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오버'하는 양심..시민단체도 변해라

자유기업원 / 2008-04-03 / 조회: 4,661       이데일리, @
(제5부)매력사회로 가는 길
NGO, 권력화되면서 부작용도 속출
여론 등에 업은 억지주장..옥석가리기 시급


삼성경제연구소와 성균관대가 매년 실시하는 '한국종합사회조사'에서 2004년까지 신뢰도 1위를 달리던 시민단체는 지난해에 6위로 굴러떨어졌다.

그러나 이런 조사결과도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20세 이상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어떤 기관을 가장 신뢰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41%가 여전히 시민단체라고 대답했다. 언론(15.25%), 종교단체(12.2%), 정부(11.9%)에 비해 시민단체가 여전히 높은 신뢰도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이 두가지 서로 다른 통계는 시민단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애증(愛憎)과 혼란스러움을 나타내는 단면이기도 하다.

정부 요직에 진출한 시민운동가의 머리 수를 굳이 셀 것까지도 없다. 시민단체가 이미 우리사회의 커다란 권력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그러나 단기간에 권력화하고 비대해진 만큼 적지않은 부작용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대부분의 부작용은 시민단체 스스로가 양심적이고 깨끗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그들만의 독특한 '과잉확신'에서 비롯된다. '행동하는 양심'이 어느새 '오버하는 욕심'으로 변질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 흔들리는 도덕성..그대들은 깨끗한가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아 청문회도 치르지 못하고 낙마한 박은경 전 환경부장관 내정자는 환경정의시민연대공동대표와 대한YWCA연합회회장을 맡은 잘나가는 시민운동가였다. 국민들은 부동산을 줄줄이 사탕처럼 움켜쥐고 살아온 그가 장관 후보자였다는 것보다 대표적인 시민 운동가였다는 점에 더 큰 충격과 실망을 느꼈다.

시민운동가라는 이유로 재산증식의 권리까지 박탈할 명문은 없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주장을 신문들이 대부분 여과없이 싣고 전후사정을 잘 모르는 국민들도 이에 동조하는 배경에는 '시민단체는 도덕적이고 청렴하므로 그들의 주장 역시 서민들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다는 점에서 박 전 내정자의 낙마는 그를 낙점한 이명박 대통령보다 그가 일했던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더 충격적이었다.


▲ 참여연대가 후원행사를 위해 기업들에게 보냈다가 물의를 빚은 ""후원의 밤"" 초청장.

시민단체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참여연대도 지난 2006년 4월 새 사무실 이전을 위한 후원의 밤 행사에서 850개 기업에 최고 500만원의 후원금 약정서를 돌렸다가 도마에 올랐다.

참여연대는 순수한 의도였다고 강변했지만 이미 '갑'이 되어버린 참여연대가 할 수 있는 변명은 아니었다. 특히 그 당시는 참여연대가 기업체 편법상속 조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후원의 밤 초청장이 사실상의 '후원금 청구서'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대북지원단체로 유명한 '한민족복지재단'의 김 모 회장은 대북지원 사업용 손수레 1만2000대 구입 대금을 모두 완납한 것처럼 서류를 허위로 꾸며 통일부에 제출하고 납북협력기금 2억4700여만원을 부정하게 받아 낸 혐의를 받고 기소됐다.

지난해 2월 교복값 인하 운동을 펼쳐온 학부모 시민단체가 유명 교복 업체들에 수십억 원의 발전기금을 요구한 것은 시민단체의 지나친 목적 집착성을 잘 드러낸 사례다. 한 교복업체 관계자는 "교복값 문제를 이슈화하고 난 후 전화를 걸어와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들이 뭔가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느냐며 기금조성을 요구했다"면서 "교복값이 거품이라면 그 기금도 교복값 원가에 포함된다는 걸 왜 모르느냐"고 꼬집었다.

'우리는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집단이므로 이 정도는 양해받아 마땅하다'는 도덕적 오만함이 불량 시민단체를 양산하는 씨앗이다. 이런 문제들이 여러차례 불거졌지만 그 가운데 시민운동가의 내부고발이나 양심선언으로 드러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점은 시민단체와 운동가들이 얼마나 이중적인 잣대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 국민들의 눈길이 가는곳에'만' 그들이 있네

"지방에 가보면 '왜 저런데 모텔이 들어서고 어떻게 음식점이 들어섰을까?'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지방환경단체가 활동을 하고 있을텐데 땅을 벌겋게 파헤쳐놨다. 그런곳은 그냥 넘어가면서 나라에서 어디에 뭘 짓는다고 하면 전국의 환경단체들이 들고 일어나 난리다. 환경운동도 풀뿌리는 없고 늘 중앙운동만 있다"

지금은 한 민간단체 대표가 시민단체와 관련한 토론회에서 던진 말이다. 시민에게서 멀어진 시민운동,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처럼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유석춘 연세대 교수는 한 토론회에서 "환경운동연합이 부안에 핵폐기물 처리시설을 만드는 일에 적극 반대해서 좌절시켰으면서도 북한이 군사용 핵을 개발하느라 핵실험을 한 것에 대해서는 달랑 성명서 한장 내고 말았다"며 일관성이 결여됐다고 비판했다.

군사용 핵문제를 시민단체에게 떠 넘기는 논리에도 무리가 있어보이긴 하지만, 핵이 위험해서 방폐장이 안되는 게 아니라 방폐장이 안된다는 논리를 위해 핵의 위험성을 끌어들인 게 아니냐는 지적은 시민단체들의 약점을 아프게 찌르는 대목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은 "간디도 가장 큰 오염의 원인은 가난이라고 얘기 했듯이 실제로 인도나 파키스탄이나 이런 가난한 나라들에 가면 환경이 아주 엉망이지만 선진국들의 환경은 더 깨끗하다"면서 "경제가 발전을 할수록 긴 시간을 놓고 본다면 오히려 환경이 깨끗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환경을 지키자는 원론적 방향성에는 동의하지만 시민단체들의 '노터치' 환경론은 개발수요를 무시한 대안없는 강경론이라는 비판이다.

이런 비판이 제기되는 것는 목적과 방향성에 따라 논리적 비약과 모순을 기꺼이 감수하는 시민단체들의 '저돌성'과 무관하지 않다. 시민단체가 분쟁의 중재나 해결 역할을 맡으려 하지 않고 노선이나 입맛에 맞는 어느 일방을 지원하는 식으로 활동하면서 스스로의 평판을 훼손하고 사회적 갈등을 오히려 증폭시킨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대법원이 새만금방조제 공사를 계속하도록 판결하면서 '개발도 환경 못지않은 헌법적 가치'라고 지적한 것은 환경단체들의 일방적인 목소리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라'는 일침을 가한 것으로 해석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국민들의 관심이 쏠린 곳에 시민단체가 나서고 이들의 발표를 언론이 여과없이 보도하는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수치나 자료를 주장에 어설프게 꿰어맞추는 경우도 늘어난다. 시민단체의 비전문성도 원인이지만 거대 기업이나 권력과 싸우는 데는 반칙이나 편법도 허용된다는 근거없는 확신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02년 한 소비자단체는 건설사들의 분양가를 분석한 자료를 내면서 특정 단지의 경우 가구당 광고비가 4640만원이나 된다며 과다 책정사례라고 폭로했다. 그러나 대상으로 삼은 단지는 대형평형이어서 가구수가 적은 것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아파트 분양가의 상당부분이 광고비 거품'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이례적인 사례를 일반적인 사례로 확대한 것.

시민단체들이 실수로 혹은 고의로 종종 저지르는 이런 '논리의 오버'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새로운 논란거리를 만드는 자충수가 되기도 한다. 해당 건설사 관계자는 이런 보도가 나오자마자 "이 단지의 광고비는 총사업비 대비 2.3%로 일반적인 아파트 분양사업시 책정되는 광고홍보활동비 비율인 3∼4%보다 적은 수준"이라며 "가구수 자체가 적은 것을 일부러 감춘 의도적인 발표"라고 반발했다.

◇ 기업화하는 시민단체들..옥석가리기 나서야

시민단체의 신뢰도와 지지기반이 조금씩 붕괴하면서 초기에는 순수한 자원봉사단체로 출발한 단체들도 서서히 기업형으로 변화하는 조짐이 보인다.

시민단체 내부에서도 'NGO 경영'이 화두로 떠오르고 홍보활동에 쏟는 노력도 커지고 있다. 시민단체가 포퓰리즘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도 이런 상황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최근 몇년간 시민단체의 숫자도 크게 늘어 1997년 3900여개였던 시민단체는 2006년 2만3017개로 증가했다. 시민단체도 웬만한 이슈로는 눈길을 끌기 어려운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했다.

서경석 목사는 한 시민단체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시민의 호응도가 크면 그만큼 그 단체는 모금이 쉬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NGO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경영마인드가 요청된다"면서 "기업과 마찬가지로 NGO도 상품이 좋아야 고객들이 물건을 잘 사가게 된다. NGO가 다루는 이슈가 그때 그때 국민의 가려운 데를 긁어줄 수 있고 국민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시민단체에도 시장원리와 경쟁원리가 자연스럽게 적용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민단체도 가장 큰 고민은 돈 문제다. 시민단체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사례들이 대부분 후원금 모금 과정에서 불거지는 것도 재정문제가 시민단체의 '아킬레스 건'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시민단체의 금고가 폭넓은 회원망에서 나오는 자발적인 후원금이 아니라, 명망있는 시민운동가들의 임시변통이나 안면장사를 통해 채워지는 탓도 있다.

재정은 원칙적으로 시민단체에 가입한 시민들의 회비에서 나오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대부분 후원금이나 프로젝트 사업에서 충당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은 지출액의 3분의 1은 회비, 3분의 1은 후원금, 3분의 1은 프로젝트 사업에서 나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면서 "그나마 지명도 높은 시민단체들이 회비 의존도가 30% 수준일 뿐 나머지 소규모 시민단체들은 한두사람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기업 후원금을 의식하다보면 여러가지 면에서 시민단체가 스포일(부패)되는 측면이 있고 반대로 회비 모금을 신경쓰다보면 여론의 방향과 입맛에 맞는 이슈를 따라다니고 홍보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부작용이 생기는 만큼 앞으로는 시민들이 소비자의 시각에서 시민단체의 옥석을 가려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이진우 기자 v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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