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자유주의 싱크탱크 새로운 ‘건축가’를 만나다

자유경제원 / 2014-04-01 / 조회: 2,032       미래한국
자유주의 싱크탱크 새로운 ‘건축가’를 만나다
[인터뷰] 현진권 자유경제원 신임 원장
2014년 04월 01일 (화) 11:12:43 이원우 m_bishop@naver.com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에 따라 팀의 역량은 달라진다. 2000년 자유기업원이라는 이름으로 분리 독립한 이래 2012년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할 때까지 자유경제원은 공병호 민병균 김정호 전원책 등 총 4명의 감독을 만나 대한민국의 자유시장경제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

아직 다수(多數)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미제스와 하이에크, 제임스 뷰캐넌의 이름을 인용하는 대학생들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일찍부터 그들의 저작을 소개해 온 자유경제원의 공로다. 이 가운데 자유경제원은 4월 1일 제5대 원장 현진권 체제를 맞이한다. 새 감독은 어떤 전술을 구상하고 있을까. 현진권 자유경제원 신임 원장을 만났다.

“자유주의 학자들 활동의 장 만들 것”

- 원장 취임 축하드립니다. 각오가 어떠신지요.

우리 사회에 경제학을 하는 사람은 이미 많아요. 그런데 소위 전문가들은 대부분 테크니션(technician)들입니다. 경제학에 여러 분파가 있지만 결국엔 자유주의(Libertarianism)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프레임이 깔려야 하는 것인데 이 사상을 전파해 나가는 데가 사실 없어요.

세금으로 운영되는 사회과학 관련 연구소가 20개 이상 난립했지만 제 역할을 못한다고 보고요. 기업이 설립한 연구소들도 상황을 미시적으로 보기 때문에 사상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결국 자유경제원이 유일한 기관이라고 볼 수 있어요. 자유주의 사상을 갖고 있는 학자들 50~60명 정도를 모아주는 허브죠. 제가 자유경제원을 맡으면서 하고픈 것도 결국엔 자유주의 성향의 학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 가용 자원은 이미 존재하고, 그걸 조직화하는 게 관건이라는 생각으로 취임을 맞고 있습니다.

- 학자들이 대중과 소통함에 있어서 그 매개는 결국 현안(懸案)이 돼야 할 텐데요. 마침 최근 규제개혁이 큰 화두로 떠올랐습니다만 이거야말로 자유경제원의 ‘전공’ 아닌가요?

그렇죠. 모든 정권이 규제를 철폐하려고 했지만 전부 실패했어요. 이 국면에서 결국 드러나는 건 전통적인 재정학과 공공선택론의 관점 차이죠. 정통 신고전파 경제학에선 규제 문제를 경제문제로 봅니다. 그러다 보니 구조문제를 무시하게 되고 큰 정부를 지향하게 되는 경향도 생기죠.

이 문제를 ‘철밥통 문제’로 보는 게 제임스 뷰캐넌을 위시한 공공선택(Public Choice)학파의 주장입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죠. 세금을 줄이고 정부를 ‘굶겨서’ 작게 만들면 철밥통을 챙기는 규모도 작아진다는 논리입니다.

- 좋은 말씀인데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원장님은 시장실패와 정부실패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정치 실패(political failure)’를 자주 언급하시는데요. “식물 국회가 동물 국회보다 낫다”는 말로 화제가 되기도 하셨고요. 그런데 정부를 작게 만드는 것도 결국 다시 정치로 돌아가서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이 과연 스스로를 굶기는 데 동의하는 자살 행위를 할까요?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다 보니 최종적인 논의의 차원은 유권자, 즉 국민들 개개인으로 귀결돼요. 정치는 국민의 아바타인 것이고 국민들 생각에 따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현명한 정치인을 기대하는 것보다 현명한 유권자를 기대하는 것이 온당하죠.

정치를 하나의 시장으로 봤을 때 수요의 측면을 담당하는 국민들의 수준이 상승하면 하나씩 하나씩 변해갈 거라고 봐요. 100%의 국민들이 전부 현명해질 필요도 없습니다. 51%만 돼도 많은 게 바뀐다는 거죠.

- 그런데 그게 또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똑똑한 국민을 만들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미래한국에서 하는 일이나 자유경제원이 하는 일이나 결국 목표는 그것 아닐까요? 똑똑한 국민 만들기. (웃음)

“반시장적 기업 당연히 비판 받아야”

- 이번엔 화제를 기업으로 옮겨보겠습니다. 자유경제원이 유권자 수준을 올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자유로운 기업환경 만들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가끔씩은 기업들이 오히려 반시장적인 행위를 하거나 심지어 시장을 불신하는 세력을 지원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롯데의 ‘백년전쟁’ 논란이나 한화의 성공회대 지원 같은 사례도 있고요. 이런 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심플하죠. 자유주의와는 관계없이 당연히 비판 받을 일입니다. 한국 대기업이 자유경제시장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저도 회의적일 때가 많습니다. 시장경제의 힘을 지켜야겠다는 공감대가 약해요.

사실 우리나라 기업발전사를 보면 길게 헤아려도 50년이거든요. 아직까지 일관된 담론의 지형이 형성되지 않은 거예요. 이제는 비판을 통해 자성하고 성숙할 수 있는 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봅니다. 대기업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도 많이 비판해줘야 해요.

다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하나의 개별기업 혹은 재벌 총수가 저지른 범죄나 비도덕적 행위를 보면 그 집단 전체를 욕하는 습성이 있어요.

교수나 의사, 심지어 성직자 중에도 문제 있는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게 그 집단 전체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버지니아 공대에서 한국인이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켰다고 해서 그게 한국인들 전체의 문제는 아닌 것처럼요. 기업이 폭력을 쓰거나 이상한 행동을 할 때 대기업 집단을 전부 문제시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한데 그건 분리될 필요가 있어요.

- 맞는 말씀입니다만 한국인들도 나름대로의 판단은 하고 있다고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재벌의 경우에도 창업주에 대해서는 공이 많다는 점이 인정되지만 2세 3세로 내려오면 본인들 스스로부터가 반시장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가 꽤 많아 보이는데요.

한편으로는 당연한 부분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어떤 사상이 됐든 그건 나름대로의 진통을 겪는 과정을 거치면서 개인의 내면에 성숙되는 것이거든요. 자아갈등이 있고 고민이 있어야 하는데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자아갈등을 겪을 여지는 많지 않겠죠.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다가 때 되면 유학 다니고 이렇게 살다 보니 하나의 굳건한 사상 체계를 성숙시킬 기회를 얻지 못한 거예요.

- 꼭 재벌 2세가 아니더라도 반시장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소위 ‘화이트칼라’에 해당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30대들이 반시장적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었고요. 심각한 문제 아닌가요?

반시장적일수록 지식인에 가깝다는 느낌을 주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죠.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강남좌파’라는 말도 있고요. 한국 사회에서 시장을 욕하고 대기업을 욕하는 건 시가를 피우는 것과 효과가 같습니다. 한 마디로 폼 나는 거죠.

그들이 대기업에 취업한 건 개인의 정체성(identity)에서 파생된 결과가 아니에요. 하나의 테크닉으로 취업이 된 거죠. 반시장적인 말을 한다고 하지만 어떤 사상적 기반을 토대로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에요. 자신이 업무시간에 하는 일이 무엇이건 간에 사상의 문제에 관해서는 일단 좌파적으로 말하는 게 ‘성숙한 것’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미 고착돼 있습니다.

-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걸까요.

이 문제에 우파진영이 너무 소홀했다는 데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어요. 좌파 정부 10년을 통과하는 기간을 경험하면서 좌편향 유행이 심화됐거든요. 그 전까지는 이 정도로 심하진 않았어요. 제가 지난 정부에 대해서 답답했던 것도 이런 부분입니다.

축만 1~2% 바꿔준다는 생각으로 접근해도 되는데, 이건 정권 잡으면 사실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DJ정부와 참여정부는 실제로 이런 일을 추진하기도 했고요. 왜 우파 정부는 이런 작업을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요.

“좌편향 분위기 바로잡는 데 우파 정부 역할 있다”

-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나요? 지난 MB정부 때 청와대 생활(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을 하셨는데요. 이제 와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책임 회피 아닙니까?

처음 그 자리를 제안 받았을 땐 거기 가면 제가 혼자서라도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공식적으로 정확하게 1년을 채우고 사표 내고 나왔죠. 그런데 안에 들어가서 해 보니까 보통 일이 아니더군요. 사실 참여정부는 방향이 달라서 그렇지 일을 잘한 정부였어요. 청와대 사람들이 서로 사상을 공유하는 ‘동지’로 구성돼서 작은 의견 차이는 있더라도 큰 틀에서 합의된 방향으로 갔던 거죠.

그런데 우파정부 구성원들은 동지 관계가 전혀 아니었어요. 정치인 조금, 학생 조금, 학계 조금, 관료 조금, 이런 식으로 구성이 워낙 다양하다보니 하나의 ‘사상 공유 집단’을 형성하지 못한 거죠. 속된 말로 더 좋은 밥그릇을 획득하기 위한 ‘승진 경쟁’이 있을 뿐 사상 전파를 위해 어떻게 해야겠다는 공감대는 전혀 없었어요.

- 그래서 그때 결실을 이루지 못한 개혁의 완성을 위해서 자유경제원 원장직을 받아들이셨다고 볼 수도 있겠군요.

그렇죠. 그런 배경이 깔려 있죠.

- 만약 사상적 공감대가 충분히 만들어지면 다시 그 자리로 가실 수도 있을까요?

그건 아니에요. 혹여 사상적으로 공통된 뭔가를 공유할 수 있는 집단이 기회를 갖게 된다면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정치구조에서는 아직 힘들다고 봐요. 지난 번 대선의 경우 역사상 최초로 대선에서 ‘성장’ 얘기가 나오지 않았잖아요? 다음 대선 때도 공짜 얘기가 더 많이 나오는 분위기가 유지될 것 같아서 참 힘든 상황입니다.

- 아직은 자유경제원 업무가 훨씬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웃음) 참 소중한 싱크탱크인데요. 혹시 롤 모델로 생각하시는 연구소가 있는지요.

대표적으로 미국기업연구소(AEI,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가 있죠. 전문가들의 논문 수준이 매우 높아요. 자유경제원의 가용 인력을 고려했을 때 당장 그 정도의 성취는 힘들다 할지라도 시사하는 바는 분명 있어요.

사상이나 이념 측면에선 CATO연구소 헤리티지재단 프레저연구소 같은 곳들과 공감대가 있어요. 그들에 비하면 굉장히 작은 규모지만 키워나가야겠죠. 국민적인 기부를 유도하는 식으로 재정 규모를 늘려간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기도 합니다.

“현안 해설하는 지식도매상 될 것”

- 자유경제원이 했던 일 중에 규모와 관계없이 주효했다고 평가 받는 것이 바로 ‘자유주의 시리즈’ 번역 발간이었습니다. 재개되기를 기다리는 팬들도 꽤 많은데 혹시 계획이 있으신지요.

네. 그 사업 복원할 생각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대학생들이 하이에크의 <치명적 자만>이 절판돼 읽을 수가 없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 책이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번역도 다 돼 있는 상황에서 꾸준히 유통시켜 주는 건 정말 중요하거든요.

자유경제원을 제외하면 딱히 그 역할을 할 사람이 없으니 저렇게 바이블에 해당하는 책이 절판돼도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어진 거예요. 사소한 것 같지만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하고요. 새로운 번역 작업에도 착수할 계획입니다. 덧붙여 ‘무상 급식’ ‘자유방임’ 같은 왜곡된 단어 선택을 바로잡아 주는 정명(正名) 운동도 2,30년 걸리더라도 계속 추진해야 할 주요 아이템이죠.

- 그런 원론적인 작업과 더불어 뭔가 새로운 이슈가 터졌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지를 ‘해석’해주는 작업도 싱크탱크의 주요 역할 같은데요. 자유경제원이 지식 도매상으로서 한 번 가공을 해주면 소매상인 각 언론사들이 전파하는 선순환 구도가 형성된다면 원장님이 말씀하신 공감대 형성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학자들은 사실 용어를 쉽게 해서 대중에게 전달하는 순발력은 조금 떨어지거든요. 말씀하신 부분을 보강하기 위한 홈페이지 정비 작업에 착수할 생각입니다. 현안에 대한 핵심을 대학생 수준의 단어들로 재가공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할 문제들은 ‘바른 정책 착한 정책 시리즈’등을 통해서 연속적으로 소화할 생각이에요. 지식의 생산보다 중요한 건 그걸 전달하는 거라고 봅니다.

- ‘공대 건축공학과 출신 자유경제원 원장’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학부 졸업 이후에 접하게 된 경제학은 원장님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사실 건축과를 선택할 때 그렇게 깊은 고민을 했던 건 아니었어요. 사회 문제에 대한 의식은 오히려 대학 진학 이후에 생기는 게 보통이니까요. 그 이후 7년간의 미국 유학을 떠났지만 막상 가서 보니까 대학원에서부터 진짜 공부가 시작되더라고요.

미국에서 사회과학적 접근법을 배우면서 경제학을 접했지만 ‘칠판경제학’은 한국 사회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어요. 공공선택이론도 오히려 한국에 돌아와서 접했죠.

완전히 색다른 시각이라 쇼크를 받았고 여기에 청와대 생활 1년이 덧붙여지면서 경험의 폭이 넓어졌어요. 정책이 만들어지는 프로세스의 이면을 접한 기회였으니까요. 그런 모든 다채로운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줬고 자유경제원은 또 하나의 새로운 변화이자 시작입니다.

인터뷰 / 황성준 편집위원
정리·사진 /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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