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가격’ 대박…공룡들도 ‘거품’ 뺄까
[1017호] 2011년 11월 09일 (수) 15:58:06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양분하고 있던 TV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27일 이마트가 49만 9000원이라는 획기적인 가격에 32인치 풀 HD LED TV ‘이마트 드림 뷰’(이마트TV)를 출시했기 때문이다. 이마트TV가 등장하자마자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마트 전국 매장의 하루 평균 TV판매량인 200대를 기준으로 계산해 3개월 물량을 준비했지만 출시 3일 만에 매진된 것이다. 매진 후 예약 물량만 해도 3500대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유통혁명’이라는 평가까지 내놨다. 반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불편한 심기를 감추진 못하는 모습이다. 이마트TV가 불러온 제조업 지각변동 속으로 들어가 봤다.
이마트TV에 대한 기대이상의 폭발적인 반응에 회사 측은 “기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마트 관계자는 “2012년 말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는 것과 관련해 국내에서 디지털 TV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판매중인 대기업 제품들은 상당히 고가라 구입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소비자들이 많다”면서 “이마트TV가 이런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마트TV는 비슷한 사양의 삼성전자, LG전자 제품보다 40%가량 저렴하다.
이 관계자는 또 “이마트TV는 대만의 전자업체인 TPV에서 OEM(주문자상표부작생산) 방식으로 생산한 제품이다. 가격대비 품질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순식간에 물건이 품절됐다. 32인치인 만큼 세컨드 TV나 모니터 기능으로 사용하기 위해 구입한 소비자가 많았다”고 밝혔다. 특히 저가 TV 수요가 있는 당구장이나 목욕탕, 터미널 대합실, 병원, 군부대 등에서 싹쓸이 구매를 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번 이마트TV의 ‘흥행’으로 한편에서는 입체(3D) TV, 42인치 대형 TV도 곧 출시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지만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언젠가 3D TV나 대형 TV를 판매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고려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늦어도 내년 1월까지는 추가물량이 입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추가 물량은 지난 1일까지 예약을 받은 3500여 대를 포함해 5000여 대가 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국내 TV시장의 98%를 점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공식적으로는 ‘이마트TV 돌풍’에 “관심 가지고 지켜볼 상황은 아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여러 정황상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최근 TV 판매 부진과 시장이 포화상태라고 말해오던 대기업들의 담합행위까지 드러나 불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 2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은 2001년 경 공급초과로 인해 LCD패널 가격이 급락하자 담합을 시작했다. 이후 6년간 패널 가격과 공급량을 담합해오다 적발돼 ‘국내 역대 최대 규모의 국제담합’이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자진신고자 감면(리니언시) 제도를 통해 과징금 972억 원 전액을 면제 받아 업계로부터 ‘밀고자’라는 원망도 듣고 있다. 이 때문인지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마트TV 품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물론 “반짝 인기에 그칠 것”이라며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와중에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 사업본부장인 권희원 부사장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마트TV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2일 권 부사장은 고려대에서 열린 LG전자 채용 특강에서 “이마트TV가 출시된 뒤 우리도 연구소에서 제품을 구매해 다 뜯어봤는데 품질이 많이 떨어졌다”며 “사고 나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또 “싼 제품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 같으면 안 산다”는 개인적인 의견도 서슴지 않았다. 마지막엔 “(LG전자도 저가 TV를) 준비해 왔고, 지금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삼성전자 측은 “이마트TV와 우리 제품을 자세히 비교해보지 않았다. 회사 전반적으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고 말했으나 “TV가 저렴하기만 해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순 없다. 부품뿐만 아니라 영상조합 등 노하우는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기업이란 장벽에 막혀 시장 진출이 어려웠던 중소기업들은 대체로 “새로운 유통구조를 시도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는 반응을 보였다. 32인치 LCD TV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관계자는 “유통업체가 다양한 판로를 통해 TV를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커다란 변화다. 그러나 이마트TV가 대만에서 들어온 것이라 당장 국내 중소기업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솔직히 아직까지 피부로 체험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앞으로 이마트TV 등장으로 인한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되기에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마트TV 출시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자유기업원 관계자는 “이마트TV는 유통혁명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사실 국산 제품의 인터넷 판매가격과 비교하면 그렇게 저렴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곧 중국산 TV 등 값싼 외국 제품들이 몰려 들어올 텐데 이에 앞서 이마트가 가격하락을 주도하고 경쟁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유통 전문가도 “국내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이마트TV 돌풍을 보며 저가 TV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악했을 것이다. 이는 곧 가격 거품을 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잠재적인 소비를 현실화시킬 수도 있다”며 “침체된 내수를 활성화시켜 경기가 살아나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마트TV는 유통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패널 등 TV를 구성하는 부품들이 대부분 외국기업이라는 점에서 국내 부품공급업체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또 이마트TV의 수요 대체군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제품이 아니다. 이마트TV처럼 해외에서 만들어진 제품이 계속해서 공급된다면 오히려 중소기업 시장이 잠식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현재 국내 LED TV 시장의 경우 40인치 이상 제품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대기업의 제품이 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하의 사양을 중소기업들이 공급하고 있는데 이는 TV시장의 5~10%를 차지하고 있다. 이마트TV를 계기로 TV 시장에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날지, 또 다른 제조업 시장까지 파급력을 미칠지 주목된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중기 살리는 ‘대규모 유통업법안‘ 왜 논란?
중기 ‘밥줄 끊길라‘ 소비자 ‘가격 뛸라‘
지난 10월 28일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대형유통업체들과 소규모 납품업체 간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대규모 유통업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내년 1월 1일 시행될 예정이다. 그동안 공정거래위원회 내부 고시로만 규제해온 대규모 유통업자의 불공정행위는 내년부터 개별법으로 규제하게 돼 훨씬 더 강력하게 단속, 제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법에 따라 대형유통업체가 중소기업에게 배타적 거래 강요, 경영정보 제공 요구, 보복조치를 하거나 시정조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과징금은 물론 최고 2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 등 형사처벌도 받게 된다. 또 상품대금 감액, 상품수령 거부·지체, 상품의 반품, 경제적 이익제공 요구, 상품권 구입요구 등에 대해선 대규모 유통업자가 정당성을 소명·입증토록 책임을 부여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중소기업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련됐다.
그러나 법안이 통과되자 유통업계는 물론이고 중소기업까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백화점협회 측은 “큰 파장을 몰고 올 법안인데 상임위에서 겨우 하루만 논의하고 통과시키는 등 너무 순식간에 처리돼 당혹스럽다. 사안이 심각한 만큼 전문가들과 상의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10월 24일 한국백화점협회와 한국온라인쇼핑협회, 한국체인스토어협회, 한국편의점협회, 한국TV홈쇼핑협회, 유통업계 5개 단체는 ‘대규모 유통업법안’ 제정에 반대하는 청원서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제출했다. 때문에 국회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 있었지만 10월 27일 법사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법안을 가결해 국회로 넘겼다.
백화점협회 관계자는 “모든 문제점을 유통업계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에게도 이 법안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당장 내년 법이 시행되면 계약기간이 만료된 중소업체들을 내쫓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도 살아남아야 하는 입장인데 중소기업 제품보다는 검증된 해외상품, 라이선스가 있는 제품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중소업체 관계자들도 “좋은 취지로 법이 마련된 것은 맞지만 오히려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생색내기용 법안이다. 우리가 유통업자라도 문제발생 소지가 낮은 대기업과 거래를 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자유기업원 관계자 역시 “당장 피해를 보는 쪽은 대형유통업계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중소기업과 소비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유명 브랜드나 자리를 잡은 중견기업들은 자신들만의 전문매장을 가지고 있지만 중소업체들은 유통업체를 통해야만 물건을 판매하고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계약관계를 불편하게 만들면 중소업체가 피해를 입는 것은 당연지사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유통과정 경직성 때문에 중간마진도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다. 이는 곧 제품가격상승으로 이어지며 고스란히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소기업도 경쟁이 있어야 발전하고 힘을 가지는데 ‘대규모 유통업법안’은 이를 방해한다. 이번처럼 제3자가 한 쪽에 압력을 가하는 것은 시장경제원리에도 위반된다. 정부는 유통업체, 중소기업 모두 발전할 수 있는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공정위는 “법률 제정 전 대형유통업체 실무진과 여러 차례 간담회를 열어 이견을 좁힌 상태였기에 크게 문제될 부분은 없다고 본다. 유통업체 측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해서 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법 제정 이후 중소기업 현장 목소리를 들어봤는데 대체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며 “혹시나 문제될 부분이 있으면 후속 시행령 개정을 통해 업계나 국민의 목소리를 담을 것이다”고 보탰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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