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는 사유재산 몰수의 성격이 강하다.”
16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 전남대 김영용 경제학부 교수가 한 말이다. 이날 최경환 경제팀이 첫 경기부양책의 하나로 사내유보금 지출 확대 방안을 들고 나오자 재계가 반발하고 있다. 민간 경제연구소 10곳이 정책토론회를 급하게 열었다. 이 자리에선 사내유보금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당기 이익금 중에서 배당·세금 등을 제외하고 회사에 남긴 돈을 말한다. 최 부총리는 이날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물리거나 인센티브 장치를 만들어 유보금이 배당이나 임금으로 쓰이도록 유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대기업이 쌓아두고 있는 돈을 가계로 흐르게 해 내수를 부추기겠다는 논리다.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10대 그룹 소속 81개 상장사(금융사 제외)의 올 1분기 말 사내유보금은 515조9000억원에 달한다. 5년 전인 2009년 271조원에 비해 90.3% 늘었다. 특히 삼성그룹의 증가분이 컸다. 2009년 86조9000억원에서 올 1분기 182조4000억원으로 95조4000억원(109.8%)이 늘었다. 삼성전자 한 회사만 같은 기간 70조9000억원에서 158조4000억원으로 87조5000억원(123.4%)이 불었다. 이어 ▶현대자동차 72조6000억원(176%) ▶SK그룹 24조1000억원(70%) ▶LG그룹 17조원(52%) 등이 늘었다. 정부는 이 같은 사내유보금이 적정 수준보다 지나치게 많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계는 이 같은 정부의 시각이 사내유보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반박하고 있다. 송원근 전경련 본부장은 “사내유보금은 80% 이상이 이듬해에 설비투자나 장기채권 투자 등에 쓰이기 때문에 현금성 자산과 혼돈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내유보금은 미래에 사용할 돈이지 남아도는 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사내유보금의 상당 부분은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부동산 구입 등에 사용돼 배당이나 성과급으로 쓸 재원이 많지 않다는 게 재계 설명이다. 대기업 주주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어서 배당을 늘리면 국부만 유출될 뿐 내수 진작에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사내유보금 과세는 1991년 비상장사를 대상으로 도입한 적이 있다. 비상장사가 이익금을 사주에게 배당하면 사주가 소득세를 물기 때문에 절세를 위해 사내 유보시키는 걸 막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 데다 이중과세라는 비판에 직면해 10년 만인 2001년 폐지됐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사내유보금 지출 확대 방안은 과거처럼 강제적으로 추진하려는 게 아니라 세금 혜택 등을 줘 기업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라며 “재계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김영훈·강병철 기자
◆ 사내유보금 =기업이 벌어들인 당기 이익금 중에서 배당·세금 등을 제외하고 회사에 남은 자금을 말한다. 이미 법인세 명목으로 세금을 내고 남은 돈이 유보금이기 때문에 이것에 과세하면 이중과세가 된다는 게 기업의 주장이다.