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이슈분석] 저축銀 후순위채 구제방안 ‘점입가경’

자유기업원 / 2011-06-20 / 조회: 1,385       한국금융신문
   
지난 15일 국회 정무위원회는 저축은행에 투자한 예금과 후순위 채권 전액을 한시적으로 보상해주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예금자보험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금융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법안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완전히 ‘포퓰리즘’적인 법안이라는 것. 대신 금융당국은 영업 정지된 7개 저축은행이 발행한 후순위채에 투자한 고객들의 피해를 구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저축은행들이 후순위채의 위험성이나 약관을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고 판매했다면(불완전 판매) 후순위채를 일반 채권으로 바꿔 투자자가 일부라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송이 이미 진행 중인데다 법적 보호 대상이 아닌 후순위채권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일반 채권 및 예금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는 등 저축은행 사태 해결에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피해자들을 돕겠다고 한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실효성이 부족하고 원칙도 없는데다가, 특히 부산지역 의원들이 금융위원회를 찾아 피해자 전원 구제를 요청한 데 대해 어쩔 수 없이 내놓은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정치권 ‘예금자보험 확대 추진’ 선심성 논란

국회 정무위원회는 저축은행 후순위채까지 전액 보전해 주는 내용의 예금자보호법 개정 법안을 상정했다. 상정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저축은행에 투자한 예금과 후순위 채권 전액을 한시적으로 내년까지 보상해주고, 예금자 보호 한도인 5000만원을 초과하는 예금과 후순위 채권까지도 예금보험기금으로 보상해 주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적용 시점도 올해 1월로 소급 적용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사실상 저축은행 고객들의 피해를 국민 세금으로 대신 내주겠다는 건데,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을 유권자로 두고 있는 부산 지역 국회의원들이 지난달 초 발의한 법안이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저축은행의 후순위채 투자자나 5000만원 초과 예금자까지 보장하는 것은 예금자나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고 금융산업 질서의 근간과도 관련돼 있어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개정안대로 예금자보호제도를 확대할 경우 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이나 부실 폭을 더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대외협력실장은 “투자를 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되는 게 원칙인데, 그것을 무조건 봐주는 온정주의적 태도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금융질서를 교란할 수도 있고,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무상복지와 반값 등록금에 이어 저축은행 후순위채권 보호까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국가경제 전체의 이익보다는 지역구의 표만 바라보는 정치권의 인기 영합적인 행보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 실효성 낮은 후순위채 투자자 구제방안 추진 ‘왜’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금감원은 영업 정지된 7곳 저축은행이 발행한 후순위채에 투자한 고객들의 피해를 구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금감원이 발표한 방안은 저축은행들이 후순위채의 위험성이나 약관을 충분하게 설명하지 않고 판매했다면(불완전 판매) 후순위채를 일반 채권으로 바꿔 투자자가 일부라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영업 정지된 7곳 저축은행의 후순위채 투자자는 2998명이고 금액은 1314억원에 이른다. <표참조> 오늘(20일)부터 8월31일까지 영업정지 저축은행의 후순위채권 피해자 신고센터를 운영한다. 신고센터는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과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4개 지원에 설치한다.

금감원은 후순위채 판매 과정에서 저축은행이 약관과 리스크를 투자자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불완전 판매가 명백하게 확인되는 경우에 금감원의 ‘금융분쟁 조정위원회’에서 피해 보상 여부를 심의하기로 했다. 금융분쟁 조정위원회를 거치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보다 빠르고 쉽게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 통상적인 금융소비자 분쟁 사건에서 고객 쪽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45%선으로 절반에 못 미친다.

금감원 관계자는 “저축은행 후순위채 투자자들은 상품 정보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강매당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확률이 좀 더 높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금융당국은 저축은행의 후순위채권 불법판매 건에 대해 보상하는 한편 관련 피해자의 소송비용 지원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정무위원회에 참석해 “피해자들의 소송비를 지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분쟁조정 과정에서 당사자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조정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할 경우에 한해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게 금융위의 방침이다. 이는 금융당국의 조정안을 저축은행이 수락하지 않을 경우 금융위가 소송비용을 지원해 후순위채권을 매입한 투자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앞서 부산저축은행그룹 후순위채에 투자했다 막대한 손실을 입은 개인투자자들이 은행과 금감원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부산저축은행 후순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에 따르면 후순위채를 인수한 개인 투자자 188명은 부산저축은행과 박연호 회장·다인회계법인·금감원·한국신용평가 등을 상대로 1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비대위는 소장에서 “부산저축은행은 후순위 채권을 발행할 당시 불법대출과 방만한 경영으로 발생한 손실을 분식회계로 숨기고 있었다”며 “은행 경영진은 회계법인과 신용평가회사 등과 짜고 증권신고서 상 허위 재무제표를 기재해 사기채권을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사실과 다르게 매겨진 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BIS)을 사전에 제재하지 못한 금융감독원은 물론, 분식회계를 도운 회계법인과 부산저축은행 후순위채에 투자적격(BB) 등급을 매긴 신용평가정보회사도 손실을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을 대리한 이헌욱 변호사(법무법인 로텍)는 “2009년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후순위채에 대한 허위 공시가 행해졌다”며 “거짓 재무제표와 고정여신비율을 속인 증권신고서를 믿고 발행승인을 내준 금융당국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일 삼화저축은행 후순위채에 투자했다 피해를 입은 개인투자자 22명도 은행과 금융당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 ‘후순위채 피해자 구제책’ 결국 부실감독 회피용 지적

하지만 이러한 방안들은 금융당국이 부실 감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급히 내놓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후순위채권이 법적으로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님에도 금융당국이 구제에 나선 것도 불완전판매라는 조건을 붙인 데서 출발한다.

제도만 따지면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이 있다. 후순위채뿐만 아니라 은행에서 보험을 파는 방카슈랑스, 펀드와 수익증권을 고객에게 불완전 판매한 사실이 확인되면 금감원은 피해자를 구제하거나 소송 진행을 도왔다. 예컨대 지난해 한국투자증권의 불완전판매 피해자는 금감원의 지원을 받아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에 발표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 나온 것이어서 ‘대책’이랄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감원은 후순위채 구제 관련 보도가 처음 나왔던 지난 14일 ‘우리가 하는 것은 창구개설 외에 새로운 사실이 없으니 후순위채 구제를 부각시키는 건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어야 했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로부터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정치권이 ‘뭐라도 내놓으라’고 압박하자 기존에 있는 제도를 포장해놓고선,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발뺌하는 것은 지나치게 무책임한 일이다.

또한 금융당국이 제도개선 차원에서 저축은행 창구에서 후순위채 판매를 금지시키는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한 것도 사태 발생 후 수개월이 지난 뒤인 이번 달 초여서 늑장 대응을 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5000만원 이상 예금자도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형평성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향후 다른 금융기관에서 후순위채를 발행할 때 보호된다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시장의 원칙을 어지럽힌다는 비판도 따른다.

이건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현행법상 정상채권으로 만들어 줄 수 없는 후순위채권에 대해 국가에서 피해보상 지원을 한다는 게 과연 현실적인 방안인지 의문”이라며 “피해 구제에 대한 구체적 방법이 나온 것도 아닌 상태인데 어떻게 구제를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5000만원 초과 예금자도 아니고 법적으로 보호대상이 아닌 후순위채 투자자들을 구제하겠다고 나선 것은 결국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눈치를 본 것”이라며 “무엇이든 대안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에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책을 내놨다”고 비판했다.

이런 탓에 피해를 본 투자자 가운데도 후순위채권자와 5000만원 초과 예금 보유자들 사이에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삼화저축은행의 경우 선순위인 5000만원 초과 예금 보유자들과 후순위채권 보유자들이 서로 다른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활동하고 있다.

한 저축은행에 5000만원 넘게 예금한 투자자는 “후순위채권을 보상해주면 그만큼 내 몫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며 “정당한 이유 없이 후순위채권자들도 보상해주는 것은 절대 반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보는 금감원이 사전에 협의하지 않았다며 못 마땅해 하는 반응이다. 예보 관계자는 “금감원이 협의도 없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대책을 내놓으면 혼란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법원 판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금감원이 재량 범위 내에서 피해 구제에 힘쓰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의석 기자

2011년 6월 20일 한국금융(www.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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