票퓰리즘 정책에 시장이 죽어간다①
불지른 카드 수수료 분쟁···심판이 승부조작 하는 격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올해는 4월 국회의원 선거와 12월 대통령 선거 등 양대 선거가 있는 해이다. 그래서인지 올해 초부터 온갖 선심성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른바 포퓰리즘이다. 대중의 인기영합주의에 물든 이같은 정책들은 시장질서를 무너뜨려 우리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장이 죽어가고 있다. 아니 시장이 원활히 돌아가지 못해 신음하고 있다. 자율적 결정으로 돌아가야 할 시장시스템을 어느 한쪽에서 인위적으로 힘을 가해 균형이 무너지면서 시장경제가 삐걱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입법이라는 막강권한을 가진 정치권이 표(票)만을 의식한 선심성 정책을 양산하면서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결국 이같은 흐름은 시장을 왜곡하고 약화시키는 암적 요소가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최근 남발되는 포퓰리즘 정책 중 대표적 사례로는 카드수수료 인하와 저축은행 특별법을 들 수 있다. 유통업계의 큰 고민으로 다가온 ‘대형마트와 SSM의 지방 중소도시 5년간 진출금지’ 법안 제안도 예외가 아니다. 결국 이렇게 시장을 고사시키는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을 경계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경제지식인 100명이 모여 ‘선심성 공약 남발을 우려하는 지식인 선언’을 발표했다.
박동운 단국대 교수, 최광 한국외대 교수 등은 시국선언을 통해 “여야의 선심성 퍼주기식 공약 남발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재원 조달의 대책없이 막무가내로 재정 지출을 늘리게 되면 필연적으로 젊은 세대들의 세금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선언문은 이어 “여야 정치인들은 인기영합적인 선심성 퍼주기식 공약 남발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가격 결정의 주체가 뒤바뀐 여신금융업법 개정안
최근 금융권의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여신금융업법 개정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카드수수료 문제다. 지난 9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여신금융업법을 통과시키면서 제18조의 3항을 신설했다. ‘신용카드업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규모 이하의 영세한 중소신용카드가맹점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정하는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해야 한다’라는 규정이다. 한마디로 일정규모의 중소 신용카드 가맹점에 대해 일반가맹점과의 차별을 두어 금융위원회가 정하는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금융권이 반발하는 이유는 금융위원회가 지정하는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하는 것이 결국 시장의 자율을 통제하는 법이라는 데 있다. 시장경제 아래 재화와 용역(상품)은 수요와 공급이 서로 균형이 맞는 곳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근본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자유기업원 최승노 대외협력실장은 “카드수수료 문제는 사업자간의 정상적인 협의에 의해 정해져야 할 일을 정부 또는 정치권에서 인위적인 가격통제를 하겠다는 그릇된 발상에서 비롯된 문제”라며 “이런 인위적인 가격통제 방식은 선진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후진적 방식이며 실질적으로 비용을 줄이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최 실장은 이어 “카드수수료 문제에서 정확히 짚어야 할 것은 특정 이익집단에게 유리한 정책은 매표행위의 또 다른 양식일 뿐”이라고 힐난했다. 예전처럼 직접 표를 사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이익집단에게 특혜를 만듦으로서 표를 구걸하는 것은 결국 매표행위와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다.
카드사 소상공인 갈등만 부추긴 최악의 선택
실질적 당사자인 카드업계와 소상공인단체는 갈등 차원을 넘어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들에게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카드업계는 정치권과 소상공인단체가 요구하는 수준인 1.5%까지 수수료를 낮출 경우 심각한 경영난이 필연적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카드업계 추산에 따르면 모든 업종에 일괄적으로 1.5% 수수료를 적용할 경우 연간 순이익이 2조6000억원 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지난해 신용판매실적 452조원, 전체 가맹점 평균 수수료율 2.0%를 적용해 추산한 것이다. 지난해 카드사들이 2조3000억원 가량의 순이익을 올린 것을 감안하면 당장 3000억원 가량 적자로 전환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론 등 각종 신용대출 규제가 강화돼 카드사들의 손실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업 여신금융협회 부장은 “이번 여신금융업법 개정안은 특별한 사유 없이 가맹점 수수료율을 차별하지 못하게 하고 대형 가맹점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카드사한테 부당하게 낮은 수수료율을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등 그동안 문제가 됐던 사항에 대해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전제하면서 “이 법안의 옥에 티라면 개정안 제18조의3 3항에 명시한 중소가맹점 우대 수수료율을 정부가 정한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는 오는 20일부터 대기업 카드사 한 곳을 지목, 가맹점 해지 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다. 연합회는 롯데, 삼성, 현대 등 3곳 카드사 중 한 곳을 반드시 퇴출시키겠다는 강경 입장이다.
전국자영업연합체도 20일부터 신한카드를 상대로 현장결제 거부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이 단체는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신한카드를 지목했다.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와 유권자시민행동은 “카드수수료율의 차별을 금지하는 카드법 개정안은 헌법 정신에도 부합한다”며 카드수수료 인하를 관철하기 한 궐기대회를 오는 22일 여의도에서 갖는다며 반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광 한국외대 경제학부 교수·전 보건복지부 장관
“원칙파괴 저축은행구제법 어이없다”
“경제운영의 기본원칙을 파괴하는 행위이자 실정법에 대한 위법을 자행하는 것이다. 저축은행의 예금자보호법으로 5000만원까지 보호한 실정법을 어기면서 지나간 경제행위에 대해 구제해주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인기영합주의 발상입니다.”
경제학자이자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최광 한국외대 교수는 카드수수료 문제나 저축은행 특별법 같은 여신금융업법 개정안은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특히 최 교수는 저축은행 특별법에 대해 “게임이 끝난 후에 경기규칙을 바꾸는 것 과 다를 게 없다”면서 “이런 것들이 바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시장경제를 교란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런 선심성 정책들이 예산을 낭비하는 요인”이라며 “정책을 입안할 때는 타당성이 있는가부터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타당성이란 비용보다 혜택이 커야 한다는 원칙과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 그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등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최교수는 이런 검토 없이 남발하는 공약이나 정책은 결국 재정을 악화시켜 남미나 유럽 일부 국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최 교수는 “현재 집행되는 예산에서도 낭비를 줄이면 많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며 “이런 재원으로 국민을 위한 정책들을 실행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시장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포퓰리즘 정책 개발에 힘을 기울이기 보다는 “현재 4%대에 머물고 있는 소득세를 외국과 비슷한 5~10% 정도로 현실화 하고 술, 담배, 기름에 부과하는 세금 등을 더 늘리는 방향으로 재원마련을 하면 국민이 원하는 복지정책을 실현 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이번 여신금융업법 개정안에 대해 “결국 헌법소원으로 가면 위헌의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가당착”이라고 지적하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오히려 침해하려는 악법을 만들고 있다”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한상오 기자 hanso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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