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데스크칼럼-국민에 ‘진정성’을 보여라

자유기업원 / 2008-06-17 / 조회: 4,214       파이낸셜뉴스, 31면

희생, 진실, 평화에의 희구 등을 담은 촛불이 지금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다. 스스로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더 이상 희생의 상징이 아니라 사실상 대의정치가 무력화된 사이 ‘광장 민주주의’의 주체로 확대될 태세다.

한쪽에서는 국가경제의 혈로(血路)라 할 물류가 마비되고 또 한쪽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유가와 원자재가 상승, 극심한 경기침체 등으로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봇물처럼 터져나온다. 이러다 나라 전체가 결딴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그러나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를 받아 출범한 새 정부는 반년도 안돼 ‘새 정부’라는 포장이 무색할 정도로 일각에서는 ‘얼리 덕(Early Duck)’을 운위한다.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수렴하며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은 있기나 한 것이냐는 불신을 받고 있다.

기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결과에 반발,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 촛불은 정부가 국민건강이나 여론은 도외시한 채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했다는 절차상 문제의식에다 국가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는 정서적인 반발심리가 겹쳤다는 데 큰 이의가 없다. 교역규모 세계 10위권의 대한민국이 갑의 위치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에서 을의 처지처럼 비친 것이다.

그러나 국민 건강권 및 검역주권 확보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내세워 평범한 가정주부, 이 사무실 저 공장의 샐러리맨, 자영업자 및 연인들, 심지어 나이 어린 학생들까지 자연발생적으로 참여하며 한달 이상 계속된 촛불집회가 중대기로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연일 계속된 집회로 누적되고 있는 시위 참가자들의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당초의 순수했던 촛불집회가 변질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노조와 대학 총학생회, 각종 이익집단들의 조직적인 참여가 두드러져 ‘무정형(無定形)’이 조직, 정형화하는 데 따른 일반 시민들의 부담감, 정부가 촛불 민심을 외면할 경우 정권퇴진 투쟁을 불사하며 광우병뿐 아니라 의료, 방송, 공공부문 사유화, 대운하, 교육 문제까지 의제를 확대하겠다는 집회 주최측의 공격적인 태도에 대한 논란 등이다.

여기에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쇠파이프와 각목이 등장하고 장기화되는 촛불시위에 맞서 이어지고 있는 보수 성향 단체들의 맞불집회 및 이로 인한 물리적 충돌 가능성 점증 등으로 사회불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정부나 국민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닥친 국제유가 상승 등에 따른 경제 전반의 위기감 고조, 이어지는 파업 등으로 나라경제의 기반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집회 초기 평화적인 진행, 참가자들의 활발한 토론 등으로 광장 민주주의 내지 시위문화의 새로운 전형으로 평가받기도 한 촛불집회 앞에 놓인 녹록지 않은 여건들이다.

마침 서울대 박효종 교수(윤리교육과)는 자유기업원 시장경제 뉴스레터 ‘CFE 뷰포인트’ 기고를 통해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광장 민주주의가 양질의 의사소통을 담보로 하는 민주주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한 뒤 “광장 민주주의가 빛을 발하려면 부조리한 선동과 자극보다 이성과 절제가 살아 꿈틀거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혹여 선거로 잃어버린 권력을 길거리에서 다시 찾으려고 한다든지, 투표에 의해 심판받은 것을 폭력시위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은 탐욕이나 권력에 대한 금단현상에 불과할 뿐”이라고 경계했다.

촛불집회의 자제와 금도 필요성 못지 않게, 아니 더 큰 책임을 느껴야 할 정부나 정치권은 오늘의 위기와 민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졸속협상을 질타하는 국민 앞에 서울 세종로 기름 바른 컨테이너 벽 설치 수준의 대응이나 임기응변식의 위기 넘기기가 아니라 터넣고 소통하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글로벌 경쟁 사회에서 우리 내부의 분열과 소모적인 갈등으로 초래되는 총체적인 난국은 결국 정부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신음하는 경제를 살리고 대내외적인 악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 모으기 및 사회통합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doo@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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