회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기업들의 분발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창조경영’ ‘블루오션’이 경영계의 화두가 됐지만 기업가정신으로 무장된 모험 투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기업가의 모험정신을 독려하려면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관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양태용 한국과학기술원 교수(기업가정신연구센터 소장)는 “기업가정신은 중소벤처기업에서 발현돼야 하는데 지금 같은 대기업과의 먹이사슬 구조로는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병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도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엄단하는 규제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모험적 신규 투자, 예비 경영인의 창업붐을 끌어내기 위해 기업인의 ‘패자부활’을 유도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미국의 파산법처럼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경제적 재기의 기회를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슈팀=황정미 팀장, 남상훈·양원보 기자 iss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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