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부자들의 상속은 근로자에게도 좋은 일"?

자유기업원 / 2008-04-22 / 조회: 4,948       프레시안, @

재계가 연일 상속.증여세 폐지를 주장하면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4일 '전국상의 회장단 간담회'에서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데 이어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단체였던 자유기업원도 22일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서 폐지를 주장했다.

재계의 상속.증여세 폐지 주장은 삼성특검으로 삼성의 비자금 조성 및 경영권 승계 문제에 관심이 쏠려 있는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 '누구를 위한 상속.증여세 폐지 주장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2년 전 글로비스 사태로 인해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구속됐을 때에도 상속세가 이슈로 떠올랐었다.

재계 "상속세, 경영권 상속 어렵게 만들어"

자유기업원은 22일 오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속세율이 50%인 한국은 일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상속세를 가진 나라"라며 "경영권에 대한 할증률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상속세율은 65%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밝혔다.

자유기업원은 "전세계 123개국 중 71개국은 상속세가 없으며, 상속세가 있는 나머지 52개국도 최고세율이 평균 21%"라면서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이 지나치게 높다고 주장했다.

자유기업원은 "상속세는 자본축적을 방해하고 경제활동에 대한 왜곡효과가 가장 크다"면서 "부자들의 재산이나 가업, 경영권 상속 행위는 당사자에게만 이익이 아니라 근로자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자유기업원은 특히 대기업의 경영권 상속과 관련해 지배주주의 지위를 상속할 경우 주식 평가액을 20~30%(중소기업은 10~15%) 할증하는 제도가 있어 경영권의 상속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경영권 세습이 당연한 '권리'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자유기업원은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과세'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장에 상속세 폐지가 어려울 경우 경영권 상속에 따른 할증제도라도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과 똑같은 의견이다. 손 회장도 상속자가 상속재산을 처분하는 시점에 세금을 부과하는 자본이득세로 전환하자고 주장했었다.

경영권과 재산권은 별개...스웨덴, 상속세 없지만 소득세에 70% 누진세율 적용

자유기업원의 이같은 주장은 현실을 상당히 왜곡시킨 것이다.

상속세 최고세율이 50%라고 하지만 기초공제(2억 원), 일괄공제(5억 원), 배우자공제(5억~30억 원), 금융재산공제(최고 2억 원), 신고세액공제(10%) 등 각종 공제제도가 있다.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는 "실제로는 자산의 4%만 상속세로 납부할 뿐"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또 현재 최고세율 50%도 미국 45%, 프랑스 60%, 일본 50%, 독일 50%와 비교해 월등히 높다고 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자유기업원의 주장처럼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과세로 전환한 국가들도 재산 상속에 우리나라보다 적은 세금을 매기는 게 아니다. 조세체계가 다를 뿐이다. 캐나다의 경우, 자본이득세의 최고세율은 50%다. 스웨덴도 상속세를 폐지한 대신 소득세에 70%의 누진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또 워렌 버핏, 빌 게이츠, 조지 소로스 등 미국의 거부(巨富)들은 우리나라와 반대로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관련기사 : 이명박 정부, 대한민국 1% 위해 상속세 폐지하나)

이런 점을 볼 때, 자유기업원이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면서 지적한 부의 상속에 대한 우리사회의 부정적 인식은 괜한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밀접히 연관된 상속.증여세

삼성은 22일 쇄신안을 발표하면서 특검수사 드러난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에 대해 "이건희 회장 실명으로 전환하겠다"면서 "누락된 세금을 모두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특검 조사 결과 이 회장은 1199개의 차명계좌에 주식과 예금 등 4조5000억 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병철 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는 이 차명재산을 실명으로 전환할 경우, 이건희 회장이 내야하는 상속세는 과연 얼마나 될까?

현행 세법에 따르면 거의 내지 않아도 된다. 최장 15년인 상속.증여세 부과시한이 이미 지났기 때문. 다만 주식을 사고 팔아 5643억 원의 시세차익을 남겼고 이 과정에서 양도소득세 1128억 원을 포탈했으므로, 이 양도세와 조세포탈에 따른 추징금을 합해 3000억 원 가량의 세금을 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 회장이 내야할 세금은 많지 않다. 문제는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전무로 이 재산이 상속될 때다.

이날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이재용 전무도 삼성전자 CCO직을 사임하고 해외지사에 파견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재용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 자체를 포기했다고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학수 부회장은 오히려 "이건희 회장은 이재용 전무가 주주와 임직원,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경영권을 승계할 경우 '불행한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재용 전무로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시간을 갖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현재 재계에서 나오고 있는 상속세 폐지 주장은 이건희 회장 일가의 이해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 회장이 이재용 전무에게 수조원대의 재산을 물려줄 경우, 이 전무가 내야 하는 세금은 엄청나다. 경영권 승계에 따라 30%까지 할증 과세될 수 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06년 한 상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재용 전무에게 부과될 엄청난 세금을 걱정해서라고 짐작할 수 있다. 윤 부회장은 "경제가 잘 되기 위해서는 돈이 잘 돌아야 하는데,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상속이 늦춰지면서 경제의 선순환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기업원은 이날 노골적으로 "경영권 승계에 따른 할증제도라도 없애자"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이재용 전무에게 재산과 경영권을 물려줄 경우, 상속세가 아닌 증여세를 내야한다. 상속세와 증여세는 단일통합법이라는 점에서 상속세율이 완화될 경우 증여세에도 같이 적용된다.

한편 재계의 '상속세 폐지' 요구에 정부는 폐지까지는 아니지만 완화할 수는 있다는 수준에서 화답하고 있다. 강만수 재정기획부 장관은 지난 15일 "우리는 상속세를 폐지해서 세금을 전혀 안 받겠다는 것이 아니고 합리적으로 받아서 민간의 경제활동을 원활히 하고 자본의 해외도피를 막겠다는 것"이라며 상속세를 완화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강 장관은 지난 1994년 재무부 세제실장으로 있을 때 50%였던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완화시킨 장본인이다. 완화됐던 상속세율은 외환위기를 맞아 다시 50%로 조정됐다.

전홍기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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