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장하준 말대로라면 K-POP 한류는 없다

김정호 / 2011-06-23 / 조회: 2,885       데일리안

<장하준에게 속은 23가지①>보호하지 않은 산업이 오히려 더 발전했다


국제 경쟁에서 보호 못받은 조선산업 세계최정상은 어떻게 설명할건가

 

가히 장하준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하다. 책 판매량이 누적으로 100만장을 넘었다고 하니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신기록을 세운 셈이다. 그만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장하준의 글에 감동 받은 사람들의 글이 지천으로 깔렸다.

장하준의 매력은 대중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들려준다는 것이다. 개방과 경쟁보다는 보호와 지원이 옳고, 기업이 주주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그의 말에 대중들은 열광한다. 복지제도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라가 망할까봐 걱정이었는데 장하준은 복지제도가 오히려 성장률을 높인다고 말해준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콕콕 찍어 옳다고 맞장구를 쳐주니 누가 좋아하지 않겠나. 금상첨화로 그 경제학자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인데다가, 미르달 상과 레온티에프 상도 받았다고 하니 더욱 믿음이 간다. 그가 쓴 글의 또 다른 매력은 모르고 있던 역사적 사실들을 꺼내어 스토리텔링을 한다는 것이다. 경제 이야기는 늘 골치가 아팠는데, 옛날 이야기로 경제를 설명해주니 그 또한 글의 맛을 더해 준다.

그러나 장하준의 역사 해석과 정책 처방에는 틀린 것들이 많다. 보호무역 때문에 선진국들이 성공했다든가, 시장경제로 성공한 나라가 없다든가, 큰 정부를 하면 성장률이 높아진다는 등 중요한 주장들이 모두 틀렸다. 그렇더라도 보통 학자의 것이라면 단순한 견해차이라고 무시해도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진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영향력이 큰 사람의 것인 만큼 누군가는 옳고 그름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 역할을 하고 나서기까지 망설임도 컸다. 내가 신자유주의의 대표인 듯 나서는 것이 잘하는 일일지 아직도 신경이 쓰인다. 나 보다 훨씬 더 실력 있는 경제학자들이 많다. 그러나 학술논문 쓰기에도 바쁜 경제학자들의 형편을 생각할 때, 결국 이런 글은 나처럼 대중설득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의 몫이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장하준이 그래 왔듯이 나도 최대한 많은 사례와 이야기들로 글을 꾸려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그리하여 비록 대중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10만부라도 팔리는 책으로 엮어내고 싶다.

이 시리즈는 월 수 금 주3회로 7주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현재 확정된 주제로는 “보호받지 않는 산업이 오히려 더 발전했다,” “복지제도는 성장률을 낮춘다,” “장하준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가로챘다,” “결국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박정희 시대는 상대적 자유경제의 시대였다,”의 다섯 개다. 나머지도 곧 확정해서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비판과 성원을 기대한다.<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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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글에는 정부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깔려 있다. 보호주의 정책에 대한 신뢰, 복지제도와 공기업에 대한 신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나는 장 교수의 견해가 대부분 틀렸다고 생각한다. 이 장에서는 보호무역주의 옹호론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장하준에 의하면 선진국들은 대부분 발전 초기 단계에 산업을 보호했고, 그것이 선진국의 된 원동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진국에게 보호 장벽을 폐지하고 개방을 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선진국으로 올라가기 위한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자유무역을 지지하지만, 일정한 조건 하에서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보호주의 정책 역시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현실에 나타난 결과가 어떠한지를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보호를 받은 산업과 그렇지 않은 산업을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성공을 거뒀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실증 분석이 그렇듯이 이 일 역시 만만치가 않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은 어떤 형식으로는 보호를 받았다. 농업이든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보호를 받지 않은 산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보호의 정도를 가지고 비교를 해보는 일이 필요하다. 보호를 심하게 받은 산업과 덜 받은 산업을 비교해 본다면 보호와 자유무역 중 어느 쪽이 더 나은지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업 중에서 아마도 가장 보호를 덜 받은 산업은 대중가요와 조선 산업일 것이다. 대중 가요의 경우 거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일본 가요를 금지하는 정도에서만 보호를 받았지만 가요의 대세라고 할 수 있었던 서양 팝송으로부터는 거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다. 싼 값에 팝송의 무단복제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국내가요는 불이익을 받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대형유조선 제조산업의 경우도 보호를 받지 못한 산업이다. 아니, 국내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호라는 것이 무의미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장 교수의 논리대로 한다면 이 두 산업은 이 땅에서 사라졌어야 한다. 그야말로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던 상태에서 미국 일본 독일 같은 선진국 경쟁자들과의 무한 경쟁에 노출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흥미롭게도 조선산업은 한국의 어떤 산업보다 먼저 세계 최정상에 올랐고, 대중가요 역시 K-Pop이라는 이름을 달고 일본과 중국을 넘어 유럽을 달리고 있다. 가장 덜 보호받은 산업이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 두 산업의 이야기들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보호받지 못한 현대중공업의 성공

한국에서 대형 유조선을 건조하는 일은 현대중공업의 전신인 현대울산조선소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고인이 된 정주영 회장이 아직도 TV 광고에 출연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울산조선소를 만들던 에피소드이다. 당시 장하준 교수에게 물었다면 조선산업은 당연히 보호해야 한다고 답했을 것이다. 용기와 열정 말고는 대형선박을 만들기 위한 기술도 자본도 인력도 갖추지 못했던 것이 바로 당시 한국 조선업이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 역시 매우 큰 산업이니 보호의 대상으로는 보호를 해야 한다면 조선업이 최우선순위를 차지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현대울산조선소는 국제경쟁으로부터 보호를 받아 본 적이 없다. 보호가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울산조선소를 만들던 당시 한국에서 건조되던 선박의 최대 규모는 1만 5000톤이었다. 그 보다 큰 선박은 국내에서는 살 사람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주영이 도전한 선박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70만톤급의 대형유조선이었다. 당연히 현대울산조선소는 처음부터 모든 제품을 해외 시장에 팔아야 했다.

실제로 현대조선소의 첫 고객은 그리스의 선박왕 리바노스였다. 그 이후에 일어났던 자세한 상황들을 모두 이야기할 수 없지만 수많은 도전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3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일본과 스웨덴 등의 기업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출발부터 보호없이 치열한 국제경쟁에 노출되었던 현대중공업이 가장 단시간 내에 이룬 쾌거이다. 뒤를 이어 등장하기 시작한 한국의 다른 조선소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국 조선산업은 보호 없이 세계최고가 된 것이다.

대중가요의 무한경쟁이 K-pop을 만들어냈다

K-POP 역시 보호 없이 성장한 대표적 산업이다. 그리고 그 성공은 모두의 기대를 완전히 뛰어넘고 있다. 지난 30년간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들이 한국의 얼굴 노릇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K-POP이 우리의 얼굴이 될 것이다. 공정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2011년 4월 보도한 내용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젊은 한류팬들에게 있어서 한국은 ´자동차´, ´반도체´로 대표되는 것이 아니라 ´가요´, ´드라마´ 등으로 대표된다. K-POP을 주도하고 있는 카라, 슈퍼주니어 등이 아시아 전역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고 이들이 바로 ´한류´(Korean Wave)라고 불리는 문화현상을 이끌고 있다. (중략) 지난 수십년간의 한국 경제의 성공요인을 재벌(Big ´Chaebol´) 중심의 기업문화였지만 (중략) 한국의 국가브랜드는 ´한류´가 되어 가고 있다.

필자 같은 사람에게 한국 대중가요의 이같은 성공은 삼성이나 현대의 성공만큼이나 뜻밖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것이 1975년이었는데, 그 때만해도 대학생들이 듣던 노래는 대개 외국의 팝송이었다. 나 자신도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CCR의 카튼필드 같은 노래들에 빠져 있었다. 젊은이들의 시간인 심야시간대에 라디어에서 틀어주는 음악은 태반이 외국 팝송이었다. 심야방송의 DJ들은 모두 팝송전문가들이었고 나이트 클럽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우리 가요에 대한 외국 팝송의 경쟁력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았다.

그런데도 우리 가요에 대한 보호막은 거의 없었다. 일본 대중 가요를 금지하기는 했지만 그리 중요한 요인은 아니었다. 허용했더라도 깊은 반한 감정 때문에 어차피 일본음악을 많이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음악의 강자인 서양 팝송으로부터 한국 가요를 보호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없었다. 음반을 놓고 보면 오히려 국내 가수와 가요들이 역차별을 받는 상황이었다. 장하준 교수의 책에도 나오듯이 국내가수의 음반은 몇천원씩을 내고 사야하는 반면 팝송 음반은 불법복제된 소위 ‘빽판’을 500원에 살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한국의 대중가요 가수와 작곡자들과 연주자들은 산업이라고 불릴 수도 없을 정도의 ‘유치’산업일 때부터 (일본 가요를 제외하면) 외국 팝송과의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노출되었다. 무한경쟁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면 바로 우리의 대중가요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대중 음악가들은 경쟁 때문에 죽지 않았다. 트윈폴리오의 윤형주와 송창식은 팝송을 흉내내면서 우리의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미8군 무대에서 팝송을 노래 부르던 패티김과 신중현과 윤복희가 대중가요를 부르면서 우리 가요의 수준을 높여갔다. 조용필과 서태지와 HOT는 비틀즈, 에어 서플라이, MC 해머 같은 외국 가수들과의 경쟁을 이겨내고 한국 소비자와 세계 음악팬의 선택을 받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팝송과의 경쟁은, 경쟁인 동시에 배움이면서 발전의 과정이기도 했다.

특히 이수만이라는 기획자이자 모험가의 출현은 중요하다. SM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둔 가요와 가수의 생산에 나선다. 그 첫 번째 성공작이 HOT였다. HOT는 포스터까지 불티나게 팔려서 외국 가수들의 포스터가 차지하고 있던 우리나라 소녀들의 방을 그들의 사진이 차지하기에 이른다.

이제 우리의 젊은이들은 팝송보다 K-POP을 더 즐겨듣는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와 카라를 보기에도 바빠서 외국 가요를 들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프로인 심야방송에는 거의 외국노래들이 나오지 않는다. 한국 대중가요는 한국에만 머물지 않고 일본으로 중국으로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한국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연장해 달라고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시위성 플래시 몹을 벌릴 정도가 되었다.

유럽에서까지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K-POP의 배후에는 클럽 DJ출신 작곡가들이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제한없이 세계 최고의 곡을 틀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곡들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세계인을 매료시키기 시작한 K-pop은 세계와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빚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자의든 타의든 국제경쟁에 노출된 산업은 국제 수준에 근접했다

한국의 제조업과 건설업과 대중가요는 국제수준에 근접했거나 넘어섰다. 이 산업들은 자의든 타의든 일찍부터 국제경쟁에 노출되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중가요가 그렇다는 사실은 방금 설명한바와 같다. 제조업의 기업들도 비록 국내시장에서는 보호를 받았지만 국제시장으로의 진출을 하게 된다.

정부가 나가라고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수출금융을 받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외국시장에 나갔다는 것이다. 한국의 제조기업들은 경쟁력도 없는 상태에서 일본과 미국 등 해외시장 진출을 시작했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경쟁력을 쌓아갔다. 건설업 역시 마찬가지다. 중동의 오일달러를 벌기 위해 하청업체로 해외진출을 시작해서 결국 세계 최고의 건설기업으로 자라났다.

제조업과 건설업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국제경쟁에 노출되어 성공했다면 순전히 타의로 경쟁에 노출된 산업들도 많다. 서비스업들이 그렇다. 그런 이 산업들도 개방이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국내 소비시장을 가장 먼저 개방한 산업은 과자산업이다. 1970년대의 일이었는데, 해태 롯데 오리온 등 국내과자기업들은 모두 국내 과자산업이 붕괴할거라며 개방에 저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자산업쯤은 버려도 된다는 생각이 개방을 강행하게 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제과 기업들이 망한 것이 아니나 오히려 경쟁력이 강해져 본격적인 해외진출을 하게 된 것이다.

우선 경쟁에 살아남기 위한 신제품들이 개발되었다. 74년 ‘초코파이’(오리온), 75년 맛동산(해태), 79년 빠다코코낫(롯데), 80년 포테토칩(농심), 82년 홈런볼(해태), 84년 버터링(해태) 등의 신제품 과자들이 그것이다. 이렇게 경쟁력을 키운 기업들은 해외 진출을 시도하여 ‘초코파이’,

‘꽃게랑’ 등은 베트남, 러시아 중국 등에서 인기 품목을 만들어내기에 성공한다.

유통산업 역시 시장 개방 이후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의 유통산업은 매우 낙후되어 있었다. 동네 구멍가게 위주의 구조이다 보니 점포의 숫자는 많고 유통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유통마진이 높아서 산지가격과 소비자가격 간의 차이도 큰 고질적인 현상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수십년간 이런 상태가 유지되었는데도 외국의 경쟁력 있는 유통업체들이 국내에 진출할 수가 없었다.

 

◇ 10일(현지시간) 파리 제니트 공연장에서 열린 SM 타운 라이브 공연에서 한 한류팬이 태극기 옷을 입고 하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급격한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유통시장이 외국업체에 개방되면서부터이다. 1996년 1월 유통시장의 개방과 더불어 네덜란드계 마크로, 프랑스계 까르푸가 문을 열었다. 1998년 7월에는 드디어 세계최대 유통기업인 미국 월마트가 마크로를 인수해서 경쟁에 뛰어들었다. 세계 1위인 월마트, 2위인 까르푸에 이어 3위인 영국계 테스코도 삼성과 합작, 홈플러스란 브랜드로 한국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에 가세했다.

개방 당시 한국의 유통은 그야말로 유치산업이었다. 그러나 세계최강 유통 기업들과의 경쟁은 한국 기업들로 하여금 환골탈태의 변신을 시도하게 만들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와 홈에버는 제각각 가격을 낮추고 소비자의 마음을 잡는 방법을 강구하기에 이르렀고 10년도 안된 2006년 월마트는 이마트에게, 그리고 까르푸는 홈에버의 이랜드 그룹에게 모든 점포를 넘기고 사업에서 철수하게 된다. 유치산업으로 출발한 한국의 유통업체들이 세계 최강의 유통기업들과의 경쟁을 이겨낸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오랜 기간 동안 국제경쟁에 노출된 산업은 대부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 한국 현대경제사의 교훈이다.

법률과 의료와 농업의 낙후

국제경쟁에 노출된 산업이 국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과 대조적으로 세계와 담을 쌓고 국내 시장에만 머물러 있던 산업들은 대부분 낙후된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법률, 의료, 학교 등의 분야는 세계에 내놓기 민망할 정도다. 외국의 로펌들이 들어올 경우 한국 로펌이 모두 망한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은 바로 경쟁력이 없음을 실토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 역시 외국 의사나 외국 병원들이 국내에서 영업하는 것을 극렬히 반대한다. 우리보다 의술이 뛰어난 나라에서 받은 의사면허도 우리나라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고도 한다.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외국 학교의 진출을 허용하자는 계획에 대해 귀족 학교가 출연하게 된다는 등의 반대 이유를 대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그 쪽으로 학생들이 몰리고, 또 기존의 학교들과 비교가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산업들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학교 시절 성적이다. 지금은 삼성전자에 들어가기가 무척 어렵지만, 예전에는 그렇게 어려운 직장이 아니었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던 79년만 하더라도 웬만한 공대를 나온 사람이면 삼성전자에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고졸 출신도 많았다. 현대중공업 같은 곳은 더욱 입사가 쉬웠고, 그런 만큼 사원들의 평균 학력이나 학교 때의 성적도 낮았을 것이다. 그리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세계 초일류 기업들이 탄생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는 의료와 법률서비스 분야는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차지였다. 머리도 좋고 노력도 많이 하는 학생들만이 법대와 의대를 갈 수 있었다. 특히 판검사나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법고시를 통과해야 했는데, 초기에는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려웠다.

사법고시 통과자의 지적 수준이 최고일 것임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한국 법률 산업의 세계적인 위상은 대중가요, 과자산업, 삼성전자, 현대중공업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뒤쳐져 있다. 법률만큼은 아니지만 의료 역시 훌륭한 인재를 가지고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은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보호는 안일한 태도를 만들어내고, 그런 태도는 뛰어난 재능조차도 무력화시킨다. 농업 역시 철저히 보호된 산업이었다. 쌀은 아예 수입을 금지해왔으며, 다른 농산물들도 높은 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농업이 발전했다는 증거는 없다. 농업은 가장 낙후된 산업으로 남아 있다.

한국의 제조 및 건설 기업들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구성원들을 가지고 초일류 기업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세계 시장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개방하는 것이 현명하다

장하준은 FTA를 조롱하면서 자조적으로 상대방이 열든 안열든 스스로 여는 것이 자유주의에 부합한다고 제안한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는 그의 조롱 섞인 그 말이 옳음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자의든 타의든 국제경쟁에 노출되었을 때 우리 산업들의 경쟁력은 획기적으로 높아져왔다.

삼성전자가 환골탈태를 통해 소니를 넘어선 것은 수입선다변화 정책의 폐지로 인해 일본 가전제품이 무방비로 들어오게 될 즈음이었다. 한국 영화가 발전의 전기를 잡은 것은 외국영화 직배가 허용되면서이고, 현대자동차의 변신도 외국차들의 보급이 늘어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자원이라고는 없는 홍콩이 아시아의 어떤 나라보다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스스로 개방을 택했기 때문이다.

답은 분명하다.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 스스로 문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선진국이 보호주의로 성공했다고?

장하준은 그의 출세작인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사다리>란 보호무역과 유치산업 보호, 산업지원 정책 같은 것들이다. 지금의 선진국들은 과거에 그 사다리를 타고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와 놓고 이제와서 후진국들이 사다리를 오르려고 하니까 그것을 걷어차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논리는 <23가지>에서도 빠짐없이 반복되고 있다.

선진국 중에서도 특히 자유무역의 본산을 자처해온 미국과 영국 역시 보호 무역으로 성장을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자유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사실 지독한 보호무역주의자였으며 노예제를 찬성한 남부가 오히려 자유무역을 지지했다고 한다. 장교수가 보기에 미국은 보호무역으로 성장한 나라이다.

영국 역시 마찬가지란다. 로빈슨 크루소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다니엘 디포의 논문을 인용하면서 영국의 모직물 산업은 보호무역을 통해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영국과 미국이 보호무역을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이 나라들이 발전했던 것은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19세기 까지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호주의에 기반한 중상주의 정책을 폈다. 자유무역은 도시국가에서나 하는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보호주의를 했던 것이 프랑스였다. 만약 보호주의가 좋은 정책이라면 프랑스를 비롯한 모든 나라들이 다 경제성장을 경험했어야 했다. 보호주의가 발전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보호주의에도 불구하고 다른 경로를 통한 경제적 자유와 시장의 확대가 선진국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을 보자. 19세기 중 미국이 관세를 높게 유지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 시절 미국의 왕성한 경제성장이 관세 때문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철도였다. 광대한 미국의 땅이 철도로 연결되면서 시장은 통합되어 갔고 지역간의 교역은 폭발적으로 늘어갔다. 서로 오갈 수가 없어서 실질적으로 외국이나 다름 없던 지역들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어 갔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미국은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자유기업의 나라였다. 록펠러(석유)와 밴더빌트(철도), 카네기(철강), 에디슨(전기), 알렉산더 그래험 벨(전화) 같은 기업가들이 기업을 만들고 돈을 벌었다. 철도의 부설로 시장이 통합되어 갔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기업가 정신이 왕성하게 발휘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외국과의 교역에 대한 높은 관세는 오히려 자본축적을 저해해서 발전의 과정을 방해했다.(주1) 19세기의 미국은 높은 관세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한 것이지 높은 관세의 덕을 본 것이 아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나라들의 성장 역시 그렇다. 중세 시대에는 유럽의 땅이 수많은 영지나 왕국들로 조각나 있었고 각 나라들은 저마다 중상주의 정책을 폈다. 인구의 이동도 물자의 이동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민족국가의 등장으로 인해 지리적 통합이 이루어져 갔고 지역마다 부과하던 통행료 같은 장벽들이 없어져 시장이 확대되어 갔다. 이는 지역 간의 무역이 자유화되는 과정이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시장이 확대되어야 하는데, 나라 안에서의 지역간 교역이 확대되어 갔기 때문에 비록 높은 관세로 다른 나라와의 교역이 지장을 받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경제성장은 이루어질 수 있었다.

 

◇ GDP에 대한 수출 상품의 비율 
표1(주2)은 세계 GDP에 대한 수출 상품의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시작할 무렵인 1820년대는 수출의 비중이 1%에 불과했고 50년이 지난 1870년대에도 5%에 미치지 못했을 정도였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100년 또는 200년 전의 경제발전을 보호무역 유무만을 가지고 설명하다보면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경제발전은 무역의 개방 정도만이 아니라 정치적 안정, 사회의 분위기 등 수많은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지만 국내이든 국외이든 교역의 자유가 늘어날수록 성장이 촉진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경제성장에 있어서 보호 무역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200년 전의 상황이 아니라 교역의 비중이 훨씬 높아진 현대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다.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연구로는 Dollar와 Kraay의 것이 있다.(주3) 이들은 개발도상국 중 1980년대부터 시장개방(관세를 낮추는 등)을 시작한 나라들(그룹 1)과 개방에 소극적이었던 나라들(그룹 2), 그리고 선진국(그룹 3)(주4)을 비교해서 시장개방과 세계화가 각 나라의 경제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했다.

결과는 장 교수에게는 실망스러운 숫자들을 담고 있다. 개방에 적극적이었던 그룹1은 1980년대에 관세율을 22 퍼센트 포인트 내린 반면 그룹 2는 10% 내리는 데에 그쳤다. 만약 높은 관세율이 성장의 원동력이라면 관세율 인하폭이 작은 그룹2의 성장률이 더 높아야 한다. 그런데 실제 나타난 결과는 그 반대이다. 그룹1의 1990년대 1인당 소득 성장률은 5.0%인 반면 그룹2는 1.4%에 불과했다. 선진국들로 구성된 그룹 3은 2.2%였다. 1인당 소득 성장률을 기준으로 봤을 때 그룹 1 > 그룹 2 > 그룹 3 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Dollar와 Kraay는 여러 가지의 통계분석방법을 통해서 이 숫자들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이 숫자가 말해주는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관세 인하를 비롯한 무역장벽을 낮춘 나라는 더 높은 경제성장을 성취한다. 둘째, 적극적 개방정책을 편 개발도상국은 성장률이 높기 때문에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혀 나갈 수 있지만, 개방에 소극적인 개발도상국들은 성장률이 낮기 때문에 선진국과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져 간다. 보호무역이 개발도상국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장교수의 주장이 틀렸음을 말해주는 결과다.

보호무역을 옹호하기 위해 장교수가 채택한 방법은 자신의 주장에 맞는 구체적 사례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매우 불완전하며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내기 십상이다. 어느 나라에나 경찰이 존재하고 동시에 범죄자도 존재한다. 그같은 상관관계에서 기초해서 경찰 때문에 범죄가 생긴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분명 잘못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 대부분의 나라가 어느 정도의 보호무역을 하고 있다. 때문에 보호무역을 하는지 안하는지의 여부만을 가지고 보호무역의 효과를 측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보호 정도의 차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최신의 연구 결과는 관세를 낮추는 등 보호의 정도를 낮출 때 성장률이 높아짐을 말해준다. 보호무역 때문에 경제가 발전한다는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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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 Irwin. Tariffs and Growth in Late Nineteenth Century America." The World Economy 24 (January 2001): 15-30.
2. Angus Maddison (2001): The World Economy: A Millennial Perspective, Paris: OECD, p. 22. Julian Morris, Just Trade: The Moral Imperative of Eliminating Barriers to Trade, International Policy Network, 2005, p. 12에서 재인용.
3. David Dollar and Aart Kraay (2004): “"Trade, Growth and Poverty,”"The Economic Journal, Vol. 114:493, pp.F22–-F49(1)
4. 한국, 대만 같은 나라들은 선진국에 포함되었다.

 

글/김정호 자유기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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