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포퓰리즘 감시단은 신년 좌담회를 열고 대표적인 포퓰리즘 공약들을 선정했다. <이승환 기자>
올해 4월 총선, 12월 대선에서 대형 국책사업이나 지역개발 선거 공약은 역대 선거에 비해 다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유권자 의식이 성숙한 만큼 무분별한 지역개발 공약이 선거전 득표와 직접 연결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복지ㆍ교육ㆍ농업 분야에 대한 퍼주기식 공약이나 명확한 근거 없는 일자리 창출 공약, 대기업이나 부자 때리기 등 특정 계층을 겨냥한 인기 영합 공약들이 선거전 이슈를 대거 선점할 것으로 전망됐다. 매경 포퓰리즘 감시단은 신년 좌담회를 열고 올해 총선ㆍ대선에서 유권자들이 잘 판단해야 할 포퓰리즘 공약들을 선정했다.
◆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일자리 만드는건 기업…정치 공약은 궤변일뿐"
일자리라는 것은 경제 성장의 결과물이다. 기업들이 자체 판단에 따라 고용을 늘리는 것이지, 정치인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정치인들은 2만개, 5만개 등 구체적인 숫자까지 제시하며 고용 창출을 주장한다.
젊은층 고용 상황이 악화되고 있어 올해 선거에서는 이 같은 유형의 공약들이 난무할 가능성이 크다. 명확한 근거가 없는 일자리 창출 약속은 젊은층 유권자들이 잘 검증해야 할 대표적인 포퓰리즘 공약으로 간주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마찬가지다.
수출 시장에서 경쟁하는 한국 기업들이 비정규직의 상당 부분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도 현재와 같은 제품ㆍ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현재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경우 평균 239만원, 비정규직은 135만원이다. 정규직은 강력한 노조의 힘으로 고용 안정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시장의 경직성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기업들과 사전 논의 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정치권 주도로 추진될 경우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고 생산기지가 해외로 이전되는 등 고용 사정이 오히려 더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기업이나 사회서비스 등 공공무문 일자리 확대도 고용 문제의 해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거시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기업투자가 활성화되도록 투자환경을 개선하는 길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획기적인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가 선행돼야 한다.
◆ 김정래 부산여대 교육학과 교수 "사교육비ㆍ반값 등록금 실현 가능성 따져봐라"
선거가 존재하는 한 인기영합식 공약, 대중을 자극하는 선동식 논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서민이나 영세기업 등 약자층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편가르기식 논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선거 공약의 옥석을 가려내고, 표를 통해 심판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올해 총선ㆍ대선에도 약방의 감초와 같은 사교육비 공약이 또 등장할 것이다. 역대 선거에서 사교육비 대책이 무수히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공교육을 정상화시키는 데 실패했다.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단편적이고 대중영합적인 정책들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이다.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공약은 교육 평준화 제도가 전면적으로 수정되지 않는 한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반값 등록금 공약도 선거전을 선점할 수 있는 이슈다. 젊은층 표심이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여야가 너나없이 반값 등록금과 비슷한 유형의 공약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국가 재정이나 대학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등록금을 획일적으로 낮추면 걷잡을 수 없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교육 분야는 유권자들의 관심이 가장 큰 분야 중 하나다.
인기영합식 포퓰리즘 공약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정확한 감시와 선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사교육비를 깎겠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절차를 통해 정책이 이뤄지는지, 반값 등록금에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될 수 있는지 유권자들이 면밀하게 따져본 다음 투표에 나서야 한다.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고소득층ㆍ대기업 겨냥 징벌적 조세 경계해야"
서민ㆍ중산층의 표심을 의식해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을 겨냥한 징벌적 증세 공약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작년 말 국회를 통과한 부자 증세의 경우 실제 조세 수입은 6000억원 정도다.
지난해 기준 국세가 230조원 징수된 점을 감안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우리가 서민을 대신해서 부자들의 세금을 더 걷고 있다"고 이를 선거전 이슈에 이용할 것이다.
조세부담률이 높은 나라는 대부분 간접세가 더 많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부자들로부터 직접세를 더 걷어야 한다며 정치권이 최고소득구간을 신설했는데 이는 경제ㆍ조세적인 효과를 노렸다기보다는 상징적 조작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법인세나 증여ㆍ상속세를 더 올리자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서민층이나 자영업자들에게는 달콤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 경제에는 심각한 부작용을 미칠 수 있다.
기업 활동을 지원하고 외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법인ㆍ증여세율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는 법인세 감면 과세표준 상한선을 200억원 이하로 강화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그 결과 200억원 초과~500억원 이하 구간에 들어 있는 453개 중견기업들이 22%의 높은 세율을 적용받아 연평균 2000억원의 세금을 더 내게 됐다.
가업 상속의 공제율과 공제한도도 각각 70%와 3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영세 소규모 기업이 아닌 창업가문 2, 3세는 최고 50%(대기업은 65%)의 징벌적 상속ㆍ증여세를 내야 기업을 승계할 수 있게 됐다. 유럽 각국이 기업 승계를 통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조치라고 말할 수 있다.
◆ 최원목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쌀시장 개방유예 공약…농촌 표심 뒤흔들 우려"
농촌 지역 유권자들에게 가장 큰 선거 이슈는 시장 개방 협상이다. 이명박 정부가 유럽, 미국, 중국 등과 다각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진행해 왔기 때문에 올해 총선ㆍ대선에서 농촌 지역의 표심을 겨냥한 다양한 유형의 '농촌 달래기' 공약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우려되는 공약은 쌀시장 개방을 추가로 유예하는 주장이다. 얼핏 듣기에 따라서는 '시장 개방으로 인한 농촌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정치권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쌀 개방(관세화) 유예에 대해 2014년까지만 허용하도록 쌀 수출국과의 다자간 협상에서 이미 합의를 마쳤다. 2004년 말 추가 유예 협상을 개최해 10년간 더 유예를 받았기 때문에 오는 2014년 그 시점이 종료되는 것이다. 우리가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국제사회의 신뢰를 손상하면서 추가 유예를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설령 추가 협상이 실현되더라도 관세화를 유예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양보, 예를 들어 의무수입물량 등을 협상 당사국에 제시해야 한다. 경제적인 득실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낮은 관세율(5%)로 수입되는 의무수입물량 때문에 국내 쌀값이 하락하고 정부의 보관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의무수입물량이 늘어나게 되면 이는 우리 농가의 피해를 더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와 약속한 대로 의무수입물량을 동결하고 300~400%의 관세를 수입쌀에 부과하는 것이 우리 농업의 보호를 위해서 장기적으로 더 필요한 조치가 될 것이다. 농민들도 이 같은 상황을 잘 인식하고 일부 정치인들이 제기할 것으로 보이는 시장개방 유예 공약을 잘 판단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채수환 기자 / 김은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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