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금융위기의 그늘](1) 단기 일자리만 양산

자유기업원 / 2009-07-30 / 조회: 3,080       경향신문

ㆍ희망근로·인턴 끝나는 연말 ‘100만 실업’ 우려
ㆍ30·40대 주력계층 고용 악화 ‘사회적 문제’
ㆍ“6개월짜리 100명보다 복지사 10명 키워야”

서울 서부고용지원센터가 지난 21일 개최한 실업급여 설명회에 들른 한 시민이 지친 듯 앉아 있다. 김정근기자

지난해 9월 미국 투자은행(IB) 리먼 브라더스 파산은 금융위기의 전주곡이었다. 전세계 금융시스템이 붕괴됐고, 각국 경제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라는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그후 10개월. 금융위기는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지표로만 볼 때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경제성장률은 올해 2·4분기 전분기 대비 2.3% 성장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고, 코스피지수는 1520선을 넘어서며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한 때 달러당 1600원에 육박했던 환율은 1200원대로 떨어졌다. 대기업들도 ‘깜짝 실적’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남긴 ‘그늘’은 짙다. 외환위기가 한국 경제와 서민들의 삶을 옥죄었던 것에 비하면 덜 하지만 금융위기로 인한 후유증은 만만치 않다. 고용사정은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빈부격차는 사상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경기부양과 부자감세로 재정 건전성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외환위기 이후처럼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현상은 심화됐고, 서민들은 생활고에 찌들고 있다. 금융위기가 우리 경제에 남긴 그늘을 시리즈로 조명해본다.

희망근로사업에 참여한 지 한 달이 돼 월급받는 날이 됐지만 1주일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습니다. 60만원이 안되는 돈에 25만원 정도의 희망근로상품권. 제가 번 돈에 왜 사용기한이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희망근로상품권의 사용 유효기간은 3개월. 이걸 모르시는 어르신들은 어떻게 쓰실지…. 희망근로 프로젝트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프로젝트입니다. (서울에서 희망근로사업에 참여 중인 근로자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린 글)

자유기업원이 최근 전국 대학생 244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9%가 ‘행정인턴제’ ‘잡쉐어링’(일자리 나누기) 등 정부의 고용정책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보여주기식 정책’ ‘구직난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대책’이라는 게 정부 고용정책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된 이유였다.


지난해 금융위기가 본격화하면서 고용시장에는 실업대란의 한파가 몰아닥쳤다. 취업자수는 지난해말부터 감소세로 돌아선 뒤 올해 5월에는 21만9000명이 줄면서 10년2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특히 자영업자는 30만명 넘게 감소했고, 임시·일용직 취업자수도 20만명 이상 줄었다.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 여파로 취약계층이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지난달 취업자수는 1년 전보다 4000명 늘어나며 7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희망근로사업의 일자리 공급(25만3000개)이 없었다면 오히려 취업자 수는 5월보다 더 큰 폭으로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고용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에서 5조원을 투입해 55만개(연간 기준 28만개)의 일자리 창출 목표를 제시했으나 희망근로사업, 청년인턴제 등 단기 처방에만 급급해 큰 후유증이 예고되고 있다. 특히 청년층을 비롯해 30~40대 생산 주력계층의 취업자는 갈수록 줄어드는 등 고용시장 불안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 단기 일자리만 양산 = 정부는 올해초 고용대란이 불거질 조짐을 보이자 ‘글로벌 청년 리더’ ‘공공부문 청년인턴제’ ‘희망근로사업’ 등 일자리 대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한 대책은 고용기간이 6개월 안팎인 단기 일자리를 제공하는 수준에 그쳤다.

25만개의 단기 일자리를 제공하는 희망근로사업은 오는 11월이면 끝나게 된다. 그나마 단기 일자리 수혜자의 절반 이상(53.5%)은 65세 이상 노인으로 채워졌다. 희망근로사업이 일자리 대책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노령층에 대한 소득지원 정책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공기관 인턴도 단순 업무보조나 아르바이트 성격이 짙어 청년실업난 해소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내놓은 ‘고용동향’에 따르면 18시간 미만 취업자는 94만9000명으로 1년 전보다 18.0% 증가했다. 고용의 질이 나쁜 단기 일자리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추가경정예산 집행이 마무리되는 11월말 이후에는 ‘실업자 100만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김병권 부원장은 “수십만개의 단기 일자리가 올 연말 무렵에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고, 민간 부문의 신입사원 채용도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여 올 연말에는 고용대란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하반기에 기업 구조조정과 맞물린다면 고용사정은 최악의 국면으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 고용시장 회복 어려울 듯 = 정부의 일자리 대책이 주로 청년층(인턴사원)과 고령층(희망근로사업)에 집중되면서 올해 2·4분기 30대와 40대의 취업자 감소폭은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생산 주력계층의 취업난과 고용의 질 악화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고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단기 일자리 창출에만 치중하면서 교육·복지 등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 확대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고용기간이 6개월 안팎인 단기 근로자 100명을 지원해주는 것보다 같은 예산으로 2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할 수 있는 인력 10명을 지원하는 것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복지 서비스의 질도 개선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연구원 이병희 연구위원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대책은 노동시장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생산 주력계층의 실업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취업지원과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대책이 이른 시일 내에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관철기자 ok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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