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이영훈 교수와 역사 대담 (3)

자유기업원 / 2011-05-13 / 조회: 1,666       한국경제

대한민국 역사 상식에 도전한다- ③ 건국과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

“해방 전후史는 자유민주주의를 건설·발전시켜온 과정”

 


 

이영훈 교수와의 역사대담 세 번째 시간이 지난 7일 여의도 자유기업원에서 열렸다.

‘건국과 이승만 정권에 대한 평가‘를 주제로 진행된 이번 대담에서 이 교수는 해방전후사를 민족의 분단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발전시켜온 역사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재와 함께 당시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시대적 제약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며,건국과정에서의 이 전 대통령의 모든 공이 사장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황인혜= 해방 후 좌우합작운동 등 분단을 막기 위한 노력이 전개됐지만 이승만의 단독 정부수립으로 좌절됐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 미소공동위원회가 설치되고 미국 · 영국 · 소련 · 중국의 신탁통치안이 결정됩니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 없이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미 군정은 온건한 중간파 세력으로 김규식 여운형 등이 중심이 된 좌우합작운동을 지원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 이승만이나 박헌영처럼 대중 동원 능력이 없었습니다.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미군정의 지원만으로 좌우합작운동이 성공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가운데 1947년 동서냉전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이 공산주의 국제세력을 봉쇄하는 방향으로 한반도 정책을 바꾸자 좌우합작운동도 추진력을 잃고 맙니다.

당시 소련 점령 아래 있던 동유럽에서 좌우합작에 의한 임시정부가 많이 성립되지만 사회주의 정부로 넘어가는 단계에 불과했는데,그 상황을 이승만은 예리하게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구한말 나라가 망하는 것을 현장에서 피눈물로 체험한 이승만은 러시아(소련)가 어떤 나라인지 익히 알고 있었죠.또 기독교인으로서 공산주의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정신세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그는 소련과의 협조 노선은 어떤 형태로든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같은 명망가가 강력한 반공노선을 들고 신탁통치를 반대하자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동참합니다.

특히 북한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피해 남하해 온 100만명에 가까운 월남 동포들이 강력한 지지 세력을 형성합니다.

분단은 결국 ‘공산주의로 나라를 세울 것이냐‘‘자유민주주의로 나를 세울 것이냐‘ 하는 건국 이념의 문제였습니다."

 

▼김승재= 각각 이념에 따라 국가를 세운 것이라면 분단의 책임을 묻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인지요?

 

"단일한 역사공동체였던 남북한의 분단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언젠가는 합쳐야 한다‘는 당위론적 명분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데,이때 반드시 나오는 문제가 ‘역사적 정통성이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역사교육 현장에서 이승만과 대한민국에 분단의 책임을 묻는 비판이 많이 제기돼 왔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45년 9월20일 스탈린은 북한의 소련군정에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독자의 정부를 북한에 세우라는 비밀지령을 내립니다.

이는 소련이 해체되면서 공개된 비밀문서에 나온 내용인데요,그와 같은 지령이 내려진 배경에는 전후 세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소련과 미국의 다툼이 있었습니다.

 스탈린의 비밀지령이 내려오자 북한에서는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성립되고 이 위원회의 이름으로 무상몰수 ·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이 단행됩니다.

이때부터 북한에서는 사실상 정부에 준하는 통치행위가 전개됩니다. "

 

▼김초롱= 북한에서는 무상몰수 · 무상분배,남한에서는 유상몰수 · 유상분배의 토지개혁이 진행됐습니다. 이에 대해 평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북한이 실시한 토지분배는 소유권의 분배가 아니라 경작권의 분배였습니다. 무상몰수 · 무상분배를 하게 되면 현실적으로 경작지는 생기지만 토지에 대한 처분권은 농민들이 가질 수 없어요.

결국은 국가가 토지를 소유한 최고 지주가 되고 농민은 국가의 토지를 경작하는 일종의 소작농 격인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남한의 토지개혁은 경작 가능한 범위를 초과하는 토지에 한에서 국가가 유상으로 수용하고 농민들이 유상으로 분할상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현실의 토지경작체제를 그대로 온존시켜 생산력을 파괴하는 부작용을 막고,농민들은 자작농지를 확보하게 됨으로써 생산의욕이 높아졌습니다.

남한의 토지개혁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완만하면서도 장기적으로 농업혁명을 유발시킨 하나의 개혁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농민들을 자작농지의 소유자로 만듦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을 창출한 근대적 개혁이었습니다. "

 

▼김형주=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요?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독재가 후진국형 독재처럼 대통령 일족들의 권력과 부를 늘리는 독재는 아니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독립운동 당시부터 ‘나라가 세워지면 적어도 10년간은 민주주의를 국민들에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왔고,자기밖에는 그럴 만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6 · 25 전쟁 초기 서울이 3일 만에 함락당하는 등 큰 실책으로 이승만은 탄핵 위기에 놓입니다.

게다가 미국은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이승만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했고,차제에 이승만을 제거할 계획을 세웁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승만은 부산정치파동을 일으켜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고 무리하게 집권을 계속 연장해 갔습니다.

이를 계기로 국회의 견제를 벗어난 독재정치가 시작됐고,민주주의 원칙이 훼손됐죠.

이에 대해서는 이승만의 책임이 큽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한국정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쟁,미국과의 동맹,통일 그리고 경제건설이라는 나라 만들기의 큰 과제가 놓인 상황에서 한국의 정치 수준은 그 큰 과제를 풀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우더라도 타협하고 건설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정치적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지 못했죠.

정당정치도 성립하지 않았고,이슈에 따라 이합집산이 왕성하게 이뤄지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민주주의의 논리에 입각한 정치게임이 벌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 시대를 미화할 필요는 없지만 시대적 제약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이승수= 1950년대가 대한민국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해방전후의 역사를 분단의 역사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발전시켜온 건국사의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48년 대한민국의 제헌헌법이 국민주권의 민주주의를 선포함으로써 자유,인권,국민주권,사유재산,시장경제 등 근대문명이 삶의 원리가 되는 문명사적 전환을 맞게 됐습니다.

또 1950년대는 6 · 25 전쟁 이후 6년이라는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중요한 성취가 있었습니다.

 우선 ‘교육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교육에 대한 국민적 수요가 폭발하면서 1960년대 이후의 고도성장을 가능케 했던 우수한 ‘사회적 능력‘이 축적됩니다.

또 면방직,제분,설탕을 비롯한 소비재공업뿐만 아니라 비료,시멘트,철강업 등 기초적 공업재료 분야에 이르기까지 일정 수준의 공업시설이 건설됐습니다.

1960년대가 되면 이 시기에 건설된 공업들이 수출산업이 됩니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은 이런 토대 위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1950년대 하면 혼란과 갈등,분열만 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건설현장에서 나라만들기에 헌신했습니다.

그러한 총체적인 기획과 지평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정치적 비극 때문에 다 사장돼 왔는데,지금이라도 올바르게 재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이유미 바이트 기자 worldeyu@naver.com

 

※대담 동영상은 자유기업원 프리넷뉴스(http;//www.fntv.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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