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옹호의 6가지 오류와 편견 [2012.03.05 제900호]
[이슈 추적 1] 재벌개혁 비판 넘어 그릇된 주장하는 보수언론 등 재벌 대리인들… 헌법을 부정하고 사실을 호도하는 궤변들
▣ 곽정수
여야 정치권이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 방안을 경쟁적으로 내놓자, 재벌의 로비단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맞대응 대신 외곽 지원 세력을 동원하는 우회 전략을 쓰고 있다. 그 주된 대리인들은 전경련이 지원하는 자유기업원, 자매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 그리고 친재벌 학자들과 보수언론이다. 그들의 주장은 개별 정책의 효율성 같은 부수적 비판 차원을 넘어 경제민주화, 양극화, 경제력 집중 등 재벌 개혁의 핵심 내용에 대한 인식에서 정치권이나 일반 국민과 큰 차이를 보인다. 그중에는 오류와 편견이 적지 않아, 자칫 국민에게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위험성이 있다. 대표적인 6가지 오류와 편견을 뽑아 문제점을 살펴본다.
» 전국유통상인연합회 회원들이 2월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동반성장위원회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통 생태계’를 왜곡하는 재벌의 개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겨레21> 탁기형
1. 경제는 민주화 대상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부정이다. 자유기업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와 민주화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경제민주화의 부정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헌법 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경제 균형, 소득분배, 경제권력 남용 방지 등 경제민주화를 위해 시장에 개입할 책임이 있다.
경제민주화 부정은 시대의 흐름에도 역행한다. 글로벌 사회는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 심화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주의에 이미 파산 선고를 내렸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의 화두는 미국 뉴욕 월가의 점거시위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었다. 친재벌론자인 이명박 대통령조차 2월23일 글로벌코리아 2012 기념사에서 “시장만능주의를 막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자유기업원의 누리집을 보면, 1997년 최종현 당시 전경련 회장이 설립 목적을 밝히고 있다. 바로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구현이다. 자유기업원은 헌법은 물론 자신의 존재 이유까지 부정하고 있다.
2. 재벌은 양극화와 무관하다?
둘째는 양극화에 대한 재벌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양극화는 재벌 개혁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김정호 자유기업원장은 한 방송토론회에서 “양극화는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간 격차 때문인데, 대·중소기업 간 문제로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의 실적이 좋은 것은 수출이 잘되기 때문이고, 중소기업의 실적이 안 좋은 것은 내수가 부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앙일보>의 한 논설위원도 시론에서 “양극화에 재벌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범은 세계화”라며 “일부 책임이 있다는 것과 주범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고 물타기를 시도했다.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거래는 양극화의 뿌리 중 하나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리한 납품단가 후려치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09년 삼성전자 LCD사업부의 부당 단가 인하 사건을 조사했을 때 그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삼성전자의 이익 중에서 협력업체의 납품단가 인하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이상이다. 재벌이 사상 최대 실적을 구가하는데도 납품업체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경제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며 신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친재벌 정책은 ‘낙수효과’(재벌이 잘되면 중소기업과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온다는 견해)가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다. 대표적으로 고환율 정책이 꼽힌다. 고환율 정책은 대기업에는 유리하지만 중소기업에 불리하다. 중소기업은 환율이 올라 원자재 수입 비용이 늘어나면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된다. 반면 대기업은 환율이 오르면 수출경쟁력에 더욱 유리하고 수익성이 좋아진다. 이렇게 고환율 정책은 양극화 심화를 초래한다. 또한 정부는 고환율 정책을 유지에 필요한 달러 매입에 사용하려고 연간 수십조원의 채권을 발행한다. 수조원에 달하는 채권 이자와 고환율에 따른 물가 상승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이명박 정부의 대기업·부자감세는 또 다른 양극화 심화 요인이다. 정부의 지원과 국민의 희생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재벌이 이제 와서 그 은혜를 모른다면 국가경제의 장남 자격이 없다.
3. 재벌 경제력 집중은 사실 아니다?
셋째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부정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국민경제의 균형발전을 저해하고 양극화를 심화하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우월한 힘을 악용해 불공정 하도급거래를 하고,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하며, 관행적 담합으로 소비자의 피해를 양산한다. ‘대마불사’라는 말이 있듯이 경영이 부실화할 경우 국가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를 높이고, 경제권력을 넘어 정치권력화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언론들은 흔히 재벌의 경제력 집중 사례로 재벌의 계열사나 자산, 매출, 순이익이 급증한 것을 꼽는다. 또 재벌을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하기도 한다. 2010년 20대 재벌의 매출액이 (명목) GDP의 74.8%나 차지한다는 식이다. 전경련은 이런 수치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어린이가 나이가 먹을수록 키가 커지고 체중이 늘어나듯이, 기업의 성장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국가경제 전체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GDP는 부가가치로, 매출과 성격이 다르다. 단순 비교는 정확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아쉽게도 재벌의 경제력 집중 여부를 한눈에 보여주는 통계 자료는 없다. 하지만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간접적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전체 법인세 신고 기업 30만여 개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이후 2010년까지 3년간 총자산 증가율은 연평균 11.4%다. 같은 기간 20대 재벌그룹의 연평균 자산 증가율은 18.6%로 훨씬 높다. 매출액 증가율에서도 전체 기업은 11.9%지만, 20대 그룹은 18%로 더 높다. 매출액순이익률도 전체 기업은 4.3%(세전 기준)지만, 20대 재벌은 22.9%(세후 기준)로 5배 수준이다. 성장성과 수익성 지표 모두에서 전체 기업의 평균치보다 재벌이 월등히 앞선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월29일 개최하는 재벌 개혁 토론회 발표자료에서 흔히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보여주는 지표인 일반집중도(상위 대기업이 국민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가 증가 추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정위는 가장 최근 조사 시점인 2008년의 경우 상위 100대 기업의 일반집중도(출하액 기준)가 51.1%로 2002년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 추세라고 밝힌다.
4. 재벌 개혁은 포퓰리즘?
넷째는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포퓰리즘이나 재벌 때리기라고 폄하하는 것이다. 현대그룹 출신이 사장인 <문화일보>는 사설에서 “정치인들은 표를 얻으려 대기업의 탐욕을 과장하고, 서민의 질투심을 자극한다”고 선동적 표현을 썼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여야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팽배하자 위기감을 느낀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생존하기 위해 대기업 때리기 포퓰리즘을 내세운다”고 주장했다. <서울경제>는 “정치권의 빗나간 대기업 때리기는 결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와 한국 경제의 후퇴를 자초할 것”이라며 재벌 개혁을 ‘마녀사냥’에 비유했다. <한국경제>도 칼럼에서 “초가삼간 태울 재벌 개혁”이라고 공격했다.
하지만 재벌 개혁은 대기업 때리기나 옥죄기가 아니다. 유종일 민주당 경제민주화특위 위원장은 “재벌 개혁은 기업을 죽이는 게 아니라 살리는 것”이라며 “총수의 전횡과 사익 추구, 경영권 세습 등 전근대적 재벌 지배구조에서 해방시켜 핵심 역량을 중심으로 국제 경쟁력을 키우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키우자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또한 재벌 개혁은 대·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함으로써 고용창출력을 높이고 분배를 개선해 경제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하자는 취지다. 재벌 개혁의 전도사로 불리는 김종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그동안 선거 전에는 재벌 개혁을 강조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흐지부지하는 일이 반복됐는데,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면 앞으로 포퓰리즘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지속적 재벌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5. 골목상권 붕괴는 재벌 탓이 아니다?
다섯째는 골목상권 붕괴는 재벌 탓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한 재벌 관계자는 “종합식품기업인 아워홈이 골목상권을 잠식한다는 비판에 따라 순대와 청국장 사업을 포기했지만, 지난해 관련 매출액은 고작 1억원과 2천만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자유기업원도 최근 방송 토론에서 “골목상권의 생계형 자영업자가 위협받는 것은 (재벌이 아닌) 대규모 프랜차이즈 때문”이라고 거들었다.
그러나 재벌의 골목상권 진출에는 두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연간 매출이 수십조∼수백조에 달하는 재벌이 주력사업과 연관성이 없는 구멍가게 사업까지 꼭 해야 하느냐의 문제다. 반도체·스마트폰·자동차를 생산하는 글로벌 대기업이 왜 커피·빵·매점까지 하느냐고 하면 재벌은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선진국의 대기업은 그런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삼성의 호텔신라가 커피와 베이커리 사업에서, 현대자동차의 해비치가 사내 매점 사업에서, 롯데가 베이커리 사업에서 각각 철수한 것은 재벌의 탐욕과 무절제라는 비판에 맞설 명분이 약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재벌의 골목상권 진출로 실제 중소기업이나 생계형 자영업자가 죽는 문제다. 중소기업연구원의 김세종 박사는 “대기업의 자판기, 외식업, 학원업, 자동차경정비업 등의 진출은 명백히 생계형 자영업자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또 대규모 프랜차이즈 중에는 재벌 계열도 다수다. 커피전문점의 경우 삼성 외에도 신세계 스타벅스, 롯데의 엔제리너스, CJ 투썸플레이스 등 재벌 계열이 한두 개가 아니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기업가는 하고 싶지 않은 사업도 국가를 위해 해야 할 때가 있고, 이익이 나는 사업도 결코 해서는 안 될 때가 있다.” 참으로 명언이다.
6. 재벌 개혁은 소비자 후생에 역행하나
여섯째는 재벌 개혁이 소비자 후생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자유기업원은 “재벌에 대한 사업 규제는 결국 더 싸고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를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정치권은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아닌 소비자 중심의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지극히 근시안적 접근이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을 방치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다 죽으면 해당 시장은 몇몇 대기업만 남는 독과점 상태가 된다. 독과점 산업은 담합이 발생할 위험성이 높아, 궁극적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진다. 공정위가 시장지배력 남용 가능성이 큰 산업으로 정유, 자동차 등 46개를 지정할 정도로 국내시장은 독과점이 이미 고착화돼 있다. 또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몰락하면 복지 예산이 증가하는데, 이는 결국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이어진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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