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이상돈·김호기의 대화-15) 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

김정호 / 2011-05-30 / 조회: 1,246       경향신문

ㆍ김정호 “복지 확대 위해선 증세 필요… 국민에 알리고 선택하게”
ㆍ김호기 “복지-재정은 양면한 정책으로 묶어 내년 총선 의제로”
ㆍ이상돈 “지출 늘리며 감세 현 정부 재정 악화… 보수, 왜 침묵하나”

 

한국 사회가 보수진영에 ‘길’을 묻고 있다. 보편적 복지 확대가 핵심 이슈로 부상하면서다. 이명박 정권이 집권 이후 4대강 공사에 세금을 집중 투입하고 부자감세 정책을 펴면서 우리 사회의 보편적 복지는 몇 년째 후퇴해왔다. 차기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에서조차 복지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보수성향의 이상돈 중앙대 교수와 진보성향의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을 27일 서울 여의도 자유기업원에서 만났다. 김 원장은 최근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보편적 복지 확대 분위기와 달리 현 정부의 기업과 복지 정책이 참여정부 시절보다 더 좌파적이라고 평가하는 대표적인 자유경제론자다.

김 원장은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 복지 확대보다는 저소득층의 복지 수준을 높여야 한다”며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세금 확충이 필요하다는 점을 함께 알려야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와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이상돈 중앙대 교수(왼쪽부터)가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자유기업원 앞에서 대화하고 있다. | 김문석 기자

김호기 연세대 교수(이하 김호기) = 우리 사회에서 ‘보수의 위기’가 느껴진다. 이명박 정부 지지율도 계속 낮아지고 있고 한나라당 지지율도 예전만 못하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진보개혁세력이 위기를 겪었다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세력이 유사한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장경제와 자유주의 정책 홍보 등 보수세력을 지지하는 자유기업원 원장으로서 최근 상황에 대한 생각은.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이하 김정호) = 확실히 보수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선 처칠이 실각한 뒤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급속히 사회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국가가 됐다. 최근에 감지되는 보수의 위기는 우리 국민의 정서가 전반적으로 진보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경제발전 덕분에 잘살게 됐는데도 복지확충 요구가 많은 것은 물질적으로 어려워서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진보세력이 지난 30년간 펼쳐온 대중설득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은 보수세력은 한동안 일어서기 힘들 것이다. 지금부터 설득에 나서도 국민의 생각을 보수로 옮기려면 짧아도 10년은 걸릴 것이다.

김호기 = 국민들의 생각이 바뀐 것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 탓도 크다. 4대강 사업과 부자감세와 같은 토목사업 및 신자유주의 정책으로는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고 본다.

김정호 = 실정이라기보다는 이 대통령이 개인적인 매력이 없다. 매력이 너무 없다 보니 뭘해도 인기가 없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이하 이상돈) = 복지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것을 포퓰리즘이라고 부르는데, 원래 포퓰리즘은 ‘대중 민주주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로버트 라폴레트가 상징하는 포퓰리즘은 진보 개혁주의였다. 그런데 이것이 남미형 페로니즘으로 대체돼 우리에게 알려진 것 같다. 우리 정치에서 포퓰리즘 논쟁이 본격화된 것이 언제라고 보는가.

김정호 = 포퓰리즘이 나오기 전까진 철학이나 원칙을 가지고 하는 게 정치였다. 포퓰리즘이 대두하면서 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해 나간 게 아니었나 한다. 헌법에 구애되지 않는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이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포퓰리즘 논쟁이 나온 건 지난 지방선거 때 무상급식이 등장하면서부터라고 본다.

김호기 = 이념적인 평가보다는 구체적인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2007년 국제비교를 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9.3%)의 절반이 안되는 7.5%에 불과하다. OECD 30개국 중 29번째다. 보수세력의 주장대로라면 OECD 국가 대부분이 ‘복지 포퓰리즘’을 안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회 양극화로 인해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는 게 우리의 정직한 현실이다.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에서 접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김정호 = 다른 선진국들이 복지를 늘렸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해야 하는가엔 회의적이다. 별도 판단이 필요하다. 복지가 지속가능한가의 여부가 중요하다. 복지국가에서는 소득 없는 사람을 국가가 부양하고 고소득층의 소득을 국가가 상당 부분 떼어가는데, 그러면 일을 하는 동기 자체가 줄게 된다. 일 자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도 있다. 서유럽의 경우 일 자체를 신성하게 여기는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강해 복지국가도 별 문제가 없다. 우리 국민은 가난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서 이렇게 발전했는데, 그런 동기를 없애면 과연 일을 하려고 할지 의문이다. 이런 근로윤리 문제도 짚어봐야 한다.

이상돈 = 복지 확대 논쟁에서는 세금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세금은 정부를 운영하는 비용이라고 보는 게 보수적인 시각이다. 반면 진보정부는 세금을 빈부격차 해소 등 정책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 양극화가 심해지자 노무현 정부는 세금을 사회정책수단으로 지나치게 이용했다. 그래서 지난 대선 때 감세가 공약으로 나왔는데, 이명박 정부는 재정지출이 대폭 증가하는 상태에서 감세를 단행했다. 현 정부의 감세정책이 정당하고 적정하다고 보는가.

김정호 = 판단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원래 감세는 정부 지출을 줄이라는 것이다. 지출을 늘리면서 세금을 줄이는 경우 다양한 변수가 있다. 세금의 영향이 어떠한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소득세는 감세를 안 하는 게 좋다. 소득세 감세는 부자의 최고세율을 낮추는 것이니 ‘부자감세’가 맞다. 소득세를 높게 유지한다고 해서 돈을 벌 사람들이 안 벌거나 하지는 않을 걸로 본다. 소득세 감세 논의는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법인세는 낮추는 게 맞다. 법인세에 따라 해외에서 들어오는 투자가 영향을 받는다. 법인세를 낮춰야 국내외 투자가 활성화되고 자금 유출도 막을 수 있다.

이상돈 =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현 정권 들어서 재정악화에 침묵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어떤 생각인가.

김정호 = 보수진영에서 정부에 대해 1년 반 정도 침묵했다. 마음에 안 들어도 광우병 시위로 흔들리고 있는데 지지층까지 흔들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보아 참았던 것이다. 그런데 2년 정도 지나고 보니까 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 보금자리주택 보급, 혁신도시 등 포퓰리즘적인 정책이 많다. 버리는 재정이 이렇게 많다 보니 보수진영에서도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호기 = 감세 철회 의견이 나왔으니 증세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 조세부담률이 19.3%이다. 이는 2008년 OECD 평균인 26.6%보다 7.3%포인트 낮은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지금 내고 있는 세금보다 37%가량을 더 내야 OECD 평균 수준의 조세부담률에 도달한다. 우리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중·장기적으로 OECD 평균에는 도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김정호 = 세금을 늘리는 게 좋으냐는 면밀히 따져 봐야 하는 문제다. 세금 많은 게 좋은 나라는 아니다. 그렇다고 복지를 늘리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복지를 늘려야 한다면 세금도 늘려야 한다. 세입 내 세출제도가 확실히 자리를 잡아야 하고 이렇게 하려면 국민들이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만 해도 현 세대의 짐을 젊은 세대가 떠안는 구조다. 복지를 늘리자면서 증세 얘기는 안 한다면 무책임한 것이다. 국민이 이에 대해 같이 듣고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김호기 = 같은 생각이다. 복지정책과 재정정책은 동전의 양면이다. 재정과 복지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내년 총선에서 매니페스토를 통해 제대로 심판받는 게 바람직하다.

김정호 = 동의한다. 그게 정직한 복지정책이다.

이상돈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으로 재정건전성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복지 담론을 시작했다. 박 전 대표의 복지구상을 어떻게 보는가.

김정호 = 박 전 대표의 복지구상이 정확히 안 나와서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조금은 위험한 생각이라고 본다. 공공복지 부문을 늘려 직접 국가가 나서서 돌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되는데, 공공복지를 크게 늘리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

김호기 = ‘반값 등록금’ 문제를 얘기해보자. 우리 사회의 경우, 학비 부담으로 소중한 목숨을 버리는 대학생이 매년 200~300명에 이른다. 등록금 문제는 학부모와 학생의 생존권 및 교육권을 위협하는 이슈다. 문제는 의지인데, 민주당은 5000억원의 추경 편성을 포함해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한나라당도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자유기업원 등이 반값 등록금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데, 서민과 중산층의 고통을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닌가.

김정호 = 우리 사회가 과거보다 잘살고 있는데 왜 자살이 많은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현실은 좋아지고 있는데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민 정서가 왼쪽으로 이동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현재 대학진학률이 83%다. 도대체 몇 %까지 대학을 가야 하나. 물론 가난해서 대학에 못 가는 사람들에게 등록금을 지원하는 건 동의한다. 민주당에선 소득 하위 50% 계층까지 등록금을 지원한다는데 50% 계층은 중산층도 포함한다. 왜 중산층한테까지 등록금을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상돈 = 등록금 절반을 국가가 대줄 것이 아니라 등록금을 20%라도 내리는 정책수단을 써야 한다. 등록금이 사실 너무 비싸다. 미국도 주립대학은 등록금이 저렴하다. 우리가 지방 국립대학을 키우지 못한 것이 실책이다. 수도권은 온통 사립대학뿐이다. 높은 등록금은 그대로 두고 나라에서 지원하는 건 학생, 학부모에게 선심쓰는 것 아닌가. 대학기능을 하지 못하는 곳을 퇴출시키거나 통폐합해야 한다고 보는데.

김정호 = 등록금이 정말 비싼지는 따져봐야 한다. 과거에는 ‘우골탑’이라고 해서 소 팔고 논 팔아야 대학을 갔다. 그래도 등록금이 비싸다고 자살하는 일은 없었다. 83%가 대학을 간다는 것은 등록금 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는 증거다. 다만 정부가 대학에 교수 1인당 학생 수를 줄이라고 너무 강요한 것이 등록금 상승의 원인이 됐다. 1인당 학생 수도 줄이고 등록금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김호기 = 구조적인 처방만을 생각하기엔 등록금 문제가 매우 절박하다. 대학 안에서 학생들 보기가 미안하다.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나. 장기적인 대책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고통을 덜어주는 게 정부, 정당의 당연한 역할이다. 여당도 적극적인 상황이니 대책을 빨리 내놓아야 한다. 내년 두 개의 선거를 앞두고 다양한 논쟁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념 논쟁’은 ‘정책 논쟁’과 결합할 때 자기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려는 ‘정략 논쟁’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바람직한 이념·정책 논쟁을 위한 조건은.

김정호 = 선거에서 복지가 굉장한 이슈가 될 것이다. 복지가 늘면 증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정직한 논쟁을 해야 한다. 통일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북한에 어떤 사태가 생겼을 때 북한동포를 받아들인다면 그들에게도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이 문제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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