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CFE 뷰포인트]GM파산신청이 한국에 주는 교훈

자유기업원 / 2009-06-10 / 조회: 3,614       한국재경신문


지난 6월 1일 미국의 GM자동차가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그로 인해 법원이 특별히 허가하지 않는 한 GM자동차의 모든 채권자는 신청시점부터 권리행사를 할 수 없고, 상거래채권자, 금융채권자, 회사채보유자, 주주의 모든 권리는 유예 또는 감축의 대상이 된다. GM자동차가 파산 신청을 한 이유는 주주,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자율적인 채무조정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GM 파산신청이 우리나라 기업구조조정에 주는 시사점은 첫째, 기업구조조정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말아야 하며 둘째, 채무를 과감히 감축시킬 수 있어야 하며 셋째, 정부가 자금을 지원할 때는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미국의 파산법 제11장 절차

2009년 6월 1일 오전 7시 57분 51초 General Motors가 뉴욕 남부 파산법원에 파산법 제11장(Chapter 11) 절차를 신청하였다(전자방식에 의한 입력). 미국 파산법 역사상 최대 제조기업의 파산신청치고는 좀 싱거울 정도로 신청서는 24페이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전 세계가 주목할 만큼 대단한 것이다. 법원이 특별히 허가하지 않는 한 모든 채권자는 신청시점부터 권리행사를 할 수 없고, 상거래채권자, 금융채권자, 회사채보유자, 주주의 모든 권리는 유예 또는 감축의 대상이 된다. 결국 GM의 소유구조와 재무구조가 모두 바뀌게 되어 새 회사가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말로는 ‘파산신청’이라는 의미가 회사를 청산하는 절차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우선 영어의 ‘bankruptcy’라는 말 속에는 청산(liquidation)과 재건(reorganization)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GM이 신청한 11장 절차는 바로 기업재건절차이다. 제11장 절차를 신청하는 그 순간부터 채권자들은 권리행사를 할 수 없고 채무재조정에 들어가기 때문에 파산신청을 파산보호(bankruptcy relief) 신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채무를 재조정(rescheduling)하는 방법에는 이해관계인 사이의 자율적인 조정도 있는데 왜 파산절차를 신청했을까? 이것은 자율적인 조정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회사가 재건하려면 부채를 대폭 삭감해야 하는데 채권자들이 양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권자의 권리감축을 위해서는 주주의 권리를 더 삭감하여야 하는데 주주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하튼 회사가 원하는 수준의 채무재조정을 위해서는 법정절차에서 강제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GM 파산신청으로] 법원이 특별히 허가하지 않는 한 모든 채권자는 신청시점부터 권리행사를 할 수 없고, 상거래채권자, 금융채권자, 회사채보유자, 주주의 모든 권리는 유예 또는 감축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회사재건절차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여러 나라가 갖고 있지만 그 실질을 보면 미국처럼 강력하지 않다.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회생절차 신청만으로는 채권자의 권리행사를 막지 못한다. 보전처분이나 포괄적 금지명령을 별도로 받아야 한다. 따라서 미국처럼 채권자의 권리행사 금지시점을 채무자가 선택할 수 없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신청시 신청인이 채무변제가 곤란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즉 지금은 변제를 제대로 하고 있지만 장래를 위해서 채무재조정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신청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11장 절차이다.

나아가 채무재조정안(공식적으로는 ‘재건계획’)을 작성하여 제출할 권한이 일정 기간 동안은 채무자에게만 주어져 있기 때문에 채무재조정의 주도권을 채무자가 갖게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미국의 11장 절차는 채무기업의 회생을 위해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고, 동시에 그 때문에 11장 절차를 신청하기 전에 자율적인 채무재조정도 가능하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법정절차를 선택한 이유는?

GM의 파산신청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선택이다. 자동차 산업은 미국 산업의 중심이고 상징이다. 또 자동차노조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는 직접 지원을 택하지 않고 법정절차로 유도했다. 그것 자체가 정치적 모험일 수 있는데도 미국 여론은 오바마 대통령의 선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기업의 재건과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를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채무재조정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채무재조정은 상대의 양보를 받아냄으로써 내가 더 이익을 보게 되는 치열한 협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 정부가 개입하면 공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했다는 비난을 받거나 아니면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여 채무를 과감하게 변경하지 못하게 된다.

[GM은] 왜 파산신청을 했을까? 이것은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자율적인 조정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회사가 재건하려면 부채를 대폭 삭감해야 하는데 채권자들이 양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권자의 권리감축을 위해서는 주주의 권리를 더 삭감하여야 하는데 주주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둘째, 기업재건을 위해서는 채무감축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업계획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 역시 정부가 개입해서 제대로 될 일이 아니다. 시장에서 어떤 수요가 있고 기업이 그런 수요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여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민간전문가의 일일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해서도 기업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정부는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미국 최대기업이 도산하는 경제상황에서는 어떤 기업도 도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는 앞으로도 다른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요청받을 것인데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수습하기 어렵게 된다. 미국 정부는 법정절차를 통해서만이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한국의 기업구조조정에 주는 시사점

서브 프라임 사태로 인한 국제금융시장의 위기와 같은 외부요인이 아니더라도 기업은 언제든지 망할 수 있다.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며, 좋은 제품과 서비스 등을 제공해 끊임없이 소비자들을 만족시켜야 하며, 그렇지 못한 기업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고 망하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지지 않고 시장에서 자기 몫을 계속 유지하려면 평소에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안다. 그래서 효율적인 도산절차를 정비하여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년 하반기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실제로 건설이나 해운업종에서 구조조정이 시행되었다. 또 기업집단에 대한 구조조정 역시 진행 중이다. GM의 파산신청을 보면서 우리나라 기업구조조정에 주는 몇 가지 시사점을 정리해 본다.

GM 파산신청이 우리나라 기업구조조정에 주는 시사점은 첫째, 기업구조조정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말아야 하며 둘째, 채무를 과감히 감축시킬 수 있어야 하며 셋째, 정부가 자금을 지원할 때는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첫째, 기업구조조정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부실기업 처리에 정부가 직접 개입해 온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69년 시작된 부실기업정리 이래로 산업합리화정책이 그것이다(1972년의 8·3조치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정부개입 사례다). 정부의 개입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계속되어 부도유예협약, 빅딜, 워크아웃으로 이어졌다.

워크아웃이 채권금융기관의 자율적 협약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선전했으나 실제로 금융감독기관이 주도한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면 워크아웃이 효율적인 구조조정 수단이었을까?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한 실증연구에 따르면 워크아웃은 구 회사정리법에 따른 절차보다 절차 종료 후 기업의 수익률 변화나 소요한 시간 면에서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채권자가 스스로 채무를 감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하게 부패를 가져온다. 정부의 의사결정권자에게 접근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려는 이해관계인의 필사적인 노력을 막을 재간이 없다. 그래서 불황은 부패의 온상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실무에서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금융감독기구가 맡고 있는데 이를 조속히 정리하여야 한다. 그 판단을 민간에 넘기든지 공적 판단이 수반되는 일이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공적 기구를 만들어서 수행하게 하여야 한다. 기업구조조정 업무는 금융감독기구 안에 있는 위원회가 맡을 일이 아니다.

둘째, 채무를 과감히 감축할 수 있어야 한다. 부실기업은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빚을 줄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신규자금을 얻는 일이다. 이 중 어느 하나도 덜 중요한 것이 없지만 과거 우리나라 기업구조조정에서 미흡했던 것은 채무를 과감히 삭감하지 못한 것이었다. 채권자는 장부상 채권을 줄이기를 꺼리고 주주는 주식이 소각되는 것을 싫어한 결과이다. 아무리 자금을 많이 투입해도 채무의 과감한 감축 없이는 회생할 수 없다. 과거 여러 구제금융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바로 신규지원자금이 부채상환에 사용되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데 기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셋째, 정부가 자금을 지원할 때는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특히 정부가 기업에 자금을 직접 지원할 때는 GM의 경우처럼 공정하게 평가된 지분을 인수하여 회생 후 계속기업의 가치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또는 민간과 공동으로 자금을 조성하여 민간이 판단한 내용으로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 이런 형식의 구조조정기금이 조성된다고 하는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법정절차를 통해서 또는 법정절차를 바탕에 둔 사적 채무재조정을 통해서 구조조정이 된다면 다행이다. 그런데 지금 외국의 도산 전문가들은 그런 기존의 제도가 처리할 수 없는 위험이 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수행할 공적기구를 설립하는 것이 그 내용인데 귀추가 주목된다. 우리도 더 나쁜 상황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저자소개: 오수근 이화여대 교수는 도산법 전문가로 1998년부터 우리나라 도산법 개정작업을 맡고 있고 유엔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에서 한국 정부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도산법 개혁 1998-2007」, 「도산법의 이해」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오수근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본 원고는 자유기업원(www.cfe.org)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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