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부채 탕감·행정수도 이전…급조된 정책피해 국민이 떠안아
올핸'청년票 겨냥 정책'남발될듯
◆ 2012 신년기획 / 추방! 표퓰리즘② ◆
2번의 공사 중단 끝에 20년 만에 완공된 새만금 방조제, 쌀 시장 개방 반대 공약을 지키라며 시위에 나선 농민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는 헌법재판소,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반대 시위.
매경 포퓰리즘정책감시단이 1987년 직선제 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선거 공약을 분석한 결과 선거 공약 중 상당수가 유권자 표심을 겨냥해 급조된 정책으로 파악됐다. 국정 어젠더보다는 표심 얻기에 급급한 공약이 난무하면서 정치 지도층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추락시키고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역대 표퓰리즘 공약들은 정권 출범 이후 대부분 보류되거나 폐기됐고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을 가속화하는 결과도 초래했다.
16대 대통령선거를 불과 3개월 앞둔 2002년 9월 30일.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낙후된 지역경제 발전을 이유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놨다.
수도 이전 대상 지역인 충청권은 '뜻밖의 선물'에 환호했고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은 "허를 찔렸다"며 자중지란을 겪었다.
노 후보는 역대 집권당의 표밭이었던 대전, 충북, 충남에서 51~55% 지지를 받으며 영남ㆍ강원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치 평론가들은 "당시 여당 이회창 후보가 충남 예산에 지역 연고를 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선거 공약이 지역 연고를 앞지른 이례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도 청와대에 입성한 이후 "(행정수도 공약으로) 지난 대선에서 재미를 좀 봤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행정수도 이전은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면서 비용이 당초 6조원에서 45조6000억원대(한나라당은 73조원 주장)로 늘어났다.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는 등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당초 계획(12부4처2청 49개 기관)보다 축소된 9부2처2청 35개 기관으로 이전 대상이 결정됐다.
지역균형 개발이라는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행정수도 이전은 △국민적 의견 수렴 절차가 생략됐고 △대선 직전에 발표돼 특정 지역 표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국가경쟁력에 미치는 효과가 불투명한 데 비해 △천문학적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분석이 더 우세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지역 개발 공약이 불발되며 국정 운영에 발목이 잡힌 사례다.
이 대통령은 동남권 신공항, 충청권 과학벨트 조성, 7ㆍ4ㆍ7 공약(성장률 7%ㆍ소득 4만달러ㆍ세계 7대 강국 진입) 등 자신이 내건 선거 공약을 임기 중 잇달아 폐기ㆍ축소하며 이들 공약이 선거용으로 급조된 포퓰리즘 정책이었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했다.
이 대통령의 대표적인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 건설도 수많은 논란 속에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상처를 주고 국력만 낭비했다.
대운하는 당초 4년 동안 14조~17조원의 건설 비용이 투입되고 최대 70만개 신규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제시됐다.
하지만 공사기간은 10년 이상, 비용은 40조원 정도가 필요하고 일자리 창출도 한시적인 것에 그치며 환경오염과 땅값 상승 등 부작용이 더 크다는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추진 동력을 잃어버렸다.
한반도 대운하 공약이 끝내 불발됨으로써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 추진력에도 급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최창규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사회 양극화, 고용 불안 추세를 감안하면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는 표심을 겨냥한 포퓰리즘 공약이 역대 선거 가운데 가장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황근 선문대 교수(언론광고학)는 "올해 선거에선 당락에 영향이 큰 20ㆍ30대를 겨냥한 공약이 남발될 가능성이 크다"며 "대학등록금 인하나 청년 일자리 창출 등 근거가 불분명하고 재정 부담만 늘리는 인기영합식 공약을 유권자가 잘 구분해 투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직선제가 처음 도입됐던 1987년 말 13대 대선 이후 포퓰리즘 공약은 갈수록 더 늘어나며 국가경쟁력 하락과 국론 분열을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내각제 개헌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이 공약 역시 'DJP 연합(김대중+김종필)'으로 충청권의 표를 의식한 공약이었다. 내각제 개헌이 실제로 추진됐다면 엄청난 국론 분열과 제도를 바꾸는 데 따른 막대한 비용이 초래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 전 대통령은 '농가부채 탕감' 공약도 지키지 못해 2000년 전국적인 농민 시위를 촉발한 계기를 제공했고 복지 예산 30% 증액, 1인당 소득 3만달러 등과 같은 경제 공약도 대부분 이행되지 못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법학)는 "농민 표심 공약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이슈"라며 "2014년까지 시한이 정해진 쌀 시장 개방 유예 조치가 올해 선거 이슈로 새롭게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예상했다.
이에 앞서 김영삼 전 대통령도 쌀 시장 개방 절대 불가라는 공약을 내걸었다가 1993년 12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쌀 시장이 개방되자 국무총리가 사퇴하는 등 국정 혼란을 초래했다.
당시 김영삼 후보가 내건 농어촌 구조 개선에 42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공약은 농촌 지역 표심을 겨냥한 대표적인 퍼주기식 공약으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직선제 도입 후 처음 당선됐던 노태우 전 대통령도 임기 중 중간평가를 내걸었지만 3당 합당을 통해 이를 파기했다.
호남표를 겨냥했던 새만금간척사업은 1991년 시작됐지만 초기 시행 과정에서 두 번의 공사 중단을 겪으면서 20년이 지난 2010년 간신히 방조제 기초공사가 완공된 바 있다.
노태우 당시 후보는 동서고속철도를 비롯해 경인운하, 인천ㆍ청주 지방 신공항 건설 등 대형 국책사업을 통해 표심을 움직인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정도범 자유기업원 연구위원은 "역대 대선에는 인천공항이나 금융실명제 등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약도 있었다"며 "인기영합식 공약과 장기적인 비전을 가려내는 것은 결국 유권자들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채수환 기자 / 김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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